[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사우디 발칵 뒤집은 근로자 폭동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사우디 발칵 뒤집은 근로자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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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으로 가시는 게 급선무 아니었습니까? “그 시간에 항공편이 없는 겁니다. 제다에서 동해안에 있는 다란까지 비행기로 가서, 다시 자동차로 주베일까지 가야하는데 그나마 항공편은 없고, 육로로 가자니 아무리 달려도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니 그건 너무 늦잖아오. 그 사이에 얼마나 더 피해가 확대될지 모르고, 이미 COE 본부에 통사정을 했어요. 군용기를 지원해 달라고. 그랬더니 리야드로 오면 쌍발 프로펠러 군용기를 대기시키겠다는 겁니다. 주베일은 경비행기 외엔 내릴 수 있는 활주로도 없어요. 어젠 리야드로 가는 비행기 편이 문제예요. 마침 제다에서 리야드로 가는 비행기가 저녁 8시 반에 한 편이 딱 남았다는 겁니다. 다급하지만 그거라도 타자고 했더니 이게 또 딜레이가 돼서 밤 11시 반에 출발한다네, 11시 반에 뜨면 다음날 새벽 1시가 돼야 리야드 공항에 도착하는 겁니다. 아이구….” 이미 주베일 폭동 현장은 살풍경이었다. 현장을 지키던 중역들은 전부 얻어터져 피를 흘리며 피신했거나 병원으로 후송됐고, SNEP 현장에서까지 과격한 근로자들이 쇠뭉치나 나무방망이를 들고 관리직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기물을 파괴해 캠프에 거주하는 미군과 가족들을 미군이 철야경계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베일 상주 중역도 아닌 전갑원 상무(당시)가 쿠웨이트에서 항만공사를 수주하고 주베일로 들어오다가 또 소요현장에서 당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79년 완공한 주베일 산업항. 당시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
- 부사장(전갑원)께서는 아무래도 현대건설 중역 입장에서 회고하시겠지만 소요사태의 발생 동기는 뭡니까? “그때만 해도 솔직히 열사의 땅에 일하러 간다고 나간 사람들이니까 돈 벌자고 나갔는데, 하루 평균 3000여 명이나 투입되는데 숙소가 마땅찮아서 전부 한곳에서 숙식을 했으니 근무 여건에 불평과 불만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쨌든 데모 주동은 트럭운전기사들인데 그 당시 바로 옆에 동아건설 현장이 있었어요. 운전기사들끼리는 정보를 나눈다고요. 자기들끼리 얘기를 해 보니 부식도 동아가 낫고, 급료도 동아가 현대보다 조금 더 많거든? 그러니 전부 소문이 돌아서 불만이 누적되는 겁닏나. 같은 곳에서 같이 고생하는데 옆에 있는 회사는 먹는 것도 좋고 급료도 더 받고 우리는 뭐냐,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거지요. 그러고 있는데, 하필 모래를 재취하러 간 운전기사가 바람이 불면 잔모래는 날아가고 좋은 것만 쌓이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퍼오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좋지 않은 모래를 퍼오니까 우리 직원이, 평소에 주먹을 쓰는 친구인데 운전기사를 때려버린거야.”
- 폭행을 했다는 겁니까? “헬멧으로 한 대 때렸다는데 모르지. 맞은 기사가 동료들을 데리고 몰려가니까 문부장이라는 그 직원이 도망을 쳤어요. 그때만 해도 중역이든 간부든 나서서 이해를 시키고 사과했으면 되는 건데 전부 모른척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중기공장장을 만나러 몰려갔는데 공장장은 또 점심식사 중이라고 면담을 거부한거라. 그동안 누적된 불만도 있고 감정이 격해져 폭발 직전인데 하필이면 김 본부장이 차를 몰고 가다 보니까 앞에 가는 트럭이 속도를 안 내고, 실은 것도 가득 안 싣고, 일종의 사보타주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때도 그걸 참고 이해를 시켰으면 됐어요. 그만큼 회사도 그땐 노사문제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 같지 않았고 매끄럽게 수습하지도 못하고 그런 겁니다. 이 양반이 욱하는 성격에 차를 세워 운전기사를 또 때린 겁니다. 그게 불을 붙인 셈이 됐어요. 운전기사들이 전부 나서고 중기공장 다 때려부수고 차량 태우고 숙소 태우고….”
- 부사장께서는 왜 당한 겁니까. “그 당시 주베일 현장에는 김용재 소장도 있고 본부장도 있었지만 사실 나느 중동 전체 현장을 맡아가지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안 가도 되는데 쿠웨이트에서 한 건 했고 본부에 보고도 해야겠고, 주베일 현장도 궁금하고 해서 현장으로 온 거죠. 그런데 막 들어오니까 벌써 뭐 기능공들이 대소동이고 난리가 났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큰일 났구나 싶어요. 거기가 유전 지대예요. 사우디 비밀경찰들이 출동하기 시작하면 무차별 사격이 되고 데모에는 법도 없으니까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이미 서로가 들리질 않아요. 내 판단으로 유일한 방법이 마이크다, 사무실에 가야 있다 이거죠. 근데 사무실로 가는 것부터 어려워요. 숙소와 사무실 사이에 이 친구들이 꽉 차 있어요. 거기에 몰려 있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을 거라. 전부 흥분상태고.”
- 그런 상황에서 대화로 풀어볼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걸 알려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제일 급했다고요. 현장에서 그대로 사살해도 하소연조차 못하는 겁니다. 그걸 알려야 될 거 아닙니까. 나머지 근로조건이 어떻고 하는 건 회사 문제라고요. 그래서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다, 돌멩이는 막 날아오고, 그때 나는 쿠웨이트에서 바로 오는 길이니까 작업복 차림이 아니고 완전히 넥타이 차림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수습하러 온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있어요. 물론 기능공들을 보낼 때 면접을 많이 했으니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요. 어쨌든 사무실로는 가야겠고, 그때 기능공이 운전하고 가는 차가 속도를 내서 가는데 세웠더니 나를 알아보더라고요.”
- 부사장께서 직접 면접해서 뽑았던 기능공인데 배신을 하더라는 그 친구 아닙니까? “그런 셈인데 배신했다기보다 하여간 알아보고 언제 오셨느냐고 인사까지 해요. 그러면서 사무실까지만 태워 달라고 해서 가는데 그 순간이지, 확 돌변한 거예요. 물론 돌변한 이유도 있어요. 전속력으로 차를 사무실로 모니까 간부가 탔다고 판단해 막 공격이 들어오고 돌이 정신 없이 날아오거든? 자기가 맞아 죽게 생겼단 말이죠. 순간적으로 돌변한 거예요. 차를 풀 스피드로 밟으면서 그놈은 뛰어내리고 나는 완전히 대형 덤프트럭으로 돌진하면서 그대로 들이밖았죠. 그러니 정신을 잃고 머리가 터져서 피도 나고 그랬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그놈들이 나를 끄집어내서 밟고 말이지. 지금도 요 손가락 중간에 조인트가 있는데 그때 그런 거예요. 눈을 떠 보니 병원에 와 있고 하루가 지났더라고요. 그 사이에 유 대사님이 온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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