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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사우디 발칵 뒤집은 근로자 폭동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사우디 발칵 뒤집은 근로자 폭동

▶유양수 전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현대건설로서는 최초이면서 최대의 노사분규라 할 수 있는 77년의 이른바 3·13 대폭동 사건은 현대의 사령탑만 놀라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우디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우리 정부에도 비상이 걸릴 정도였다. 데모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사우디에서 근로자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고 차량과 기물이 불타고 파괴됐을 뿐 아니라 수습하러 현장에 긴급 투입된 중역(박규직 당시 상무)이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나가는가 하면 협상을 시도하려던 중역(전갑원 당시 상무)이 돌진하는 대형 덤프트럭과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고 실신했다. 분노한 근로자들이 짓밟는 현장을 목격한 사우디 비밀경찰(보안군)은 실탄을 장전하고 3000명이 넘는 시위 근로자를 전부 현장에서 즉결처리 하겠다며 강경하게 진압하려는 상황까지 갔던 것이다.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했을 때만 해도 현대는 세계적인 건설사들의 부러움을 샀던 업체였고,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른 기업이었다. 결과론이지만 76년 6월부터 79년 12월까지 42개월로 되어 있는 공사기간을 10개월이나 단축하면서 79년 2월 완공했을 때는 세계적인 건설사들이 세 번이나 놀랐다면서 감탄했다. 빠른 공사수행,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한국인의 근면성, 이것은 유럽 어느 나라 업체에서도 볼 수 없는 감동적인 광경이었따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현지 비밀경찰 발포 직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소장을 맡았던 김용재 이사는 사우디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문화적 차이의 어려움에도 유럽 업체들의 텃세, 발주처와 감독청의 끊임없는 불신, 기술적인 미경험 등 온갖 불리한 환경과 조건들을 모두 극복하면서 완벽한 공사를 했다는 것에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준비에 들어간 후 9개월, 본 공사에 돌입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상상도 경험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소요사태가 일어날 줄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이다. “그날이 일요일입니다.” 사건이 터지고 유양수 대사가 현장으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으면서 사태 파악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후였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현장을 멀리 두고서도 열악한 통신 사정은 사태 파악도, 긴급한 지시도 내릴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휴일인데도 대사가 대사관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북한에서도 주변 곳곳에 나와 있었어요. 그 당시는 우리와 이북이 상당히 긴장돼 있을 때 아닙니까. 그 친구들이 공작을 하려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 휴일이라도 한국의 휴일하고는 같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늘 긴장상태로 지내는데, 그날은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요. 현대건설이 사우디 동부 ‘라스알가르’ 부두공사를 2억6000만 달러에 수주했고, 동아건설이 서해안 ‘알카디마’ 부두공사를 1억 7000만 달러에 수주해 한꺼번에 국내 업체가 두 공사를 같은 날 차지해 대통령의 축전을 받을 만큼 기분이 좋았던 거죠. 그래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보통은 한숨을 자야 건강 유지를 하지만 산보를 겸해서 사무실로 나갔어요. 대사관저하고 사무실까지 거리가 한 400m 됩니다. 조금 있으니까 통신사가 급히 찾아요. 그때가 오후 4시쯤 됐을 겁니다. 알코바에 있는 현대건설 사무실에서 뭔가 다급한 전화가 왔으니 받아보라는 겁니다. 받으니까 감이 워낙 좋지 않고 ‘대사님입니까? 큰일났습니다! 주베일인데 난동이 벌어져서 사상자까지 나고 있습니다. 빨리 와 주셔야겠습니다!’ 누군냐고 물어도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고 있는지 다급히 와 달라는 소리만 하고 금방 끊어져버려요. 전화 사정이 참 어렵고 속을 뒤집어 놔요. 직감적으로 이거 뭔가 잘모됐구나. 근데 더 이상 알아볼 방법이 있어야지요. 주베일 공사 현장과 알코바 현대사무소는 1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거기도 전화가 안 되고, 대사관에서 알코바까지는 1300km나 떨어져 있는데 암만 걸어도 역시 전화가 안 돼요.” 다른 비상수단을 가동해야 해다. 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던 노무관, 건설관, 중앙정보부 파견관을 비상소집 했지만 그들도 사건이 발생할 만한 징조나 원인 같은 것을 사전에 입수한 게 없었다. ‘라스타누라’에 있는 대림산업과 동아건설에 연락을 취해도 허사였다. 급기야 리야드에 있는 COE(미 육군지중해공병단) 본부에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른 앙침부터 인근의 SNEP(해상육상기지 확장공사) 현장의 근로자들까지 산업항 근로자들과 합세해 전원이 소요사태에 가담했고, 사태가 심각해 COE도 비상상태에 돌입했으며 사령관 그레이 대령까지 현장으로 이미 날아갔다는 것이다. “대사인 나만 뒤늦게 알았고 꼼짝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COE 본부의 얘기를 들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려요. 폭동이 일어난 현장하고 10km 지점에 미 공병단 군사시설 공사현장이 있는데 그 SNEP도 현대가 수주해 함께 공사를 하고 있었단 말이죠. 사우디의 모든 군사시설은 미국과 사우디가 군사원조협정을 맺어 전부 COE에서 발주하고 전담하기 때문에 거긴 거기대로 강력한 진압권이 있다고요. 그런데도 SNEP 근로자들까지 가담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정말 큰일 났구나 싶고 당혹스러운 건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에요. 전 직원을 비상소집하고 혹시 동요할지 모르니까 사우디 22개 공사장 근로자들한테는 소요사태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차단 조치를 취하고 우리 정부에도 긴급 차전을 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눈 앞이 깜깜해지고, 모처럼 진출해 중동에 대한 우리 꿈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는 것 같고 말이지요. 그러니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어떻게 해서라도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빨리 수습해야겠고, 외교적인 사건으로 확대가 안 되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부터 들어요. 사우디 국법대로라면 전원 추방이거나 전원 구속이거나 최악의 경우 현장 발포도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님니까. 피가 말라요.”

- 현장으로 가시는 게 급선무 아니었습니까?
“그 시간에 항공편이 없는 겁니다. 제다에서 동해안에 있는 다란까지 비행기로 가서, 다시 자동차로 주베일까지 가야하는데 그나마 항공편은 없고, 육로로 가자니 아무리 달려도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니 그건 너무 늦잖아오. 그 사이에 얼마나 더 피해가 확대될지 모르고, 이미 COE 본부에 통사정을 했어요. 군용기를 지원해 달라고. 그랬더니 리야드로 오면 쌍발 프로펠러 군용기를 대기시키겠다는 겁니다. 주베일은 경비행기 외엔 내릴 수 있는 활주로도 없어요. 어젠 리야드로 가는 비행기 편이 문제예요. 마침 제다에서 리야드로 가는 비행기가 저녁 8시 반에 한 편이 딱 남았다는 겁니다. 다급하지만 그거라도 타자고 했더니 이게 또 딜레이가 돼서 밤 11시 반에 출발한다네, 11시 반에 뜨면 다음날 새벽 1시가 돼야 리야드 공항에 도착하는 겁니다. 아이구….” 이미 주베일 폭동 현장은 살풍경이었다. 현장을 지키던 중역들은 전부 얻어터져 피를 흘리며 피신했거나 병원으로 후송됐고, SNEP 현장에서까지 과격한 근로자들이 쇠뭉치나 나무방망이를 들고 관리직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기물을 파괴해 캠프에 거주하는 미군과 가족들을 미군이 철야경계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베일 상주 중역도 아닌 전갑원 상무(당시)가 쿠웨이트에서 항만공사를 수주하고 주베일로 들어오다가 또 소요현장에서 당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79년 완공한 주베일 산업항. 당시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 부사장(전갑원)께서는 아무래도 현대건설 중역 입장에서 회고하시겠지만 소요사태의 발생 동기는 뭡니까?
“그때만 해도 솔직히 열사의 땅에 일하러 간다고 나간 사람들이니까 돈 벌자고 나갔는데, 하루 평균 3000여 명이나 투입되는데 숙소가 마땅찮아서 전부 한곳에서 숙식을 했으니 근무 여건에 불평과 불만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쨌든 데모 주동은 트럭운전기사들인데 그 당시 바로 옆에 동아건설 현장이 있었어요. 운전기사들끼리는 정보를 나눈다고요. 자기들끼리 얘기를 해 보니 부식도 동아가 낫고, 급료도 동아가 현대보다 조금 더 많거든? 그러니 전부 소문이 돌아서 불만이 누적되는 겁닏나. 같은 곳에서 같이 고생하는데 옆에 있는 회사는 먹는 것도 좋고 급료도 더 받고 우리는 뭐냐,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거지요. 그러고 있는데, 하필 모래를 재취하러 간 운전기사가 바람이 불면 잔모래는 날아가고 좋은 것만 쌓이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퍼오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좋지 않은 모래를 퍼오니까 우리 직원이, 평소에 주먹을 쓰는 친구인데 운전기사를 때려버린거야.”

- 폭행을 했다는 겁니까?
“헬멧으로 한 대 때렸다는데 모르지. 맞은 기사가 동료들을 데리고 몰려가니까 문부장이라는 그 직원이 도망을 쳤어요. 그때만 해도 중역이든 간부든 나서서 이해를 시키고 사과했으면 되는 건데 전부 모른척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중기공장장을 만나러 몰려갔는데 공장장은 또 점심식사 중이라고 면담을 거부한거라. 그동안 누적된 불만도 있고 감정이 격해져 폭발 직전인데 하필이면 김 본부장이 차를 몰고 가다 보니까 앞에 가는 트럭이 속도를 안 내고, 실은 것도 가득 안 싣고, 일종의 사보타주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때도 그걸 참고 이해를 시켰으면 됐어요. 그만큼 회사도 그땐 노사문제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 같지 않았고 매끄럽게 수습하지도 못하고 그런 겁니다. 이 양반이 욱하는 성격에 차를 세워 운전기사를 또 때린 겁니다. 그게 불을 붙인 셈이 됐어요. 운전기사들이 전부 나서고 중기공장 다 때려부수고 차량 태우고 숙소 태우고….”

- 부사장께서는 왜 당한 겁니까.
“그 당시 주베일 현장에는 김용재 소장도 있고 본부장도 있었지만 사실 나느 중동 전체 현장을 맡아가지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안 가도 되는데 쿠웨이트에서 한 건 했고 본부에 보고도 해야겠고, 주베일 현장도 궁금하고 해서 현장으로 온 거죠. 그런데 막 들어오니까 벌써 뭐 기능공들이 대소동이고 난리가 났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큰일 났구나 싶어요. 거기가 유전 지대예요. 사우디 비밀경찰들이 출동하기 시작하면 무차별 사격이 되고 데모에는 법도 없으니까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이미 서로가 들리질 않아요. 내 판단으로 유일한 방법이 마이크다, 사무실에 가야 있다 이거죠. 근데 사무실로 가는 것부터 어려워요. 숙소와 사무실 사이에 이 친구들이 꽉 차 있어요. 거기에 몰려 있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을 거라. 전부 흥분상태고.”

- 그런 상황에서 대화로 풀어볼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걸 알려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제일 급했다고요. 현장에서 그대로 사살해도 하소연조차 못하는 겁니다. 그걸 알려야 될 거 아닙니까. 나머지 근로조건이 어떻고 하는 건 회사 문제라고요. 그래서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다, 돌멩이는 막 날아오고, 그때 나는 쿠웨이트에서 바로 오는 길이니까 작업복 차림이 아니고 완전히 넥타이 차림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수습하러 온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있어요. 물론 기능공들을 보낼 때 면접을 많이 했으니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요. 어쨌든 사무실로는 가야겠고, 그때 기능공이 운전하고 가는 차가 속도를 내서 가는데 세웠더니 나를 알아보더라고요.”

- 부사장께서 직접 면접해서 뽑았던 기능공인데 배신을 하더라는 그 친구 아닙니까?
“그런 셈인데 배신했다기보다 하여간 알아보고 언제 오셨느냐고 인사까지 해요. 그러면서 사무실까지만 태워 달라고 해서 가는데 그 순간이지, 확 돌변한 거예요. 물론 돌변한 이유도 있어요. 전속력으로 차를 사무실로 모니까 간부가 탔다고 판단해 막 공격이 들어오고 돌이 정신 없이 날아오거든? 자기가 맞아 죽게 생겼단 말이죠. 순간적으로 돌변한 거예요. 차를 풀 스피드로 밟으면서 그놈은 뛰어내리고 나는 완전히 대형 덤프트럭으로 돌진하면서 그대로 들이밖았죠. 그러니 정신을 잃고 머리가 터져서 피도 나고 그랬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그놈들이 나를 끄집어내서 밟고 말이지. 지금도 요 손가락 중간에 조인트가 있는데 그때 그런 거예요. 눈을 떠 보니 병원에 와 있고 하루가 지났더라고요. 그 사이에 유 대사님이 온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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