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계 누르고 큰손 급부상
영·미계 누르고 큰손 급부상
▶중동의 오일머니가 한국 시장에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파리의 엘리제 궁을 방문한 셰이크 칼리파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오른쪽)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 셰이크 칼리파 대통령은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 회장이기도 하다. |
고유가로 덩치를 키운 중동의 오일 머니가 한국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올 들어 중동 오일 머니는 영·미계를 제치고 한국 증시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다. 또 국내 펀드나 벤처캐피털을 통해 벤처,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추진하는 등 전방위 공략에 나서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오일 머니를 보다 많이 유치하기 위해선 세제 개선 등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충고한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국내 주식시장에도 기름 냄새(오일 머니)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에 중동 바람이 불고 있다. 올 들어 서브프라임 사태로 외국인 주식 투매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중동의 오일 머니는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가 금융감독원의 올 상반기 외국인 국내투자 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투자자들은 기존 한국 증시의 큰손이었던 영·미계 투자자들을 제치고 새로운 큰손으로 떠올랐다.
중동 투자자들은 올 상반기 유가증권 시장에서 2조639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1019억원 등 총 2조1658억원가량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에 반해 국내 보유주식 비중이 가장 많은 미국 투자자들은 유가증권 및 코스닥 시장을 합쳐 총 12조5034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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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오일 머니는 증시 직접투자뿐만 아니라 국내 펀드, 벤처캐피털 등 간접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3월 한국기술투자는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 3억 달러 규모의 펀드(KTIC-재스퍼 아시아 걸프 호라이즌 펀드) 자금을 유치했다.
이 펀드는 ‘두바이 테크노파크’가 주관하는 벤처투자펀드로 운용은 한국기술투자가 담당한다. ‘두바이 테크노파크’는 두바이 정부가 자국 및 아랍에미리트 지역 정보통신(IT) 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도종원 한국기술투자 팀장은 “펀드는 주로 아시아 및 유럽 지역의 IT 벤처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라며 “투자 시장별로는 한국 45%, 아시아 30%, 유럽 및 중동 지역 25% 정도로 한국시장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자산운용은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을 대상으로 펀드 자금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KTB자산운용은 아부다비투자청에 펀드 투자제안서를 보낸 상태며 이르면 이달 중 자금 유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아부다비투자청은 국내 인수합병(M&A)과 구조화펀드에 관심이 많다”며 “한 달 안에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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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 한국투자증권 상무는 “최근 중동 투자자들은 한국 등 아시아 지역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런 시류에 맞춰 중동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금 유치 계획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중동 국가들 아시아 투자 확대
올 들어 중동 오일 머니가 한국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의 투자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금융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성 차원에서 투자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투자 비중을 줄이고 성장 지역인 아시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사태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자 중동 국부펀드들은 저마다 아시아로 투자 방향을 돌리고 있다. 쿠웨이트투자청이 아시아 비중을 2005년 10%에서 2010년 20%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카타르투자청도 2010년에 아시아 투자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도훈 상무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중동 국가들의 주요 투자 대상국은 미주나 유럽 등지였으며 이머징 시장 역시 동유럽 위주로 투자해왔다”며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주요 투자 대상국의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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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로 한국의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진 것도 오일 머니가 투자 비중을 늘리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자산가치가 저평가됐을 때 많이 사둬 재평가 시 이익을 남기는 전형적인 ‘바이앤홀드(Buy and Hold)’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임종복 도이치자산운용 이사는 “미국발 신용경색과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주가수익비율(PER)이 15배에 달했던 국내 증시는 최근 9배 수준으로 급락했다”며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싸지면서 동아시아 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이 대거 주식을 매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IT산업의 부흥을 꾀하는 중동 국가들이 한국을 동아시아의 주요 투자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종원 팀장은 “최근 중동 국가들은 석유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유망 산업으로 IT에 집중하고 있다”며 “IT 강국인 한국의 벤처투자를 늘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중동의 오일 머니 유치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동의 아시아 투자 확대라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개별 금융회사나 기업이 각개전투 식으로 뛰고 있어 그 성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중국, 일본 등은 정부가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오일 머니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를 없애고 조세 문제를 개선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이도훈 상무는 “중동 국가들은 샤리아(Shariah)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자를 받을 수 없으며 파생상품, 돼지고기, 도박, 술 등과 관련된 상품이나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고유가로 이 같은 율법에 맞는 이슬람 금융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래비용 부담으로 관련 상품을 만들기 힘들고 때문에 투자 유치도 힘들다”며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증권회사 한 이코노미스트도 “정부는 7%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외국인 투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올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8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며 “중동의 풍부한 자금을 경쟁국에 빼앗기기 전에 하루빨리 정책적인 지원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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