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미국 표심의 바로미터
이곳이 미국 표심의 바로미터
미국 앨라배마주 출신의 실존주의 작가 워커 퍼시(1916∼1990)는 ‘그들이 내게 절대 묻지 않은 질문들’이란 자문자답을 했다. 거기서 외지 출신 기자들의 인터뷰에 오랫동안 응하면서 느낀 좌절감을 토로했다. “내게 가장 지겨운 것은 북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새로운 남부’를 이야기할 때”라고 썼다. 그리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로운 남부’란 말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남부에 관한 질문보다 더 지겨운 게 있다면 기자가 듣고 싶은 대로 해 주는 남부 사람들의 대답이다. 만일 남부 시골 사람들에 관해 북부 사람이 또다시 질문하고, 남부 사람이 또다시 그 질문에 답한다면 차라리 남북전쟁 때 남군이 북군에 패한 뒤 브라질 마나우스로 이민 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사람들 곁으로 가겠다. 그들의 후손은 이젠 영어도 못하고, 이름도 세누르 카를루스 칼훈 등으로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질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퍼시의 불평에 공감하는 남부 출신이다. 남부 사람들에게 남부는 우주의 중심처럼 여겨질 수 있다. 미국의 야만적인 다른 주들로 통하는 ‘로마’로 말이다. 반면 비남부 출신들에게 남부는 집 베란다에 기둥이 서 있는 낭만적인 곳이나 정치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보수주의의 요새처럼 여겨진다. 남부의 그런 자기인식이든 외지인들의 상반된 시각이든 모두 별 도움이 안 된다. 남부 사람들은 속으로 잘난 체하고, 외지인들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불완전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남부의 문화와 정치에 관한 대화의 핵심엔 수많은 학위논문의 주제가 된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부가 정말 다른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가? 대개는 다르다는 대답이 나오지만 그 질문 속엔 남부 사람들이 역사와 비극에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명제가 전제돼 있다. 사실 보스턴이나 시카고 교외 지역 하면 무법이 판치는 비정상적인 곳으로 여길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도 북부 사람들은 남부가 전쟁에서 진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에 삶을 덧없이 생각하는 남부인들의 태도가 더욱 굳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트남전에서 패한 것은 남부만이 아니라 미국 전체가 아닌가? 퍼시가 말하는 ‘새로운 남부’를 지켜본 사람들은 오랫동안 외지인들이 버지니아주 북부(정부와 기술의 중심지), 샬럿(금융 중심지), 애틀랜타(모든 것의 중심지) 등 주요 ‘허브’로 유입된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주민의 대부분은 사실 1950년대와 60년대 당시 정부의 인종통합 정책에 반대하던 시절을 직접 체험하지도 못했다. 앨라배마, 아칸소,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버지니아주의 주민 다수는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엔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다. 노예제도와 인종분리 정책이 그토록 중요했던 지역에서 과거가 갖는 중요성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도 그 두 가지 악(惡)의 공범이었다. 인종차별주의는 남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였으며 속죄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 렇다면 남부는 다른 많은 주보다 분명 문화적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는 아니다. 남부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남부를 깔보는 태도는 일시적으론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불경스럽고 탐욕스러운 양키(북부사람)들이나 잘난 체하는 진보주의자들을 비하하는 남부의 속어만큼이나 자멸적이다. 자주 쓰이는 한 가지 표현을 빌리면 미국 남부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남북전쟁 당시는 예외였다. 그러나 그 시기만 제외하면 미국 남부는 미국인 상당수의 생각이나 느낌과 배치된다기보다는 때론 과장된 방식으로 그런 생각과 느낌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남부의 정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올해 대선이 이미 끝났다고 단언하는 것은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군 장군들이 바비큐 파티에서 섣불리 북군을 금방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실수일지 모른다. 나는 간혹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난 한 달 동안을 남부에서 보냈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의 인종이나 존 매케인의 나이 이야기보다 이라크전과 휘발유 값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민권운동 시대 이후 민주당 후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많은 백인이 11월 본선에서 타성에 젖어 투표하기보다는 오바마와 매케인 두 후보를 조심스럽게 저울질할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양 진영에 희소식도 되고, 나쁜 소식도 된다.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은 정상적인 해라면 레이건 이후 전통적으로 공화당 후보를 찍어 온 대의원들에게 의지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바마는 나머지 지역에서 전체 대의원의 70%를 확보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올해는 정상적인 해가 아니다. 내 친구 한 명은 지난 7월 테네시주 프랭클린 카운티에서 ‘하느님의 교회’가 개최한 모금행사에 참가했다. 참가자에게 먹을 것을 한 접시 주고 기부금을 받는 이 행사엔 일찍 가야 한다(프라이드 치킨이 빨리 동난다). 그런데 그곳에서 백인 트럭운전사 두 명이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을 맹렬히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다. 만일 전시 상태인 나라에서 유권자가 공화당원이고, 테네시주의 ‘하느님의 교회’가 개최한 행사에서 트럭운전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오바마는 앨 고어와 존 케리가 겪은 것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우선 그는 지난 40년간 인종보다 더 큰 결점임이 드러난 민주당의 후보다. 1968년 이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승리한 민주당 후보는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뿐이다. 둘 다 남부 출신인 그들은 미국이 본질적으로 중도우파 국가라는 점을 이해했다. 그들이 전국적인 승리를 거둔 이유는 바로 그 중도의 언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남부의 주들도 포함하지만 그렇다고 그 지역만 염두에 두지는 않는 언어로 말했다. 1976년 카터는 버지니아주만 제외하고 미 전역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은 아칸소, 켄터키, 루이지애나,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두 차례나 이겼다. 92년엔 조지아주, 96년엔 플로리다주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존 케리는 2004년 남부 주 전역에서 패했기 때문에 오바마가 더 나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은 없다. 현재로선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인 이 지역에서 다소 성공하리라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오바마 진영은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주 현지에서 선거운동을 펼친다. 참모들은 다음과 같은 방침을 세웠다. 수십만 명의 새로운 흑인 유권자를 등록시켜 오바마가 남부에서 승리하거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백인 표의 비율을 낮추는 전략이다. 그 사이 오바마는 플로리다주 63만 명, 노스캐롤라이나주 8만4000명, 버지니아주 7만 명 등 아직 유권자 명부에 등록하지 않은 중남미계 주민의 등록을 유도하려 땀을 흘린다. 동시에 오바마 선거대책본부는 플로리다주에서 23만6000명에 이르는 18~24세의 미등록 유권자 등 더 젊은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노력도 계속한다. 미등록 흑인 유권자가 60만 명에 이르고 아직 등록하지 않은 18~24세 연령의 유권자가 22만7000명에 달하는 조지아주는 충분히 노릴 만한 곳이다. 민주당 진영은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버지니아주가 가장 희망 있는 곳임을 사석에서 인정한다. 워싱턴의 민주당 지도부는 더러 오바마가 오하이오주보다 버지니아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확신한다. 매케인은 현명하게도 남부는 떼어놓은 당상이란 태도를 버리고 최대한 공을 들인다. 이미 버지니아주를 돌아다니며 유세한 그는 그곳이 최대 취약지역임을 잘 안다. 선거대책본부가 미국 남부의 “잊어버린 지역들”이라고 명명한 곳을 도는 유세에서 매케인은 “국민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자신은 사려가 깊지 못한 당파적 후보가 아닐뿐더러 부시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트럭운전사들은 귀담아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퍼시의 말대로 ‘새로운 남부’를 거론하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유동적인 곳을 한마디로 규정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에 다름 아니다. 퍼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정의하는 ‘새로운 남부’는 ‘새로운 남부’라는 말조차 꺼낼 필요가 없는 그런 남부다.” 얼핏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90일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 만일 역사가 조금이라도 교훈이 된다면 2008년의 남부가, 아니면 최소한 남부지역 중 일부가 선거 결과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미국의 다른 지역과 동떨어지기보다 일치된 결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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