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에 발목 잡힌 ‘하이구이파’
| ▶인터넷 포털 sohu.com 설립자 찰스 장 | |
찰스 장은 21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자신만만한 기업가로 중국의 2대 인터넷 포털 중 하나인 Sohu.com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주 그는 베이징의 랜 클럽(필립 스타크가 실내장식을 한 고급 나이트클럽)에서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을 초대해 올림픽 기념 파티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장은 자신이 올림픽 기간에 토크쇼 진행자로 일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미국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과 제이 리노한테서 많은 걸 배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장의 생각을 들어보면 이런 배경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는 지난 봄 런던과 파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친티베트 시위대가 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해한 후 중국에서 발생한 반서방 시위는 정당하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올림픽 성화 봉송단 난입 사건이 있은 뒤에는 프랑스 상품과 언론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이 한마음으로 세계에 맞서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인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 사건은 중국인들이 분노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요즘 중국인들의 공통된 정서가 그렇다. 하지만 장 같은 하이구이[海龜(바다거북): 해외유학 후 중국으로 돌아가 창업하거나 취업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해외에서 돌아왔다’는 뜻의 하이와이 구이라이(海外歸來)를 줄여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파는 생각이 다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주로 상류층의 자제로 매년 수만 명씩 늘어나는 하이구이파는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서양 사람들은 이들이 첨단기술과 함께 구미의 가치를 중국에 들여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들은 좀 더 개방되고 진보적이며 친서방적인 중국을 만드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올봄 올림픽 성화 봉송 때 분노한 중국인 해외 유학생들이 나라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중국인들보다 더 맹목적인 애국심을 드러내면서 완전히 깨졌다. 이런 추세를 거스르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큰 대가를 치렀다. 듀크대에 다니는 중국 칭다오(靑島) 출신의 한 용감한 여학생은 캠퍼스에서 10여 명의 친티베트 시위대와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말리려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녀를 ‘인종 반역자’ ‘매춘부’라고 부르면서 비난했고 그녀 부모의 집 현관에 배설물을 퍼부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하이구이파의 생각과 태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설문조사를 근거로 한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홍콩 과학기술대 중국 국제관계 연구소의 데이비드 즈웨이그 교수는 캐나다와 일본,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하이구이파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즈웨이그는 조사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맹목적인 애국심이라는 측면에서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중국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옳건 그르건 조국은 조국’이라는 식이다.” 즈웨이그는 “게다가 그들 중 상당수가 중국의 국익 증대를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애국심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자 한 1989년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이 성공한 셈이다.” 중국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하이구이파의 경우 서양 문화 접촉은 자기방어 심리만 더 부추겼다. 하이구이파를 상대로 일하는 작가 겸 사업 컨설턴트 짐 맥그리거는 “중국 최고 부유층에서 반서방 정서가 가장 드높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새로 산 뷰익 승용차를 타면서도 중국을 서양식으로 개조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은 ‘중국이 본연의 위대함에 부응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훨씬 더 야심 찬 포부를 지니고 있다. 하이구이파의 지도층은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이 종종 ‘서양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현대적인’ 나라를 동경하지 않는다. 성공한 젊은 하이구이파는 자신들을 ‘현대적인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이구이파의 이전 세대들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국심을 드러냈다. 100여 년 전 중국 유학생들은 서양에서 과학 기술을 배운 뒤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에 관한 책의 집필을 막 끝낸 중국 반체제 언론인 다이칭은 “그들은 중국의 교육에 도움을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풍부한 사업 기회가 해외 유학생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1989년 톈안먼(天安門) 학생시위의 무력진압에 반대한 혐의로 옥살이를 한 다이 같은 사람도 “조국이 끌어당기는 힘”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이가 1991년 하버드 니먼 펠로십 장학금을 받고 처음 중국을 떠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다시는 중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다이는 “사람들은 나보고 ‘20년 동안 외국에 드나들면서 미국 영주권도 없다니 바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하이구이파 대다수는 나름대로 이론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들은 서양인들의 계속되는 무시에 참을성이 한계에 달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10여 년 살다가 귀국해 상하이에서 교육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대니 황은 “중국인들이 해외에 나가면 ‘중국에 현대식 건물이나 자동차가 있느냐’는 등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우스일리노이대에서 영화와 사진을 공부한 후 상하이대에서 영화학을 가르치는 슈하오룬은 어떤 경우엔 서양에 대한 분노가 향수병의 고통을 달래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반서방 정서는 조국과 연결돼 있다는 결속감을 느끼게 해 주는 수단이다.” 또 인터넷은 해외 거주 중국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민족주의를 약화하기보다는 더 북돋운다. 1987~2000년 호주에 거주하다 상하이에 관한 책을 쓰려고 귀국한 소설가 자오추안은 “그들은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완전히 중국적인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해외 유학생들이 중국 신문을 읽으려고 차이나타운에 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영국에 살면서도 영국 신문이나 TV를 보지 않고 지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일각에서는 하이구이파를 움직이는 힘이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기 주장이 강한 중국 도시 젊은이들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엄격하게 시행돼 온 중국의 ‘한 자녀 낳기’ 가족계획 정책은 이른바 ‘소황제’로 불리는 한 자녀 세대를 탄생시켰다. 하버드대 케네디 대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지금은 시장조사 상담회사 호라이즌을 운영하는 빅터 위안은 “중국 젊은이들은 무엇에 대해서든 자기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서양, 양쪽 모두의 기준에 반항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런던에서 유학한 건축가 마옌쑹이 그 예다. 그는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건물에 집착하는 중국 정부를 조롱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위안은 “이 세대는 어떤 종류의 이념적인 메시지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공산당의 메시지든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미국의 대외 홍보 라디오 방송)의 메시지든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하이구이파의 세력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즈웨이그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부 각료 중 두 명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부성장급 이상의 관료 약 100명이 외국에서 1년 이상 공부했다. 즈웨이그는 해외 거주 기간이 길수록 애국심과는 상관없이 좀 더 폭넓고 국제적인 시각을 지니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들은 중국이 궁지에 몰리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중국이 이런저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큼 분별력이 있다.” 장은 지난주 랜 클럽에서 이제 중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자존심을 얻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모쪼록 중국이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더 책임감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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