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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산운용사도 기회 줄 것”

“한국 자산운용사도 기회 줄 것”

일본에서 국민연금의 일부를 국부펀드로 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려 10조 엔 규모다. 일본국부펀드 입안자인 다무라 고타로 의원에 따르면 국부펀드 운용은 민간전문가 집단이 맡으며, 해외 자산운용사도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 8월 20일 방한한 다무라 의원에게 일본국부펀드에 대해 들었다.


일본 정치인 한 사람이 한국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총리도 아닌 참의원 한 명이 한국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양원제인 일본에서 참의원은 중의원보다 권한이 적다.

일본 자민당의 다무라 고타로(46) 참의원의 이번 한국 방문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이런 한산한 반응과 달리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 타임스, 유로머니 등에서는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가 일본 최초의 국부펀드 입안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4일 다무라 의원이 간사로 있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의 자문그룹인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150조 엔에 달하는 일본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국부펀드 운용자금으로 쓰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부펀드 운용자금은 대략 10조 엔(약 100조원) 규모다.

이들은 정부 산하의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굴리는 93조 엔 중 일부를 국부펀드 투자금으로 돌려 부진한 공적 연금의 수익개선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GPIF는 운용자산의 58%, 18%를 각각 일본 국채와 주식에, 25%는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증시 약세로 지난해 말 기준 7924억 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연금펀드가 7%의 수익률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GPIF의 구성원은 고작 20명에 불과하며 후생성 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지난해 유치원 관리, 요양원 관리를 한 사람도 있다. 금융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국민연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일본 국민은 지난해 정부가 전산 입력 과정에서 국민연금 기록을 분실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낮아져 있는 데다 수익률까지 떨어져 국민연금 개혁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국부펀드가 현실화하면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것 외에도 일본 자본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자금이 민간시장에 풀리게 되면서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운용사들과 운용 담당자들에게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초기 청사진에 따르면 경영진 및 사원은 ‘국적 불문 채용’이라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인맥이나 족벌이 아닌 오직 전문성으로 평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투자원칙에는 ‘해외기업 인수 안 함’‘적대적 인수 안 함’ ‘M&A에는 기본적으로 참가 안 함’과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쪽의 견제를 의식한 듯 보인다. 한때 일본 대형은행들이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해 눈총을 받았던 적이 있다. 최근엔 오일 머니를 쥔 큰손들이 기업 부동산 등을 확보하려고 달려들어 미국인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국부펀드 입안자인 다무라 고타로 의원은 아베 총리 시절 재무성 부대신 출신으로 야마이치증권 기업개발부 M&A 중개담당 출신이라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세습의원이 아니라는 점도 눈에 띈다.

노 다니엘 동아시아평화투자 대표는 “관료가 아닌 정치인이 대신(장관)이 되는 일본에서 부대신은 여당에서 촉망 받는 젊은 인재가 선발된다”고 설명했다.



관료들 저항이 가장 큰 걸림돌

다무라 의원은 8월 20일 방한해 한국투자공사(KIC) 진영욱 사장을 만났고 이튿날 일본 자본시장과 관련 있는 금융계 인사와 면담했다. 일본국부펀드를 설명하고 한국 금융인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다. 참석자들은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국내 자산운용사에 좋은 기회가 될 것” “국부펀드는 세계적인 이슈이며 일본의 결단이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무라 의원은 한국 금융계 간담회에서 “일본이 세계에서 둘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졌지만 나라가 늙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금이 줄거나 세금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국민 대다수가 연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리라는 뜻에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국부펀드가 입안될 확률이 몇%쯤 되나?
“70%쯤 된다. 안 될 확률은 30% 정도다. 관료의 저항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본다. 후쿠다 총리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컨센서스가 확립돼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1% 높아져 국부가 쌓이면 소비세 1%를 낮출 수 있다. 소비세 1%를 줄인다는 것은 일본 국민 한 사람당 연 20만 엔을 돌려받는다는 의미와 같다. 아다시피 일본인은 100엔, 200엔을 아껴 쓰는 사람들이다.”



-한국투자공사(KIC)를 어제 방문했다. 다무라 의원은 이미 아부다비투자청, 노르웨이 정부연금펀드, 싱가포르투자청, 쿠웨이트투자청 등을 방문했다. 한국 KIC는 이들과 비교해 어떻다고 보는가.
“한국에 국부펀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본다. 현재 국부펀드를 보유한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제대로 된 국내 자산운용 산업을 갖추고 있지 못해 정부가 운용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도 발달하지 않았고 미디어도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국내에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케이스와 다르다. 국부를 늘리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확고하고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을 국부펀드로 운용한다면 전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수익률이 조금만 내려도 걱정할 것이다. 펀드는 1년마다 평가받게 마련인데 자칫 운용전략이 흔들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맞다. 그래서 평가기간을 5년으로 하는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투자해서 1년 안에 승부를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라는 게 아니라 5년이다. 수익률에 대한 평가는 매년 발표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미디어가 중요하다. 미디어에 의해 국민의 의견이 한쪽으로 몰릴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투자공사는 메릴린치에 20억 달러, 싱가포르 테마섹은 44억 달러를 투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한국투자공사는 평가손실액이 8억 달러에 이르자 고배당 권리를 포기하고, 낮은 가격에 주식을 바꿀 수 있는 옵션을 선택했다. 반면 테마섹은 1년 내에 주가가 주당 48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모든 차액을 돌려받기로 했다. 테마섹은 9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메릴린치 지분을 최대 15%까지 높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일본도 한국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인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환보유금이라면 좀 더 공격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지만 국민연금의 경우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싱가포르와 단순 비교를 할 필요는 없다. 거기는 20년 이상 운용 노하우가 쌓인 곳이고 한국과 정치적 상황도 다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배울 점 많아



-한국투자공사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외환보유금을 운용한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곳은 따로 있다. 최근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연기금의 40%까지 주식에 투자하는, 보다 공격적인 운용을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정말이냐? 일본은 전략상 재무성이 관리하는 외환보유금을 건드릴 계획은 없다. 후생성이 관리하는 국민연금부터 시작한다. 예상하겠지만 관료들의 저항이 세다. 힘이 센 재무성과 손잡고 후생성부터 상대하기로 했다. 3년 내 좋은 실적을 보여주면 외환보유금도 함께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전략이다. 한국이 우리와 다른 운용을 한다면 놀라운 일이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무라 의원은 관료를 대놓고 비판한다. 그렇게 하면 관료들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 기자들도 그 점을 많이 지적한다. 미디어 앞에서와 관료들을 실제로 대할 때의 태도는 다를 것이다(웃음). 그러나 관료라고 다 같은 관료가 아니다. 신세대 관료들은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 자금이 효율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구세대와 다르다. 그리고 지금은 정치인에게 유리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난해 연금기록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느 기간 동안 얼마를 냈는지’ 파악할 수 없는 잘못된 기록이 5000만 건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일본 국민의 관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여러 국부펀드 담당자를 만나면서 가장 배울 만한 국부펀드라고 생각한 곳은 어디인가.
“노르웨이다. 일단 민주국가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있다. 배울 점은 정보공개를 기술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트랙 레코드는 밝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투자라는 것이 업과 다운이 있게 마련이다. 국민의 불안을 최소화시키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것 같다.”



-다무라 의원은 입안자이기 때문에 운용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적이 안 좋을 경우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걱정 없다. 지금보다 나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처한 가장 큰 리스크는 어떤 리스크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 집단이 운용하는 펀드의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일본국부펀드가 만들어지면 33%는 해외에 투자된다고 들었다. 한국 기업에 투자되거나 한국자산운용사에 기회가 주어지는가.
“물론이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도 이를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국부펀드를 남의 나라 일로 볼 것이 아니라 한·일 금융협력의 일환으로 봐주길 바란다. 한국 기업에 투자되거나 한국자산운용사에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라면 일본국부펀드에서 일할 수도 있다. 외국 인재의 등용을 법안에 만들어 놓을 예정이다. 공용어도 영어가 될 것이다. 한국에 오기 직전 도쿄증권거래소 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에 상장을 준비하는 일본 기업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자본시장이 폐쇄적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국인들과 함께 K1(이종격투기의 일종)펀드도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이 팬이고 K1협회 회장이 절친한 친구다. 한국인도 K1을 사랑하는 줄 알고 있다. 금융이 스포츠를 진작시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입자는 좋아하는 스포츠도 즐기고 돈도 벌 수 있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챔피언인 최홍만과 아카사카에서 술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서 있는 줄 알았다.”



국부펀드란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란 정부가 통화당국의 외환보유액과는 별도로 재정 흑자 등의 외화잉여자금을 재원으로 조성해 수익성 위주로 운용하는 투자기구를 말한다. 장기간 돈이 묶이더라도 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고수익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 세계의 투자자산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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