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김문수의 도발] ‘평택 무너지나, 아산 깨지나’ 혈투

[김문수의 도발] ‘평택 무너지나, 아산 깨지나’ 혈투

▶지난 8월 26일 의정부시청 앞 광장에서 김문수 지사와 경기 북부지역 시장·군수들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평택이 무너지나, 아산이 깨지나’라는 말이 있다. 청일전쟁 때 양국이 조선 땅인 평택과 아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두고 백성들이 자포자기 식으로 절규했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지금은 ‘죽기 살기로 끝까지 싸운다’는 뜻으로 쓰인다. 우연일까? 수도권 규제 문제를 두고 현재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벌어지는 갈등 양상이 ‘평택(경기 소재)이 무너지나, 아산(충남 소재)이 깨지나’ 식이다. 특히 경기도와 충청도의 갈등이 심하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완구 충남지사는 지난 8월 27일 라디오 토론에 함께 출연해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전장은 정치권, 지역 언론, 지역 경제계, 학계로 확산 중이다. 경기도에서는 ‘수도권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대중집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는 100만 명도 아닌 110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경기도 인구는 2007년 말 기준 1134만 명이다). 반면 13개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오는 10월 중에 ‘비수도권 2500만 결의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김문수 지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전면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지역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는 가지만, 해당 지역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은 ‘이 기회에 지역 민심을 제대로 얻자’는 전략을 세운 듯하다. 마치 ‘선거 하루 전’ 분위기다.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누가 더 힘이 세냐를 겨루고 있는 것이다. 박순자 한나라당 최고위원(안산 단원을), 원유철 의원(평택 갑) 등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억누르는 각종 규제가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릴레이 포문을 열고 있다. 지난 8월 26일에는 홍일표 의원(인천 남구갑)이 발 빠르게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면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는 “중앙은 늘 중심에서 독점적인 발전의 혜택을 얻었지만 지방은 지금도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반격했고, 강원 원주가 지역구인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수도권은 과밀하고 과비대한 상태”라며 “지속적으로 수도권 중심으로 경제를 풀기 바란다면 ‘3㎏ 다이어트’ 후에 다시 ‘10㎏ 찌우자’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는 심지어 각 지자체가 출자해 운영하는 ‘개발연구원’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론가들까지 나서 해당 자치단체의 주장이 옳다는 논리를 개발해 홍보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올 4월 경기개발연구원은 “수도권에 대기업 공장 부지가 늘어나면 충청권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가장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충청권을 겨냥한 듯하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은경 책임연구원은 “수도권 규제 완화로 지방 경제가 악화되는가에 대해 실증 분석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타 지역 연구원들의 생각은 현격히 다르다. 원광희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도권 규제를 다 풀면 경기도 면적의 약 50%가 개발 가능 지역이 된다”며 “만약 인위적으로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소비처가 있는 수도권으로 기업과 인적 자원이 집중되고, 지방은 더욱 황폐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 한 달째 계속되는 ‘수도권 규제 완화’ 논쟁은 어차피 한 번쯤은 치러야 할 큰 싸움이었는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7일 37개 지역언론사 편집국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수도권 규제를 놓고, 지방과 수도권이 싸우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져 큰 낭패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7월 21일 발표한 ‘지역개발전략’은 중앙정부가 꺼내든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 때 마련한 ‘5+2 광역경제권(전국을 수도권·충청권·호남권·대경권·동남권 등 5대 광역경제권과 제주특별자치도, 강원도 등 2대 특별광역경제권으로 재편해 육성한다는 정책)’을 추진하되 지난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는 것이 골자다. 비수도권을 향한 ‘선심성’ 발언도 잊지 않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방에서는 수도권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돼 지방 발전에 해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우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상철 국토균형발전위원장은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방 발전과 연계해 점진적으로 하겠다”며 “선(先) 지방 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 합리화 정책에는 변동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부연 설명에도 각 지자체는 저마다 다른 해석을 했다. 수도권 지자체장과 지역구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인 수도권 규제 완화가 빠졌다”며 술렁거렸고, 비수도권에서는 “구체적인 지역 활성화 방안도 없이 지역 간 경쟁 심리만 부풀려 놨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뭘 어쩌라는 거냐’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발표하면서, 다른 지자체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며 최근의 사태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새 정부의 어젠다나 마찬가지다. 대선 공약이다. 균형발전위 위원장이 누구냐?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자이자 수도권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던 최상철 교수다. 속도의 문제일 뿐 수도권을 풀어야 한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한데, 김 지사(김문수)가 조급하게 불을 붙여 문제 풀기가 더 어렵게 됐다.” 경제 제1법칙인 ‘희소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수도권 규제 논란은 풀기 힘든 난제다. 자원은 한정돼 있고 투입될 곳이 많다면 자원의 분배를 선택해야 한다. 이게 쉽지가 않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수도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수도권 쪽에서는 “규제를 완화하되 발생하는 이익을 타 지방 재원으로 환원하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비수도권은 “수도권이 한국 경제의 60%를 차지할 만큼 클 동안 지방은 어떤 이익을 봤느냐”고 반박한다. ‘아기를 반쪽으로 자른다’는 식의 솔로몬의 지혜를 정부에 바랄 수도 없다. 솔로몬의 지혜는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부부 중 한쪽은 거짓일 때나 나올 수 있는 판결이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논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수도권은 1982년 도입된 수도권정비계획법 아래 56개의 법령이 촘촘한 그물망 규제를 쳐 놓은 곳이다. 공장총량제에 걸려 공장 신·증설은 하늘의 별 따기다. 조세특례제한법으로 투자에 대한 정부 조세지원이 배제되고, 취득세나 등록세도 중과된다. 대학 신설은 물론 정원도 제한된다.

▶비수도권에서는 ‘수도권 규제 완화가 지방을 다 죽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연천·파주도 수도권 맞느냐 ‘연천, 파주도 수도권 맞느냐?’는 소리가 나올 만큼 경기 북부는 군사시설보호구역, 그린벨트, 농촌진흥지역 등에 묶여 개발제한은 물론 지역민 재산권이 심각하게 제한됐다. “수도권이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반면 비수도권은 ‘배부른 소리’라는 입장이다. 국내 100대 기업 본사의 91%, 제조업체의 57%, 공공기관의 85%가량이 서울·경기에 몰려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중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은 수도권이 유일하다. 더욱이 외국 및 국내 기업·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각 지자체는 규제가 풀려 수도권에 공장 짓기가 쉬워지면 기업이 다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수도권 규제 완화와 지방균형발전은 반드시 양립하는 개념인가? 이에 대해서는 최근 양측의 대표선수 격으로 격돌했던 이완구 충남지사와 김문수 경기지사가 예전에 의미 있는 답을 냈었다. 이 지사는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 가능성에 반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겠다. 충남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 수도권과 승부를 겨루겠다. 한 번 붙어보자. 장기적으로 충남의 경쟁력이 높다고 본다.” 김문수 지사는 2006년 3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 갈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도권 규제 논란은)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 관점에서 바라봐야지요. (다른 지방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황해권을 묶어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요. 이미 경남·경북·충남지사가 합의한 상태예요. 중국에 대응하자는 노력이죠.” 결국 ‘경쟁과 상생의 조화’를 얘기한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두 지사와 각각의 이해관계로 갈린 전국 지자체가 서로 칼을 겨눈 채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죽기 살기로 말이다.


속담으로 풀어본 수도권 규제 논란



#가자니 태산이오,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정부 입장이 딱 이렇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큰 틀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7월 21일 지방발전전략을 발표한 후 수도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당정 지도부가 ‘수도권 달래기’ 발언에 나섰다. 이윽고 8월 28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수도권 규제 완화 입장을 밝히자, 이번엔 비수도권 지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잔칫날 잘 먹으려고 사흘 굶길까 김문수 경기지사가 근 한 달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은 ‘언제까지 막연히 기다리라는 것이냐?’는 뜻이 담겨 있다. ‘보채는 아이 밥 한 술 더 준다’는 전략도 담겨 있을 수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이명박 캠프의 핵심 공약이었다. 하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김문수 지사를 비롯한 경기도 정치권이 강력한 공세에 나선 것이다.

#백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왔으면 한다더니 비수도권 관계자들은 “지금도 수도권에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돼 있는데, 규제까지 풀면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나마 진척을 보여왔던 기업 및 투자 유치도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 모두 유턴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한 지방 소재 지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알게 모르게 수도권 규제 그물이 느슨해져 고기들이 다 빠져나가고 있는데 경기도가 자기만 더 잘살겠다고 지방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비수도권에 흐르는 정서다.

#안방에 가면 시어미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펼치는 논리를 듣다 보면 모두 일리가 있다. 경기도는 25년도 넘은 수도권정비법에 묶여 있다는 피해의식이 깊다. 반면 비수도권은 ‘수도권을 풀면 지방은 다 망한다’고 주장한다. 각 지자체 소재 개발연구원이나 대학이 내놓은 보고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얘기다. 한 지방대 교수는 “이 문제는 제주도나 해외에 있는 전문가가 중립적으로 풀어도 안 될 문제”라고 말한 데서, 양측의 첨예한 대립을 읽을 수 있다.

#가마 타고 시집가기는 틀렸다 최근 최상철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잇따라 ‘수도권 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에 큰 선거는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부담스럽게 됐다. 이제는 어떤 정책을 내놔도 한쪽은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언급하기보다는 ‘남북교류 접경벨트’ 같은 식의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남북교류 접경벨트는 사실상 경기 북부 발전 전략이나 마찬가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0주년 맞은 ‘열혈강호 온라인’, 전극진·양재현 원작자에게 감사패 증정

2"달러 사둘까?"...'킹달러'에 무작정 투자했다간 낭패 본다

3포괄적 주식교환 포기 못한다는 두산밥캣에 “미국으로 상장하라”

4고려아연 사태 새국면…경영권 분쟁에서 ‘국가 경제·안보 사안’으로

5"구로가 10억이면 말 다했죠" 집값 부담에 서울 떠난 거주자들, 어디로?

6건강한 편의점으로 도약...GS25, 식약처와 손잡았다

7루닛, 아스트라제네카와 AI 기반 병리 솔루션 공동 개발

8우리은행, 체험형 인턴 채용…공채 2차면접까지 면제 혜택

9배달의민족, 고립은둔청년 발굴·지원 위한 캠페인 협업

실시간 뉴스

120주년 맞은 ‘열혈강호 온라인’, 전극진·양재현 원작자에게 감사패 증정

2"달러 사둘까?"...'킹달러'에 무작정 투자했다간 낭패 본다

3포괄적 주식교환 포기 못한다는 두산밥캣에 “미국으로 상장하라”

4고려아연 사태 새국면…경영권 분쟁에서 ‘국가 경제·안보 사안’으로

5"구로가 10억이면 말 다했죠" 집값 부담에 서울 떠난 거주자들,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