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세 ○○○가 투자했다더라”
“재벌 2세 ○○○가 투자했다더라”
#7월 15일 오후 12시41분. “중소 식품업체, 금주 내 유력 대기업에 인수될 전망.” 증권가에 그럴듯한 정보가 나돌았다. M&A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된 속칭 증권가 ‘카더라 정보’였다.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호재, 말 그대로 대박 정보였다. 개미들은 열광했고, 거래량은 폭주했다. 그러나 이런 중소형주 정보의 배후엔 대부분 ‘작전세력’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 이 역시 그랬다.
작전세력 A씨는 “(당시) 3개를 질렀다”며 “분명히 ‘떡상’일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3개는 3000만원(1개 1000만원)을 베팅했다는 그들만의 은어. 떡상은 상한가를 뜻한다. A씨의 예상은 보란듯이 맞아떨어졌다. 이 식품업체의 주가는 곧바로 상한가를 쳤다. 그러나 허위로 밝혀지면서 주가는 이내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3000만원을 베팅한 A씨는 순식간에 수백만원을 벌고 일찌감치 떠난 상태.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정작 낭패를 본 사람들은 작전의 덫에 걸려 투자했다가 매도시기를 놓친 개미들이었다. 한 투자자는 “소문 믿고 투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8월 1일 오후 2시1분. “○○기기 제조업체, 유력 대기업과 대규모 공급계약 추진, 금일 발표 예정.” 누가 봐도 그럴싸한 정보다. 개미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거래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정보가 돌기 직전인 7월 31일 1490원(종가)이었던 주가가 (정보 유포 후) 불과 4시간 만에 1715원까지 치솟았던 것. 하지만 이 또한 허위로 밝혀졌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는 ‘작전 정보’가 무엇인지, ‘카더라 정보’가 왜 무서운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규모 공급계약 추진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은 당시 이 같은 정보를 아예 접하지도 못했다.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부서인 홍보팀 전원은 자사 정보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을 때, 행사장에 나가 단 한 명도 자리에 없었다. 보도자료는커녕 전화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문제는 ○○기기 제조업체였다. 이 회사의 대표는 주가를 쥐락펴락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큰손’이었다. 다시 말해 ○○기기 제조업체가 자사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개미들을 속인 셈이다. 작전에 농락당한 개미들은 뒤늦게 땅을 쳤지만 이미 버스가 지나간 후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폭탄’을 맞은 한국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9월 18일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무려 37.62포인트(8.06%) 떨어진 429.29로 장을 마쳤다.
외환시장에서도 환율이 초강세를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이 올 들어 최대폭인 50.9원 오른 1160.0원을 기록했던 것. 그러나 증권가 ‘카더라 정보’는 활개를 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이 정보가 최악의 주가 폭락을 경험하고 있는 개미들을 유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박은커녕 쪽박 찰 위기에 놓인 개미들이 주가 폭등을 예상케 하는 ‘카더라 정보’를 외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덥석 물기부터 하는 개미들도 많다. 김인석 키움증권 기업어음팀 부장은 “국내 증권시장은 공포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과장된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작지 않아 각종 카더라 통신의 진위 여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이 초토화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새어 나오는 금융가 ‘카더라 정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를 유통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카더라 정보’를 주로 취급하는 작전세력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주가에 반영되는 ‘꺼리’를 속칭 ‘재료’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M&A설, 대규모 공급계약설 등이다. 이를 수집해 보기 좋게 포장하는 사람들을 ‘꾼’ ‘도사’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들 대부분은 그럴듯한 ‘카더라 정보’를 확산시켜 개미들을 끌어들인 뒤 빠지는 ‘작전세력’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메신저, 증권 전문 사이트를 돌며 정보를 취합, 유통하는 사람들은 ‘하수’다. 고급 룸살롱 웨이터를 상대로 귀동냥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진짜 고수는 증권사 직원, 애널리스트, 기업 CEO와 친분을 맺고 있다. 때론 기업, 때론 큰손으로부터 주가를 부양해 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 작전세력이 노리는 종목은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중소형주’다. 작전을 세우기 안성맞춤인 종목이 넘쳐나고, 개미들의 대박 심리도 폭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전세력에게 재료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개미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개미들이 주가 부양의 지렛대 역할을 해야 이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제 아무리 ‘대박 주’라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요즘 증권가의 ‘카더라 정보’에 구체적 수치와 명쾌한 전망, 확정문구까지 삽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개미를 현혹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개미들의 눈과 귀를 막는 방법은 비상하다. 작전세력은 주가가 일정한 고점을 유지하면 허수주문·가장매매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주식을 판다.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막아 개미들의 의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다.
포섭 1순위는 재벌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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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또는 재벌 2~3세가 투자하면 돈을 딴다는 개미들의 대박 심리를 역이용하면 ‘게임 끝’이라는 것이다. ‘대주주와 재벌 2~3세가 내부정보를 이용, 부당이득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주주나 재벌 2~3세를 이용한 ‘카더라 정보’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요즘 ‘카더라 정보’엔 대주주 또는 재벌 2~3세의 움직임 또는 발언이 짜깁기돼 삽입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 9월 2일, 한때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카더라 정보’의 원문을 보자. “… 중소기업 C사가 대기업과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대기업에서 C사의 지분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대기업 후계자가 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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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잘 보여주는 수치도 있다. 증권가 ‘카더라 정보’가 주로 활용되는 코스닥 시장의 시세조종 관련 범죄는 올 9월 현재 51건에 달한다. 전체 증권범죄(59건)의 86.4%에 해당하는 높은 점유율이다. 주가 폭락으로 개미들의 상심이 깊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럴 때 일수록 주식투자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목소리다. 증권 전문 이성희 변호사는 “주가가 폭락하거나, 약세장이 계속될수록 작전세력이 유포하는 ‘카더라 정보’에 유혹되기 쉽다”며 “약세장에서 떠도는 정보는 100% 역이용된다는 생각을 갖고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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