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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중동 평화

멀고도 먼 중동 평화

서안의 변경도시 미그론의 정착촌 주민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철거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세일즈맨 하젬 말리(34)는 가족을 차에 태우고 요르단강 서안 북부의 자갈밭 언덕과 올리브 과수원을 지나 결혼식장에 가던 중이었다. 이스라엘 정착촌 이츠하르로 빠지는 샛길을 지나 속력을 내는 순간 아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접시만 한 아스팔트 덩어리가 앞 유리를 뚫고 날아들었다.

임신 6개월째인 아내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구토를 시작했다. 말리는 가까운 이스라엘군 검문소 앞에 급히 차를 세운 다음에야 뒷좌석의 아이들이 어쩐지 돌아봤다. 그 물체가 뒷좌석으로 날아들어 머리를 다친 일곱 살짜리 딸은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사마리아 고원에 세워진 정통 유대교 정착촌 이츠하르에서 이스라엘 당국은 이들을 공격한 혐의로 다니엘 아브라함(19)을 체포했다.

아무리 투석전이 일상화된 서안이라고는 하지만 이츠하르는 올해 들어 고약한 오명을 얻었다. 지난 6월 정착촌 주민들은 무단으로 지은 이동주택을 철거하려는 이스라엘 경찰에 돌과 최루탄 공격을 퍼부었다. 7월에는 한 신학교 학생이 인근 팔레스타인 동네에 수제 로켓을 발사하려다 체포됐다. 9월엔 한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곳에 숨어들어 한 소년을 칼로 찌른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정착민 수십 명이 이웃 아랍 동네로 몰려가 창문을 부수고 총을 난사해 팔레스타인 사람 여섯 명이 다쳤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조차 그 광란의 보복극을 가리켜 ‘학살’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이 같은 폭력 사태의 증가가 이스라엘 치안당국의 골칫덩이가 됐다. 최근 몇 주간 전략회의를 연달아 열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의 공격행위는 429건으로 2007년 전체의 551건과 비교된다. 더욱이 상황은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 지난해에 비해 올 들어 정착촌 건설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인권감시기구 피스나우에 따르면 현재 서안 전역에 걸쳐 2600채에 달하는 새 주택이 건설 중이다.

지난해 신규 주택 입찰이 무려 550%나 증가했다. 동예루살렘에선 그 수치가 더해 지난해보다 무려 38배가 높다(평화회담 시작 이래 1761채가 지어져 1년 전의 46채와 대비된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정착촌 건설 중지를 요구하는 시점에도(올해 말까지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려는 성급한 마음에) 이츠하르 정착민들은 언덕 변두리의 먼지 자욱한 땅에 이동주책 열 채를 새로 세웠다.

유쾌하진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평화회담이 정착촌 건설 열기를 부채질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폭력사태가 늘고 있지만 인티파다가 한창이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조용한 편이다. 이런 상대적 평화 덕택에 정착민들은 맘 놓고 점령지에 돈과 생명을 내건다. 이스라엘 집권당은 종종 그런 확장을 묵인하면서(또는 조장하면서) 의회연정을 유지하고 우파의 공격으로부터 총리를 지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합리화한다.

동시에 협정이야 어떻든 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땅을 되돌려줘야 할지 모른다는 전망(아무리 멀었다고 해도)이 정착민의 건설의지를 북돋운다. 올메르트가 고별사에서 예루살렘은 결국 분할될 것이라고 과감하게 인정함에 따라 정착민들의 이런 노력은 배가될 게 분명하다. 사실 현 상황은 가능한 시나리오 중 최악이다.

정착민들을 겁주기엔 충분해도 진정한 평화협정의 전망은 거의 희박하다. 외교적 노력과 이스라엘 정착촌의 확대 사이의 관계는 마치 미늘톱니바퀴처럼 작동한다. 건설을 활성화하긴 쉬어도 평화협정이 실패했을 때 그것을 뒤집기는 어렵다. “합의를 보겠다는 결연한 각오 없이 협상에 나서면 정착촌만 늘어난다”고 정착촌 운동 역사를 다룬 책 ‘우연한 제국’의 저자 게르숌 고렌베르크가 말했다.

“그것이 지난 40년 동안 꾸준한 패턴이었다.” 외교협상의 세 주역이 모두 절망스러울 만큼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진행된 가장 최근의 평화협상 노력이 전형적인 본보기다. 지난해 말 미국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 정상회담 말이다. 올메르트의 후계자 치피 리브니가 연정을 꾸리려면 군소정당들에 의존해야 하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재선 전망이 어둡다.

조지 W 부시야 물론 딴 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론 미국이 이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하지 않는 쪽보다 낫다. ‘아랍-이스라엘의 평화 협상’이라는 책에서 공저자 대니얼 커처와 스콧 래신스키는 “힘의 거대한 불균형은 든든한 제3자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없으면 동등하지 못한 쌍방이 “자기네 스스로는 실행 가능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전쟁보다는 대화가 여전히 낫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가자지구에 세워진 최초의 정착촌 크파르 다롬은 로저스 제안 직후에 출현했다. 로저스 제안이란 1970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소모전을 끝내려고 추진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구시 에무님 운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체결될 협상의 결과를 걱정한 나머지 나블루스 인근에 최초의 정착촌들을 세웠다. 1998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와이리버 정상회담 이후 아리엘 샤론 당시 외무장관이 동포들에게 서안에 널리 퍼져 정착하라고 권유했다. “그 모든 고원의 전초기지들은 오슬로 협약의 구체적 결과”라고 고렌베르크가 말했다.

이츠하르는 실로에서 세겜에 이르는 성경 속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돌투성이 고지대에 1983년 건립됐다. 내가 동료와 함께 10월 초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정착민 지도자 이갈 아미타이는 안내서 격으로 반드시 성경책을 휴대하라고 우겼다. 파란색 폴로셔츠에 샌들을 신고 검은 턱수염이 지저분한 아미타이는 처음에 정착촌 확대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곳엔 새로운 건물이 네 채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건물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내가 정착촌 외곽에 있는 새 것으로 보이는 U자형 임시주택 10채에 대해 묻자 아미타이는 씩 웃으면서 “그건 미국 인공위성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새 임시주택에는 지난 6개월 동안 도착한 젊은 부부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지난 6월 국경경찰 병력 200명을 동원해 이츠하르를 급습했다.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시위대와 충돌한 뒤 정착촌 외곽의 꼬불꼬불한 길에 지은 임시주택 한 채를 해체하고 거기 살고 있던 젊은 신혼부부를 내쫓았다. 그래도 정착민들은 이런 단속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같은 미국 관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정치적 연극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3년 전 정착촌에 온 네 자녀의 엄마 리브카 벤-야곱(28)에게 경찰이 얼마나 자주 불법 임시주택을 해체하는지 묻자 “콘돌리자가 올 때마다”라고 대답했다. “이건 일종의 게임이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정착민들은 쫓겨난 신혼부부를 위해 바로 그날 새 집을 지어줬다. 이스라엘이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하자 신앙심이 돈독한 극우민족주의 정착민들은 이스라엘에서 효용가치가 다한 것으로 널리 간주됐다.

대다수 이스라엘 국민은 정착민들 때문에 생기는 인구문제의 위협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출생률이 높기 때문에 가자와 서안의 대다수 지역에서 군대와 정착민을 철수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유대 민주국가로 보전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소개작전이 성공하기 직전까지도 대부분 버티기로 일관하던 정착민들에게 강제철수는 하느님의 외면으로 비쳤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곤 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시프라 슈레이베르(22)가 말했다. 그녀는 두 달 전 이츠하르 외곽의 새 임시주택에 들어왔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할 일을 하겠다. 집을 계속 지을 것이다.”얼핏 보면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정착민들이 지금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가정하기 쉽다.

최근의 키르야트아르바(헤브론 인근의 강경파 요새) 여행에서 정착민 지도자 보아즈 하에츠니는 불법 전초기지 너머로 나를 안내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 일로 밤잠을 못 잘 거다”라고 그가 말했다. “콘돌리자에게 전해달라. 압력을 가할 때마다,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마다 정착민은 더 늘어난다고.”

그러나 나중에 점심을 함께 먹는 자리에서 그는 태도를 바꿨다. “이런 농담이 있다”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런던에서 두 유대인이 기차를 탔다. 한 사람이 곁눈질하니 다른 사람이 반유대주의 신문을 보고 있다. 그가 이유를 묻었다. ‘우리 신문에는 단지 문제만 나오지만 그들 신문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다른 유대인이 대답한다.”

하에츠니는 정착촌의 재탄생에 관해 “제발 그런 소식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옳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겐 다른 쪽이 보인다. 텅 비었다.”사실 새 정착촌 통계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피스나우의 정착촌 감시부서 책임자 하기트 오프란이 말했다. 신축 주택 중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예정 루트에서 동쪽에 지은 것은 약 18%에 불과하다.

최근의 증축은 대부분 이스라엘이 최종 평화협정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예루살렘 주변의 넓은 땅 안쪽에 있는 정착촌에서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대략 28만 명으로 추산되는 그 정착민의 상당수는 세속적 성향이며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그곳으로 옮겨갔다. 신앙이나 사상적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분리장벽 너머의 불법 전초기지를 해체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실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장벽 서쪽의 건설을 조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협정에 앞서 영토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수단으로 말이다. 라이스가 최근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리브니(당시 외무장관)는 팔레스타인 협상단에 정착촌 건물을 ‘핑계’로 협상 테이블을 떠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래도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지역의 정착촌도 외딴 전초기지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모든 건설행위가 우리 파트너들에게 해가 된다”고 오프란이 말했다. 하젬 말리 같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의 아내 팔라스티네는 응급실에서 12시간 동안 뇌수술을 받았다. 날아온 물체에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딸은 아직까지 이마에 야구공만 한 상처가 남아서 앞으로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

팔라스티네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말했다. 딸은 울음을 그친 뒤에는 자매들에게 평소보다 더 짜증을 부린다. 말리는 자기 식구들을 공격한 자들을 두고 “놈들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공격행위의 진정한 비극은 압바스가 한 가족의 지지를 거의 확실히 잃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외교전략의 핵심은 온건한 팔레스타인 수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양측이 적어도 서류상으로 합의할 경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하마스 같은 대이스라엘 강경파 정적들을 외면할 거라는 생각이다. 하젬과 팔라스티네 말리 부부는 그런 전략의 지지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해동포주의 이념을 따르고 부유하면서 둘 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주의 정적에 비해 세속주의적인 파타 당을 선호하는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젬은 파타의 당 노선을 따를 생각이 없다. 공격 현장 인근에서 나와 대화하면서 “이 평화협상에 무슨 이로운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그는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더는 압바스에게 표를 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젊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웃으면서 길 건너편의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갔다. 하젬은 반사적으로 잽싸게 내 차 뒤로 몸을 숨겼다.

With JOANNA CHEN in Yitzhar and NUHA MUSLEH in Heb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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