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자이언츠는 최고의 가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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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 히트 상품이 롯데자이언츠라지예.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나 야구 대표팀도 롯데한테는 안 될 깁니다.”9월 10일 오후 5시. 부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사직구장을 가던 중 택시기사가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평일 오후였지만 야구장 가는 길은 곳곳이 정체였다.
택시기사는 “올해 롯데자이언츠가 잘나가면서 정체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사직구장의 내야는 롯데 팬들로 가득 찼다. 외야에도 관중이 계속 몰려들었다. 롯데자이언츠의 서정근 과장은 “주말이면 세 시간 전에 와야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구장 안은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린 것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롯데자이언츠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응원 구호가 달라졌다. ‘홈런 이대호’, ‘가~르시아’, ‘롯데 강민호’ 등 팬들이 선수별로 응원 구호를 따로 지어줬기 때문이다.‘야생야사.’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산다는 부산의 롯데 팬을 말한다.
롯데자이언츠가 부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한양대 스포츠산업 마케팅 센터의 김종 교수는 “사직 야구장 주변 상권의 활성화와 야구용품 매출액, 그리고 고용 증대 등으로 볼 때 롯데자이언츠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연간 14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산했다. 8888577. 2000년 이후 롯데자이언츠가 8개 구단을 대상으로 거둔 순위다.
이 중에서도 8888, 즉 롯데가 4년 연속 꼴찌를 차지한 뒤 5위에 오른 2005년. 그 해 롯데 사직구장에 몰려든 관중 수는 8개 구단 중 두 번째로 많았다. 3만 명을 수용하는 서울 잠실구장을 연고로 하고, 그 해 2위의 성적을 올린 두산베어스보다 많았다. 롯데자이언츠는 이후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7위의 성적을 거뒀지만 관중 동원은 전체 구단 중 3위와 2위를 각각 기록했다.
올해 롯데는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 지으며 팬들의 숙원이었던 ‘가을 야구’를 하게 됐다. 여세를 몰아 1992년 이후 무려 16년 만의 한국 시리즈 제패도 노리고 있다. 관중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9월 중순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 관중 입장 기록을 세웠다.
구단 중 최초로 130만 홈 관중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과연 롯데가 지난 일 년 동안 바뀐 건 무엇이었을까. 롯데자이언츠의 이상구 단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감독이 바뀐 것 외엔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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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 롯데 성공을 국내에 접목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해 롯데자이언츠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신동빈 부회장이 롯데자이언츠의 박진웅 사장을 불러 물었다. 당시 롯데그룹뿐 아니라 국내 야구계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 의사를 꺼낸 건 신 부회장이 처음이었다. 이를 들은 롯데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신 부회장은 평소 각종 투자 사안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신격호 회장부터 내려오는 롯데가(家)의 경영 스타일이다. 외국인 감독의 영입은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도 의외의 일이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이 외국인 감독 영입을 제의한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신 부회장은 일본에선 CEO라기보다는 야구인으로 더 자주 대외 활동을 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주로 언론과 인터뷰를 자주했다.
그는 한국인으로 일본 구단주 가운데 가장 젊어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국내 언론과는 인터뷰를 피하는 것은 일본에서 야구 담당 기자들에게 하도 시달린 탓이라는 이야기까지 국내 기자들 사이에 돌았다(신 부회장은 이번 인터뷰도 서면으로 응했다). 신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지바 롯데 마린스는 국내에서도 친숙한 팀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 선수가 처음 일본에 건너가 뛴 팀이고 SK와이번스의 명장 김성근 감독이 한때 투수 코치로 활약했다. 일본 퍼시픽 리그에서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던 지바 롯데에 신 부회장은 2003년부터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2003년 바비 밸런타인 감독을 영입했다. 밸런타인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뉴욕 메츠에서 17년간 사령탑으로 활약하면서 1117승을 올린 명장이다.
밸런타인 감독은 결국 2005년 지바 롯데에 31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안겨줬다. 신 부회장은 “일본 지바 롯데가 일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문 구단으로 거듭났고 마케팅 실적도 급상승했다”고 밝혔다. 신 부회장은 지바 롯데의 성적만 높인 것이 아니었다. 일본 롯데는 지바로 연고를 옮긴 뒤엔 항상 팀 이름 앞에 지바란 지역 명칭을 사용했다.
이런 지역 밀착형 마케팅으로 팬들을 관리하자 관중 수가 증가한 것은 물론 지역 방송 중계를 비롯해 상품 판매, 구장 부대시설 이용도 늘기 시작했다. 지바 롯데의 성공 모델은 퍼시픽 리그 전체로 퍼져갔다. 신 부회장이 지바 롯데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눈을 돌린 것은 지난해 말. 그는 밸런타인 감독의 추천에 따라 국내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뽑았다.
그는 이례적으로 직접 면접까지 챙겼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후 자신의 죽마고우인 페르난도 아로요 코치와 최근 철벽 마운드로 롯데의 ‘뒷문’을 지키고 있는 투수 데이비드 코르테스까지 불렀다. 신 부회장이 롯데자이언츠의 감독만 바꾼 게 아니다. 그는 구단의 마케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마케팅팀은 롯데그룹의 광고홍보 전문 자회사인 대홍기획과 함께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롯데자이언츠의 새로운 마케팅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실제 롯데는 올해 부산시로부터 사직구장을 3년 동안 장기 임대하면서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신 부회장은 지바 롯데의 성공 모델을 국내에 접목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의 지시로 롯데자이언츠 마케팅팀은 수시로 일본 지바 롯데를 찾고 지바 롯데로부터 마케팅 사업계획서 원본도 제공받는다.
직접 일본 야구 마케팅 기법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올해 사직구장에 문을 연 직영 기념품점은 이런 시너지의 산물이다. 이상구 단장은 “지바 롯데를 벤치마킹해 더 다양한 기념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올 시즌 개막전을 겨냥해 제작한 ‘로이스터 감독 점퍼’는 3일 만에 초도 물량 1000장이 모두 팔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베이징 올림픽 우승으로 야구 열기가 더욱 뜨거워진 9월부터는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직영점의 하루 매출이 4000만원에 달했다. 9월 18일 현재 롯데자이언츠가 선수 유니폼과 같은 기념품을 판매해 올린 매출은 25억원가량. 나머지 7개 구단의 상품 매출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다. 현재 롯데자이언츠는 국내 프로 야구 역사상 첫 흑자 구단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하일성 사무총장은 “올해 롯데가 기록할 상품 매출 현황은 앞으로 프로야구 구단들의 경제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자이언츠의 광고 효과에 대한 업체들의 관심도 높다. 신 부회장은 “향후 스포츠 마케팅이 활성화된다면 롯데는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가치주’로 그룹 차원에서 끊임없는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자이언츠는 롯데그룹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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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회장은 이런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의 글로벌 전략 브릭스(VRICs)를 주도하고 있다. 브릭스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일컫는 BRICs에서 브라질 대신 베트남을 추가한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롯데의 글로벌 경영은 순조로운 편. 지난해 9월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을 연 데 이어 최근엔 베이징(北京)에도 백화점을 열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라이벌인 신세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롯데쇼핑은 2006년에 이어 연속 2년째 신세계에 매출에서 뒤졌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신세계가 10조1028억원을 올려 롯데쇼핑의 10조851억원보다 177억원 앞섰다. 롯데는 내수시장에서 새로운 동력 찾기에 바빠진 모습이다.
최근 면세점 사업을 강화하고 지난해 대한화재(현재 롯데손해보험)도 인수하며 금융 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자이언츠의 활약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다. “롯데자이언츠는 내재 가치가 상당한 구단입니다. 부산과 경남 지역의 경우 우리 영업사원들이 야구단의 성적에 따라 매출 실적이 좌우된다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그룹 내 매출 규모가 미미하지만 향후 우리 그룹은 물론 부산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입니다.” 신 부회장의 말이다. 롯데자이언츠가 선전하자 롯데그룹 내에서도 야구가 최고의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직원들의 대화뿐만 아니라 임원회의에서도 야구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롯데 관계자는 “신 부회장도 임원 회의에서 티타임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롯데자이언츠 성적을 이야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롯데 계열사들은 이미 자이언츠를 활용한 마케팅에 들어갔다. 롯데마트는 9월 18일부터 부산·경남 지역의 12개 점포에서 계산대 직원 전원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기 시작했다. 야구장의 열기를 일반 시민들도 매장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부산 동래점 직원들은 아예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지난 2000년의 롯데 유니폼을 입고 근무할 예정이다. 재계 서열 5위 그룹의 ‘황태자’인 신 부회장은 소탈하다. 비행기를 탈 때도 수행하는 비서가 없다. 출근할 때도 직원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이는 거화취실(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속의 실속을 취한다)로 대표되는 신격호 회장의 오랜 좌우명과 무관치 않다.
신 회장은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제과사업을 바탕으로 입지전적 성공을 이뤄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그룹의 ‘짠물 경영’을 야구단에도 그대로 적용했다는 부산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이 최근 재계 행사에 부쩍 얼굴을 자주 내밀며 롯데의 행보가 달라진 것처럼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투자도 달라지고 있다.
“팬들이 더 편안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사직구장 개보수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완공한 김해 상동 전용연습장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신인선수를 발굴하고 전력을 보강해 진정한 명문구단으로 거듭날 겁니다. 롯데자이언츠야말로 롯데그룹의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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