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는 데 재능 있는 것 같아”
“두드리는 데 재능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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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겸 다국적 밴드 단장을 맡고 있는 김명신(64) 대표의 첫인상은 희끗한 반백의 머리칼에 짙고 굵은 눈썹, 두툼한 볼살이 영락없는 호랑이 상이다.
직설적이고 호방한 말투로 그가 던진 첫마디는 자칭 ‘웃기는 사람’이다. 돈 안 되는 일, 남들이 “안 된다, 미쳤다”는 일, 이혼당할 만한 일만 골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8년 전 라이온스에서 돈을 모아 평양에 안과병원을 설립했어요. 총 650만 달러 정도 들었는데 그때 내 돈도 적지 않게 털어 기부금으로 냈지요. 이게 집사람한테 들통나 이혼당할 뻔한 거지. 2002 월드컵 전에는 상암동에 200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판자촌이었어. 상암지구 개발로 정부가 임대주택을 주고 나가달라고 했지만 주민들이 배 째라 한 거야. 당시 고건 서울시장하고 마포구청장이 나서서 설득해도 막무가내라 해결을 못하고 내가 대신 그 일을 떠안게 된 거요. 그때가 국제라이온스협회 서울지구 총재를 할 땐데, 2년간 주민들 만나 설득하고 온갖 짓을 다해 결국 문제를 해결했지. 그러느라 내 주머니에서 술값이 엄청 나갔다고. 골치 아픈 일에 내 돈, 내 시간 쓰고, 나는 만날 이런 짓만 해요. 그러니 웃기지. 나중에 서울시장이 감사패 하나 줍디다.”
1969년 변리사시험에 합격한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애초 꿈은 법조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연간 사시 합격자 수가 많지 않아 ‘내가 과연 사시에 붙겠나’ 하는 회의가 생겼다. 고민 끝에 지금은 작고한 대학 은사를 찾아가 법조계 전망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은 “판·검사는 한물갔다. 변리사 제도가 있는데 장래성이 있을 거다.
대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하는 충고였다. 은사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단번에 시험에 합격한 뒤 4개 외국어를 독학한 그는 이후 한동안 ‘직싸게’ 고생했다. “4년간 대학 강단에 서다 72년 특허법률사무소를 열었어요. 근데 그때는 국내에 특허 관련 사건이 없는 거야. 무작정 봇짐 메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나간 거요. 그때는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이고 500달러 이상은 해외에 못 가져가게 할 때야. 그래도 한번 나가면 두 달씩 돌아다녔는데 그 덕에 고생은 했지만 지금은 은사님 선견지명에 감사하지요.”
변리사 생활 25년 동안 대한변리사회 총무이사, 한국지적소유권학회 부회장, 아시아변리사회 한국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95년 대한변리사회 회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선거 공약은 변리사 2차 시험에 민사소송법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국내외적으로 제대로 변리사 행세를 하려면 법률 지식이 있어야 소송대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변리사를 꿈꾸는 사람은 물론 업계에서마저 “자기가 법대 나왔다고 민사소송법을 넣으려 한다”고 욕을 엄청 먹었다.“그때 선배들이 하는 말씀이, 야 이 촌놈아! 그런 건 당선되고 하는 거지, 처음부터 내걸면 표 다 떨어진다, 이래요. 그래도 고집대로 밀어붙였지 뭐.”
“안 되는 것을 해야 재미나지요”
96년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임기 2년 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밥 먹듯 들으며 특허법원 설립, 특허법 관련 판례집 편찬, 변리사회관 건립 등 굵직한 업계 숙원사업을 일궈냈다. 그 가운데 고등법원급인 특허법원을 설립하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특허법원 설립 문제로 뛰어다닐 때 동기인 이진강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왜 되지도 않을 일을 하려 드느냐”고 말렸다.
그는 “안 되는 걸 해야 재미있지 않으냐”고 대꾸했고 마침내 회장 당선 2년 만에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애쓴 보람은 대통령 훈장으로 돌아왔다. 특허 관련 판례집 집대성에 사비를 털어 어려운 작업에 뛰어든 이유는 판례집이 없는 탓에 재판 결과가 중구난방으로 엉망이기 때문이다.
“수차례 윤관 대법원장을 만나러 갔는데 아예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더 밀어붙이는 게 주특기니까 어찌어찌 겨우 뵙게 됐어요. 다른 건 말고 딱 한 가지만 도와달라고 했지. 대법원장 명의로 전국 법원에 협조공문을 보내달라는 거였어요.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 이게 성공하고 나서 또다시 대법원장을 찾아갔어요. 이번엔 변리사들 민사소송 실무연수를 사법연수원에서 하게 해달라고 했지. 그런데 법조계에서 턱도 없는 소리라고 들고일어난 거야. 우여곡절 끝에 교육 장소는 별도로 마련하는 대신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교육을 맡도록 대법원장을 설득해 관철시켰어요.”
기왕 미칠 바에야 180도 더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자 작심하고 뛰어든 일이 현재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지식재산포럼 창립이다. 2005년 8월 발기인대회 겸 창립총회를 열기까지 3년 동안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돈도 적지 않게 깨졌다.
“2006년에야 국회에서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등기를 했는데 이 일이 입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 붙잡고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해 앵무새처럼 떠드느라 나중에는 입이 아파요. 그래서 아예 CD를 제작해 돌렸지. 하도 애쓰니까 사람들이 국회에 법인 만드는 노력으로 차라리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그러냐고 하더라고.”
포럼 발기인 명단을 만들 때는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지식재산포럼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지식재산기본법’ 입법을 추진했지만 법안이 자동 폐기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해외에 지불한 로열티가 약 5조원이오.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에 지급한 기술사용료가 무려 1조2800여억원이야. 이것만 봐도 기술개발이 얼마나 시급한지, 전 세계적으로 특허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가늠할 수 있는 거요. 국가적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 관련 입법조차 안 되고 있어요. 정부에서 공개적으로 입법을 추진하도록 설득해 보고, 또 18대 국회까지만 애써보고 안 되면 손 털어야지요. 묘지까지 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 그래요?”
모 일간지 인물DB에 올라 있는 김 대표의 프로필에는 ‘특기-드럼 악기 연주’로 되어 있다. “미친 짓을 그만 할 생각”이라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 한 가지가 밴드 단장으로 해외 무대를 누비며 열정을 쏟는 것이다. 그는 현재 영국, 스페인, 캐나다, 인도 등 세계 13개국 변호사와 변리사 20명으로 구성된 ‘APPA Band(아시아변리사회 공식 밴드)’ 단장이자 드러머다. 밴드는 11년 전 그가 직접 만들었다.
“해마다 세계 각국을 돌며 아시아변리사회 이사회가 열려요. 세계 각국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옵서버로 참석하기 때문에 한 번에 1500명 안팎 모이는데 이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국제법이 어떻고 하는 골치 아픈 거라고. 그건 그것대로 하더라도 사람들이 만나면 좀 즐거운 구석이 있어야지. 내가 돈 좀 내고 분위기 띄우면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밴드를 만든 거요.”
멤버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단장인 그가 신경 쓸 일이 많다. 공연에 앞서 유니폼을 디자인해 맞추는 일, 대회 하루 전날 멤버들을 불러 현지 관광을 시키고 밥·술 사는 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도록 종종 일거리를 보내주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허 관련 국제사건을 멤버들에게 연결해주는 거요. 일년에 한 차례 얼굴 맞대는 게 고작인데 안 그러면 단장 말을 듣겠어요? 인도 뉴델리에서 이사회가 열렸을 땐 인도 음식을 가장 잘한다는 유명 식당을 10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 멤버들을 대접했다고. 멤버끼리 흥이 나야 연주가 잘되고 호흡도 잘 맞게 되는 거요.” 밴드 운영과 공연에 드는 비용은 전부 그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김 대표가 악기와 인연을 맺은 건 중학생 때다. 교내 브라스밴드에서 악장을 맡았고, 고교 때는 들락날락했지만 그래도 밴드 생활을 이어 갔다. 이때부터 드럼이나 북 등 타악기 외에 클라리넷, 트롬본 등 여러 악기를 다룬 경험이 있는 그는 “드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두드리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0번이 넘는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말레이시아에서다. 이때는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네 시간 반을 공연하면서 화장실을 단 한 번도 가지 않을 정도로 연주에 몰두했다.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화장실에 가게 돼있거든. 근데 하도 열정적으로 연주하다 보니 땀으로 수분이 전부 발산돼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다들 자기가 좋아서 하니까 화장실 가는 것도 잊어버린 거지.”
“돈 쓰는 거 집사람 알면 이혼 당해”
다음 대회는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요즘 회원들 문의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한국의 미스터 킴’이 대회에 참석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재미있으니까 그런 거지. 애들 장난감 빨래판, 엿장수 가위 같은 걸 갖고 가서 온갖 소리를 다 들려주고 분위기를 띄우거든. 엿장수 가위를 맨 처음 들고 갔을 때 한국 사람, 일본 사람 빼고 서양 사람 중에 이게 뭔지 알아맞히면 100달러 상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못 맞혀요. 그래서 여자 회원들만 들으라며 한국에서 남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시원찮을 때 부인들이 이 가위로 거길 잘라버린다고 했더니 폭소가 터졌어.”
김 대표의 좌우명은 ‘항상 최선을 다하라’다. “우리는 한번 한다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해야 직성이 풀려. 가령 성질 급한 사람이 항상 술값을 내게 돼있다고. 그래서 들어오는 돈이 많아도 항상 주머니가 가볍지. 내가 경상도 남자라 화끈하고 급한 게 아니오. 사람 따라 여러 질이 있는 거지. 돈 낸다 해놓고 돈 낼 때 되면 화장실 가는 놈은 만날 그렇게 살게 돼 있어. 그게 참 이상하지. 보면 적극적으로 내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대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잖아. 얻어먹는 놈은 평생 얻어먹는다니까.”
그에 따르면 돈 버는 건 기술이고 돈 쓰는 건 예술이다. 다시 말해 돈을 버는 것은 테크닉에 속하지만 돈을 값어치 있게 제때 쓰는 건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
“돈 많이 있다고 무섭게 쓰는 거 아니오. 선배 한 분이 모 일간지 재단에 54억원을 기부한 뒤 일본에 두 달 동안 도망갔다 왔어요. 왜? 친구들이, 돈이 그렇게 많았으면 동창회 기부금이나 더 내지 그랬느냐고 욕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렵게 사는데 도와준 적 있느냐, 벼락 맞아 죽어라, 이런 얘기까지 했다고. 그렇게 되면 본인도 돈 주고 괴로운 거요. 돈은 철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주변 정리를 잘하고 조용하게 써야 한다고.”
10여 년 전 서울남산라이온스클럽은 창립 30주년을 맞아 ‘무료 개안수술기금 마련 자선공연’을 펼쳤다. 그때 초청 가수가 김부자씨였는데 공연 때마다 항상 한복만 입는 게 보기 싫었던 김 대표는 이날 공연을 위해 그녀에게 자비 500만원을 들여 무대의상을 맞춰주었다. 클럽 명의로 KBS 열린음악회 스폰서를 할 때는 4억5000만원을 들였다.
“보통 열린음악회 제작비는 2억원이 기본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자체 합창단 만들고, 헬리콥터 띄우고, 이렇게 스케일을 크게 가져가느라 돈이 엄청 깨진 거요. 협회가 스폰서로 나섰지만 봉사단체에 돈이 어디 있어. 일단 내 주머니 돈으로 막아놓고 나중에 협회에서 약간, 일부만 지원 받았지.”
대가 없이 그동안 쏟아부은 돈이 얼마냐고 묻자 그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집사람 알면 이혼당해요. 안 그러면 내가 여자라도 돈 안 되는 일에 제 돈 쓰고 다닌다고 확 할퀴어버리지, 그걸 가만 두겠소.”
그는 지금까지 특허법,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10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일하면서 보니까 설명이나 해설이 필요한 게 많고, 거기에 그동안 외부 강연한 걸 덧붙여 정리한 결과물이다.
“사회에 필요하다 싶으니까 한 거요.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나 아니면 죽을까 싶어서 하는 거지. 내 팔자가 그런 모양이오. 웃을 일이 아니오. 내가 안 해도 해는 뜬다니까. 그런데 우리는 성격상 한번 목표가 설정되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돌파해야 돼.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줘 다 성공한 거니 얼마나 다행이오.”
33m2 남짓한 사무실은 20여 점의 그림이 점령하다시피 했고, 그는 3년째 전자드럼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전자드럼은 새롭게 시작한 건데 이게 아주 재미있어요. 그림은 좋아서 사 모은 거고.”
얼마 전 젊은 드럼 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제일 아끼던 악기를 선물했다는 그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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