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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리주의자들의 어쭙잖은 변명

시장원리주의자들의 어쭙잖은 변명


불황이 아니라 경기 후퇴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다.

금융 대학살의 와중에 웃지 못할 코미디도 나온다. 자유주의자들이 쏟아내는 변명 말이다. 그들은 정부의 개입이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금융위기가 왔다고 주장한다.

우선 지역재투자법(CRA)을 이번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다(CRA는 은행들의 차별적 대출관행을 금지하는 법이다). 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정부의 무조건적 지불 보증으로 모기지를 증권화한 것이 문제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 다른 이론은 구제금융의 선례 때문에 투자자들이 납세자들의 구조를 기대하고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의 변명은 문제의 원인에 대한 신빙성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들은 탁상공론을 일삼는 이념가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실책의 증거를 자신들이 지금까지 올바로 해 온 증거로 해석한다. 그런 주장에 우리는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당신네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쳤지 않은가? 우리는 글로벌 불황을 가까스로 피했다고는 하지만 최악의 경기후퇴로 접어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유주의가 가져온 경제붕괴 때문이다. 왜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알아내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그건 마치 세라 페일린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실패든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개선책이 나올 수 있다.

웬만큼만 조사해 보면 ‘자율 규제되는 금융시장’이라는 자유주의 이론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1997∼98년 세계경제는 아시아, 중남미, 러시아를 차례로 휩쓴 금융위기로 요동쳤다. 가장 섬뜩한 사건은 자본금의 54배에 달하는 1250억 달러를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약 1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이었다.

그로 인해 파생상품 계약의 한쪽 당사자였던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LTCM이 무너지자 규제 없는 신용파생상품들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적이기 때문에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 크고 규제란 것이 원래 따분하기 때문에 결국 건드리지 못했다.

이처럼 2008년의 금융 대붕괴를 예방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였다. 규제 철폐 그 자체의 결과라기보다는 금융 규제가 합법적인 장치라는 사실을 불신한 결과였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그리고 그들의 행정부나 감독 권한을 가진 의회 지도자들이 나서서 “상황이 위태로우니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규제 지지자들이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서브프라임 실패가 금융 지옥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이것을 집단적인 잘못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동안 효과적인 규제를 가로막은 책임은 다음의 3인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점잔을 빼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냉담한 필 그램 전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크리스토퍼 콕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다.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의 거래 규모가 팽창하는 것이 위험에 대비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램은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금하는 ‘상품선물현대화법’ 통과를 주도했다. 콕스는 SEC에서 투자은행들의 ‘자율’ 규제라는 부시의 정책을 옹호했다. 콕스와 그램은 증권업계의 호주머니 속에 있다는 비난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비판이다. 그 두 사람은 정치적 소신으로 무간섭 노선을 택했다. 시장이 언제나 옳고, 정부의 개입은 언제나 잘못이라는 소신이다. 또 그들은 사고파는 권리의 어떤 침해도 거부해야 한다는 그린스펀(세 명 중 유일하게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의 생각에 동조했다. 조지 소로스는 그것을 ‘시장원리주의’라고 불렀다.

호황기의 관대한 대출이 그토록 멀리 그토록 빨리 퍼져나가 글로벌 재난으로 이어진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그 시장원리주의다. 좋게 말하자면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사상이 추상적인 이론에서 나오기 때문에 자신들의 논리에 엄격한 경향이 있다. 케이토 연구소나 리즌 잡지처럼 정부 밖의 기관과 매체의 자유주의자들은 구제금융을 줄기차게 반대한다.

구제를 필요 없게끔 할 수 있었던 규제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집불통이다. “무너지는 은행은 그냥 놔두라”는 것이 자유주의 순수론자들의 생각이다. 이런 발상은 결국 실업자를 양산하게 된다. 나쁘게 말하자면 자유주의자들은 지적으로 미숙하다. 그들은 에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Atlas Shrugged: 기회균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에 나오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이념가가 그렇듯 자유주의자들도 자신들의 모델에 맞지 않는 세계를 보면서 자신들이 아니라 세계가 잘못됐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시장이 비합리적이고, 위험을 오판하고 자원을 잘못 할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는 규제 없는 금융시스템은 재난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는 동원할 자원이 동났다. 이번엔 그들에 대한 구제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슬레이트 그룹의 편집주간이며 ‘부시 비극(The Bush Tragedy)’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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