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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금융인의 책임

[淸論濁論] 금융인의 책임


"만기연장 프로그램의 핵심은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채를 지급보증해 줌으로써 해외 금융기관들이 안심하고 만기를 연장해 주도록 하는 것이었다. 거꾸로 얘기하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았으면 만기연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문장이 아닌가. 위의 문장은 최근이 아니라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내용임을 명념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정덕구 전 장관의 『외환위기 징비록』이란 책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시중은행은 주주가 있는 엄연한 민간기업들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민간기업의 부채를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지급보증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잘라서 말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나라 경제 전체가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래도 그때는 은행이 할 말이 있었다.

기업들 뒤치다꺼리하다가 당한 일, 즉 관치금융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환란 이후 100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은행들은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사람들 대부분은 은행들이 모두 튼실하게 변모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또 한 번 환란에 대한 불안감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 것은 이번에는 실물 분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은행 유동성 위기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과도한 단기 외채를 빌려다가 장기 대출에 해당하는 부동산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은행들의 미스매치 문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업이란 당연히 책임을 지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에는 진실이지만 금융업은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경제변호사인 찰스 R 모리스는 “금융산업에서는 경영자와 주주에게 고수익이 발생하고 있지만, 손실의 상당 부분은 대개 사회화(손실의 상당 부분이 타인들에게 전가된다는 의미)된다”고 말한다. 금융업에서의 손실을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감독 당국은 단기 외채 급증에 대해 도대체 어떤 견제나 감시 기능을 해 왔는지 궁금하다.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찾고 나면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본다. 정부가 은행의 해외 차입금에 대해 무려 3년간 지급보증을 하고 선례가 없는 사기업의 채권을 한국은행이 사 주기로 하고 450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외화유동성을 은행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른 부분에 대해서는 은행 전체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누구도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볼 수 없는 일이지만 최악의 타이밍에 최대 규모의 대외증권투자로 무려 수십조원을 웃도는 펀드투자 평가손을 보면서 우리 금융업이 과연 제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이를 갖추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위기의 한국경제』라는 책에는 급증한 펀드투자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을 두고 “해외증권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노하우 그리고 경험도 없이 몰빵 식의 대규모 대외증권투자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하고 있다.

학습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가치고는 너무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예기치 않은 외부 상황에만 원인을 돌리지 말고 금융업 종사자들은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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