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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행위 더 엄하게 감시할 것”

“반칙 행위 더 엄하게 감시할 것”

■ “공정거래 위반 사건, 언론이 크게 실명 보도해야” ■ “과징금 15%로 높이는 법안 반대 않는다” ■ “포이즌필, 황금주 제도는 기업 체질 약화시키는 것” ■ “기업결합 심사, 글로벌 시각에서 유연하게 봐야”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으로 보다 충실하게 보도자료를 낼 겁니다. 언론들도 공정위 사건에 대해 크게 보도를 해줬으면 합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의 엄포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에 한해 그렇다는 얘기다. 백 위원장은 지난 5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을 제재하는 것이 과징금만은 아니다”면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상세히 언론에 밝힘으로써 해당 기업의 신인도나 평판에 금이 가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백 위원장은 “이제 기업이 두려워할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라면서 한 얘기다. 그는 또 대기업 상호출자금지 해제 요구에 대해 “기업이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시장과 국민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유예를 발표하고, 검찰도 기업 수사는 가급적 자제한다는 분위기인데요, 공정위는 어떤 입장입니까?
“공정위는 국세청, 검찰과 다릅니다. 검찰이나 국세청의 조사 유예는 혜택이 특정 기업에 가죠. 하지만 강자에 의한 불공정행위라는 전제를 놓고 볼 때, 공정위가 특정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눈감아주면 중소기업이 피해를 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공정위가 시장의 반칙 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망가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죠.”



-불황일수록 기업이 반칙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석유, 이동통신, 사교육, 자동차, 의료 등 5개 업종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 조사를 마쳤습니다. 학원의 부당한 끼워팔기 행위에 대해 제재를 마쳤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법 위반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분야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만큼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감시와 제재를 해나갈 겁니다.”



-공정위의 제재 수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재발 방지 효과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법 위반자를 일벌백계해야 반칙 행위가 줄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제재를 하려면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담합의 경우, 이번 국정감사에서 실효 부과율이 2~3%에 불과해 외국의 제재수위보다 훨씬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위는 2005년에 카르텔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 대비 5%에서 10%로 상향조정한 것입니다.”



“출총제는 폐지하는 게 바람직”



-10%룰에 걸린 기업은 없지 않습니까?

“그동안 새로운 규정의 적용을 받은 사건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상한기준이 적용되면 약한 제재 논란은 해소되겠죠. 무엇보다 상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업체들에 대해 엄중 제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위는 벌점제를 도입해 과징금을 가중할 예정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필요할 경우 상습 위반업체의 명단을 공개해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소비자로부터의 외면과 시장에서의 무서운 제재를 받도록 할 것입니다.”



-과징금 한도를 15%로 인상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이재선 자유선진당 의원 대표발의)돼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10%룰을 적용해 보고,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15%룰 법안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재계의 요구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셨죠?
“오해가 있는데, 모든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경영을 잘해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포이즌필이나 황금주 등의 제도를 도입하면 자칫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켜 오히려 기업에 피해를 줄까 우려됩니다. 기본적으로 시장이 역동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하려면, 시장의 진입·퇴출과 함께 분할·합병 등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홈플러스와 홈에버, 이베이(eBay)와 G마켓 등 최근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우려가 있는 것을 압니다. 특히 이해 당사자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기업결합을 심사할 때, 시장을 글로벌한 관점에서 보고, 경쟁 제한성 판단도 새로운 기업이 진입할 가능성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독과점 체제가 되면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나, 진입 후 경쟁이 어렵잖습니까?
“분명한 기준을 둘 겁니다. 가령 서비스 산업이나 인터넷 시장같이 진입이 용이한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물 안에서 볼 게 아닙니다. 얼마 전 미국에 가서 미국 법무부 차관보를 만나 얘기했는데, 가전업체인 월풀과 메이택의 합병을 승인한 것은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글로벌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국회에 제출·발의된 공정거래 관련 법안 중 특별히 챙기시는 것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답하죠.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는 단기적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지만, 기업 규제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 꼭 폐지되기를 기대합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도입하기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도 마련했습니다.”



-‘을’ 입장인 중소기업이 과연 법을 믿고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단가를 조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정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협약’을 맺도록 후원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협약을 맺은 1차 벤더(납품업체)가 1만8000여 개 됩니다. 앞서 말했지만, 법보다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장입니다. 이런 협약을 맺어놓고 만약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면 더 큰 페널티를 받을 겁니다.”

백 위원장은 중소기업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납품단가 연동제’(원가가 올라가면 납품가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선

“과도한 보호장치”라고 말했다. 그는 “연동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 가격이 자유롭게 결정되어야 한다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연동제가 도입되면 대기업이 구매선을 중국, 동남아 등으로 바꿔 오히려 중소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앞서 기업 CEO들에게 공정위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달라고 요청했었는데 대부분 손사래를 치더군요. 여전히 공정위는 기업에 두려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기 중 심판이 지나치게 휘슬을 불면 선수들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시장이 위축되죠. 다만 경기에서 지나치게 반칙을 많이 하는 선수를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경우 경고나 퇴장 등의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처럼 시장에서 반칙 행위는 엄중히 제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정위는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사전 규제는 폐지·완화하면서, 반칙 행위에 대한 감시와 제재는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백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6년 이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세운 동아시아연구원장을 자청하면서 MB와 연을 맺었다(백 위원장 역시 이화여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당시 총선에 출마했다 낙마했다). 이후 MB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왔고, 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냈다.

대선 때 류우익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이끈 국제정책연구원(GSI)과 함께 MB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경제 1분과위원을 맡았다. 그는 ‘시장 원리주의자’에 가깝다. 그에겐 ‘시장’이 ‘선(善)’이다. 물론 시장의 중심은 기업이며 정부의 개입은 최소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위기라고 해서 시장중심 경제정책을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옳지 않다”며 “이제는 시장 규모의 확대, 시장 융합, 구조 변화의 빠른 속도를 정부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규제완화, 정부조직 축소, 감세, 민영화 등 시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더욱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기업을 감시하고 제재하는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됐을 때 ‘의외’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MB경제의 독트린입니다. 시장 규제·감독 기구인 공정위와 조화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한 가지 곁들이자면, 공정위원장 자리가 개인적 성향과는 맞습니까?
“MB노믹스는 시장을 통한 경쟁, 경쟁을 통한 효율성 증대가 큰 방향입니다. MB를 두고 기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정확히 하자면 시장 친화적이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공정위는 시장지킴이입니다. 시장의 유해요소, 시장의 ‘공공의 적’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정부의 과도한 간섭, 또 하나는 시장의 자율을 이용해 반칙 행위를 해서 이익을 얻는 행위입니다. 저희는 공정위 자체의 규제도 풀어가고, 다른 부처가 시행하는 경쟁 제한적 요소도 완화하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의 반칙은 엄정히 다룹니다. 어떻게 보면 MB경제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조직이죠.”



“시장 중심 정책 일관되게 펴야”



-세계 금융위기 여파 중 하나가 ‘시장경제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상황이지만 시장의 실패가 계속 거론되고 규제가 당연시되면, 시장 참여자들은 모두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될 텐데요?

“그동안 한국 경제는 선진국 시스템과 달랐죠. 오래 세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였습니다. 이제 시장이 관료 통제에서 빠져나가는 국면입니다. 여전히 규제는 많이 남아있고, 기업은 정부 눈치를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재정지출을 확대하니까 MB정부도 케인지언으로 돌아섰느냐고 하는데,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미국의 상업은행·투자은행·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났더니, 한국이 경제 위기를 맞아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더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한국이 대내외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 중심의 정책을 일관되게 펴나가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갖추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경제학자로서 최근 경제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다시 실물경제가 금융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빠지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하고, 투자촉진과 금리인하 조치를 취한 것이죠.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면, 내년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기업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고, 국민이 위기 관리 능력을 갖고 있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지나친 비관과 불안으로 경제 주체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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