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전 세계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심상치 않다. 영원한 강자였던 노키아와 점유율이 그 절반인 삼성전자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 겉으로 보면 승산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용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삼성은 국지전에서 속속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11년 만에 미국에서 3분기에만 1060만 대를 팔아 1위로 올라섰다.
프랑스와 러시아에 이어 영국에서도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9년은 전면전이 될 확률이 높다. 삼성이 그간 물량 면에서 힘을 쓰지 못한 배경은 신흥시장이었다. 노키아가 10만원 미만의 저가폰을 ‘인해전술’로 중국, 인도, 아프리카 시장에 풀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노키아에 이어 ‘플랫폼 생산방식’(기본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표준화해 대량으로 생산하고 제품별로 디자인과 특별 기능 등을 맞춤 제작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구축해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매출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내년에는 플랫폼 생산방식을 좀 더 다듬고 유통망도 탄탄히 해 신흥시장에서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국지전으로 요충지를 확보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신흥시장까지 전선을 넓혀 가겠다는 전략이다. 그 다음은 차세대 시장인 ‘스마트폰’에 달려 있다.
삼성의 올해 3분기 약진은 수많은 고비와 단계를 거쳐 다져진 전략이다. #1. 2007년 4월. 윤종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현 상임고문)은 핀란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키아와 초저가폰 경쟁은 없다”며 “저가폰 시장에서도 고급제품 위주로 차별화된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윤우 부회장 체제에서도 이 전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 임원은 “초저가폰은 노키아처럼 어느 정도(규모의 경제가) 갖춰져야 한다”며 “신흥시장에서도 수요자의 니즈가 있기 때문에 제품 차별화에 초점을 두고 신흥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2. 2008년 10월.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의 유력 경제지 카우파레흐티는 ‘노키아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는 삼성뿐’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이례적으로 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삼성의 휴대전화 매출이 전년보다 무려 22%나 늘어났지만 점유율에만 주력해 과도한 출혈경쟁을 벌여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삼성전자를 띄우는 척하면서 약점을 파고들었다.
자국의 노키아를 감안한 기사다. 이 신문은 “노키아가 1위를 유지하려면 고전 중인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애정 어린’ 주문도 했다.
#3. 2008년 11월. 노키아는 신흥시장을 겨냥한 초저가 휴대전화 7종류를 발표했다. 가격은 25~90유로로 일부 기종은 연내 출하를 시작한다. 급등한 환율을 그대로 적용해도 최저 4만원대. 업계 관계자는 “3분기 실적이 나오자마자 노키아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저가폰 시장에 사활을 걸었다는 느낌”이라며 “5억 대를 일정한 수의 플랫폼에서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20%대 영업이익률이 가능한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2007년부터 삼성과 노키아 간 싸움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왔다. 그러던 중 시장조사기관 SA가 올해 3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을 발표하면서 예측은 현실이 돼 가는 듯하다. SA에 따르면 노키아는 38.9%로 17.1%인 삼성전자를 여전히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모토롤라에 10%포인트 뒤진 점유율 12%로 3위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2007년 모토롤라를 0.2%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면서 노키아와 2강 체제 구축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점유율 15.2%를 기록했고 드디어 3분기엔 휴대전화사업 시작 이후 처음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17%대를 넘어선 것.
업계는 세계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키아의 아성이 여전하지만 ▶일반 유통시장에서 팔리는 GSM 방식 제품과 이동통신사업자가 단말기 업계를 주도하는 CDMA 방식으로 시장이 이분화돼 있고 ▶차세대 시장인 스마트폰에서 미세한 기술력 차이가 존재하며 ▶프리미엄폰과 초저가폰 시장이 공존하기 때문에 판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고 전망한다. 모토롤라가 2위를 고수하다가 4위로 추락한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년이었다.
스마트폰 승자가 최후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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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기획팀 상무는 “스마트폰의 승자가 세계 휴대전화 시장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블랙잭 시리즈와 미라지폰으로 북미에서만 200만 대 이상 팔았다.
특히 올 6월 싱가포르에서 출시한 풀터치스크린 스마트폰 옴니아는 애플의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전문업체였던 ‘블랙베리’의 RIM, 대만의 HTC 등도 속속 휴대전화 시장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삼성이 북미에서만 스마트폰을 200만 대 이상 팔고 시장 점유율 1위로 기록한 것은 큰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자체 평가다.
스마트폰은 올해 1억7000만 대 규모 시장이지만 내년에는 40% 이상 성장한 2억4000만 대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가 상품이기 때문에 매출로 따지면 시장은 훨씬 커진다.
노키아는 ▶지도 서비스 업체를 사기 위해 9조원을 투입하고 ▶운영체계(OS) 업체 주식을 대거 사들였으며 ▶뒤늦게 애플의 아이폰과 같은 풀터치스크린 기능, 대형 화면 등 멀티미디어 기술에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고화질 카메라, 멀티미디어 기술에서는 삼성전자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은 풀터치스크린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이를 활용한 콘텐트와 서비스 시장이 2012년께 전체 휴대전화 시장의 절반인 1000억 달러 규모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를 위해 올 6월 모바일 솔루션센터를 열기도 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는 노키아를 포함해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LG전자 등 5대 메이저 휴대전화 업체 중 유일하게 2분기 대비 물량과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상승했다. 삼성전자 내부의 평가도 좋다. 삼성의 한 임원은 “3분기엔 우리가 제일 잘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3분기 미국시장에선 11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올해 6월 출시된 삼성의 인스팅트는 북미시장을 되살린 주인공이라는 게 회사 내부의 평가다.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스프린트의 댄 헤세 CEO가 직접 “(인스팅트 덕에) 우리가 기사회생했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 SA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햅틱·터치위즈·인스팅트 같은 터치스크린폰 신제품을 무기로 북미시장에서 전년 대비 20% 이상, 신흥시장에서는 30~8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5월 유럽에 출시된 터치위즈(F480)는 9월까지 170만 대, 같은 기간 미국에 선보인 인스팅트(M800)는 130만 대가 팔렸다. 반면 노키아는 북미시장에서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유럽의 GSM 방식 휴대전화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골라 살 수 있는 유통망을 갖췄지만 미국과 한국처럼 CDMA 방식을 쓰는 경우 대부분 이동통신사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서비스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만큼 이동통신사의 영향력도 함께 확대되는 CDMA 시장을 포기하다시피 방치하는 것이 향후 복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노키아 코리아는 이와 관련해 본지의 질문에 응하지 않았다.
년에도 두 회사 전면전 가속
삼성의 한 임원은 “올해를 기점으로 삼성은 노키아와 함께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삼성은 올해 2억 대를 시장에 공급했다. 문제는 그 후다. 노키아가 생산량 2억 대에서 4억 대를 넘어서는 데 만 4년이 걸렸다. 하지만 현재 시장이 고품질의 풀터치스크린폰과 스마트폰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상대적으로 기간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1억 대에 도달한 건 2006년이었다. 노키아가 5억 대 가까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신흥시장 덕이다. 노키아가 인도, 중국, 아프리카 시장에 10만원 미만 저가폰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 생산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또 노키아는 인도에 10만 곳, 아프리카에 12만 곳, 중국에 6만 곳 이상의 판매채널을 확보하는 물류시스템 구축에 많은 투자를 했다.
삼성전자도 플랫폼 방식을 도입해 지난해 중국시장 점유율을 올 8월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1.2%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신흥시장은 브랜드 인지도, 유통망 확보, 재고관리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곳으로 가격만 싸다고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노키아가 최근 저가폰 신규모델 7종을 발표한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전문가들은 이를 “삼성이 노키아만 한 가격경쟁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면도 있지만 저가폰 시장 내부에서 나름대로 프리미엄 시장에 주력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은 내년부터 중국시장 공략 시 사용한 플랫폼 생산방식과 유통망 확보정책을 인도 시장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휴대전화 시장 전망은 어둡다. 고가폰 위주의 유럽, 북미시장은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한파에 시달릴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2009년에는 모두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다른 업체의 추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보기는 힘들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물량 확보전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환 상무는 “내년 시장 전망은 어둡지만 북미와 서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노키아 물량의 85%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 큰 화면 고가 휴대전화가 그 주축”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삼성전자의 내년 전략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략 요충지인 서유럽과 북미의 고가폰 시장에서 1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대량생산 및 유통체계가 자리 잡혀 가는 신흥시장에서의 물량 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겠다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체 시장이 7%가량 성장한다는 전망치가 나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익을 내면서 동시에 성장도 가능하려면 신흥시장에서도 제품 차별화가 필요하고 콘텐트와 서비스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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