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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원보다 온리 원이 돼라

넘버 원보다 온리 원이 돼라

벤처 업계만큼 부침이 심한 데도 없다. 이런 생태계에서 굴뚝기업 기준으로 봐도 짧지 않은 세월인 26년째 비트컴퓨터는 쉬지 않고 달린다. 대한민국 벤처 1호이자 소프트웨어 1호 기업 비트컴퓨터에서 맨 앞에 달리는 사람은 대학 3학년 때 단돈 450만원으로 시작한 조현정(51) 회장이다.

글로벌 금융 쓰나미 후폭풍에 다들 울상인데 생동감 넘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서초동 비트빌 식구들이다. 9월 말 행정안전부가 펼치는 원격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사업자로 선정된 비트컴퓨터 직원들은 그 준비에 바쁘다.

그 옆 정보기술(IT) 사관학교로 불리는 비트교육센터에선 젊은 강사진과 학생들이 세계에서 하나뿐인 새로운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오늘도 두 건물을 오가며 이들을 진두 지휘한다.

“불경기 조짐이야 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에요. ‘컵에 물이 절반 밖에 없다’와 ‘반이나 (남아) 있다’는 말은 차이가 크잖아요. 자꾸 ‘힘들다’, ‘죽겠다’고 하면 정말 그렇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기업을 꾸려가면 나아집니다.”

작은 키에서 거인보다 강한 열정을 뿜어낸다고 해서 ‘벤처 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조 회장은 긍정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자는 주의다. 경제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을 움직이려면 생각부터 긍정적·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통했는지 비트컴퓨터의 올해 경영 상황이 나아졌다. 2004년부터의 4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매출도 늘었지만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원가 절감을 함께 꾀한 결과다. 올해 경영 목표는 매출 400억 원에 순이익 20억 원이다.



녹색성장 IT 벤처로 가자

비트컴퓨터는 1983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3학년 학생 조현정이 세운 회사다. 24시간 일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찾다가 청량리 맘모스호텔 객실을 빌려 사업자등록을 하려고 세무서에 갔다. 학생 신분에 당시로선 생소한 SW 개발업을 한다니 창구 직원은 업종 분류 상 그런 게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참 설득한 끝에 ‘서비스업 중 기타’ 항목으로 겨우 등록했다. 벤처 1호 비트컴퓨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렵게 사업을 시작한 그인지라 한국에서 벤처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벤처 창업이 그전보다 적긴 해도 전체 벤처기업 수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언론도 만날 ‘창업이 줄었다’, ‘벤처가 안 된다’고 야단만 치지 말고 성공 사례를 좀 널리 알려 주세요. 언제까지 넓은 땅에 공업단지를 만들어 공장을 유치하는 식으로 할 겁니까? 벤처는 작은 사무실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어요. 벤처는 산업의 희망입니다. 더구나 녹색성장을 하려면 IT 벤처로 가야지요.”

2005년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은 그는 ‘벤처 1000억 클럽’을 결성했다. 그 첫해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올린 벤처는 68개였는데 올해 152개로 증가했다. 8월 말 현재 벤처기업은 1만4398개. 지난해 말보다 383개가 늘었다. “해적·복사판으로 경제대국이 될 수 없으니 우리 기술을 개발하자”며 95년 말 13명이 모여 벤처협회를 만들 때 3000억 원에도 못 미친 총 매출이 지금은 120조 원이다.

벤처기업은 섬유봉제 공장 중심의 서울 구로공단을 하이테크 산업단지로 탈바꿈시켰다. 26년째 비트란 이름을 지켜온 조 회장. 한국 벤처 생태계의 문제는 기술, 자금, 인력난 등 ‘3난(難)’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벤처 기술이 제품으로 빛을 보려면 투자금이 들어와야 하는데, 벤처 지원기관이나 벤처캐피털은 융자나 하려 들지 될 만한 기술과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선구안이 없다. 자금 문제를 어쩌긴 힘들어 그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 기여하자고 결심한다. 그래서 만든 게 비트교육센터다.

“대기업이야 인력난 걱정이 없지요. 채용 광고를 내면 구름처럼 몰려오니까. 하지만 중소 제조업은 기계를 돌릴 현장 인력이 없고, 벤처기업도 훈련받은 전문 인력이 부족해요. 대학 졸업자는 많지만 정작 쓸 만한 인재는 별로 없고. 인력의 미스매치 현상이 심각합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좀 더 일찍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사회적으로 공고만 나와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1등보다 1호’ 갈망 창조경영인

공대생 조 회장이 일찍이 의료정보 SW 개발에 눈을 돌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컴퓨터란 하드웨어가 막 보급된 80년대 중반 사람들은 SW를 몰랐다. 어렵게 SW를 개발한들 팔릴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의료 분야다. 지식층이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직업군을 잡아야 통할 것으로 판단한 것. 빼어난 사업 감각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먹지를 깔고 손으로 일일이 써 복사본까지 만들어 두어야 했던 의료보험 청구 업무를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에 맞춰 자판만 두드리면 끝나고 인쇄까지 되니까. 여세를 몰아 비트컴퓨터는 진료, 환자겫늉?업무 관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계속 업그레이드 한다.

일반인이 SW를 알기도 전에 SW를 개발해 공급한 회사, 비트컴퓨터가 개발한 SW마다 국내 최초 아니면 국내 최고란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했다. 이밖에도 벤처 1호, 대학생 창업 1호, 의료정보 회사 1호, 오피스텔 원조 기업 등 비트컴퓨터가 기록한 1호는 많다. “아무도 두 번째는 기억하지 않아요. 나중에 1등 하는 것보다 최초가 더 중요합니다. 일당백 정신으로 도전해야 기업도 크고 사회도 큽니다.”

조 회장은 88 서울 올림픽 때 성화봉송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상 기증했다. 2만5000여 주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낸 국내 최초 멀티미디어형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각국 방송이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비트컴퓨터의 기술력이 알려졌다. 89년 1월 11일 조 회장은 ‘한국의 떠오르는 별 3인’이란 제목의 월스트리트 저널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둘이었다. 2001년 그는 북한의 초청을 받아 인민대학습당에서 IT 혁명을 주제로 강의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병원에서 종이로 된 진료 차트를 없앤 병원·약국 자동화의 1등 공신인 비트컴퓨터는 요즘 사람의 생체 정보를 인식·측정하고 전달해 개인별 맞춤형 의료 서비스 모델을 개발하는 데 힘 쏟고 있다.

비트컴퓨터가 최근 개발한 스마트 워치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 맥박과 혈압, 심전도, 체온과 외부 온도 등을 체크해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무선 홈케어 서버로 신호를 보내 병원과 연결해 준다. 잠 자는 환자의 상태를 감지하는 스마트 침대도 개발할 계획이다. 인터넷과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U-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질병은 치료보다 예방과 초기 진단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검사 장비와 예방 진료 시스템이 필수적인데 유비쿼터스와 IT에 강한 한국이 앞서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 U-헬스케어 시장입니다. 2015년 시장이 3000억 원대로 차세대 성장 모델로 승부를 걸 만합니다.”

U-헬스케어 분야의 첨병이 그냥 가능할까? 조 회장은 회사를 만든 지 6년 만인 89년 비트기술연구소를 세웠다. 매해 매출의 10%를 연구겙낱?R&D)에 쓴다. 지난 9월 문을 연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의 배당 수익금도 전액 R&D에 투입할 계획이다. 비트플렉스란 이름의 왕십리 민자역사는 건평 10만㎡(3만 평) 규모로 이마트와 CGV 영화관, 패션몰 엔터식스 등이 들어왔다.

왕십리 민자역사는 애초 (주)청구가 맡아 건설하다가 부도를 냈고, 비트컴퓨터가 99년 27억 원을 들여 청구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했다. IT와 생명공학(BT)을 결합한 바이오 시장에 관심이 있는 비트컴퓨터는 굿젠이란 바이오 벤처를 갖고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공부하는 비트교육센터
조현정 회장이 1990년에 창립한 비트교육센터는 업계에서 ‘IT 인재 발전소’, ‘IT 사관학교’로 통한다. 기초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컴퓨터공학 전공자들만 뽑는 비트교육센터는 들어가기도, 졸업하기도 어렵다.

‘상위 1% IT 전문가 양성’이 목표인 비트교육센터는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실력이 안 되면 합격시키지 않고 정원을 비워 둔다. 그렇게 악명 높은 면접을 뚫고 들어가면 6개월 동안 토겴臼嶽溝?없이 1800시간 동안 공부하고 실습한다.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다. 팀별로 프로젝트를 정하고 이를 완수하는 방식인데 세계 최초, 적어도 한국 최초의 SW를 만들어내야 졸업장이 주어진다.

“120명의 강사진은 대부분 젊은 서울대와 KAIST 석겧迷?과정이나 연구원들로 모두 시간강사로 짭니다. 전임으로 하면 아무래도 같은 것을 계속 가르치거든요. 교재는 매달, 매 기수 그전과 달라야 통과됩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7832명의 프로그래머를 배출했다. 국내 SW 프로그래머 11만 명 중 7%가 비트사단으로 막강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이들 수료생의 취업률은 100%. 직접 창업한 경우가 64명이다. 행여 전산실에 배치되는 등 창조적인 일과 관련이 먼 경우는 그만두도록 한 뒤 재교육시켜 다른 직장을 알선해 준다. 조 회장은 이를 ‘평생 취업률 100%’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SW 소스 코드는 매달 일반에 공개한다. 수료생들이 그동안 만들어낸 게 모두 1088가지로 118권의 비트 프로젝트 작품집에 수록돼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 인디시스템은 비트 프로젝트에 공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설립된 회사다. 2005년부턴 휴맥스 다산네트웍스 등 30여 곳과 연계해 기업 맞춤교육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적자를 각오하며 벤처 생태계 발전에 보탬이 되려고 세운 거예요. 여기서 배우는 것은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문제를 풀어나가는 해결 능력입니다.”



십자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조 회장은 ‘사람 부자’로 통할 정도로 거미줄 같은 인맥을 자랑한다. 1세대 벤처기업가인 그는 88년 소프트웨어산업협회, 95년 벤처기업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2004년에는 국내 대표 CEO 12명과 함께 윤리경영을 다짐하는 ‘윤경포럼’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자신의 컴퓨터 엑셀 파일에 식사 장소와 상대, 연하장과 e메일 주고받은 것까지 꼼꼼히 적어 관리하는 조 회장은 21세기는 잠자는 친구를 깨워 함께 공부하고, 그 성과와 능력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시대임을 강조한다.

“그전에는 내가 공부할 때 친구가 잠을 자야 유리했지만 지금은 그 친구를 깨워 같이 공부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친구를 똑똑하게 만들어 그 친구의 능력을 활용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지요.”

여기서 그는 ‘십자가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십자가 네트워크란 자신을 중심으로 머리 부분은 해바라기처럼 윗사람을 따르면서 많이 배우고, 아래로는 괜찮은 후배들을 키우며, 오른쪽으론 뜻을 같이하는 동료를 늘려 가고, 왼쪽으론 자신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이들과도 무리 없이 지내는 것이다.

“십자가를 한가운데에서 보면 위보다 아래가 더 길잖아요. 이것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을 향해 더 많은 공을 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거꾸로 해요. 그래서 중간에 십자가가 끊어지고 마는 겁니다. 또 왼쪽과 오른쪽이 같은 것은 균형 감각을 유지하라는 뜻이에요. 그러려면 뜻이 맞는 이들하고만 가깝게 지내지 말고, 뜻이 다른 사람과도 단절 없이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조 회장이 사재를 털어 교육센터와 장학재단을 만든 것도 바로 이 아래를 살피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 자전거

조 회장의 방에는 다른 CEO 집무실에 찾아보기 힘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상 위 자전거 모형이고, 다른 하나는 커다란 스탠드형 태극기다. 먼저 자전거에는 쉼 없이 앞을 보고 달리자는 그의 ‘자전거 철학’이 담겨 있다.

“자전거는 멈춰도, 뒤를 돌아봐도 안 돼요. 멈추면 넘어지고 뒤를 돌아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을 보고 계속 달려야지요.”

20대의 시간 관리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쉼 없는 자전거처럼 하루 평균 13시간 일한다. 요즘 대학의 요청으로 특강을 자주 하는데, 빼놓지 않는 말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고사성어를 사전에서 지우라”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젊을 적, 20대에 목표를 확실히 세워 빨리 열심히 다가가야지, 기다리거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대형 태극기는 조 회장의 남다른 국가관을 보여준다. 그는 8?5 광복절에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태극기를 보며 창업 당시의 각오를 다진다. 부전자전이다. 큰아들 재석(21) 군은 미국 영주권자로 군 입대 의무가 없는데도 지난해 5월 자원 입대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재석군은 국내에 막 인터넷이 보급된 96년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홈페이지를 만들어 컴퓨터 영재로 주목받았다. 2002년 중3 때 미국 유학을 떠나 고교 졸업 때 미국 대통령상을 받은 데 이어 명문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과에 재학 중이다.

“군 복무는 그냥 흘려 보내는 기간이 아닙니다. 국가 시스템을 체험하며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지요. 영주권을 이유로 피하기보다 사회를 배우겠다는 아들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어릴 적 링컨의 자서전을 읽고 ‘40대 얼굴 책임론’에 감명받은 조 회장은 20대부터 10년 주기로 삶의 목표를 정해 실천하는 중이다. 20대 목표는 ‘전문 분야에서 최고 되기’로 정보처리업 1호 기업으로 이뤘다. 30대에는 2% 부족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이 무렵 벤처협회를 창립하고 비트교육센터를 열었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라

40대의 삶은 더불어 함께 가자는 상생을 지향했다. 벤처 생태계 육성을 위해 협회장을 맡고, 벤처 재도약 100만 대군 양성 계획을 추진했다. 장학재단을 만들고, 모교 인하대에 건물을 지어 주었다. 50대 목표는 한국을 SW 수출 강국으로 만드는 일이다. 국내 SW업체들이 안방 시장에만 매달린 끝에 가격 경쟁을 부채질해 산업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서다.

1차 목표 시장은 일본으로 비트교육센터 출신을 3000명 정도 진출시키는 것이다. 비트컴퓨터의 의료정보 SW는 이미 일본, 태국 등에 수출되고 있다. “인도가 SW 강국으로 통하는데 인도의 강점으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수학을 잘 하고, 미국과 밤낮이 다른 시차를 꼽거든요. 이 세 가지 모두 우리가 인도에 뒤질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일본에서 비트 1년차가 인도 3년차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조 회장은 “평균수명 연장 추세를 보면 아흔 살 넘게 살 것 같은데 60대 이후 계획은 차차 세우겠다”며 웃었다. “기업가는 분명한 자기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결과를 낳듯 기업가의 좋은 철학이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고, 나아가 사회에도 기여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키도 작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지만 마음은 크고 따뜻한 사람이다.

올 추석 서울 서초동 비트빌 사옥 근처 5개 음식점 종업원에게 선물을 돌렸다. 평소 비트컴퓨터 직원들에게 잘해줘 고맙다는 뜻으로. 한 식당 종업원에게 선물이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명절을 앞두고 밀린 외상값을 받기 위해 선물 사 들고 사무실을 찾긴 했어도 이렇게 손님에게서 선물 받기는 난생 처음이에요.”

(필자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서로 끌고 밀어주는 조현정장학재단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라곤 해도 농촌 마을인 기장군 장안제일고교 3학년 이지현 양. 지난해 조현정학술장학재단에 서류를 내고 면접을 봤다. 조현정 회장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었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조 회장은 “좀 더 큰 꿈을 가지라”고 권했다.

9기 장학생으로 선발돼 지난해 4월 재단 전체 모임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2기 장학생 출신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통상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는 방경원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 회장의 말씀이 생각났다. 자신도 방 선배처럼 외교관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바꿨다.

먼저 영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근처에 변변한 학원 하나 없었지만 학교에서, 집에서 최선을 다했다. 공부하다 힘이 들면 모임에서 만난 선배들과 연락하며 조언을 받았다. 그 결과 지난해 여름 TOEIC에서 만점 990점을 받았다. 이 양은 조 회장에게 “열심히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쭈~욱 지켜봐 주세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e메일로 보냈다.

“장학생을 선정하는 데 성적과 가정형편을 고려해 2배수로 뽑은 뒤 제가 직접 면접을 봅니다. 눈빛이 살아있는지,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은 어떤지를 살피고 직접 꿈이 뭔지 물어봐요. 우린 그저 학비를 보태주는 데 그치지 않아요. 고교 2학년 때 뽑아 대학 2학년까지 4년 동안 장학금을 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관리합니다. 선배는 멘토로서 후배를 도와주고, 동기들끼리 서로 벤치마킹하며 미래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골 면장집 둘째 아들 조현정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뒤 집안 형편이 기울자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중퇴했다. 13세 어린 나이에 서울 충무로 전파사에 취직했다. 3년 만에 알아주는 ‘꼬마 기술자’가 된 그는 대학에 가겠다며 83일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해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결심했다. 나중에 돈을 벌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99년 코스닥시장이 좋을 적에 갖고 있던 주식을 팔아 20억 원의 종자돈을 마련했다. 이듬해 ‘함께 하여 꿈을 키워주는 재단’을 슬로건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매해 1억6000만 원씩, 10기에 걸쳐 166명에게 12억663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해마다 봄이면 이미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1기 선배부터 고교 재학생에 이르기까지 모이는데 참석률이 80%를 넘는다. 이렇게 소문이 나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전국 고교 모의고사에서 0.7% 상위권에 든 학생들이 장학생으로 뽑힌다. 평균 성적이 100점 만점에 99.3점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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