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이집트 여왕
버림받은 이집트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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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늘 다른 역할로 등장해 왔다. 요부·여권주의자·순교자·악녀·여신·매춘부 등으로 묘사됐고 심지어 금발 머리가 됐다 검은색 머리가 됐다 했을 정도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그녀를 ‘파멸을 부르는 괴물’로 불렀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시인 초서는 그녀를 정숙하고 지조 있는 여자로 그렸다.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낭만적인 여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도 했다.
그녀가 생존했던 시절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그녀를 풍요의 여신 이시스의 환생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의 정적이던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는 그녀를 매춘부로 불렀다.
수많은 미술 작품과 문학·연극·영화·역사 서적에서 클레오파트라는 간악한 음모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파멸로 이끈 요부로 그려졌다. 클레오파트라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기원전 30년 사망할 당시 그녀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가 호령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대부분은 현재 지중해 바다 속에 가라앉았거나 고층 빌딩 숲 아래 묻혀있다. 하지만 이집트 학자 조이스 틸즐리가 클레오파트라의 새 전기 ‘클레오파트라: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Cleopatra: The Last Queen of Egypt)’에서 끌어 모은 증거들은 클레오파트라를 둘러싼 해석들이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그녀의 죽음은 고대 이집트의 종말과 로마 제국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녀에게 섹스는 정치였다. 그녀의 가장 소중한 정치적 동지였던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는 그녀의 연인이기도 했다.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의 죽음은 클레오파트라의 적들이 그녀의 전설을 ‘한 나라가 여자 지도자의 통치하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하고 위험한가를 알려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힐러리 클린턴과 세라 페일린 등 여성 지도자들이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클레오파트라의 전설을 다시 파헤쳐 보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는 단지 남자들의 연인에 불과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야심 차고 무자비한 여왕이었다. 자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던 남동생(그녀의 남편이기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 왕실에선 흔한 일이었다)이 자신의 뜻을 거역하자 사람을 시켜 그를 살해한다.
그녀는 권력자들을 왕궁으로 초대해 퇴폐적인 연회를 즐겼다. 연인이자 동지였던 안토니우스를 곁에 두고 로마의 내전을 조종했다.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참패한 뒤 자살하자 그녀도 자살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독사에 물려 죽는 방법을 택했다.
공식적인 기록(연설과 소책자 등에 자주 인용되는 옥타비아누스판)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를 멸망시키고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해 순진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부패하게 만든 것으로 돼 있다. [HBO 방송의 드라마 ‘로마(Rome)’ 시리즈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마약을 상용하는 매춘부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을 카이사르의 ‘노예’로 바친 뒤 그를 쥐고 흔들 작정으로 계략을 꾸민다.] 얼마 남아있진 않지만 고고학적 기록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또 다른 면모도 읽을 수 있다.
그 기록들은 클레오파트라가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하고 어려운 시기에 능력을 발휘한 통치자였다는 걸 시사한다. 틸즐리는 “클레오파트라를 그녀가 다스렸던 고대 이집트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로마인들의 배우자가 아닌 이집트의 통치자로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섹스는 여성들이 그 시대 사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무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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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현명하게’ 이용했다. 사실 틸즐리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런 방식으로 관계를 맺은 건 두 사람(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뿐이었을 것”이라고 썼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매춘부로 묘사하려고 상당히 노력했다. 안토니우스와 권력 투쟁으로 사이가 벌어지긴 했지만 그 전에는 동지였다. 하지만 여성인 데다 외국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그보다 더 확실한 적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희생양이 됐다. 로마가 순수한 빛이라면 그녀는 어둠이었고, 로마가 남자라면 그녀는 여자였으며 로마가 공화제를 상징한다면 그녀는 군주제를 상징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집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났는데 그녀가 지적이고 거만하다고 느꼈다.
그는 “그 여왕을 증오한다!”고 썼다. 생생하고 매혹적인 책 ‘영웅전’에서 고대 영웅들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보다 100년 뒤에 살았지만 그 역시 그녀를 증오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도리에서 벗어난 부도덕한 여자로 그렸다. 플루타르크 책의 한 장면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침대 시트를 몸에 둘둘 감고 카이사르의 처소에 숨어든다.
매우 극적이지만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또 1963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 등에서는 그녀가 둘둘 말린 페르시아산 양탄자(시대에 맞지 않는 설정이다) 속에 숨어 있다가 카이사르가 그것을 펴는 순간 흐트러지고 섹시한 모습으로 그의 발치에 떨어지는 것으로 그려졌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런 묘사들은 그녀 자신보다는 그 묘사가 나온 시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비록 그녀가 극적인 것을 좋아하긴 했을 듯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로르샤흐 검사’(잉크의 얼룩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성격을 판단하는 검사) 같은 존재가 됐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그녀를 창백한 피부의 금발 미녀로 묘사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에는 거무스름한 피부의 이국적인 모습으로 표현됐다. 또 낭만주의 화가들은 그녀를 요부로 묘사했다. 그리고 초기 영화들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을 느낄 만큼 똑똑하고 재미있는 여자로 묘사됐다. 요즘은 많은 학자가 클레오파트라의 외모(동전에 나타난 그녀의 옆 얼굴은 높은 코를 특징으로 한다)와 피부색(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마케도니아 출신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외가 쪽 조상과 친할머니는 어떤 인종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에 집착한다.
틸즐리의 말대로 이런 논란은 미와 인종에 대한 사회의 집착을 말해준다. 클레오파트라를 남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통치자로 보고, 고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녀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시도가 진작에 이뤄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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