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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속 리더십의 실종

경제 위기 속 리더십의 실종


리더십 부재로 인해 미국의 투자자들이 불안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꽤 정상적인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도 이번 금융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았다(“대공황 이후 유례없는일”이라고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했다). 그러나 11월 7일 시카고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그의 뒤에 도열해 서 있던 미국의 경제 엘리트 16명은 마치 미국 주식회사의 이사진처럼 비쳤다) 경제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다짐한 뒤 그 정도 얘기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두 개의 정부와 두 명의 대통령이 있을 수 없다”면서 “서둘러” 재무장관을 비롯한 각료 인선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 후 대통령 당선인은 시카고에 있는 정권 인수팀 본부에 틀어박혀 힐러리 클린턴과 국무장관직 임명 문제를 상의하는 등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매달렸다.

그러나 하루 하루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오바마는 워싱턴의 커가는 권력 공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10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대책을 내놓은 뒤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소진된 부시 행정부는 ‘레임덕’이 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주요 20개국(G20) 긴급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부시 대통령은 친절한 주최자 역할에 그쳤고 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듯 3대 자동차 메이커의 구제에 반대하고 돌연 ‘위험자산’ 인수계획을 폐기했다. 이는 지난 10월 자신이 최선의 방법이라며 의회를 설득했던 대책이었다. 그런 자산들(당초 금융시장 붕괴의 단초를 제공한 악성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아직도 많은 기업의 재무구조에 큰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투자자들은 또다시 어떤 기업이 주저앉고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캘리포니아주 레이건 도서관에서 폴슨이 위기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장황한 강연은 마치 작별인사처럼 들렸다. 실제로 그의 임기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한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금리를 이미 제로 가까이까지 끌어내렸으니 더 이상은 어찌 해볼 방도가 없는 처지가 됐다.

평상시라면 정권 교체가 한가하게 이뤄지고 레임덕들이 9주 동안 의회의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해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 평상시라면 신뢰성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의욕적이고 시민의식이 투철한 재계 지도자가 없다 해도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선인 스스로 인정했듯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뉴욕과 워싱턴의 정치-경제 축은 풍랑 속에 표류하는 듯한 불안감에 사로잡혔으며 시장은 크게 후퇴한 경기가 더 악화될까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공황은 유일하게 안전 투자처로 여겨지던 미국 국채의 수익률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1% 이하로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더는 이익을 기대하지도 않고 자본이 완전히 증발하지 않기만 바란다는 의미다. 연방 지원의 액수나 범위를 알 수 없게 되자 투자자들은 해당 업종들(금융·자동차·보험·주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불안심리가 만연하자 일부는 오바마가 있는 시카고 쪽으로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정권 교체기에 오바마가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큰일을 할 만한 힘은 분명 없다. 하지만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신속하게 밝히고 종합 경기부양 대책의 세부 실행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시장을 안정시킬 수는 있다. 오바마 진영은 지금껏 이런 조치를 회피해 왔다. 오바마의 몇몇 보좌관조차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 진작과 자동차 산업 구제금융안 수립을 미루는 데 당혹감을 나타냈다.

시장이 계속 가라앉자 오바마는 11월 21일 그런 비판을 무마하려고 티머시 가이스너(47)를 신임 재무장관으로 내정했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인 가이스너는 저명한 시장 개입론자로 클린턴 시절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밑에서 차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생일이 오바마보다 2주 느린 가이스너는 잘 웃고 모순을 잘 잡아내며 에너지가 넘친다.

불확실성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조용한 뉴욕연방준비은행 건물의 방들을 쉴 틈 없이 쏘다닌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이스너는 월스트리트의 소방대장으로 활동하며 폴슨-버냉키 구제금융에서 중요한 막후 역할을 수행했다. 가이스너의 발탁을 시장은 확실히 호재로 받아들였다. 그 소식에 다우지수가 급반등해 6.5% 가까이 치솟았다.

오바마는 인프라와 대체 에너지 투자를 통한 신규 고용 창출을 골자로 하는 2개년 경기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22일 발표했다. 이는 가이스너 내정과 함께 그가 경제의 방향타를 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래도 오바마의 취임 전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바니 프랭크 위원장은 대통령 당선인에게 당장 성명을 발표해 폴슨의 부실자산 구제프로그램(TARP)을 광범위한 모기지 구제 대책으로 전환하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그 문제에 관한 당선인의 공식 발언이 중요해졌다”고 프랭크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내 느낌으론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결정하도록 폴슨이 TARP를 추가로 활용하는 것을 피하는 듯하다. 그러나 폴슨이 돈을 풀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오바마가 욕을 얻어먹을 위험성이 있다.” 오바마의 또 다른 보좌관인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는 “6000억 달러 이상”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라고 대통령 당선인에게 촉구했다.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코자인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시장심리를 회복시키려면 오바마가 “취임하자마자 제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미국 각지의 일류 기업 CEO들도 저마다 리더십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 시티그룹이다.

시티그룹은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의 대표 기업이었으며 2000년대 들어 거의 내내 미국 최대의 금융기관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감원과 새로운 경영진 유입의 여파로 권한의 한계가 불분명해지면서 맨해튼 중부의 본사와 맨해튼 남부의 거래소에 혼란이 잇따랐다. 11월 초 회사 측은 많은 직원들에게 2주 동안 출장을 떠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해고 대상이거나 떠난 직원의 일을 대신 맡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모건 스탠리의 임원과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비크람 팬디트가 지난해 12월 최고경영자로 승진해 찰스 프린스가 떠나면서 남긴 혼란의 뒷수습을 맡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는 맥 빠진 연설을 하며 공식적인 활동도 별로 없다.

11월 17일 그는 본사 건물에서 전체 회의를 소집해 약 5만 명을 감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더니 곧이어 충격에 빠진 직원들에게 무더기로 e-메일을 보냈다. “2009년을 앞둔 현 시점의 상황은 1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로 떨어진 시티그룹 주가는 한 주 내내 곤두박질해 11월 21일 금요일에는 4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최근의 사태로 시장 선도분야(제조업·에너지·소재)가 전멸했다”고 루이즈 야마다 테크니컬 리서치 어드바이저스사의 루이즈 야마다 대표가 말했다. “지금은 어디서도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경기침체기에는 캠벨 수프 같은 생필품 업체들이 시장을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최근 그런 종목들도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다수 다른 CEO들도 사업 구조조정을 하기보다 현금을 비축하며 납작 엎드리는 듯하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최고경영자 제프 이멜트,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또는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같은 기성체제의 천부적 지도자들은 발등의 불 끄기에 바쁘다. 미국 자본주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조차 요즘 의외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지난 9월 이후 45% 빠졌다. CEO들이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민다 하더라도 포드,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의 대표들이 지난주 그랬듯 납세자들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서다. 이들 대기업 지도자들은 종종 하원과 상원 청문회에 나가 굴욕을 견뎌내며 250억 달러를 단기 지원해 달라고 간청했다.

한 남자가 뉴욕의 폐업한 상점 앞에 서 있다. 뉴욕 증권거래소 개장을 기다리는 한 사업가.

그러면서도 임기 중에 발생한 위기가 제 잘못이 아닌 양 행동하며 그런 지원을 받으면 현재의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다. 저마다 회사 전용기를 이용해 워싱턴에 도착한 것도 눈총을 샀다. 포드 CEO 앨런 머랠리는 연봉을 상징적으로 1달러만 받는 건 어떻겠느냐고 묻자(2007년 연봉 2170만 달러)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난 현재 수준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칼 레빈 상원의원(미시간주)과 인근 주의 대표단은 지난 20일 수정안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그토록 필요로 하는 자금에 대해 스스로 더 많은 책임을 갖도록 함으로써 250억 달러 구제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동료 의원들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두려운 듯 그 법안에 대한 표결을 연기했다.

“결정을 다음으로 미룬 것은 나중에 뭔가 발전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라고 그가 20일 말했다. 그러나 상원은 85세의 중범죄자(독직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알래스카·공화)을 위해서는 시간을 할애해 의원들이 잇따라 초당적인 지지 증언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지원 요청 또는 다른 현안들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20일 휴회했다. 그처럼 늑장을 부리는 데는 정치적인 동기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오바마는 부시 시대의 실정에는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켄 로고프(선거운동 중 한때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보좌관 역임)는 오바마가 지금 그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면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FDR)가 그랬듯이 1월 20일 취임할 때 구세주로 극적인 재등장을 연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가가 6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난 11월 20일 뉴욕 증시의 마감 무렵.
그럼으로써 민주당이 미국 정치의 유리한 고지를 탈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FDR 모델도 똑같다. 주가가 10% 더 하락하더라도 그들은 앞으로 10년 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로고프가 말했다. “정치적으로 부시의 실정을 속속들이 까발리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동시에 경제의 약점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한다.”

쉽게 말해 오바마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표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위험하다. 불확실성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모래 위에 기초를 세우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가 돈을 투자하겠는가? 따라서 확실성이 없을 때는 하락이 대세다. 일단은 팔고 나중에 묻는 식이다.

변동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측정하는 일명 공포지수(VIX 지수)는 최근 몇 주 사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했다. 그렇다면 누구 잘못인가? 폴슨의 대변인 브루클리 맥러플린은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정책에 큰 힘을 쏟고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 신용시장 정상화와 신용 확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바니 프랭크는 의회와 정부가 내년 1월까지 계속 손을 씻기만 할 것이라는 지적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의회는 정부를 설득해 실업보험을 확대하도록 했다.

모기지 압류 건에서도 정부에 최대한 압력을 가해 왔다. 자동차 산업 문제에도 진지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들이 의회에 구조조정안을 제출해야 하는 시한을 못 박았다.” 그러나 향후 몇 주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많다.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퇴출시켜 많은 연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 폭풍우 치는 바다에 경제의 초대형 유조선들이 무수히 표류하고 있다. 선장은 대부분 배를 떠났거나 갑판 아래에 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가 취임식 전에 미리 방향타를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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