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추지 않은 뭄바이 총성
![]() ![]() 뭄바이의 역사적인 건물인 타지마할 호텔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투숙객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
뭄바이의 타지마할 호텔에 대한 첫 기억은 내가 여덟 살 때였던 듯하다. 나는 그곳의 시 라운지 식당에 인도의 별미인 세브 푸리를 먹으러 갔다. 뭄바이 항구의 아름다운 경관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식당이었다. 몇 년 뒤 그 호텔의 그랜드 볼룸을 지나간 기억도 있다.
인도를 방문한 불가리아 대통령을 위한 만찬 준비가 한창이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 얼음 조각(彫刻), 장미 부케,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나르는 새우 접시들. 우리 가족은 특별한 집안 행사가 있으면 타지마할 호텔 내부의 골든 드래건을 찾았다. 중국 밖에서 최고로 꼽히는 중화요리 식당 중 하나다.
그처럼 타지마할 호텔은 뭄바이 시민들(당시 우리는 스스로를 봄베이 시민이라고 했다)의 삶에 하나의 붙박이 같은 존재였다. 지난주 뉴욕에서 TV로 타지마할 호텔이 불길에 휩싸이는 광경을 볼 때 그런 기억들이 내 머리를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이번 뭄바이의 테러 공격은 인도의 9·11 사태로 불린다.
사실 나 개인적으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9·11처럼 이번 공격도 나와 아주 가까운 곳을 덮쳤다. 9·11 당시 내 형은 공격으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 바로 곁에 있던 세계금융센터 빌딩에서 일했다. 그는 첫 비행기가 쌍둥이 건물을 들이박았을 때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나는 그 쌍둥이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과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몇 명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뭄바이 참사도 내겐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어머니의 사무실이 타지마할 호텔에 있다(어머니는 타지 매거진의 편집인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공격이 있던 그날 출장 중이셨다. 하지만 내 처남과 조카딸은 테러 공격을 당한 또 다른 곳인 오베로이 호텔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있었다.
10여 명의 특공대원이 그 아파트를 접수하고 창문에 저격수를 배치해 총격전을 벌였다(내 조카딸은 거기서 주운 총탄을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9·11 때처럼 나는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 중 몇몇을 안다. 타지마할 호텔의 젊은 지배인이 자기 가족을 잃었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 보통사람들은 대개 온정의 미덕을 발휘한다.
보도에 따르면 호텔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투숙객들을 대피시키느라 갖은 고생을 했다. 또 풀려난 인질 중 몇 명은 인도 군인들의 용맹성을 격찬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처럼 잘 풀리지는 않았다. 누구의 말을 들어봐도 현지 당국의 초기 대응이 터무니없이 늦었다. 그들은 허둥대기만 했을 뿐 무능했다.
이번 테러 공격은 현대 인도의 핵심적인 약점들 중 하나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인도의 민간 부문은 역동적이고 효율적이며 반응이 빠르지만 공공 부문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인도 정부는 기능 장애에 걸려 있다. 군과 테러 진압 특공대 같은 중앙 정부의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면 인도는 현재 직면한 도전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정치적으로 지방 분권화된 인도는 허약한 연립정부에다 정실주의와 부패가 만연하고, 프로 근성과 능력은 뒷전이다. 뭄바이 사태가 인도의 9·11이라면 인도 정부는 이를 계기로 체제를 추슬러 질서를 바로잡고 개혁을 추진해서 ‘스마트 정부’를 요구하는 시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해야 마땅하다.
인도에는 무슬림 인구와 관련된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이번 테러에 인도 무슬림이 연루됐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테러범들이 인도 내부에 뿌리를 내린 소규모 집단의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인도에 1억4000만 명의 무슬림이 있지만 인도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중 테러단체 알카에다 대원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주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세계 곳곳의 무슬림들을 포섭한 원리주의와 급진주의의 암적인 부상이 인도를 그냥 놔두었겠나? 더구나 인도의 무슬림들은 불만이 많기 때문에 배후 세력의 조종을 당하기 쉽다. 몇몇 예외는 있지만 그들은 인도의 경제·정치·사회 등 모든 면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는다.
인도 대륙의 분할이 가져온 터무니없는 결과는 인도의 무슬림들을 소수집단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대륙에서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됐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인 힘을 가질 기회를 봉쇄당했다. 그들은 지난 20년 동안 인도의 눈부신 발전에서 소외되면서 추악하고 폭력적인 힌두 민족주의 운동의 희생물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하드(성전)에 합류하는 게 용서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아무리 확신하더라도 감정적인 판단이 그런 도덕적 확신을 따른다는 법은 없다. 이것은 비단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뭄바이를 공격한 테러범들은 외국 연줄을 갖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직접적인 지원이라기보다는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파키스탄에 있는 단체로부터 지원과 훈련, 둘 다를 받았을 게 거의 확실하다. 설사 파키스탄 정부가 연루된 것은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기본 문제는 계속 남는다. 파키스탄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이슬람 지하디스트(성전 전사)들을 조직하고 지원하고 훈련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키스탄 군부는 어떤 지하디스트에게라도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불안하게 하지만 자기 나라에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테러리스트들을 “선한 지하디스트”들로 간주해서 봐주고, 파키스탄 내부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리스트들을 “악한 지하디스트”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그 두 부류는 서로 뒤섞여 쉽게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현대화와 민주주의를 적대시한다. 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가 가진 문제점들은 서로 스며들어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단순히 국가적 차원의 접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번 뭄바이 테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효과는 그것이 해당 국가 간의 협력과 개혁의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고 오히려 해당국 사이에 적대감과 원한, 상호비난만 자극하게 된다면 이번 사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희생이 헛될뿐더러 더 많은 희생과 이 지역의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동의 적을 명심하는 일이다. 원인과 처방을 논의할 때는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사태의 주범이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테러리스트들이다. 무고한 남녀노소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내가 아는 한 젊은이의 가족을 불태워 죽인 사악한 테러범들 말이다. 그들이 원흉이다. 인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테러 억지 수단도 갖고 있다. 바로 신속한 복원력이다. 뭄바이의 증권거래소가 지난 금요일인 11월 28일 다시 문을 열었지만 주가는 이전보다 더 올랐다.
인도는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낼 게 분명하다. 뭄바이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갈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방문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 나는 두 주 뒤 인도에 갈 계획이 있다. 오래전에 잡혀 있던 일정이다. 나는 예정대로 갈 작정이다. 그래서 뭄바이의 타지마할 호텔에 반드시 가볼 생각이다. 장담컨대 그곳은 삶의 활기가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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