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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도시를 살리는 또 다른 엔진, 자연의 회복력[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만약 이 무더운 여름 밤, 갑작스러운 정전이 찾아온다면?’ 도시는 열을 머금은 콘크리트처럼 더위를 내뿜고 있는데 선풍기도, 냉장고도, 엘리베이터도 멈춘다. 스마트폰 불빛 하나로 의지해보려 하지만, 곧 배터리 잔량이 10%로 떨어졌다는 경고가 뜬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충전기를 꽂고, 에어컨을 켜고, 커피를 내렸을 그 모든 일상이 마비된다.우리는 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기술은 늘 우리 곁에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 거대한 도시는 과연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기체인가, 아니면 무언가에 의존하는 인공물에 불과한 것인가?싱가포르와 두바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을 선택했다. 담수화, 인공 숲, 초고효율 냉방 기술 등은 그들이 처한 기후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쾌적함을 유지시켜 왔다. 그러나 이 모든 시스템은 거대한 에너지 공급망과 자본, 정치적 안정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작동한다.기후위기 시대, 세계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술만으로 충분한가?” 그 질문 끝에 도달한 대안이 바로 ‘자연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생태학자 C.S. 홀링의 회복력(resilience) 이론과 1990년대 생태계 서비스 개념에서 비롯됐는데 2005년 유엔의 ‘새천년 생태계 평가’,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유럽연합(EU),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등에서 자연을 복원하는 것이 인류 생존 전략임을 공식화했다. NBS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실천되고 있는 도시를 스스로 살아있게 만드는 회복 전략이다.도시는 어떻게 자연을 다시 불러들였나네덜란드는 1990년대 중반, 두 차례의 대홍수를 겪은 후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더 높은 제방을 쌓는 대신, 강이 스스로 넘칠 공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Room for the River(강을 위한 공간)’이라고 불리는 이 정책은 범람원을 복원하고, 제방을 뒤로 물리고, 일부 농지와 마을을 이전하는 대규모 계획이었다. 약 23억 유로의 예산이 들었고, 3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12년에 걸쳐 추진됐다. 이 정책은 단순한 하천관리 개념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와 국가가 “자연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공존하는 전환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농민과 지역 주민의 반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참여적 계획 절차를 통해 신뢰를 구축했고, 지역 맞춤형 설계로 프로젝트의 실효성을 높였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Sandy)로 큰 피해를 입은 뉴욕은 ‘Big U’라는 거대한 방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콘크리트 대신, 자연과 시민 공간이 결합된 방어선을 세우는 계획이다. 공원과 방조제를 결합하고, 침수 시 자동으로 닫히는 방수문을 설치하며, 도시의 해안을 ‘살아 있는 인프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두 사례는 공학적 회복력( Engineering Resilience)을 벗어나 생태적 회복력(Ecological Resilience)을 적용시킨 대표적인 사례다.서울의 청계천 프로젝트도 이런 흐름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복개된 하천 위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생태를 복원하는 프로젝트에 교통 혼잡과 상권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민소통과 대중교통 확충, 그리고 수질 회복 전략을 통해 도시의 한복판에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복원 이후 청계천 일대에 308종의 식물과 25종의 어류, 190여 종의 곤충이 다시 정착했다고 한다. 단지 경관 개선이 아닌 도심 생태계 회복의 실질적 성과였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청계천의 복원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의 ‘River of Life’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공공디자인, 하천 수질 개선,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서울 사례에서 참조했고, 중국 베이징은 도시 하천 복원 사업에서 청계천의 복개 도로 철거와 시민참여 프로세스를 벤치마킹했다. 2009년 미국 하버드대 도시디자인스쿨 세미나에서는 청계천을 “도시 회복력과 재생의 모범 케이스”로 소개하며, 뉴욕, 암스테르담 사례와 나란히 다루기도 했다. 서울시민 조차 그 효과와 의미를 잘 모르는 사이, 청계천은 도시생태 복원의 정책으로 수출이 됐고, 세계 도시들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미래를 위한 느린 선택기술은 빠르지만 비싸고, 유지비가 든다. 자연은 느리지만, 오래 간다. 두바이는 냉방을 위해 전력의 70%를 쓴다. 담수화에 드는 막대한 에너지는 또 다른 자원 소모를 낳는다. 도시를 살리기 위한 기술도 자연생태계 회복도 모두 비용이 든다. 그러나 자연에 투자하는 도시는 우리가 사는 ‘현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미래’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자연기반 해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민의 인내와 정책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빠른 성과에 익숙한 사회와 정치는 이 느린 길을 종종 외면한다. 하지만 지금의 편안함이 미래의 불편이 된다면, 그 대가는 결국 다음 세대가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엔진에 점화를 걸어야 할까? 기술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도시, 자연의 복원력에 투자하는 느린 도시, 혹은 두 엔진을 조화롭게 가동하는 도시. 어느 길이든 우리의 선택과 결정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단기적 성과를 요구받는다. 유권자가 원한다면 더딘 정책,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정치적 결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여름은 매년 더 뜨거워지고, 더 자주 잠길 것이다. 내 집만 식히는 것을 넘어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 국가와 지구를 식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다. 정책 결정의 현장에도, 시민의 일상에도 이제는 ‘미래를 향한 사유’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자연 복원력이란 도시의 기초체력이나 면역력 일수도 있다. 기초체력이나 면역력을 갖추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기후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동해야 할 엔진은 기술만이 아니다. 반백년 이상 '기술과 빠름'에 길들여지고, 더 빠른 기술발전이 예고되는 지금, 우리는 오히려 그 기술을 넘어서는 느린 선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시간이다.

2025.08.10 16:00

4분 소요
한국은 왜 ‘아아’의 천국이 되었을까?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전문가 칼럼

찌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국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커피 메뉴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겨울철 자료를 포함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비율은 90%에 달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사이에서도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이 화제다. 한국인 라이프스타일 된 '아아'한국은 커피 생두 수입량 세계 7위, 원두 물동량 세계 4위에 달할 정도로 커피 소비가 많은 나라지만, 다른 커피 소비 국가와 다른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서유럽과 같은 커피 강국에서는 카페라테·카푸치노·플랫화이트와 같은 밀크커피의 수요가 많은 반면 한국은 차 문화에 영향을 받아 구수한 아메리카노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서구권에서는 밀크커피와 크루아상 등을 통해 한 끼 식사를 대체하고, 우유를 따뜻하게 만드는 스팀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상대적으로 짧은 커피 문화를 가진 한국은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서 표준화된 커피 추출 기술을 교육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아메리카노 문화는 빠르게 확산했고, 이는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요소가 됐다. 최근에는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늘어나면서 좋은 커피를 기반으로 다양한 아메리카노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다.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피 수요국은 여름철에도 서늘하거나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데 반해 한반도의 여름은 단순히 더운 것을 넘어 습하고 무겁다. 서울을 기준으로 여름철 평균 기온은 30도를 넘고, 습도는 80%를 웃돈다. 6월부터 9월 초까지 장마와 열대야가 이어지며 체감 온도가 35도를 넘는 날이 잦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최근 몇십 년간 한국이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의 자료를 살펴보면 무더위를 상징하는 열대야의 기록이 1990년도에 비해 2020년도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한국에서 아이스 음료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출근길·점심 직후·오후 회의 전 등 ‘리셋’이 필요한 순간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더위와 졸음을 날려주는 생존 도구의 역할도 한다. ▲얼음의 청량감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함 ▲대용량 테이크아웃 잔으로 무장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현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높은 가성비·효율적 ‘각성제’로 인기 한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은 커피 소비 증가 추세와 함께 진행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카푸치노, 점심 이후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한국은 이른 아침부터 빠르게 카페인을 섭취해서 힘을 내야 하는 치열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근무 시간이 길고 업무 강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각성을 유도할 수 있는 음료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매우 효율적이다.브루잉 커피보다 짧은 제조 시간, 라테나 마키아토보다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다. 테이크아웃 문화와 결합한 에스프레소 기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동하며 마시는 음료’로 정착했고 ▲사무실 책상 ▲택배 차량 ▲학교 도서관 등 거의 모든 공간에서 부담 없이 소비되고 있다. 한국 커피 산업이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빠르게 대중화된 이후, 최근에는 메가커피·컴포즈커피·빽다방 같은 저가 커피 브랜드가 급격히 부상 중이다. 이들은 가장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표 메뉴로 설정하고, 1500~2000원의 가격에 600ml 이상의 커피를 제공하면서 아메리카노 대중화를 가속했다.코로나 기간 재택근무 확산과 경제 불안 속에서 집 근처 저가 매장에서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소비자도 증가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가성비 좋은 각성제’로 소비자에게 꾸준히 선택받고 있다. 디저트 소비는 줄이되 커피 소비는 유지하는 구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소비의 중심에 서 있다.한국적인 기후와 문화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의 출발점이었다면, 최근에는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상황이다. 양질의 스페셜티 커피로 추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의 커머디티 커피에 비해 과일 향미와 산미, 청량감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된다. 국내 대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인 ▲커피리브레 ▲모모스 ▲프릳츠 커피는 여름철에 맞는 적절한 커피를 로스팅해서 뛰어난 산미와 입체적인 단맛, 청량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보인다. 케냐 등 단일 품종 싱글 오리진 원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샴페인을 연상시키는 산미로 소믈리에나 미식가 사이에서도 호평받는다.이제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은 단지 기후적 요인만이 아니라 ▲빠른 생활 리듬 ▲가성비 전략 ▲품질 지향까지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타일은 이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지역에서 K-커피로 주목받으며 글로벌 커피 문화에 신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

2025.08.10 15:00

4분 소요
‘로봇 세상’인 중국, 근데 로봇이 밥 먹여주나?[특파원 리포트]

차이나 포커스

지금 중국은 ‘로봇 천국’이다. 전기차, 이차전지 등에 이어 이번에는 로봇 산업을 적극 육성하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과시하고 있다. 딥시크로 대표되는 중국의 인공지능(AI) 성과는 이른바 로봇의 ‘체화지능’(신체를 가진 AI) 발전으로도 연결됐다.최근 중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보면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로봇, 특히 인간 모습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지난 7월 하순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박람회(WAIC)는 800여개 기업이 참가해 3000개 이상의 제품을 내놨는데 이 중 휴머노이드 로봇만 150대 이상 전시된 것으로 알려졌다.중국 로봇은 올해부터 본격 상용화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전망도 있다.하지만 한편에서는 로봇 산업이 본격 도래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장 경기 침체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 로봇 산업이 실물경제로 전이되기 기다릴 여유가 있냐는 의견도 나온다.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급성장, 중국이 향유하나지난 7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국제 공급망 촉진 박람회’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엔비디아였다. 엔비디아 부스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여러 대가 전시되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이 중 관심을 끈 모델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톈궁’이다. 엔비디아는 ‘톈궁’ 2.0 모델에 자사 칩이 탑재됐다고 밝히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과의 협업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단체 무용과 격투기 대회에 참가하면서 일약 스타가 된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도 전시장 곳곳에서 보였다. 레노버 같은 기술기업들은 ‘G1’에 운영체제를 적용해 지시하는 음성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선보였다. 로봇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중국은 아예 로봇을 직접 사라면서 ‘로봇 소비 축제’를 열었다.지난 8월 2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이좡경제기술개발구와 왕푸징 등의 오프라인 쇼핑몰은 물론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징둥닷컴에서도 진행 중이다.특히 이좡에서는 로봇의 판매·부품·서비스·피드백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는 지능형 4S 매장이 문을 열기도 했다. 이제 직접 소비자가 로봇을 구매하고 수리까지 맡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장밋빛 전망도 넘친다. 지금까지 단순히 생산 공정에서 로봇 팔 등으로 쓰였지만 앞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처럼 직접 현장에 투입되거나 서비스 용도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380억달러(약 53조원)까지 성장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AI의 급진적인 발전과 비용 절감을 전제로 한 낙관적인 시나리오지만 이전 전망치(60억달러)보다 대폭 높였다.모건스탠리는 전체 휴머노이드 산업 생태계를 감안할 때 2030년 200억달러(약 28조원) 수준에서 2050년에는 5조달러(약 70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규모를 보면 사실상 25년 후에는 산업 전반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쓰인다고 본 셈이다.화제를 끌고 있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효용 가치가 그만큼 대단한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중국 경제는 현재 디플레이션 심화 속 경기 침체 우려가 크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국에 당장 ‘로봇이 밥을 먹여주나’에 대한 논란이 나오는 것이다.중국의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0.1% 하락하며 지독한 저물가 상황에 머물러 있다. 중국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은 몇 년간 지속되는 부동산 시장 영향이 크다.대형 부동산 기업의 파산 소식은 이제 흔한 뉴스가 됐고 지방 정부의 숨겨진 부채 문제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당장 중국 경제를 일으킬 동력이 되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에 위치한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의 기술 발전이 대단하긴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빨리 실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지인데 이것이 빨리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감지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주도하며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민간 부문의 참여를 장려하지만 현재로서는 ‘서투른 동료’ 수준”이라면서 “로봇 경쟁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미국 등 기술 의존도 높은 점은 문제로이터통신은 중국의 로봇 산업이 급속한 발전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모터 속도 제어에 필수인 감속기 같은 핵심 부품에 대해 여전히 외국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AI 및 반도체 부품에 대한 미국 기술 의존도도 중국의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중국 내부에서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핵심 부품 ▲시스템 공급망 ▲비용 절감 ▲안전성 확보 등이 주요 리스크라고 지적했으며 기술 혁신 없인 양산이 쉽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현재 전체 로봇 시스템 가격이 지나치게 높고 시장 규모가 작아 대량 생산을 통한 효율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는 결국 불확실한 로봇 산업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꾸준한 정부의 의지와 민간 기술 개발 노력이 필수임을 드러내는 분석으로 보인다. 지금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시장의 향방은 알 수 없고, 한국 또한 여전히 성장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5.08.10 14:00

4분 소요
또 다른 서열 만드는 ‘서울대 10개’의 함정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화제다. 전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육성해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 대학 교육 전반의 질적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전국 어디서든 균등한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하지만 찬반 논란은 뜨겁다. ▲막대한 예산 확보 문제 ▲대학 졸업 이후의 취업과 지역 정착 여건 마련 ▲대중 인식 속에 뿌리내린 대학 서열 구조 등 풀기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정부 주도 新정책...반성과 점검은 無이처럼 정부 주도의 대학 육성 정책이 나올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겉모습만 바꾼 유사한 정책으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기존 사례에 대한 반성과 점검은 왜 늘 빠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나마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과학기술원 육성 정책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다.우리나라의 과학 인재 육성은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영재학교와 과학고, 대학 이상에서는 과학기술원으로 집중되는 구조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원으로 진학해 석박사급 과학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 주요한 통로 중 하나였다.그러나 최근 이 경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졸업생들이 과학기술원 진학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책 효과도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실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개 과학기술원에 입학한 신입생 중 영재학교와 과학고 출신 비중은 2025학년도에 44.1%까지 떨어졌다.이는 2018학년도 52.1%를 기록한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연도별로 보면 4개 과학기술원 전체 입학생 중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비중은 2018학년도 52.1%, 2019학년도 52.1%, 2020학년도 50.8%, 2021학년도 51.7%, 2022학년도 47.1%, 2023학년도 51.2%, 2024학년도 47.7%, 2025학년도 44.1%로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2025학년도 기준 각 과학기술원별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과학기술원이 68.7%(798명 중 548명)로 가장 높았고, 이어 광주과학기술원이 47.8%(247명 중 118명), 울산과학기술원이 19.1%(497명 중 95명),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9.1%(230명 중 21명) 순이었다.특히 일부 과학기술원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각하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경우,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비중이 2018학년도 36.9%(206명 중 76명)에서 2025학년도 9.1%(230명 중 21명)로 무려 27.8%포인트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울산과학기술원은 10.1%포인트, 광주과학기술원은 7.0%포인트 줄었다. 반면, 한국과학기술원만 유일하게 67.1%에서 68.7%로 소폭 상승했으나, 이 또한 2021학년도 74.9%에 비하면 6.2%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결국 한국과학기술원조차도 전반적인 감소 추세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교육 수요자 입장은 늘 제외대학 입시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원에 대한 수험생의 선호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학생들은 과학기술원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서울 소재 명문대를 더 많이 선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대 등 메디컬 계열 진학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더욱이 4개 과학기술원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실험·연구 시설 등 교육 환경이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수험생들 사이에서 ‘가고 싶은 학교’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원은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표로 국내 최고 수준의 실험·연구 인프라를 갖춘 대학급 전문 교육기관이다. 이 같은 교육 철학과 방향을 공유하는 영재학교,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점점 이탈하고 있고, 과학기술원 간 선호도 격차까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정부 주도 대학 육성 정책에서 늘 도외시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이다.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꾸준히 투입한다면, 언젠가는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년 입시를 치러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불안은 또 다른 문제다. 학생 입장에서는 해당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어렵고, 정부 발표만을 믿고 따라가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앞서 살펴본 과학기술원의 사례처럼, 서울대 10개 체계 내에서도 또 다른 서열화가 생겨날 수 있으며, 대학 간 수험생 선호도 역시 뚜렷하게 나뉠 수 있다. 정책 입안 단계부터 이 같은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고, 이에 대한 대안과 대책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단순한 감정적 반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책 당국의 접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세심해야 한다.

2025.08.10 13:00

3분 소요
시평 상위 건설사, 상반기 불안 속 ‘선방’...하반기 ‘기대’ [2025 시평순위]②

건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상반기 외형 축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경기 침체 등 비우호적인 시장 환경 속에서도 원가율 개선과 선별 수주 전략 등 ‘내실 다지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설사들은 하반기 신규 수주 확대와 해외 사업 강화 등을 통해 실적방어를 넘어 반등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다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6·27 대출 규제에 따른 정비사업 조합원 이주비 대출 제한, 분담금 납부 유예 등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외형 줄었지만 이익으로 방어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적 발표를 완료한 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DL이앤씨·GS건설 등 대형건설사 5곳의 올 상반기 매출은 15.5% 감소한 36조599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조3808억원으로 전년 반기 대비 7.7% 줄었다.업체별로 살펴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의 올해 연결기준 상반기 매출액은 7조150억원, 영업이익은 277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2%,55.3% 감소한 수치다. 특히 삼성물산은 2025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위(시공능력평가액 34조7219억원)에 올랐음에도 국내 상위 5개 건설사 중에 유일하게 역성장했다.업계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설비 공사 등 하이테크 중심 대형 프로젝트의 마무리로 인해 실적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있다. 여기에 상반기 적극적인 주택 정비사업 수주 활동으로 비용이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물산 관계자 역시 “국내외 주요 프로젝트 종료와 주택 부문 마케팅 비용 확대가 수익성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시공능력평가 2위와 3위를 기록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매출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올해 각각 시공능력평가액 17조2485억원, 11조8969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와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현대건설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 15조1763억원, 영업이익 430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6%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8.2% 늘었다. 대형 프로젝트 준공과 고수익 공정 본격화가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울산 에스오일(S-Oil) 샤힌 프로젝트와 힐스테이트 더 운정, 디에이치 클래스트 등 국내 사업이 실적을 견인하고 사우디 아미랄패키지(PKG)4, 파나마 메트로 3호선 등 해외 주요 현장의 공정도 안정화됐다.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비 급등기에 착공한 현장이 차례로준공되고 수익성이 확보된 주요 공정이 본격화하면서 올해 들어 뚜렷한 영업이익 회복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대우건설도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4조3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3% 증가한 2335억원을 기록했다.대우건설 측은 “현장 수가 감소해 매출액은 줄었지만 공사원가 상승기에 착공한 현장들이 순차적으로 준공되고 주택건축사업 부문 수익성이 개선돼 영업이익은 증가했다”며 “어려운 건설 경영 환경에서도 내실 경영에 주력해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1.3%포인트(p) 상승한 5.4%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시공능력평가 4위와 5위를 기록한 DL이앤씨와 GS건설은 수익성 개선이 눈에 띈다. DL이앤씨와 GS건설은 각각 올해 시공능력평가액 11조2183억원, 10조9454억원을 기록, 두 회사는 지난해 대비 한 단계씩 순위가 상승했다.DL이앤씨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3조79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072억원으로 121.67% 급증했다. DL이앤씨의 수익성 개선 배경으로는 영업이익과 직결되는 원가율이 개선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DL이앤씨 측은 “경기침체와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지만어려운 업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2분기 실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GS건설 역시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6조25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324억원으로 41.8% 증가하며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어려운 건설업황 속에서도 지난해 리뉴얼한 자이(Xi)의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사업성이 높은 서울, 수도권 및 주요 지역의 도시정비사업과 외주사업 수주를 확보했다는 게 GS건설의 평가다.업계에서는 건설 경기 침체 등 국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하반기에는 주요 건설사들이 신규 수주 확대와 분양 성과, 해외 사업 성과를 통해 실적 반등을 꾀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하반기 수주 확대·분양이 핵심 상반기 영업이익이 절반 넘게 급감한 삼성물산은 하반기 삼성전자의 평택 P4 라인 마감공사 재개가 실적 회복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배영민 삼성물산 부사장은 7월 30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까지 하이테크 매출 감소 영향이 이어지겠으나, 4분기부터는 대형 설계·조달·시공(EPC) 프로젝트 매출이 본격 반영되며 수익성이 차츰 회복될 것”이라고 밝혔다.현대건설은 올해 대형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와 태양광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 분야에서 혁신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데이터센터와 해상풍력 등 기존 건설업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는 신규 프로젝트 또한 지속 발굴한다는 방침이다.대우건설은 하반기 체코 원전, 베트남 타이빈성 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 등 준비된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핵심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집중할 예정이다.DL이앤씨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 및 탄탄한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수익성이 담보된 양질의 신규 수주를 이어가면서 하반기에도 실적 향상세를 더욱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GS건설은 미래성장 동력과 수익성 확보에 주력하고, 내실을 강화할 계획이다.건설 업계 관계자는 “시평 상위 업체들은 수익성 중심의 수주 전략으로 전환하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해외수주와 신사업 동력의 지속적인 발굴, 재무 안정화를 통해 지속 가능 경영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다만 지난 6월 말 단행된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출규제와 추가 규제 가능성으로 일부 도시정비사업의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2025.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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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해지는 프렌드쇼어링, 한국과 동남아시아 ‘공급망 동맹’ 가능할까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기업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성장이 멈추면 도태되고,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생산기지 이전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생산기지를 둘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를 위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한다.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이 안정화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따라서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은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다.이처럼 복잡한 생산기지 이전 전략을 설명할 때 ‘온쇼어링’(Onshoring)은 해외 제조 시설을 본국으로 옮기는 것이고, ‘오프쇼어링’(Offshoring)은 그 반대로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니어쇼어링’(Nearshoring)은 자국과 문화나 언어가 비슷한 인근 국가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전략이다. 미국 기업들이 캐나다나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프렌드쇼어링…신뢰 국가들과의 협력이 핵심 가치 그렇다면 최근 대세로 떠오른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은 무엇일까?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자주 언급한 용어다. 우호적인 국가들과 공급망을 재편하여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자는 전략적 개념이다. 단순히 비용 효율을 따지는 오프쇼어링에서 벗어나,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핵심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프렌드쇼어링이 부상하자 중국은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1) 전략으로 대응했다. 미국 중심의 압박을 피하면서도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으로, 중국 외 지역,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생산을 분산시키는 흐름이다. 이에따라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는 가장 큰 수혜국이 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가 몰렸고, 이들 국가는 지난 수년간 고속 성장을 기록했다.하지만, 프렌드쇼어링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올해 4월 2일, 미국은 베트남·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주요국에 대해 최대 30%에 달하는 고율 상호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그 이유는 ▲무역적자 ▲투자 조건 미이행 ▲공공 조달의 불균형 등이다. 프렌드쇼어링 대상국이라 해도, 경제적 요구와 이해관계에선 예외가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현재 일부 국가는 미국과 조정을 통해 세율을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여전히 공급망 안정성과 시장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이런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관계다. 한국은 반도체·전기차· ·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글로벌 핵심 산업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 ▲전력 및 물류 비용 부담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인해 제조기지의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고 있으며, 향후 정부의 동남아 정책 또한 공급망 연계와 경제협력 강화 중심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K-동남아 공급망 동맹'으로 위기를 기회로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단순 OEM 생산기지를 넘어 산업 고도화와 기술 생태계의 업그레이드를 모색하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한 한국과 산업역량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동남아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적 파트너다. 이것이 바로 프렌드쇼어링을 넘어 공급망 동맹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법·세제 변화가 잦고, 토지 소유권 불확실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국가 간 인프라 격차도 크고, 전력·항만·물류 체계의 효율성 역시 균일하지 않다. 생산 인력은 풍부하지만, 고급 기술 인재는 부족하다는 점도 한국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런 요소들이 동남아에 대한 투자를 신중하게 만드는 이유다.이제는 한국 정부가 나설 때다. ▲공동 인프라 개발 ▲제도 연계 강화 ▲인재 교류 확대 ▲디지털 통합 등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한국과 동남아가 단순한 경제 파트너를 넘어, 실질적 공급망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존중과 장기적 파트너십 의지를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계획과 실행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진짜 동반자’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 프렌드쇼어링은 단순한 우호국 중심 공급망이 아니라, ‘신뢰 + 역량 + 구조적 상호 보완’이라는 조건을 갖춘 동맹 모델로 진화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정책을 실행할 때 한국기업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한국기업들이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단순한 거래 파트너가 아닌, 서로의 약점을 채워줄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기술과 생산 ▲제도와 인력 ▲환경과 데이터 등 이 모든 축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될 때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프렌드쇼어링을 넘어 ‘공급망 동맹’의 대표 모델이 될 수 있다.

2025.08.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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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재무 건전성 ‘발목’…시평순위 급락 건설사는[2025 시평순위]①

부동산 일반

2025년 시공능력평가에서 건설사들의 순위가 중대재해와 재무 건전성 관리 능력에 따라 엇갈린 모습이다.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공사비 상승 ▲고금리 ▲미분양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도 늘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나 부실시공 시 시공능력평가에서 감점을 받는 등 안전 및 품질 관련 이슈가 순위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국토교통부는 7월 31일 전국 8만7131개 건설업체 중 평가를 신청한 7만3657개사(84.5%)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시공능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시공능력평가는 발주자가적정 시공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공사실적평가(40.5%) ▲경영평가(32.7%) ▲기술능력평가(15.2%) ▲신인도평가(11.6%) 등 4개 항목의 평가액을 합산한 ‘시공능력평가액’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이 결과는 ▲입찰 자격 제한 ▲시공사 선정 ▲신용평가 ▲보증 심사 등에 활용된다.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기존 상위권에서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중하위권 건설사를 중심으로 순위가 요동을 쳤다. 상위권 중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하락했다. 시공능력평가액 10조1417억원으로 10조 클럽은 유지했지만, 지난해 4위에서 올해 6위로 순위가 두 단계 하락하면서 5대 건설사에서 밀려났다. 이는 지난해 해외 플랜트 현장의 수익성 악화로 인한 영업손실(1조2401억원)로 경영평가액이 줄어든 영향이다. 또한 올해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로 인해 신규 수주 활동을 잠정 중단한 점도 이번 평가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중대재해 사고로 인해 기업 이미지와 수주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엔지니어링의 올해 상반기 도시정비사업 수주 실적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에만 ▲세종 고속도로 교량 붕괴 ▲평택·아산 현장 사망사고 ▲충남 아산 현장 추락사 등 3번이나 중대재해가 잇따랐다. 이로 인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지배 구조 개편과 관련된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 전략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시각이 나온다.문제는 신인도 평가 등에 영향을 미쳐 향후 추가 순위 하락가능성도 제기된다는 점이다. 신인도는 건설사의 공사수행 신뢰도 등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지난해부터 평가 반영 비율이 ±30%에서 ±50%로 확대되면서 중요도가 높아졌다. ▲사망사고율 ▲불법 하도급 ▲공사대금 체불 등 리스크 요인의 감점 비율은 늘고, 하자·안전관리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개선 관련 항목은 새롭게 반영됐다.복합 악재에 중견 건설사 직격탄 아이에스동서는 2025년 시공능력평가에서 58위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7계단 하락했다. 이는 2015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올해 시공능력평가액은 5836억원으로, 전년(2조2390억원) 대비 1조6554억원(73.9%) 급감했다.주요 평가 항목별로 보면 ▲공사실적평가액 4965억원 ▲경영평가액 0원 ▲기술능력평가액 687억원 ▲신인도평가액 183억원이다. 특히, 경영평가액이 0원을 기록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며, 이는 회사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신인도평가액 또한 전년 대비 88% 감소한 183억원으로, 이는 회사의 대외 평판 하락을 반영한다.디에스종합건설은 올해 28계단 하락한 95위를 기록했다. 평가액은 485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영업이익 감소 ▲미분양 ▲PF 부실 ▲지속적인 적자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상위 100대 건설사 중 금융 구조 취약성으로 인해 수주 경쟁력과 경영평점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중흥토건은 재무 안전성 문제로 인해 전년 대비 26계단 하락한 42위를 기록했다. 전체 시공능력평가액은 2조7709억원에서 1조836억원으로 40% 이상 감소했다. 이로 인해 중흥토건은 2024년 시공능력평가에서는 광주 지역 1위(전국 16위)였으나, 올해는 우미건설에 내주게 됐다. 이는 2024년 영업손실 지속과 부채비율 대폭 상승으로 인한 재무 안정성 흔들림이 경영평점 및 경영실적 평가액 비중 감소로 이어진 결과로 분석된다.중흥토건은 2013년 143위에서 꾸준히 순위를 높여 2023년 15위를 기록했으나 2024년 16위, 2025년 42위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전반적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하락한 건설사들은 재무 건전성 악화(부채비율·이자보상비율 악화)를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높은 부채비율 또는 순이익 감소, 이자보상능력 1 미만을 기록하며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금융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또한 경영평점 하락은 ▲금융권 신용도 하락 ▲감사의견 ‘한정’ ▲재무구조 불량 등 신뢰도 저하 지표와 연관돼 있으며, 이는 평가 항목 중 신인도와 기술능력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특히 시공능력평가 하락은 중견 건설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올해 들어 ▲신동아건설 ▲대저건설 ▲삼부토건 ▲안강건설 ▲삼정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 ▲벽산엔지니어링 ▲이화공영 ▲대흥건설 등 다수의 중견 건설사들이 법정관리(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올해 시공능력평가에서 신동아건설은 10계단 하락해 68위를 기록했고, 삼부토건은 7계단 하락해 78위를 기록했다.업계 관계자는 “최근 ▲건설 경기 침체 ▲공사비 상승 ▲미분양 증가 등의 복합적인 악재로 인해 다수의 중견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경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시공능력평가 순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건설사들의 순위 하락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025.08.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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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피할 수 없어...'공동교섭' 가이드 필요" [경영계 흔드는 친노동 정부]③

경제일반

“누구의 힘이 더 세지느냐를 고민하지 말고 제도의 틀을 어떻게 가져가야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할 때다.”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L-ESG평가연구원 원장)는 8월 4일 와의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노란봉투법 핵심 쟁점 두 가지노란봉투법 핵심 쟁점 두 가지‘노란봉투법’의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다. 2014년 법원이 장기 파업을 한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에게 4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언론사에 4만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전달한 것에서 유래됐다.관련 법의 핵심 내용은 손해배상 책임 제한(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액 규모를 일정 금액 범위로 한정)과 사용자 범위 확대(하청 근로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 부여) 등이다.김 교수는 쟁의행위에 따른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된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유재산권도 헌법상 권리지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도 마찬가지로 헌법상의 권리”라며 “두 가지 요소가 충돌하면 이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동안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문제로 인한 사망자는 2000년대 중반에만 10명을 넘어섰다. 정확히 특정할 수 없지만 쌍용차 사례의 경우에도 수십 명이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문제와 생활고가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노동3권의 실질적 행사를 제약하는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고용노동부가 2022년 발표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기업·국가·제3자가 노조·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151건, 청구액은 2752억7000만원에 달한다.김 교수는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등은 실질적인 노동권 행사를 위축시키고 정상적인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이번 노란봉투법은 과거부터 해결해야 했던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과거 정부 등은 외국의 사례를 잘 몰랐던 것 같다”며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보면 해당 국가는 1만명 이상의 노조에만 1000만원 정도의 상징적 벌금을 부과한다”고 덧붙였다.김 교수는 이번 노란봉투법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예상했다. 그는 “노란봉투법에 담긴 손해배상 책임 제한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기업 등이 노조 등에 과다 청구할 수 있는 요소를 축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공동교섭 등 해법 제안…어차피 풀어야 할 숙제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문제와 함께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사용자 범위 확대다. 김 교수는 “특수 고용에 대한 문제는 사실 IMF(국제통화기금) 시절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며 “당시 아웃소싱(외주) 바람이 불면서 외주화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하청이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이어 “하청 노동자의 문제는 임금 1원을 올리고 싶어도 하청 사용자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결국 원청과 교섭을 해야 하는데 이들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 공개 테이블에 착석하는 순간 사용자로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김 교수는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범위 확장이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실 근로기준법상 개별 기업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자성을 인정하면 원·하청 간 갈등의 문제가 종식된다”며 “그러나 이번 노란봉투법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성을 확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원청이 지배력을 갖는 곳만 교섭에 응하라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도 이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경영계에서 제기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교섭권 남발 등도 충분히 억제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공동교섭을 하면 기업들의 우려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이런 가이드 라인을 노동부 등에서 잘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과거 현대자동차 등의 사례가 존재하기도 한다”며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지만,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다뤄야 하는 정도의 체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김 교수는 “유럽에도 하청 문제가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노동 사안으로 불거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산별 교섭 또는 효력 확장 조항을 통해 산업의 모든 노동자가 적용받기 때문”이라며 “공동교섭으로 기본 틀을 만들면 나머지 사안은 개별 기업 또는 하청 내부에서 해결하거나 하면 될 문제”라고 설명했다.이어 “이는 이재명 정부에서 말하는 산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초기업 교섭의 활성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직적 관계를 넘어 수평적 관계를 만들면 기업으로서는 대가만 지불하는 게 아니다. 제도적 틀 안에서 갈등 비용을 줄이거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등 충분히 이득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김 교수는 기업들이 과거처럼 살 수 있는 시대가 곧 끝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환경이 달라지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이다. 2024년 발효된 이 지침은 3~5년 유예기간을 거친 뒤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된다.이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의해 파생된 인권, 환경 관련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EU가 요구하는 공급망 실사 지침 조항에는 ▲생명권 존중 ▲비인도적 대우 금지 ▲자유 및 안전에 대한 권리 ▲근로조건 ▲강제노동 규제 ▲단체교섭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김 교수는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에 따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 전반의 인권과 환경 리스크 등을 점검하겠다는 것인데, 노란봉투법은 이런 측면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달라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제도적인 부분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5.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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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공화국, 신뢰를 지우다…감시·처벌 vs 예방·책임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내각에 관한 인사청문회 1차전이 끝났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인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뉴스가 난무한다. 한 개개인이 살아온 길에 대해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해부한다. 흠결과 흠집에 대해 과연 누가 ‘죄 없는 자, 이 여자를 돌로 치라’는 말처럼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공직에 대한 눈높이는 엄격함이 맞다. 국민의 눈엔 정치 엘리트들에 대해서 ‘너는 달라?’ ‘다 같다’가 일반적인 평가다. 이제 한국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문화를 갖고 있는지, 예방문화인지 감시문화인지를 따져야 할 때다. 사회적 건강도의 물꼬를 신중히 고민해 볼 때이고 한국 사회는 또다시 전환점에 섰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녹취’가 일상이 된 사회가 되었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콜센터에서나 등장하던 “이 통화는 녹음됩니다”라는 문구가 이제는 민간 대화·정치 담화·공무원 조직 안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현실이다.특히 지난 정권 교체 이후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전 정권의 발언과 지시 사항이 하나하나 녹취, 기록되어 공개되는 일이 이어지면서 공직사회 전반에 ‘책임 회피형 행정 문화’가 자리잡았다. 고위 관료는 말조차 아끼고, 중간 간부는 상사의 지시를 녹음하고, 실무자는 ‘보고서로만 말한다’는 행정 관료사회의 침묵과 방어 문화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그런가 하면 민간 영역에서도 정치인의 사적 대화·지시 녹음·사무실 대화 등 비공식적 녹취록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며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일이 반복된다. 국민들은 사실보다 ‘톤’과 ‘단어’에 휘둘리고, 사회적 판단은 법이 아니라 유튜브 조회수로 이루어진다. 녹취는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여론전을 위한 무기로 쓰이고, 개인 간 신뢰는 침묵이나 방어기제로 바뀐다.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사회가 ‘개인정보 보호’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률과 규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서비스에 실명 인증이 필요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IP 주소까지 보호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정작 대화나 인간관계의 가장 핵심인 ‘신뢰’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신뢰의 붕괴,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다이런 녹취 중심 사회는 단순한 법적 수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이 붕괴되었음을 상징한다. 신뢰 자본이란 구성원 간 약속과 책임, 협력에 기반한 무형의 자산이다. 이는 조직과 국가 전체의 생산성과 공동체 정신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신뢰가 사라지면 모든 것은 계약과 감시, 통제로 바뀐다. 사람은 먼저 의심받고 이후에야 신뢰를 얻는다. 그래서 보고서는 길어지고, 녹취는 많아지고, 의사결정은 느려진다. 이처럼 '말 한마디'가 폭탄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교·기업·병원·공공기관까지 전 영역에서 이러한 ‘책임 회피형 녹취 문화’가 확산되면 결국 신뢰를 전제로 움직이는 조직은 죽는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신뢰하고 해결했느냐’인데 우리 사회는 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 감시 사회 경제적·문화적 비용 어마어마해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필연적으로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늘어난다. 계약을 더 복잡하게 쓰고, 규칙을 촘촘히 만들며, 이를 확인하는 감시인력을 둬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을 넘어 사회적 피로감을 유발하고, 결국 기업의 민첩성과 혁신성 그리고 국가 경쟁력까지 저하시킨다.또한 인간관계는 점점 피상적으로 변한다. 진심보다는 기록이 우선시되고, 대화보다는 문자로, 회의보다는 이메일로 ‘남는 말’만 주고받는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회는 삭막해지고, 공동체 의식은 사라진다.이제 우리는 이 흐름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있다. 감시가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문화로의 전환 없이 대한민국은 조직도 경제도 인간관계도 모두 마모된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첫째, 공공기관과 기업부터 녹취 남용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상담품질이나 업무 보존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화된 범위에서만 녹취를 허용하고, 일반적인 대화와 비정형 커뮤니케이션에는 자발성과 책임감 있는 대화를 유도하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둘째, 신속하고 공정한 분쟁 해결 시스템을 구축해 녹취가 유일한 방어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원 ▲중재기구 ▲소비자보호원 등 제3자 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판단과 조정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민은 사적 폭로와 녹음 대신 제도를 통한 구제를 신뢰하게 된다.셋째, ‘신뢰 회복’에 앞장설 리더십이 필요하다. 고위 공직자·정치인·기업 CEO부터 상대방의 말을 믿고, 약속을 지키며, 불리한 내용이 있어도 해명하고 수습하는 신뢰 기반의 리더십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가능하다.넷째, 교육과 미디어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의심보다는 신뢰, 책임보다는 양심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언론도 ‘녹취 폭로’에만 집착하지 말고 문제의 구조와 해결을 다루는 보도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신뢰를 말하자지금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감시하고 있지만 너무 쉽게 믿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조직은 경직되며, 국가 경쟁력은 정체된다. 결국 신뢰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고 감시는 방패가 아니라 불신의 증거다.이제 녹취와 감시의 문화에서 벗어나 다시 신뢰와 존중의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말은 기록으로 남기기보다 사람의 기억과 약속 속에 남아야 의미가 있다. 감시가 아닌 신뢰로 사회를 지탱하자. 개인적 가치의 제1덕목은 자유이고 자율이며 벗어나야 할 첫 번째는 감시와 통제이다.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 ▲따뜻한 나라로 가는 길이다.

2025.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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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탈까, 말까...실손보험 가입자의 고민 [스페셜리스트 뷰]

보험

어느 날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는 매달 8만원을 내던 실손보험료가 갑자기 17만원으로 오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우편물을 받고 매우 난감해했다. 이에 실손보험 전문 손해사정사로 일하는 필자(아들)에게 하소연한 것이다. 실손보험은 전 국민 5명 중 4명이 가입하고 있는 사실상의 국민보험이다. 하지만 이 국민보험의 보험료가 최근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 가입자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렇다면 과거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들은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보험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갈아타야 할까. 필자는 일단 그대로 유지하라고 답을 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5세대 나온다는데...전환 판단의 기준은실손보험 갈아타기는 최근 가장 ‘핫 한’ 보험 이슈다. 시작은 1~2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높아지자, 이를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강제 전환 방안을 검토하면서였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가입자의 65%는 보험금을 받지 않고 상위 9%가 지급 보험금의 약 80%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에 3~4세대 실손보험은 보장 범위를 축소하면서 보험료를 줄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이 내년 출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보장한도와 범위를 축소하고 자기부담률을 높이는 구조가 될 전망이다. 대신 보험료는 월 1만원 이하의 수준으로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세대 가입자가 문제인 셈이다. 실손보험은 약관 개정 시점에 따라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나뉜다. 판매 시기, 담보구성에 따라 2009년 10월 이전 판매한 ‘표준화 이전 실손’이 1세대(구실손), 2009년 10월~2017년 3월까지 팔린 ‘표준화 실손’이 2세대(신실손)다. 2009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판매된 실손보험은 처음으로 자기부담금 10%가 생겼고, 100세 만기, 3년 갱신 상품으로 판매됐다. 2013년 4월부터는 15년 만기, 1년 갱신 상품이 판매됐다. 그리고 2017년 4월~2021년 7월까지 판매된 ‘착한 실손’이 3세대, 2022년 7월 나온 ‘보험료 차등제’ 상품이 4세대다. 세대가 뒤로 갈수록 보험료는 낮지만 자기부담금이 올라가면서 보장은 약해진다.특히 2세대 가입자 중에서도 2013년 3월 이후 가입한 사람은 5년 또는 15년 단위로 재가입 시점에 최신 세대로 전환된다. 반면, 그 이전 가입자는 보험료가 오르더라도 기존 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하지만 정부가 이들에게도 강제 전환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커졌다. 결국 금융당국은 지난 4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 개정을 통한 강제 전환을 폐기하기로 했다.또한 정부는 올해 안에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는 한편, 기존 1~2세대 가입자에게 보험사가 다시 보험계약을 사들이는 ‘재매입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이후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기존 1~2세대 가입자들을 위해 비급여 특약의 일부만 줄이고, 나머지 보장은 유지하는 중간 전략도 병행 검토 중이다. 따라서 올 연말쯤 5세대 출시와 재매입 인센티브가 확정되면, 기존 1~2세대 가입자는 조건을 보고 갈아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필자의 어머니는 실손보험을 최신 세대로 갈아타야 할까. 어머니는 2013년 3월 이전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2세대 가입자다. 정부 정책대로라면 올해 말 5세대 실손보험 출시와 함께 기존 1~2세대 실손보험 계약이 재매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버티면서 재매입이 실제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재매입 됐을 때 인센티브 금액을 확인하고 갈아타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2013년 4월 이후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고민의 기준이 비교적 간단하다. 이 가입자들은 앞서 언급했듯 5년 또는 15년 등의 재가입주기를 가지므로 시간이 지나면 실손보험 가입 상품이 5세대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중 나이가 30~40대로 비교적 젊고 건강해 현재 병원 치료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가입자들은 굳이 고액 보험료를 납부하며 가입을 유지할 이유가 적다. 오히려 지금 갈아타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반면 현재 병원 치료가 잦은 가입자는 자신이 낸 보험료 이상의 보험금을 수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입자들은 현재 보험을 유지하며 혜택을 최대한 누리는 것을 추천한다. 실손보험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치료들?4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실손보험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을까. 실손보험은 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은 후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보전받는 상품이다. 정당하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가입자들이 그동안 고액보험료를 매월 부담해야 함에도 가입을 유지해온 것은 노년이 되면서 점점 치료받을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청구와 관련해 분쟁이 많은 치료들이 존재한다. 백내장 수술 치료를 받은 후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와 함께 최근 유행하는 척추 신경성형술, 무릎 관절을 치료하는 무릎줄기세포치료 주사 등에서도 실손보험금 분쟁이 잦아졌다. 그렇다면 이들 치료는 앞으로 실손보험금을 문제없이 수령할 수 있을까.먼저 백내장 수술 치료의 경우 안타깝지만 대부분 통원보험금만 지급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손보험금은 입원과 통원으로 구분되는데, 입원은 하루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든 전체 한도 금액인 5000만원 내에서 보상된다. 통원은 일당 보험금이 20만~25만원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2022년 6월, 백내장 수술 치료 후 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서울 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해당 판결의 심리불속행을 기각 판정한 것이다. 이날 이후 보험사들은 백내장 보험금이 일반적으로는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며 통원비만 지급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백내장 수술 치료의 경우 실손보험금으로 일 통원보험금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백내장 수술 치료도 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입원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수술 전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수술 시점에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다른 수술을 병행한 경우에 실질적인 입원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백내장 수술 치료를 받는 가입자라면 이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신 의료기술 치료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질환인 여성 유방의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맘모톰 치료, 자궁근종 치료를 위한 하이푸치료, 남성의 전립선 질환 치료를 위한 전립선결찰술, 자가골수를 채취해서 무릎 관절에 주사해 치료하는 무릎줄기세포 치료 또는 척추 디스크 통증 감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신경성형술 치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치료법들은 실손보험 약관상 ‘보상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백내장 치료와 비슷한 취지에서 입원의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통원보험금만 지급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둬야 한다. 염선무 올받음손해사정 대표손해사정사-토막상식-<손해사정사 선임권제도란?> 실손보험은 보험사와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보험약관상 해석에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손해사정사 선임권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보험소비자가 받은 치료에 대해 통원이나 입원 여부를 적절히 판단하는 과정을 손해사정이라고 한다. 보험소비자가 청구한 보험금에 대해서 보험사는 정밀한 손해사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현장심사 또는 현장조사 등으로 불리는 손해사정을 진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금융민원이 발생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손해사정사 선임권 제도’다. 보험사에서 위탁한 손해사정사는 보험사편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보험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손해사정사를 보험소비자가 직접 선임해 중립적인 입장의 판단을 받아보라는 것이 취지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보험소비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선변호인을 고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이 제도는 실손보험이나 배상책임보험, 주택화재보험과 같은 실제 발생한 비용을 보상하는 보험에만 활용할 수 있다. 수술비나 진단금과 같은 정액보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과, 보험사로부터 손해사정사 관련 안내를 받은 날로부터 3영업일 내에만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꼭 알아둬야 한다.

2025.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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