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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이승엽 연봉’ 안 될 말”

“아마추어가 ‘이승엽 연봉’ 안 될 말”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금융권에서 실물경제로 넘어가고 있지만 탈출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일사불란하게 위기 대응 시스템을 갖춰도 안심할 수 없는 마당에 정부와 시장은 여전히 삐걱거린다. 50년 동안 금융인으로 활동한 윤병철(71) 한국FP협회 회장은 “위기는 언제나 온다. 사람과 환경이 바뀌어 그것이 생각지 못한 형태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윤 회장을 12월 2일 서울 마포구 한국FP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초 ‘좋다고 코에 바람 쐬면 감기 걸린다’며 후배 금융인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남기셨는데 지금의 위기를 예견하신 겁니까?
“예견까진 아니고, 경제라는 것이 항상 바닥이 있으면 천장이 있는 법인데 사람은 그걸 쉽게 잊어요. 그게 사람의 결점이지요. 또 다른 결점인 ‘탐욕’도 이번 위기의 원인입니다. 항상 닥칠 어려움을 생각해야 하는데 환경이 좋으면 경쟁하기에 바쁘거든요. 그래서 위기가 더 악화한 겁니다.”



칼 빼 들고 책임지겠다는 사람 없어




-‘더 악화한’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위기가 만연했습니다. 얼마나 심각합니까?
“손실 규모만 보면 1929년의 경제 대공황보다 큽니다. 다행인 것은 그때는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의 레임덕(lame duck)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지금은 버락 오바마 정권이 새롭게 들어서는 때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협조 체제도 과거보다 잘 돼 있고요. 하지만 금융시장은 글로벌화했는데 관리는 나라마다 제각각입니다. 미국·유럽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해야지요.”



-외환위기 때 정부가 은행에 공적자금을 풀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금융권이 달라진 게 없다고 국민의 원성이 높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단 불부터 꺼야지요. 돈이 돌지 않는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게 우선입니다. 정부, 시장 모두 책임이 있어요. 정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은행들은 규모 경쟁을 한 것이 잘못입니다. 덩치가 크다고 승자는 아니거든요. 특히 당시에는 여러 금융조직이 합병했기 때문에 먼저 내부를 동질화해서 상승효과를 내는 게 중요했는데도 말이지요. 처음에는 ‘어, 어!’ 하다 발표하는 수익을 보고는 다들 경쟁에 뛰어들었어요. 자산 불리려고 대출도 많이 하고요.”



-요즘엔 대출을 안 해줘서 난리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섰는데도….
“대통령이 안타까워서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정부가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미국도 7000억 달러를 풀어서 구제금융 정책을 폈잖아요. 적자를 각오하더라도 재정으로 풀어야 합니다. 은행도 정부 조치에 협조하고 온 힘을 다해야지요.”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은 너무 주관적인 기준 아닙니까?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대응하는 게 온 힘을 다하는 겁니다. 외환위기는 굉장히 빨리 왔다 갔어요. 복구만 하면 됐지요. 지금 금융위기는 어디서 시작했는지, 아직 무엇이 어디서 얼마나 더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정부·기업·은행 모두 ‘계기 비행’에서 ‘시계 비행’으로 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윤 회장은 “계기에 맞춘 대로 비행하면 또 위기가 닥쳤을 때 대처하지 못한다”며 “각 경제 주체가 ‘경제 전시상황실(War room)’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11월 28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서울대 경제금융연구원 강연에서 말한 “당장 위기 대응 합동작업반을 가동해야 한다”는 ‘극약처방론’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칼 빼 들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지요. 전시상황실을 만들라고 하면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는 자기네끼리 얘기하겠다고 하거든요. 그렇게 얘기해서 딱딱 진행되면 좋지만, 중구난방입니다.”



-그렇게 발표한 정책도 시장에 쉽게 먹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큰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정부의 관여가 없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지 세부적인 경영에까지 관여하면 정상적인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겁니다.”



-지금은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 겁니까?
“아직 ‘간섭’은 아닙니다. 물론 ‘압력’은 받겠지요. 어차피 최종적인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하니까요. 지금 문제는 ‘유동성’이 아니라 ‘신용’입니다. 정부는 지원 정책으로 돈이 돌게 하려는 것이고요.”



-현직 은행장들도 간섭이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은행 입장에서 건전성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대출을) 해줄 수는 없지요. 예를 들어 외자 100억 달러를 들여와서 대출 해줬는데 환율이 900원대에서 1500원대로 올랐다면 대출이 8조원가량 늘어난 셈인데 그러면 1조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확보해야 하잖아요. 은행은 건전성 기준이 되는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에 대한 부담과 정부의 대출 요구, 양쪽에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거래한 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제를 봐서는 대출해줘야 마땅하지만 은행 자체가 건전성 위험이 있으니 고민이 안 되겠습니까.”



-당장 기업들이 쓰러지는데 BIS 비율에 너무 목매는 건 아닐까요?
“외환위기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지만 그런 한국식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 경제 신용이 더욱 위기에 빠집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제 표준에 의한 건전성을 지켜야 합니다.”

지난 11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BIS 비율 등의 제도는 금융안정화포럼(FSF) 활동을 통해 개선 검토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 등에 대해서 앞으로 국제사회에 제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세계 경제위기의 후유증인데 당장 우리나라만 해결하겠다고 BIS 비율을 무시하면 대외 신용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들이 펀드 판매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판매 실적이 직원 인사고과에 직접 반영됐고요. 그런데 내년부터 아예 펀드 실적 점수를 없앤다는 은행도 있더군요.
“그게 웃기는 겁니다. ‘설명 들었어요? 여기, 여기, 사인하세요’ 이런 식으로 하니까 소송 문제가 생기지요. 그래 놓고 소송이 문제 되니까 이제 와서 팔지 마라? 아니지요. 이럴수록 완전판매 하라고 주문해야지요. 그것도 일종의 건전성 아닙니까. 남이 판다고 따라 판 것이 결국 상황을 안 좋게 만든 겁니다. 키코(KIKO)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파는 사람도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파악 못한 것 아닙니까.”



은행원들 전문성 기르려 안 해




-결국, 탐욕의 문제입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문성의 부재’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자산, 건전성, 고객만족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허허, 내가 은행장 할 때도 ‘이것도 맞추고 저것도 맞추라’고 그랬습니다. 정답이 부러지게 나오면 뭐 하러 비싼 월급 주고 당신들 쓰느냐. 컴퓨터에 프로그램 입력시켜서 하면 되지. 은행 사람들이 전문성을 기르려고 하지 않아요. 직원들 교육하고 공부해서 설명하면 되는데 하기 싫다 이거지.”



-그러면 은행은 외환위기에서 무엇을 배운 겁니까?
“최근 보니까 아직 교육기관도 활성화되지 않은 겁니다. 강 행장(강정원 KB국민은행장)도 요즘에 그럽디다. ‘협회교재가 어떠냐’고요.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은행원이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해야지요. 야구선수 이승엽이 프로지요. 근데 왜 다른 프로 선수랑 이승엽이 받는 연봉이 차이 납니까? 이승엽 선수가 부단한 노력과 연구를 하고 그만큼 실적을 내니까 그렇지요. 프로란 그런 겁니다. 근데 ‘은행 고객’은 있어도 ‘은행원 고객’은 없다고 하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보험설계사는 고객이 내 고객이지요. 내 월급을 누가 주는지 확실히 아는 겁니다. 그런데 은행원들은 아직도 관리자 노릇만 해요. 아마추어가 ‘이승엽 연봉’을 받는 게 말이 됩니까. 이번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고객을 많이 보유한 직원한테 점수를 높게 주는 엄격한 내부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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