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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업 큰 밑그림 그린다

글로벌 사업 큰 밑그림 그린다

‘샐러리맨 신화’ 손길승(67) 전 SK그룹 회장이 전격 컴백했다. ‘SK텔레콤 명예회장’이 그가 떠난 지 4년여 만에 얻은 공식 직함이다. 그의 복귀는 최태원 회장의 삼고초려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재계에선 ‘외환위기 당시 보여준 손 전 회장의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이 (최 회장에게) 필요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주변에선 손 전 회장의 숙원인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구상을 SK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란 말도 나온다. 손 전 회장의 컴백 의미를 짚어봤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그는 평사원 출신이다. 5대 그룹 총수를 역임했던 경영인 중 유일하다. 그를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한 손 명예회장은 유공(80년), 한국이동통신(94년) 인수를 이끌어 SK그룹이 재계 5위권 안으로 도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SK의 발전사가 유공,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기점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손 명예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2003년 2월 재계 수장인 전경련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손 명예회장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이 폐암으로 작고한 뒤 경영일선에 나선 최태원 회장과 함께 경영을 책임지며 숱한 위기를 잘 넘겼다.

손 명예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경영 사부인 동시에 핵심 보좌역이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때론 위기를 함께 겪었고, 불화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와 외국계 투자회사 소버린, 참여연대와 갈등을 빚은 끝에 두 사람은 사법처리(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를 받는 처지에 몰렸다.



“나는 SK의 영원한 그림자”


당시 최 회장은 SK그룹 분식회계·부당내부거래를 주도한 혐의를, 손 명예회장은 분식회계와 배임·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경영자로서나 개인 인생 역정으로 보나 손 명예회장으로선 암흑기였다.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최 회장과의 갈등설이었다.‘최 회장의 공판 과정에서 손 명예회장이 발뺌했다’ ‘최 회장이 측근들과 면회하면서 손 명예회장에게 강한 유감을 표했다’는 등 악성 루머가 퍼졌던 것.

그러나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게 나중에 확인됐다. 두 사람 측근들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 인간적 관계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절대 끊기지 않는, 끊길 수 없는 탄탄한 동아줄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손 명예회장이 수감됐던 2004년 당시 변호를 맡았던 조대현 변호사(법무법인 화우)의 말도 그렇다.

조 변호사(사시 17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호도 맡았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불법대선자금 수사의 여파가 손 명예회장에게까지 미쳤는데, 그를 변호한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의 친구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조 변호사의 눈에 비친 손 명예회장은 자부심 강한 충신이다.

상황에 따라 얄팍한 수를 부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손 명예회장은 SK그룹의 미래가 최 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배구조로 봤을 때 ‘최태원 체제’가 강하게 자리 잡아야 SK그룹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당시 기자와 나눴던 대화록이다.



손길승 명예회장은 자신의 지론인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손 명예회장이 최태원 회장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손 명예회장 스스로도 불만을 가질 수 있을 텐데.
“그는 SK그룹의 충신 중 충신이다. SK그룹의 미래에 대해 항상 걱정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런 일 전혀 없다. 손 명예회장은 나와 대화할 때 늘 최 회장 중심으로 SK그룹이 뭉쳐야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 사이엔 인간적 끈 이상의 뭔가가 있다. 어떻게 ‘최 회장은 책임이 없다’ ‘모두 내 책임이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그처럼 감싸는 것은 처음 봤다.”



-최 회장이 면회를 자주 왔는가? (손 명예회장이 수감됐을 당시 최 회장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였다.)
“횟수는 알 수 없지만 수차례 왔다.”



-SK그룹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하던가?
“SK그룹의 방향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는 위치는 분명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최 회장의 위치가 흔들리면 중재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최 회장 측 반응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경영 사부’로 모셨던 손 명예회장과 ‘감정싸움’ ‘자리다툼’을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게 측근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다. 최 회장은 12월 8일 ‘손길승 SK텔레콤 컴백’을 이끌면서 손 명예회장을 예우했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은 이전에도 그룹 현안이 있으면 손 명예회장을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손 명예회장 역시 수많은 의견을 전달했다”며 “지난 8·15 특사에서 함께 사면되자 최 회장은 손 명예회장에게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SK텔레콤 컴백을 제안했고, 손 명예회장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04년 SK 사태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컴백한 손 명예회장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재계 일각에선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경험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손 명예회장의 비중으로 볼 때 SK의 경영 전반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발 더 나아가 손 명예회장의 지론인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계획 추진에 적극 나설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손 명예회장은 SK에서 퇴임하기 전까지 중국, 일본을 빈번하게 오가며 동북아 네트워크 구상 실현에 힘을 쏟았다. 조대현 변호사는 “손 명예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진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구상만큼은 자신이 이루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구상’에 대한 손 전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손 명예회장은 경영일선 참여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그는 12월 8일 SKT타워에서 김신배 사장 등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대식을 겸한 간담회에서 “경영 현안에 관여할 생각은 없다”며 “여느 때와 똑같이 있는 듯, 없는 듯 SK와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을 도와 뒤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는 손 명예회장의 탁월한 식견과 경영능력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회사나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 명예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4년 만에 공식 직함을 가졌다. 겉으론 ‘자문만 할 것’이라고 하지만 SK그룹을 위해 ‘핵심전략’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앞서 언급했던 한·중·일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상으로 보인다. 더구나 SK그룹은 수출 부문에서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업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의 컴백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길승의 위기관리 리더십
유연한 발상으로 미래 열어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한 전문경영인으로 손꼽힌다. 세계적 경제대란 속에 이번에 컴백한 것도 이런 능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 명예회장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의 타계와 IMF 환란 때는 ‘그림자 리더십’으로, 2003년 터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는 ‘살신성인 리더십’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다.

무명이었던 선경직물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바로 손 명예회장의 카멜레온 같은 변화무쌍한 리더십이 있었다.‘그림자 리더십’으로 위기 탈출= 1998년 SK그룹에 큰 시련이 닥쳤다. 그해 8월 26일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것이다. 후계자 최태원 회장은 40세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전해인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도 SK그룹엔 위기였다. 당시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SK그룹의 키를 잡은 조타수가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이었던 손 명예회장이었다. 젊은 오너 최태원 회장을 보필해 SK를 안정궤도에 올려놓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당시 가장 필요했던 게 내부적으로는 최태원 회장과, 외부적으로는 쉼 없이 밀어닥치는 변수들을 적절히 제어하는 균형감각이었다. 손 명예회장은 균형을 잡기 위해 ‘그림자 리더십’을 택했다. 최태원 회장에게 그룹을 총괄하게 하고, 자신은 최 회장을 지원하는 그림자가 됐다.

이 때문인지 SK그룹은 외환위기, 최종현 회장의 타계 등 ‘이중고’를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었다. 손 명예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자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12월 8일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는 자리에서 그는 이같이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는 듯 없는 듯 SK와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살신성인 리더십= 2003년 초 손 명예회장과 최 회장의 갈등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해 터진 SK글로벌 사태가 발단이었다. 온갖 소문이 무성하던 그해 6월 3일 열린 ‘임원과의 대화’에서 손 명예회장은 “사내에서 줄을 서려거든 최태원 회장 뒤에 서라”고 말했다.

SK그룹의 간판은 어디까지나 최 회장이고, 자신은 전문경영인에 불과하다고 못 박은 것이다. 2004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구속됐을 때도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며 “최 회장 중심으로 뭉쳐야 산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손 명예회장의 이런 리더십이 어려운 시기 자칫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던 SK그룹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평가다.

‘준비 경영’으로 불확실성 타개= 불확실성은 시장을 꽁꽁 얼리게 마련이다. 불가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손 명예회장은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준비를 강조했다. 준비를 해야 불확실성을 깨고, 그래야만 위기를 정면돌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작은 기업에 불과했던 선경직물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손 명예회장의 ‘준비 경영 마인드’도 한몫했다는 게 SK 사람들의 설명이다. 80년 유공(현 SK)을 인수하기 위해 울산에 미리 석유공장을 지어 준비했던 것이나 91년 대한텔레콤을 설립해 놓고 때를 기다리다 한국이동통신(94년)을 인수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모두 손 명예회장 머리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손 명예회장이 98년 이후 중국 진출을 서둘렀던 것도 준비 경영의 일환이다. 손 명예회장의 준비 경영은 부지런함에서 비롯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고, 준비하지 못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실제로 그는 일 벌레다.

그냥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할 정도다. SK의 새 역사가 시작된 한국이동통신 인수 당시, 손 명예회장이 12일간 꼬박 밤을 새우며 M&A 준비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의상달 리더십으로 미래경영= 손 명예회장은 ‘하의상달 리더십’의 소유자다.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혁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리더십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캔 미팅’이다. 밀폐된 장소에서 전 부서원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회의다. 이를 통해 그는 미래 지식 경영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밑거름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손 명예회장은 “전 부서원이 함께 문제를 놓고 토론하다 보면 해결점을 찾게 되고, 그렇게 하면 전 부서원의 지식 수준이 비슷해져 문제해결 능력은 물론 위기대처 능력까지 좋아진다”고 말했다. 손 명예회장은 실제로 중대한 의사결정 때나, 사운을 건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신입사원의 의견까지 경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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