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벗고 나온 성숙한 나치 영화
껍질 벗고 나온 성숙한 나치 영화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나오고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할리우드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들이 성숙해졌다. 올 연말에 홀로코스트 영화 5편이 개봉된다. 영화들은 각각 새로운 시각에서 도덕적으로 복잡한 영역을 건드린다. 톰 크루즈가 1944년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나치 장교(실제 인물)로 열연한 ‘작전명 발키리(Valkyrie)’, 케이트 윈즐릿이 나치 전범 재판의 피고로 나오는 ‘더 리더(The Reader)’(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화했다),
비고 모텐슨이 나치의 부상에 휩쓸리는 독일 교수의 역할을 맡은 ‘굿(Good)’ 등이다. 이제 우리는 연말이 되면 나치 관련 영화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게 됐다. 할리우드가 그해의 ‘비장의 무기’를 마지막까지 미뤄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대인 대학살과 관련된 작품만큼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될 가능성이 큰 영화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홀로코스트는 계절을 불문하고 할리우드의 가장 어울리지 않는 소재 중 하나다.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만행인 유대인 대학살과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류 영화는 속성상 고무적인 종말로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려 한다.
홀로코스트는 두 시간짜리 영화로 깔끔하게 포장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해피엔딩을 제공하기 위해 참상의 생생한 묘사가 순화되는 경우가 많다. 올 연말에 개봉되는 또 다른 영화 ‘디파이언스(Defiance)’는 나치를 피해 벨로루시(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 접한 공화국)의 숲에 들어가 유대인 봉기를 이끈 삼형제의 실화를 다룬다.
할리우드가 만든 홀로코스트 영화로서는 유대인을 중심에 두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런 영화가 가뭄에 콩 나듯 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들이 받은 피해의 규모가 몇몇 고무적인 사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이렇게 지적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은 배경 인물들로 격하됐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신들이 엑스트라로 전락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최초의 주요 영화인 ‘안네 프랑크’와 ‘뉘른베르크의 재판’이 나온 이래 미국 영화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흥미 위주로 극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영화들은 한 시대의 직접적 산물인 동시에 역사적 영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당포 주인’(1965년)은 나치 강제수용소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솔 네이저먼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그 끔찍한 만행의 심리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고발이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가 되면서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의 폭력 장면들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한편으론 할리우드 식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한지 그 한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시험할 수 있었다. 올해 나온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깔끔한 엔딩이 더는 필요없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인해준다.
‘작전명 발키리’에서 히틀러가 암살당하지 않으며, ‘굿’이나 ‘보이 인 더 스트라이프 파자마(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에서 카타르시스를 찾아볼 수 없다. ‘보이 인 더 스트라이프 파자마’는 한 독일 소년이 강제수용소 안에 있는 유대인 소년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또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자기 가족이 끔찍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치 독일의 범죄를 다루는 올해의 영화에서 현실 도피나 현실 초월은 없다. ‘쉰들러 리스트’처럼 수많은 유대인을 구하는 오스카 쉰들러 같은 인물도 없고,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 때문에 목숨을 건지는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같은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끔찍한 비극에 대한 인식만 있을 뿐이다. 과거의 만행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국인들도 규모는 홀로코스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9·11을 통해 무의미한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제는 비극의 더 어둡고 모호한 요소를 탐구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영화들에 할리우드의 전통적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전명 발키리’를 제외하면 전부 큰 인기를 끈 소설과 연극을 바탕으로 했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경우 할리우드는 지금도 다른 매체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소재로 도박을 하려 들지는 않는다. 나치에 관한 거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들도 주인공이 전부 남자다.
‘더 리더’(‘소피의 선택’과 비슷하다)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비밀을 간직한 여인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연하의 남자를 통해 그려진다. 이것은 성차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서사 전략(narrative strategy)이다. 주류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전통적으로 관객이 동일시할 수 있는 등장인물에 의존했다.
희생자도 가해자도 아니며 우리가 동일시 할 수 있는 중립적인 관찰자를 말한다. 이번 연말 개봉되는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선-악 구분이 쉽지 않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그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굿’에서 모텐슨은 나치를 경멸하면서도 나치 운동에 휩쓸린다(오만한 ‘메피스토’를 연상케 한다).
‘더 리더’에서 윈즐릿이 전범으로 피고석에 앉아 있지만 강제수용소의 유대인 몇몇을 보호하고 음식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도덕적 모호함이 부각된다.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에게 더는 관용을 베풀 수 없었던 것은 수용소 간수라는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라고 그녀는 판사에게 묻는다. 이제 홀로코스트 영화가 거의 소진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들은 자체적으로 수많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런 회의론에 맞선다. 홀로코스트에 관해 우리가 과연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얼마나 많이 알아야 더는 알고 싶지 않을까? 그 아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가해자, 승리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영화 소재의 중요한 출처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나온 홀로코스트 영화들처럼 인간 심리의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작품이 계속 이어질 게 분명하다. 전쟁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인간의 심리이며 때로는 그 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컬럼비아대 영화학 과장이며 ‘지울 수 없는 그림자: 영화와 홀로코스트(Indelible Shadows: Film and the Holocaust)’ 저자다.]
REVIEW ‘더 리더’ 감독: 스티븐 돌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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