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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의 머리털이 쭈뼛 서다

경쟁사의 머리털이 쭈뼛 서다


20여 년 전 한광석 서울화장품 대표는 연구원과 함께 ‘에프킬라’ 통을 뜯고 있었다. ‘이 캔을 어떻게 이용해야 머리에 골고루 도포될 수 있는 헤어스프레이를 만들 수 있는 걸까?’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헤어 스프레이를 제조하는 업체가 한 군데도 없었다.

시판되는 헤어 스프레이는 모두 수입한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은 부풀리는 앞머리 모양 등이 유행하며 헤어 스프레이가 멋쟁이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초등학생도 연예인처럼 앞머리를 높이 세워야만 또래들의 인정을 받던 때였다. 한광석 서울화장품 대표는 국내에서 캔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와 계약을 맺어 헤어 스프레이 개발에 공동으로 힘을 쏟으면서 1992년 드디어 제품 생산에 성공한다.

당시 서울화장품의 헤어 스프레이는 국내 제품으로는 유일했으며 그 후 5년여 동안 어느 국내 경쟁업체도 헤어 스프레이 생산을 해낸 곳은 없었다. 헤어 스프레이 분말 자체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분사기라고 할 수 있는 캔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장치를 생산하는 업체와 손잡은 한 대표의 결단이 그 후 5년간은 경쟁업체를 따돌릴 수 있는 격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후 15년이 흘렀고 서울화장품은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화장품 시장에서 30여 년을 버텨왔다. 서울화장품은 1958년 설립된 제일향장을 82년 인수해 현재까지 20년 이상을 의약외품인 염모제를 비롯해 300여 종(헤어 샴푸, 헤어 젤, 헤어 스프레이, 헤어 트리트먼트 등)의 두발 제품을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하고 있다.

전문가용(미용실) 두발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시판 사업 법인을 별도로 구성해 일반 소비자에게도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서울화장품의 지난해 매출은 약 100억원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30여 년 활약한 업체치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여느 화장품 업체가 그렇듯 브랜드를 알리는 떠들썩한 마케팅이나 자랑 한 번 없이 20년 이상을 보내왔다. 웬만한 사람들이 서울화장품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반면 스킨푸드, 더 페이스샵 하면 알지 않는가? 알고 보면 이들의 제품 중 일부분은 서울화장품의 것이다. 서울화장품은 더 페이스샵, 스킨푸드, 태평양, 에뛰드 하우스, 한불화장품, 나드리화장품, 네슈라, 쿠지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PB브랜드인 GS Mart의 SnF헤어 제품 및 핸드크림도 서울화장품이 만들고 있다. 서울화장품이 만든 제품인 줄 모르고 있는 소비자가 많은 것이다. 이제는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야 할 시기 아닐까? 한 대표는 “올해 CGMP(우수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를 통과한 것이 해외진출의 초석이 됐다”고 말했다.

CGMP는 일종의 국가 간 거래에 통용되는 증서로 화장품 수출업체에는 필수적이라 할 만하다. 그는 “홍콩 Sa-Sa Cosmetic의 히솝 브랜드 입점이라든지 미국 Watsons’와 같은 유통체인에 제품이 입점된 것은 해외진출의 새로운 신호탄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정수 서울화장품 이사는 “구매력이 큰 이들 대형 체인과 거래하면 원가부터 달라진다. 서울화장품은 이런 계기를 통해 대형 유통망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 소비자에게 친근한 브랜드로 다가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화장품의 혁신
혁신은 2년간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것
□ 1992년 헤어 스프레이 국내 최초 생산
□ 2008년 셰이빙 젤 국내 최초 생산
□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없는 게 없는 두발화장품 천국

한 대표가 세계경기가 위축된 현재에도 수출이란 말에 힘을 주는 이유는 국내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용실에서 사용하고 판매하는 전문가용 제품을 생산하면서 품질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점차 소규모 업체들까지 뛰어들면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텃세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는 수출이라는 새로운 활로와 TV홈쇼핑 입점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확보해 소비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CGMP는 이러한 노력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사실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수출과 유통망을 다각화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광석 대표는 회사가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파는가’보다 ‘어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때 헤어스프레이로 전성기를 맞은 것처럼 또 하나의 전환기가 필요했다. 이번에 기대하는 상품은 셰이빙 젤이다.

“시장조사를 하는데 화장품 코너 및 생활용품 코너의 샴푸, 린스 외에 늘 팔리는 것이 다름 아닌 면도용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면도기와 더불어 셰이빙 폼과 셰이빙 젤이 팔리고 있었죠. 그런데 다른 해외 업체는 셰이빙 폼과 셰이빙 젤을 판매하는 데 반해 도루코는 셰이빙 폼만 팔고 있었습니다.

또 현재의 시장은 셰이빙 폼에서 셰이빙 젤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미 판매 금액에서는 셰이빙 젤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국내 업체가 셰이빙 젤을 팔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국내에 셰이빙 젤을 생산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었죠.” 한광석 대표는 그 후 도루코를 방문해 셰이빙 젤에 대한 판매를 보장받은 후 개발을 시작했다.

협력업체와 긴밀한 협조 아래 1년의 연구 끝에 드디어 셰이빙 젤을 개발하게 됐다. 2009년 초에 제품을 출할 계획이다. 개발을 서둘렀던 만큼 경쟁업체와 2년의 격차는 벌어졌으리라 기대하는 한 대표는 “앞으로도 2~3년간 기술격차를 꾸준히 벌려간다면 레드오션이란 없다”고 장담했다.

이 회사의 ‘건강진단’
2009년 매출 150억 무난할 듯

2003년 법인으로 전환한 서울화장품은 20년 이상 염모제, 퍼머넌트 웨이브제 외 300여 종의 두발제품과 화장품, 동물용 의약 부외품을 생산해왔다. 법인전환과 함께 인천 남동공단으로 둥지를 옮긴 회사는 2007년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하고 2008년 GGMP 인증에 성공했다.

중국, 동남아, 북미 등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해 2006년 3억원대에 불과했던 수출액은 2008년 100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향후 회사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매출원가율은 76% 수준으로 안정적이며, 매출액의 꾸준한 증가에 힘입어 영업이익률은 2006년 4%선에서 2007년 6%대로 향상됐고, 올해는 7%선으로 예상된다.

꾸준히 창출되는 양호한 영업 현금흐름을 통한 지속적인 차입금 상환으로 부채비율은 2006년 330%에서 2007년 198%로 감소했다. 추가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영업활동으로 조달할 수 있다면, 부채비율 감소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국제회계 기준으로 자산재평가가 시행되면 보유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장부에 반영돼 재무구조는 더욱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단 법인전환 후 외부회계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재무자료의 신뢰성 검증은 2009년 결산 이후에나 가능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내수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도 자체 브랜드 역량 강화, 해외시장 개척을 통한 유통채널 다변화, PB브랜드 확산 및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 등 위기극복 방안을 모색 중이다. 2009년엔 매출 150억원, 영업이익률 7%를 사업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김희준 굿모닝신한증권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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