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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 CD로 만들어져 새 나가”

“설계도 CD로 만들어져 새 나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쌍용자동차 지원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난항이다. 한국 정부는 쌍용차의 대주주 상하이자동차가 먼저 자금 지원을 하라는 입장이다. 반면 상하이차는 먼저 구조조정을 하고,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 와중에 쌍용차 불법 기술유출 의혹이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쌍용차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쌍용차 ‘기술유출 의혹 사건’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쟁점1 불법 유출이냐, 단순 이전이냐


쌍용차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쌍용차 영업소에서 직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쌍용차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상하이차로 넘어간 쌍용차의 핵심기술이 과연 불법 기술유출이냐, 아니면 단순한 기술이전이냐다. 둘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상하이차가 쌍용차 기술을 가져가면서 정당한 기술이전비를 지급했다면 불법 기술유출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기술이전비 지급이 없었다면 불법 기술유출이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상하이차와 쌍용차는 기술이전과 관련해 명문 규정을 만들었다. 기술이전비용으로 상하이차가 1200억원을 지급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렇다면 상하이차는 기술이전비용을 지급했을까?

쌍용차 노조가 주장하는 기술이전(유출) 사례는 소형 레저형 신차 ‘C200(프로젝트명)’ 기술 등 여러 개다. ‘L프로젝트’의 일환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웨 개발 과정, 사업구상 초기 단계에서 무산된 S프로젝트의 수립 과정에서 쌍용차의 핵심기술이 이전됐을 것이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상하이차는 기술이전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다. 상하이차가 그나마 지급한 ‘카이런 라이선스 계약금’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카이런의 기술개발비용은 4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지불한 라이선스 계약금은 240억원에 불과하다. 쌍용차 노조 관계자는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핵심기술을 불법적으로, 게다가 헐값에 유출했다”며 “순수한 의미의 기술이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쟁점2 불법 유출 정황 있나 없나

상하이차에 인수된 직후 쌍용차는 핵심기술의 불법 또는 편법 유출을 막기 위한 나름의 제도적 방안을 만들었다. 쌍용차 연구개발인력이 중국인 연구원과 1 대 1로 만날 수 없는 규정을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쌍용차와 상하이차의 연구원이 만날 땐 반드시 또 다른 한국 직원이 포함돼야 한다.

이를테면 ‘감시자’를 따로 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쌍용차 연구개발인력은 수시로 중국 상하이차 본사에 파견됐는데, 규정과 달리 ‘감시’ 역할을 할 한국 직원은 대부분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쌍용차 연구개발인력 대부분이 상하이차 신형모델 S161 개발에 투입돼 있다.

이런 사이, 정작 쌍용차의 신차 프로젝트는 연기 또는 무산됐다. 렉스턴 후속모델(Y300) 출시가 2010년 말 이후로 연기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상하이차에 파견된 연구개발인력의 임금을 쌍용차가 지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쌍용차 내부 관계자는 “쌍용차와 관련 없는 상하이차의 순수한 개발용역 업무라면 누가 임금을 줘야 하는가”라며 “쌍용차 연구원이 중국 상하이차 본사에 간 것은 분명히 쌍용차 핵심기술과 관련된 부분이었고, 이는 기술유출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언도 나온다. 쌍용차 전직 임원들은 2005년 11월 소진관 전 대표가 경질된 후 불법 기술유출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주장한다. 소 전 대표는 쌍용차가 워크아웃 상태였던 99년 회사를 맡아 경영정상화를 일궈낸 CEO다. 그러나 그는 잔여임기 100여 일을 앞두고 전격 경질됐는데, 이유는 실적부진이었다.

쌍용차 전직 임원들은 “상하이차의 무차별적 기술유출을 막다 된서리를 맞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소 전 대표 경질 이후다. 상하이차는 당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까지 장악해 쌍용차의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대주주(지분 51.30%)로서 인사권을 행사했음은 물론이다.

쌍용차 내부 고위 관계자의 증언이다. “사람들이 지금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인사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상하이차는 대표 또는 임원의 목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상하이차의 목적이 쌍용차의 기술이전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만약 이를 (소 전 대표처럼) 반대했다면, 상하이차가 인사권을 휘두르지 않았겠는가? 기술유출은 계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쟁점3 검찰 수사가 왜 변수인가

상하이차 측은 “자동차 업체가 M&A를 하는 주요 목적은 기술공유”라며 “상하이차가 쌍용차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상황에서 쌍용차의 하이브리드카 핵심기술 유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부는 2006년 1월 ‘상하이차 연구원 장 모씨(상무) 등이 쌍용차 하이브리드카 관련 기술과 자동차 설계도를 빼냈다’는 국정원 첩보를 넘겨받아 1년6개월 동안 내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7월 쌍용차 중앙연구소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상하이차 연구원 장씨, 국내 임원 1~2명, 실무진 2명을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자동차 설계도면 등 서류가 CD로 만들어져 유출됐고, 이 가운데 하이브리드카 기술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검찰이 불법 기술유출혐의를 인정해 관련 혐의자들을 기소하면 상하이차는 법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카 기술은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이 외국으로 나가려면 지식경제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민 혈세가 들어간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겼을 경우 혐의자는 10년 이하의 형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하이차가 우리 정부와 노조에 주장하고 있는 ‘선(先) 구조조정, 후(後) 자금지원’도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검찰이 ‘기술유출은 없다’고 결론 내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하이차는 기술유출 의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하이차가 면죄부를 받게 되면 쌍용차는 대규모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쟁점4 검찰은 기소할까 말까

검찰 주변에선 수사팀이 기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하이브리드카 기술유출도 문제지만 영업기밀누설죄(부정경쟁방지법)를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술유출 혐의에, 쌍용차 내부정보 및 기밀사항 누설혐의까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수사팀 관계자를 만난 A변호사는 “담당 검사는 기소할 의지가 확고한데, 윗선에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팀에서 예민한 사안이라며 입을 닫고 있다”며 “어떻게 결론을 내릴 지 아직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수사팀은 현재 쌍용차 기술유출 사건에 대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섣불리 기소했다간 한국-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혐의가 명백한데 기소하지 않을 경우에도 부담은 크다. 정부는 현재 쌍용차 지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쌍용차 파산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다. 쌍용차가 파산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대출해준 2300억원을 떼이는 것은 물론 수천 명에 달하는 쌍용차 직원,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쌍용차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검찰수사 결과가 변수로 등장


검찰이 기소하면…
- 상하이차 국제적 신뢰 잃어
- 다른 자동차 회사와 M&A 불투명해져
- 한국 정부 상대로 한 쌍용차 선 구조조정 요구 명분 잃어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 상하이차 기술 유출 의혹 면죄부
- 쌍용차 노조, 상하이차에 대응할 카드 놓쳐
- 쌍용차 대규모 구조조정 시작될 수도



검찰 수사팀 분위기는…
- 기소의지 피력
- 기술유출에 정보누설 혐의까지 적용 가능성
- 한-중 외교문제 비화 가능성으로 정치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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