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중국 경제의 재발견

중국 경제의 재발견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을 깨뜨리면서도 중국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뭘까?

올해는 경제대국 중 중국만이 상당한 경제 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왜 그럴까? 역설적이지만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을 거침없이 깨뜨리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진정한 자유시장이 없다. 당국이 통계를 조작하고, 주식시장을 조종하며, 주요 물가를 책정하고, 전략 산업을 100% 소유하며, 주요 은행 요직을 공산당 간부로 채워 대출과 투자를 지시하는 나라다.

중국이 다른 주요 경제대국들보다 성장둔화 속도가 느린 주된 이유는 정상적인 상황 같으면 경제 전문가들이 비웃을 거리낌 없는 ‘국가의 개입’ 능력에 있다. 예컨대 금융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했고, 세계적 신용위기의 주범인 혁신적 금융 상품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런 중국 특유의 ‘계획 자본주의(command capitalism)’가 먹히는 이유가 뭘까?

경제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이 물음에 흥미를 느꼈다. 국가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우둔하며, 시장은 원천적으로 똑똑하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유럽도 은행과 자동차 회사들을 국유화하고, 금융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가 통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시점에서 그 물음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가장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거대 중국이 70년 만에 닥친 가장 심각한 세계적 경기침체를 가장 잘 헤쳐나갈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리들은 위기가 닥칠 때 서방처럼 전통적인 시장 부양책에서 마음에 드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령식 자본주의 정책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

지난해 초 중국의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관리들은 은행에 주택 대출을 줄이라고 지시했다. 그로 인해 주택 매매가 줄어들자 그들은 취득세를 낮추는 등의 시장 유인책을 내놓았다. 최근 몇 주 동안 그들은 서방에서 볼 수 있는 경제구제 프로그램과 유사한 정책을 도입했다. 6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과 대폭적인 금리 인하 등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그들은 서방에서는 부적절한 ‘개입’으로 비칠 만한 명령을 내렸다. 지난주 제철과 건설 등 국영기업체들에 국내외 기업을 인수해 국가경제에서 역할을 “적극 늘리라”고 지시했다. 중국의 이런 국가 개입은 이전에는 미성숙한 경제의 악습으로 비쳤지만 요즘은 오히려 안정을 보장하는 보루로 간주된다.

“자본이 가장 집약된 부문을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에 중국의 전망이 밝다고 본다”고 크레디리요네증권사(CLSA)의 수석 분석가 앤디 로스먼이 말했다. “이런 부문에서는 기업들에 정부가 ‘투자 계획을 미루지 말고 계속 지출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 중국 경제는 최대 수출 시장이 침체되고 자체 주식시장이 폭락한 데도 불구하고 2009년 7%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근년의 두 자릿수 성장률에는 못 미치지만 대다수 국가보다 훨씬 높을 전망이다. 국영은행들이 대출요건을 완화하면서 기업 대출 금리는 실제로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한다. 그처럼 투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추”인 국가에서 성장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려고 정부가 다시금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모건스탠리 아시아의 스티븐 로치 회장이 말했다.

“경제 압박이 심한 시기엔 중국의 지휘통제 체제가 다른 시장기반 체제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증거다.” 중국의 주자파(走資派) 원조인 덩샤오핑(鄧小平)은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을 내세우면서 이념의 순수성보다는 경제 성장을 우위에 두었다.

지금의 중국 지도자들도 그가 중국 인민에게 내놓은 기본적인 약속을 옹호한다. 공산당이 절대적인 정치 권력을 잡되, 독재 자본주의로 인민들에게 경제성장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요즘 대부분의 중국 지도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서 민주화된 중국으로는 성장은커녕 살아남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중국은 아직 민주적인 자유시장 체제를 도입할 상황이 아니다”고 팡싱하이(方星海) 상하이시 금융판공실 주임이 말했다. 덩샤오핑은 30년 전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개혁의 고통을 견뎌내려면 안정된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우리의 체제를 뭐라고 부르든 간에 여하튼 중국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중국이 잘 굴러가는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좀 더 자유로운 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초점을 맞춘 ‘급진적 실용주의’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이를 두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摸着石頭過河)”고 표현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엄격한 통제로 안정을 유지하지만 민간 부문은 자유화했다.

현재 민간 부문이 경제의 절반을 차지한다. 민간기업식의 경영이 허용된 국가소유 기업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비율은 70%에 이른다. 1990년대 초에는 약 17%에 불과했다. CLSA에 따르면 GDP 성장의 약 60%, 새로운 일자리의 3분의 2가 민간 부문에서 나온다. 중국은 95년 혁명적인 국영산업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다음 6년 동안에만 국영기업 근로자 4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전체 노동력과 맞먹는 규모다. 그 이후 산업 능률화 운동이 계속됐다. 그 결과 국영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높아졌고(2004∼2005년 38% 증가), 민간 부문이 경제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로스먼은 그것을 “오랜 시일에 걸쳐 일어난 급진적인 변화”라고 표현했다. 이 기간에 러시아의 자본주의 체제 전환에 관한 수많은 책이 중국어로 번역됐다. 중국은 무엇보다도 90년대 초 러시아의 ‘빅뱅 개혁’에 따른 혼란을 피하고 싶어 했다. 러시아에는 그로 인해 부패한 소수의 신흥재벌이 생겨나 지금도 러시아 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서방은 반체제 세력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중국이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개혁에 나섰는지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보다도 더 이른 발전단계에서 투자 문호를 개방했다. 그때가 80년대 초였다. 당시 평균 국민소득은 760위안(500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게 서둔 것은 덩샤오핑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길은 국제 무역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농민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는 위험천만한 조치였다. 89년 천안문 학살 후에도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계속 밀어붙였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동안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국내시장 개방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때쯤 정부는 해고된 근로자들이 자영업을 하고 국가가 지은 주택을 헐값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로써 거의 단숨에 ‘소유자 사회’를 건설하고 중산층 사회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

로스먼은 그것을 “한 차례 부의 이전으로서는 세계 역사에서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제 더 심한 위기가 닥쳐오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다른 부문에서는 통제를 재확립하면서도 핵심 부문에서는 개혁을 계속 밀어붙인다. 그중에서도 은행이 주된 개혁 대상이다. “자본시장은 여전히 은행 대출이 지배한다.

우리에게는 금융 상품이 너무 적고 더 많은 기관투자가를 시장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팡싱하이가 말했다. 그것을 목표로 중국은 주식 거래 수준을 뛰어넘어 주가지수 펀드, 회사채, 심지어 옵션과 선물 거래(물론 서방 시장의 붕괴를 가져온 복잡한 신용 파생상품보다는 간단한 석유 선물 등이 주를 이룬다) 등 복잡한 증권 상품으로 진출하고 있다.

신용위기의 와중에서도 중국 지도자들이 더욱 정교한 ‘증권화’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전략적 사고를 하며, 다른 나라들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최대의 국영 은행인 공상은행(ICBC)의 장젠칭(江建淸) 행장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혁신에 끝없는 열정을 갖고 있다. 과거엔 규제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혁신을 막을 수 없다. 혁신은 경제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더욱 장기적인 포석은 획기적인 토지개혁이다. 중국 농민들이 토지를 외지인(기업 포함)에게 임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에서는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파악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 토지개혁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상은 이미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세계적인 부동산 전문회사 존스 랑 라살(JLL)은 중국의 토지개혁으로 2조5000억 달러 규모의 농지가 규제에서 풀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토지개혁이 후진타오 주석의 영구적인 유산이 될 전망”이라고 JLL의 마이클 클리배너가 말했다. 농민을 ‘토지를 소유한 소비자’로 바꿔 놓으면 중국의 수출 의존도가 낮아지고 세계 경제의 균형이 다시 잡힐 가능성이 크다.

중국 지도부는 일단 방침을 세우면 번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로스먼이 말했다. 예를 들어 위안화 가치를 둘러싼 정치 공방을 보자. 미국은 중국이 수출 증대를 목표로 의도적으로 위안화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05년 여름부터 2008년 사이에 위안화 가치가 21.5%나 올랐다.

최근 몇 달 동안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다수 경제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수출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과 세계적인 무역 균형의 필요성을 저울질하면서 어느 정도의 위안화 가치 상승을 계속 허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유시장과 관리시장 사이의 이런 균형은 정부가 물가를 책정하고 금융 서비스, 통신, 에너지 같은 핵심 부문을 통제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이런 산업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민영화됐다. 통신 부문에서는 장비제조 시장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됐다. 들여오는 자본과 기술이 궁극적으로는 자국 기업들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화웨이(華爲)다. 그러나 좀 더 수익성이 좋은 서비스 시장은 여전히 정부가 운영한다.

휴대전화 요금이 대표적이다. 팡싱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중국은 물가를 통제한다.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보다 한발 뒤에서 움직인다. 언제나 시장이 기준이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은 유가를 국제 기준에 근접시키려고 연료보조금 삭감에 들어갔다. 이는 물가 자율화를 목표로 한 15개년 계획의 일부다.

CLSA의 로스먼에 따르면 그 장기적인 계획으로 국가가 정하는 전체 소비자 물가의 비율이 95%에서 5%까지 낮아졌다. 그런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조치는 물가가 자율화된 뒤 91년에서 92년 사이 인플레이션이 1000%로 치솟은 러시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브루킹스 연구소 손턴 중국연구센터의 수석 연구원 청리(程立)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충격요법을 원치 않는다. 충격만 있고 치료 효과는 없다고 판명 났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가 이처럼 시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들 대다수가 철저한 계획을 기초로 일하는 데 숙련된 엔지니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공산당 핵심 간부 9명 중 8명이 엔지니어 출신이다.

어쩌면 중국이 서방식의 위험도 높은 금융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엔지니어링에서 중시되는 실용성 때문일지 모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최근 열린 중국 사업 관련 행사에서 상하이 시장 출신으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며 중국공정원(中國工程院) 당서기인 쉬광디(徐匡迪)는 서방 은행들이 지난 10년 동안 판매한 ‘가상’ 상품을 비웃었다.

“은행이 이해할 수도 규제할 수도 없는 가상 금융 상품을 물리학 박사들을 동원해 만들어냈다. 투자자들은 그런 상품이 실제 상품보다 훨씬 낫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믿어버렸다. 모두가 꿈속에서 일했다.” 숙련된 기술관료들이 운영하는 지휘통제 시스템 덕분에 중국은 무슨 일이든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중국이 일관성 있게 움직이고 인력과 자원을 공동 목표에 투입하는 능력에 늘 감탄할 따름”이라고 CLSA의 중국 현실 연구부장인 데이비드 머피가 말했다. 이런 상황을 러시아와 비교해 보라. 러시아에서는 폭압적인 독재체제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자나 대다수 관리나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다.

중국을 지배하는 엔지니어들은 절차를 중시하고 성과지표에 집착하는 시스템을 관리한다. 중국 고위 관리들과 긴밀하게 일하는 한 경제 전문가는 그들 중 다수가 저녁 만찬을 주최할 때 똑같은 최고급 보르도 와인인 샤토 라피트를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와인 스펙테이터’지의 유명한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매긴 우수한 점수 때문이다.

중국 외교가의 원로인 우젠민(吳建民) 중국 외교학원 전 원장은 최근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의 부시장과 만난 일을 말해 주었다. 그 부시장은 우시의 경제를 70년대의 미국과 상세히 비교했다. 그는 우시의 개인 소득이 높아지는 데 비해 서비스 부문이 좀 더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몹시 걱정했다.

그 이후 서비스 부문의 인재를 구하려고 우시의 당서기가 미국으로 급파됐다. 국제적인 성과기준에 미달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책임을 추궁당해 면직된다. 여러 개도국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현상이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멜라민 파동을 보자. 단백질 수치를 허위로 높이기 위해 분유에 멜라민을 섞어 중국 어린이가 적어도 6명 사망하고 30만 명이 병에 걸렸다.

그러자 그 분유 제조사인 산루(三鹿)의 본사가 있는 도시의 시장과 당서기를 포함해 6명의 간부가 곧바로 파면됐다. 중국의 식품안전 검사 책임자도 물러났고, 산루의 회장은 재판에 회부됐다. 그런 조치가 대중의 분노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지만 관리들을 겁주기에는 충분하다. 분명한 성과 목표를 세워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국인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서 배우려는 정신 중 하나다.

요즘은 고위 관리 5명 중 4명이 일정 기간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 연수를 받는다(하버드의 케네디 행정대학원은 ‘제4의 공산당 학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 단계에서 중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번영과 안정이다. 중국인들은 미국을 능가할 만큼 실용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열의로 번영과 안정을 추구한다.

뉴욕의 코넬대와 베이징의 창장상학원(長江商學院) 두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황밍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종신 재직 교수라고 말만 해도 존경받을 수 있지만 중국인들은 “그래요, 대단하네요. 하지만 돈은 얼마나 벌어요?”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물론 부가 늘어나면서 부패의 유혹도 커졌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도 점진적인 발전이 눈에 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국가 순위에 따르면 중국은 10년도 채 안 된 기간에 52위에서 72위로 훨씬 투명해졌다. 부패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인 사업가든 서방 사업가든 기사에 인용되기를 원치 않지만 그들은 중국의 부패가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기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급행료’ 같은 뇌물로 변해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개도국 시장에서 경험이 많은 어느 유럽 대기업의 회장은 이렇게 비유했다. “러시아에서는 교량 건설 예산이 100달러라면 관리가 90달러를 가져간다. 중국에서는 30달러만 가져가고 적어도 다리가 어떻게 해서든 건설된다는 게 보장된다.” 많은 사람은 가전제품 대기업 궈메이(國美)그룹의 회장으로 중국의 최고 부자인 황광위(黃光裕)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두고 정부가 부패 청산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모건 스탠리에서 활동했다가 지금은 독립한 경제전문가 앤디 시에(謝國忠)는 황이 어떻게 되든 궈메이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또 시에는 주식소유법의 최근 개정으로 시장이 더욱 역동성을 띠게 됐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통제에서 더 많이 벗어나게 됐다는 의미다. 당국이 지난해 8월부터 주식 매입에 부과하던 인지세를 폐지해 주식시장을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성숙함으로 설명된다. 이제 중국 시장도 너무 자유로워져 국가가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경제에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최근의 경기부양책 대부분은 운송과 전력, 건설 같은 정부 통제 부문을 통해 흘러나올 계획이다. 또 중국 정부는 현시점에서 3세대 이동통신 면허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로써 국영 통신산업 분야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이 유통될 전망이다. 아울러 홍콩에서는 투자자들이 일반 은행에서 국영 은행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 국가가 지원해 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의 이런 혼합형 시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전은 지도자들이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여론을 중시한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중앙 정부는 지방 관리들에게 미국식 홍보 전술을 가르치는 컨설턴트들을 파견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촉발된 민중 항의를 잠재우려는 새로운 ‘개방’ 캠페인의 일환이다.

지난해 11월 충칭(重慶)에서는 중앙당의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가 파업에 돌입한 수천 명의 택시 기사를 진정시키려고 가두 연설에 나섰다. 중앙당 고위관리로서는 전례 없는 행동이었다. 이후 그는 정부 관리, 택시 기사, 시민대표를 한 자리에 모아 협상을 주선했다. 그 결과 택시 회사들의 수수료를 줄이고 연료 보조금을 늘리며 기사들의 노조 결성을 허용하는 안이 채택됐다.

“중앙 정부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있다”고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경제잡지 재경(財經)의 편집 간부 왕숴가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민중소요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상황을 훨씬 잘 처리한다. 유혈사태도 대규모 반발도 없었다. 정부는 그런 소요에 자신들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여론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일이 경기침체 시기에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될 듯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기를 좋아한다. 시청자들이 우승자를 투표로 정하는 가수 발굴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과 비슷한 중국의 리얼리티 TV쇼가 큰 인기다. 정치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많은 곳의 중국인들이 시 운영 웹사이트에 시정부에 관한 소감을 올릴 수 있다.

또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민원을 사흘 내로 처리해야 한다. 부정적인 댓글과 긍정적인 댓글이 얼마나 달리느냐에 따른 시 각 부처의 순위가 온라인으로 게재된다. 인터넷과 여론을 이용해 지방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은 중앙 정부 전략의 일환이다.

베이징의 시장조사업체 호라이즌의 빅터 위안 회장은 정부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올림픽 경기 입장권 요금을 정하고 오지의 천연가스 시설 개선에 부과할 요금을 산정하도록 했다. 과도한 가격에 대한 민중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위안은 내년에는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중견과 고위 관리 1만 명의 순위를 매길 계획이다.

그는 2014년이 되면 최고위 관리들까지 포함하는 여론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재의 중국 정부는 실적 위주 조직이다. 인민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 덩샤오핑 이후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수퍼맨이 아니다. 그들도 인민의 지지를 통한 정통성을 확립해야 한다.”

아무리 급진적인 실용주의자라 해도 덩샤오핑의 약속을 이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30년 전에는 중국 인구가 9억6300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30%가 굶주렸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가 13억 명으로 늘었고 그들 중 97%가 굶주리지 않지만 중산층(현재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다)으로 올라가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다.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글로벌 이머징 마켓 담당은 중국의 개인당 GDP가 최근 3000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그 수준에서 기적처럼 성장하던 경제가 좀 더 성숙한 수준으로 가면서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도 중국이 계획 자본주의 경제를 잘 이용하는 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성장을 부양하는 것보다 독재 시스템에서 명령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중국이 점점 더 잘사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특히 신용위기가 자유시장의 정통성에 대한 더 넓은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CLSA의 로스먼은 이렇게 말했다.

“신용위기도, 신뢰위기도 겪고 있지 않는 나라가 강대국 중에서는 중국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중국 정부의 능력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신뢰가 금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은 여전히 자국의 시스템에 믿음을 갖는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With MELINDA LIU and MARY HENNOCK in Beijing and DUNCAN HEWITT in Shanghai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주)유림테크, 대구국가산단 미래차 부품공장 신설에 1,200억 투자

2포항시 "덴마크에서 해상풍력과 수산업 상생방안 찾는다"

3日 도레이, 구미사업장에 5,000억 투입해 첨단소재 생산시설 확충

45만원권 위조지폐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 18명 검거

5‘사생활 유포·협박’ 황의조 형수에…검찰, 항소심서 징역 4년 구형

6 국내서 쌓은 ‘삼성전자 포인트’ 이제 미국서도 쓴다…‘국가 호환’ 제도 도입

7이지스자산운용, 취약계층 상생 위한 '행복한 바자회' 개최

8마스턴운용. “사모 리츠에도 개인 투자자 참여 기회 제공"

9새마을금고중앙회, 베트남협동조합연맹과 ‘상생협력’ 위한 업무협약

실시간 뉴스

1(주)유림테크, 대구국가산단 미래차 부품공장 신설에 1,200억 투자

2포항시 "덴마크에서 해상풍력과 수산업 상생방안 찾는다"

3日 도레이, 구미사업장에 5,000억 투입해 첨단소재 생산시설 확충

45만원권 위조지폐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 18명 검거

5‘사생활 유포·협박’ 황의조 형수에…검찰, 항소심서 징역 4년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