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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수출 지형이 바뀐다

대중국 수출 지형이 바뀐다

지난해 9월 이마트 베이징 매장을 찾은 중국인 고객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8월만 해도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전체 수출증가율보다 높은 19.4%를 기록했다. 그런데 9월 급락세로 돌아서더니 12월엔 32.3%나 곤두박질했다(같은 달 한국의 전체 수출증가율은 25.3% 떨어졌다). 글로벌 경제 침체를 맞아 수출 감소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의 감소폭은 유달리 커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는 삼각 내지 사각 파도를 만난 형국이다. 눈에 띄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유가 및 반도체 가격 폭락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이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3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가 하반기 들어 금융위기에 따른 수요 감소로 급락해 11월엔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중국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유, 제트유 등 석유제품과 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단가도 미끄럼을 탔다(2008년 1월에서 11월까지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이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8%에 이른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도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2분기까지 빠르게 성장하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3분기 들어 9.0%로 둔화됐다. 특히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8월 이후 중국의 산업생산 증가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다. 소비와 관련된 선행 및 동행지수 역시 8월을 전후해 급락했다. 아마도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뒷걸음질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국의 수출 감소가 한국의 대중 수출에 직접적인 충격을 미쳤다는 점이다.

사실 최근 중국의 수출 감소세는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중국의 수출증가율은 19.1%를 기록했고, 11월에 와서야 2.2% 감소세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이 각각 8.0%와 -19.0%인 데 비춰볼 때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던 중국의 수출 감소세가 우리의 대중국 수출엔 치명타가 됐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품의 70%가량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제3국 시장 수출용 제품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중간재(반제품, 부품, 부분품)인 까닭이다. 대표적으로 LCD, 전자집적회로, 휴대전화 부품, TV부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수출 감소를 주도하는 품목이 바로 위와 같은 부품을 이용해 생산하는 컴퓨터, TV, 휴대전화, 모니터 등이다.

반면 중국의 토착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의류, 신발류, 가구 등 저부가가치 생활필수품은 중국의 수출 급감을 막아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의 충격이 중국을 통과한 뒤(즉 비켜나간 뒤)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가 바로 중국의 제5위 수입상대국이자 중국을 가공생산기지로 활용해온 대만이다. 그 밖에 지난 수년간 우리의 대중국 수출을 압박해온 요인들도 최근 침체에 한몫하고 있다. 즉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원자재 와 중간재 현지조달 확대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1월 현재 대중국 수출에서 아홉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부품이다. 한국의 대중국 자동차 부품 수출은 중국에 진출한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부품 현지조달 확대, 특히 중국에서 ‘상하이GM’의 뷰익(BUICK) 브랜드로 판매되는 라세티 모델 등의 조립생산(KD)용 수출이 현지생산으로 대체되면서 큰 폭으로 줄었다.

이러한 급감세가 지속되면서 급기야 11월엔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51.5%나 주저앉았다. 앞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환경은 어떻게 될까? 앞서 언급한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 원인을 염두에 두고 대중국 수출 환경을 예측해볼 때 비관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 침체가 워낙 깊어 오래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 내보내는 전기전자, IT제품 등 한국 기업의 주력 제품 수요도 덩달아 축소될 수 있다. 가공기지로서의 중국 활용도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낙관적 요소도 없진 않다. 어쩌면 이것이 앞서 언급된 부정적 환경을 상당 부분 상쇄해 줄지도 모른다. 우선 중국 정부는 강력한 경기부양을 위한 내수 촉진책을 실시하게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투입자금만 해도 4조 위안(6000억 달러)이다.

이는 2007년 중국 GDP의 17.6%에 해당하는 규모로 부양책의 규모가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양 내용도 철도, 도로, 농촌기반시설 등 인프라 건설부터 환경보호와 에너지절약 관련 지원까지 광범위하다.

심지어 지진지역 재건, 의류 및 문화 관련 시설 확충, 농민의 가전제품 구입 지원과 상품권 직접 나눠주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내수 촉진책이 망라돼 있다. 물론 잘 알려진 것처럼 부양대책에 필요한 자금도 넉넉하다.

게다가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데 지루한 논쟁과 표결을 반복하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달리 중국 ‘공산당이 지도하는 권위주의체제’는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비상 시국에선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수립과 집행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는다.

결국 중국은 자국이 설정한 ‘8% 성장률 지키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 산업생산의 선행지표로 이용되는 ‘구매자관리지수(PMI)’가 12월 들어 1.7포인트 상승한 41.2를 기록했다. 소폭이긴 하지만 8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경제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현실에서 중국만이 최대의 고도 성장국가로 남아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왔던 수출구조 조정정책 숨 고르기에 당분간 나서리라는 전망도 한국 기업에는 불행 중 다행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수년간 가공무역 금지 확대,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률 인하, 더 나아가 위안화 절상 등의 정책을 통해 수출의 내실 없는 양적 확대보다는 질을 향상시키려 힘써왔다.

이 와중에 대중국 무역업체와 중국 진출 외자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최근 중국 정부는 수출 감소에 직면해 기존 정책 시행을 뒤로 미루거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런 정책 변화는 수출 여건 악화 속에서 고통 받아온 중국 진출 업체나 대중국 무역업체에 다소나마 숨통을 틔워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수출입 환경이 공존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가 주도하는 가운데 품목별로 희비가 엇갈린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등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단가하락 효과가 마감되는 올 하반기 이후에야 호전될 가능성이 크다. 대중국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역시 가격 및 수급이 안정되는 올해 중반에 접어들면서 수출이 호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LCD, 휴대전화 부품, 컴퓨터 부품, 철강판 등은 중국 안팎의 수요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과 중국 현지조달 확대라는 부정적 측면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 지속될 듯하다. 자동차 부품처럼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판매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와 중국 내 조달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는 품목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복잡다단해 보이는 수출환경 변화에도 일관된 흐름이 있다. 바로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상대적으로나(세계경제서 차지하는 역할), 절대적으로나(막대한 시장 규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우리의 대중국 수출전략은 결국 중국 내수시장 진출 확대와 한국-중국-제3시장을 아우르는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GNB·Global Business Networking)을 다지는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유통업 진출 확대 및 중국 내 유통망 확보와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관련 품목의 수출 확대 방안을 모색해 봄 직하다. 중국 토착기업과 중국 진출 외자기업을 겨냥한 ‘기업 간 거래(B to B)’ 확대 전략이나 중국 내 지역별 유망 품목 발굴 등 다양한 방안도 추진돼야 한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기존의 한·중 투자협정 보완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 기업의 대중국 수출과 현지 비즈니스가 최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통상환경 제공에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이다. 정치학 박사로 중국지역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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