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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혼을 부르는 바닷바람

골프의 혼을 부르는 바닷바람

세계 100대 명코스 중 유럽에 있는 코스는 모두 30곳이다. 이 중 영국에 28개가 있다. 스코틀랜드에 12곳, 아일랜드에 8곳, 잉글랜드에 7곳, 웨일스에 1곳이다. 나머지 두 곳은 프랑스, 스페인에 하나씩 있다. 유럽에서 좋다는 코스는 모조리 영국에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는 코스는 역대 톱 플레이어들의 자취가 아로새겨진 베스트 중 베스트다. 글 남화영 <골프 다이제스트> 기자·사진 <골프 다이제스트> 제공

흰색의 이동로가 테두리를 두른 듯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이외에도 주빌리, 뉴 코스, 에덴 코스 등이 있다.

유럽에서 명코스를 찾는다면 브리티시오픈 개최지가 첫손에 꼽힌다.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했다면 명코스임에 틀림없지만, 반대로 아무리 명코스라 해도 전부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138회째를 맞이하는 이 골프대회는 영국인에게는 ‘세계에서 유일한’ 골프대회라는 의미로 영어의 정관사 더(The)를 붙여 ‘디오픈(The Open)’으로 불리고 있다.

역대 대회는 영국의 바람 많은 해안가 코스 링크스(links) 9곳인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 올드 코스, 커누스티(Carnoustie), 뮤어필드, 로열 버크데일(Royal Birkdale), 로열 리버풀(Royal Liverpool), 로열 리담 앤 세인트앤스, 로열 세인트조지스, 로열 트룬, 턴베리(Turnberry)에서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1860년 첫 회부터 12회까지 연속 개최지였던 프레스트윅(1925년까지 총 24번)을 포함해 머슬버러(6번), 포트마녹(1번) 등은 디오픈 무대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 9개 코스는 개장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첨단 장비와 월등한 기량의 톱 플레이어들이 건곤일척하는 메이저 격전장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코스 설계자들이 디자인 영감을 얻는 코스의 바이블로 추앙받고 있다. 2005년부터 디오픈이 열렸고 2009년에도 열릴, 유럽을 대표하는 명코스 5곳을 소개한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파72, 7279야드) =
영국왕립골프협회(R&A) 본부가 있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골프 역사 그 자체다. 다른 골프장들은 설립 연도와 설계자가 명시돼 있는데 이곳은 15세기부터 존재했다는 전설만 전한다. 이곳에 살던 최초의 프로 골퍼 톰 모리스가 코스 일부를 리모델링했다는 게 고작이다.

몇몇 벙커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파헤쳐 조성됐다. 골프 코스 홍보 문구 중에서 ‘자연이 만든 코스’라고들 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렇다. 1873년에 처음으로 브리티시오픈이 열렸고 2005년을 포함해 지금까지 27번 개최됐으니 역대 톱 플레이어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코스이기도 하다.

18번 그린으로 향하는 돌다리 스윌컨 브리지는 수많은 골프 영웅들이 장엄한 은퇴식을 하는 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4번 홀의 지옥(Hell) 벙커는 사람 키보다 높은 수직 벽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톱 프로들을 울린 곳이다. 이 코스는 해변을 따라 나갔다가 들어오는 형식이어서 아웃-인 코스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그린도 1·9·17·18번 4개 홀만 단독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아웃-인 코스의 그린을 함께 쓴다. 2번과 16번 그린이 연결돼 있고, 3번과 15번 그린이 잇닿아 있는 식이다. 전장은 95년 대회에서 악동 존 댈리가 우승할 때만 해도 6933야드였으나 2000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가 19언더파 269타를 치면서 코스를 농락하자 2005년 대회에서 7279야드로 늘어났다.

이 코스는 단단한 페어웨이에 종잡을 수 없는 바람 등 링크스 코스의 전형적인 특징이 위력을 발휘하면 프로들도 쩔쩔 매는 복마전으로 바뀐다. 지금은 올드 코스 외에도 주빌리, 뉴, 밸고브, 스트래스타이럼, 에덴 코스의 6개 코스가 있으며 지난해에 일곱째 코스인 캐슬이 추가 개장했다.



로열 리버풀(파72, 7110야드) =
비틀즈의 고향인 잉글랜드 호이레이크에 있다. 1869년 경마장에서 9홀 코스로 2년 뒤에 18홀로 확장한 코스로 초창기에는 골프 코스와 경마장을 겸했다. 18번 홀의 별칭이 경마 관람석이란 뜻의 ‘스탠드’이고, 한동안 경주마의 출발을 알리는 새들링을 울려 회원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렸다.

이 코스는 아일랜드해로 흘러 들어가는 디(Dee)강이 실어다 쌓아 놓은 모래언덕 사이로 형성된 코스에 좁고 짧은 페어웨이가 특징이다. 이곳에선 80여 년 전만 해도 최고의 격전장으로 각종 대회가 줄줄이 열렸다.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프대회인 워커컵이 처음 개최됐으며 1885년부터 디오픈을 10번이나 유치한 곳이다. 하지만 67년 이후로는 전장이 너무 짧고 갤러리들의 관전할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점차 외면받았다.


40년 만인 2006년에 11번째 디오픈을 개최할 때도 엄청난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짧은 전장을 늘일 수 없으니 페어웨이를 좁히는 방식으로 코스 세팅을 했으나 ‘로열 OB’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비거리가 문제되지 않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이용하기에는 최고다. 기차역에 내리면 골프장까지는 파4 홀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커누스티(파72, 7272야드) =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테이 강 하구에 있는 링크스 코스다. 골프 초창기 최고의 선수이자 클럽 메이커였던 톰 모리스가 설계해 1872년 개장한 코스로 애초 까마귀가 워낙 많아 크로스 네스티(Craw’s Nestie)란 별명이 붙었다. 이 별명이 변형돼 오늘날 골프장 명칭이 됐다.

31년 첫 개최 이래 2007년까지 7번의 브리티시오픈이 열렸다. 링크스 코스가 그러하듯 커누스티도 바람이 변수다. 종잡을 수 없이 불어대는 바람은 물론이고 이 코스는 홀마다 핀의 공략 방향이 달라서 더 어렵다. 67년 이후 개최된 디오픈 개최지 9군데 중 프로들의 평균 스코어가 76.09타로 가장 어려운 코스로 손꼽힌다.

코스 레이팅을 한 결과(바람 변수를 제외하고) 정규 옐로 티에서도 75.1타가 나와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다. 특히 17?8번 홀은 이름하여 ‘배리(Barry)의 개울’이 태극 모양으로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며 지나고 있어 코스 매니지먼트가 지극히 까다롭다. 99년 디오픈 마지막 라운드 17번 홀까지 3타차 선두를 달리다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로 우승을 놓친 장 방드 밸드의 비운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이혼과 부상, 수술로 악몽 같은 슬럼프를 거쳐 재기를 위해 노력 중이다. 로열 버크데일(파70, 6932야드) = 잉글랜드 서북 랭커셔 해안을 따라 모래언덕이 넘실대는 사이로 다림질한 듯 평평한 페어웨이를 가진 코스다. 1889년 개장한 로열 버크데일은 54년에 처음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면서 뒤늦게 주목받았다.

61년 아놀드 팔머가 우승한 디오픈은 로열 버크데일 코스뿐 아니라 디오픈의 권위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16번 홀(파4, 414야드)에서 팔머가 한 티 샷이 오른쪽으로 휘면서 핀 150야드 지점의 러프에 빠져 버렸다. 그곳에서는 보통 레이업을 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팔머는 6번 아이언으로 볼을 쳐 신기에 가깝게 그린에 올리면서 우승을 확정 지었다.

대회가 끝난 뒤 팔머가 볼을 쳐 올린 곳에는 기념판이 세워졌다. 71년에는 제100회 브리티시오픈이 열려 리 트레비노가 우승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에서는 18위에 올랐으며 지난해 9번째 디오픈이 개최돼 페드레이그 해링턴이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제치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턴베리(파70, 6950야드) =
스코틀랜드 에일사에 자리 잡은 턴베리에서는 2004년을 시작으로 올해 5번째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한다. 1909년 윌리 페르니의 설계로 탄생한 뒤 프랭크 홀이라는 골프 애호가가 2차 세계대전 때 비행장 건설로 파헤친 코스를 재건하면서 새롭게 탄생했다.

스코틀랜드 서편 해안 턴베리만과 클라이드만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 비치 코스로 8번 홀 페어웨이 옆으로 솟은 흰색의 높은 등대가 이 코스의 랜드마크. 4~11번 홀은 해안 절벽을 따라 코스가 흘러가며 9번 홀은 바다 낭떠러지 위에 티잉 그라운드가 있어 바다 건너 드라이버 샷을 날려야 한다.

이 코스에서는 ‘세기의 대결’로 유명한 77년 잭 니클라우스와 맞수 톰 왓슨의 격돌, 86년 그렉 노먼이 63타라는 최저타 기록을 경신하면서 우승한 디오픈이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등대를 배경으로 석양 속에 펼쳐진 명화 같은 코스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라운드 하려면
총 7개 코스를 가진 세인트앤드루스는 시영(市營) 골프장으로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트러스트에서 운영한다. 올드 코스에서 라운드 하길 원하면 일단 올드 코스 호텔에 묵는 게 좋다. 조를 짜서 전날 오후 2시까지 전화로 신청하면 추첨으로 티오프 타임을 배정한다.

첫날에 안 되면 다른 코스에서 라운드 하면서 하루 이틀 기다리면 당첨 가능성이 크다. 혼자라면 골프장에 일찍 가서 신청하고 기다리면 진행요원이 라운드 조에 끼워준다. 한국인으로 라운드 한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방법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올드 코스 그린피는 314달러(뉴 코스는 105~277달러)이며 올드 코스 호텔 숙박비는 1박에 약 270달러다.
지구촌 ‘골프 헌법재판소’ 영국골프협회(R&A)
로열 앤 에인션트(Royal&Ancient)라 불리는 세인트앤드루스 내의 영국골프협회는 1754년에 설립됐다. 골프장 회원들이 라운드를 마친 뒤 먹고 마실 주점이나 선술집을 찾으면서 만들어졌다. 초기 명칭은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앤드루스였으나, 1834년에 영국 왕인 윌리엄 4세가 이 모임의 후원자가 되면서 ‘로열(Royal)’이 붙었다.

영국의 코스 중에 로열이란 단어가 붙은 곳이 많은데 모두 왕실이 후원하거나 명칭을 하사하는 등 연관이 있다. R&A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더불어 오늘날 통용되는 골프 규칙을 제정하며 브리티시오픈을 주관한다. 초창기 골프 규칙은 여기서 나왔다. 설립 10년이 되던 1764년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홀 수를 22개에서 18개로 줄여 운영하면서 오늘날 한 라운드가 18홀로 굳어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서는 고(故) 허정구 대한골프협회 회장에 이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 2대째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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