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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추락, 날개가 없다

대한민국의 추락, 날개가 없다

올해 경제의 화두는 버티기다. 성장은 차치하고 지금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다행이다. 올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성장은 축소 또는 후퇴를 의미한다. 이 결과 인심은 흉흉해지고, 사람들은 성마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코노미스트가 위기의 대한민국을 긴급 해부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장모(43)씨는 지난해 말 회사로부터 실망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통상 다음해 1월에 월급의 150~400% 정도 지급해 오던 연말 성과급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장의 설명은 “내년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씨는 “매년 연봉계약 때 성과급을 포함해 연봉을 계약하는 관행에 비춰보면 사실상 올해는 20% 정도 임금이 깎인 셈”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경기가 어려울 게 뻔한 올해 성과급도 기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부인도 최근 경제 위기로 수입이 급감하는 등 가계 수입이 전반적으로 확 줄어들었다.

장씨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애 학원비도 늘어날 텐데 걱정이 크다”고 했다. 장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회사가 인력감축 등 계획을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타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2007년까지 상장회사 부장이었던 윤모(46)씨가 지난해 새로 시작한 빵집은 올 들어 지난해 초 대비 30% 이상 매출이 줄었다.

하나 있던 직원도 내보내고 윤씨 혼자서 빵을 직접 굽고 판매하고 있지만 하루에 15만원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이면 월 100만원인 임차료도 감당하기 힘들다. 윤씨는 “지금은 월급쟁이가 가장 부럽다”면서 “한 달 100만원이라도 월급을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뉴스에서 보던 경제위기가 서서히 사람들의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은행들의 대규모 적자, 자동차 회사들의 감산과 공장가동 중단 때까지만 해도 직접적인 당사자 외에는 경제위기를 TV와 신문에서만 느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5.6%로 확인되고 IMF에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4%로 발표하면서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지난해 말 3%대 성장을 예견했던 몇몇 연구기관은 요즘 전망치를 수정하느라 바쁘다).

직장인은 월급이 줄고, 각종 경비 축소로 회사 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골프 자제령과 해외 출장 시 비용 절감 등 지침이 내려와 있다. 자영업자들은 당장 매출이 줄어들었다. 불요불급한 업종은 예외가 없다. 지난해부터 한의원, 성형외과, 치과 등의 매출이 줄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일 KB국민은행연구소가 전국의 60만8023개 카드 가맹업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지난해 4분기 카드 매출액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자영업자의 카드 매출 대부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39개 업종 중 9개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카드 매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이는 연구소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처음이다.(표 참조)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이처럼 사회 전반에 파급을 미친다. 식당, 주유소, 목욕탕까지도 경제 성장률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경제는 경제학자나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직장이다.

실업률로 표현되는 고용지표는 이미 악화일로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경제 성장률이 1% 떨어질 때는 일자리가 5만3000개 줄어들고, 0% 성장 때와 -1% 성장 때는 각각 9만 개와 12만 개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이 -2%로 떨어지면 일자리는 18만 개가 준다. IMF의 전망치만큼 추락한다면 일자리는 거의 40만 개 이상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 수는 78만 명(2008년 12월 말 현재)이다. 다음 달 중 실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공식 실업자일 뿐이다. 구직단념자 등 구직 노력을 보이지 않는 비경제활동 인구는 제외된 숫자다. 실질적인 실업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노동시장연구본부장은 “실업자 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불완전 고용, 실업과 구직단념자 등 비경제활동 인구 등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비고용 인구”라고 지적했다. 허 본부장은 “보통 이 숫자는 실업자 수의 3배에 이른다”며 “이들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어려움이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니?

올해 -4% 성장 시 노동연구원의 추정보다 더 큰 60만~7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 -6.9% 성장한 1998년,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127만6000명이나 줄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올해 새로 생기는 실업자는 현재 실업자 수에 육박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실업으로 인한 사회 불안이 시작된다.

경제 성장률 마이너스는 기업의 생존도 어렵게 한다. 외환위기 때 경험해 봤듯이 줄도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해 1분기 55개였던 부도업체 수는 4분기에 963개로 껑충 뛰었다. 특히 12월에만 345개 기업이 부도를 내 월별 기준으로는 2005년 3월(359개)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부도는 종업원은 물론 주주, 거래처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직격탄이 된다. 실업과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어도 어려움은 있다.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실질임금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확한 통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생산라인을 멈추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가라고 독려한 지난해 4분기에는 실질임금이 더 떨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질임금의 감소는 소비감소를 불러온다. 실질소득에 변화가 없는 계층도 심리적 위기를 느끼면서 소비를 줄이게 된다.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 연구위원은 “실질소득이 줄어들면 가계부실은 커지고, 소비는 줄어드는 등 경제가 점점 더 위기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최근 신용불량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신용불량자 제도는 2005년 4월 폐지되면서 용어나 통계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정확한 신용불량자 숫자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신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카드버블이 고조된 2003년 말 신용불량자는 372만 명까지 치솟았다가 2004년에는 36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2007년 12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9월 말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금융채무불이행자 수 266만 명에 신용불량정보 삭제자를 더하면 사실상 신용불량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이 419만 명에 이른다고 조사된 바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2007년 9월 말에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현재도 과거 기준의 신용불량자 수는 2007년 9월보다 줄어들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최근 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정감사자료로 제출한 ‘경제위기에 따른 취약 계층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근로 빈곤층이 7만~8만 명, 신용불량자는 22만 명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2.5%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IMF가 제시한 대로 -4% 성장할 경우 근로빈곤층만 50만 명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경제 성장률 저하는 실업률을 높이고, 기업의 부도를 늘리고, 실질임금을 떨어뜨리면서, 신용불량자도 늘린다. 이런 경제적인 파급효과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피해는 훨씬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자살과 이혼, 범죄 등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런 사회병리 현상이 경제적 요인 하나만으로 분석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경제 성장률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그래프 참조) 경제 성장률이 잘 관리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소득층일수록 경제 성장률과 가계소득의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이다.

이는 저소득층이 단기적인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여건이나 임금 소득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함에 따른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경제 성장률은 평균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 자영업자, 내수 서비스업은 훨씬 타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즉 -4% 성장할 경우 대기업이나 첨단산업은 1% 정도 성장하겠지만 중소기업, 자영업은 사실상 -10%를 넘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의미다. 유 본부장은 또 “올해 서민가계의 대책이 시급한 이유는 자칫 경제위기가 정치,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즉시 고용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방과후 학교 활성화로 보조교사를 늘린다든지, 각종 복지 시설의 도우미를 늘리는 등 즉시 효과가 나는 일자리를 정부에서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다. 경제가 가라앉으면 사회도 와해될 수 있다. 경제성장은 한 사회를 발전시키고 안정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맹자도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며 먹고사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서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일정한 밥벌이가 없으면 염치도, 예의도 없어지는 게 사람이다. 경제에서 시작된 위기가 사회 위기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매일 뉴스에서 시위와 범죄, 이혼과 자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경제 성장률이 학자와 관료의 숫자놀음이 아니라 사회의 존망이 달린 일인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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