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ul Serenade]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교수님
서양 유학생들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맛보려고 한국에 오고, 동양 유학생들은 낯선 서양보다는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한국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베트남 사람인 나 역시 그랬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미 알았지만 교육환경도 경제 못지않게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을 서울대에 입학한 후 알게 되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교육환경과 비교하지는 못하겠지만 실험실의 첨단 장비, 엄청난 자료를 갖춘 도서관, 그리고 IT기술을 응용한 대학행정 등은 유학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예상보다는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이런 분위기가 교수님과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예전에 학생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존경하며 부모 섬기듯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스승과 제자의 거리는 그저 멀게만 느껴진다. 학생들에게 교수님은 존경하는 분이기에 앞서 무서운 존재, 다가가기 힘든 존재이기 때문인 듯하다. 교수님 앞에 서면 언변이 좋은 학생도 말이 없어진다. 왜 그럴까?
경영대에 다니는 선배는 이런 경험담을 내게 들려주었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몇몇 학생에게 사철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그중에는 사철탕을 못 먹는 여학생이 몇 명 있었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못 먹으니 다른 식당으로 가자는 말 한마디 못하고 교수님을 따라 사철탕집으로 갔다.
식사 중에도 개고기를 안 먹는 모습을 교수가 볼까 봐 먹는 척했다는 얘기를 듣고 왜 못 먹는다는 얘기를 못하는지 그 선배와 난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반대로 내가 한국 친구들을 당황하게 했던 일이 있다. 나는 날 음식을 못 먹는다. 첫 방모임 때 회를 먹으러 갔는데 회는 못 먹어도 튀김이나 매운탕을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따라 나섰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내게 왜 회를 먹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솔직하게 ‘제가 회를 못 먹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한국 친구들이 내게 보낸 눈빛과 말투에는 비싼 음식을 못 먹는 안타까움보다는 어떻게 ‘감히’ 교수님께 ‘못 먹는다’는 말을 하느냐는 놀라움이 묻어났다.
난 ‘못 먹습니다’가 아니라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을까? 스승의 날에 한국 교수님과 학생 간의 ‘벽’을 더 높게 느끼게 됐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학교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자 사회의 선배이며 인생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자의 일상, 가족, 심지어 고민까지 털어놓으며 마음을 나누는 정다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께 감사의 선물을 드리고 나면 모든 시간이 끝난다. 종종 밥을 같이 먹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왜 한국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 존재일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많은 유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교의 영향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 교수님들은 자기 분야에서는 ‘백과사전’이라 할 정도로 두루 안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은 제자들의 연구에 많이 기여한다.
그리고 그만큼 제자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때때로 그런 기대는 학생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교수와 학생의 대화가 줄어들면서 거리만 더 벌어지게 만들지 않나 생각된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한국 친구가 수업 발표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워 너무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한국 친구들도 “그래, 다들 발표문 쓰느라 밤 새우고, 정신없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럼 난 학생이 아니네…. 나는 발표문 쓰느라 밤을 새운 적이 없거든”이라고 말해 한국 친구들을 웃겼다. 유학생의 경우 교수님이 많이 보살펴 주셔서 그나마 괜찮지만 한국 학생들은 좋은 발표문과 과제 그리고 성적을 올리려고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제는 나도 잘 안다.
우리 과의 퇴직을 앞둔 교수님 한 분은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인사도 안 하고, 길도 양보해 주지 않아”라며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그 교수님을 모르는 다른 과 학생이었다 할지라도 나이 드신 분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는다면 야단맞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세태가 변했다고 학생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선생님이 학생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말은 아니다. 손꼽아 보니 한국에 유학 온 지도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습관이 몸에 배었다. 나는 이제 ‘엄격하지만 좋은 학업 환경을 갖춘’ 우리 학교에 적응하고, 애정을 갖게 되었다. 유
학생활이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그리고 졸업하면 한국 교수님처럼 박학다식하고 베트남 교수님처럼 정이 많은 선생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존경하는 한국 교수님들과 소중한 한국 친구들이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 온 필자 응웬 티 히에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필자가 한국어로 작성한 글을 편집진이 조금 수정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스라엘, 이란 혁명수비대 본부 공습…총사령관 사망”(상보)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일간스포츠
염경엽vs김경문 맞대결..너를 꺾어야 내가 산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이스라엘, 이란 혁명수비대 본부 공습…총사령관 사망”(상보)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엠플러스자산운용 매각 결국 불발…"수의계약 전환 고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HLB테라퓨틱스, 3상 결과 기대로 상승…애드바이오텍 연속 上 종료 [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