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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마케팅, 좋아진 품질로 시장 확대

공격 마케팅, 좋아진 품질로 시장 확대


지난 1월 11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 제네시스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된 후 이현순 현대차 부회장과 존 크라프칙 현대차 미국법인장 대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현대차가 최악의 판매 감소를 겪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예상 외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63년 1월 이후 최악인 -37%(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한 지난 1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오히려 14% 성장했다. 이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모든 자동차 업체 중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난 1월 현대차의 실적은 눈부셨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이에 대해 ‘차 값 환불제도와 북미에서 제네시스가 올해의 차로 뽑힌 점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IHT는 자동차 구매가이드 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의 제러미 애닐의 말을 인용해 ‘현대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인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마케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또 에드먼즈닷컴은 현대차가 바이백 프로그램을 시작한 첫 주에 현대차에 관한 문의가 15%나 늘어났다고 말했다.‘현대 어슈어런스’(Hyundai Assurance Program)로 명명된 차값 환불보장제도는 미국 경기가 위축되면서 실직의 두려움으로 새 차 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차 구입 후 1년 이내에 실직으로 할부금을 못 내거나 차량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반납하는 제도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차를 파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계량화할 수 없지만 미국 자동차 판매에 전혀 없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번 프로그램이 10년 전 현대차가 북미 시장을 노크하면서 처음 실시한 10년간 10만 마일 보증프로그램 못지않게 효과를 발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엔고로 일본 차 가격 경쟁력 추락

일부 경쟁사도 이에 주목하고 있다. AP뉴스에 따르면 시보레 북미 담당 부사장인 에드 페퍼는 “정말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마즈다 북미판매법인의 제임스 오설리번 사장은 “실직자의 차를 되사주는 제도를 검토해보았다”면서 “중고차 시세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 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현대차의 선전이 바이백 프로그램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차는 그동안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벗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서서히 그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현대의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가 ‘2009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것은 현대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유력 매체 기자단과 자동차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번 평가에서 제네시스는 500표 중 189표를 얻어 포드 플렉스와 폴크스바켄 제타 TDI를 제치고 최고 자리에 올랐다. 또 지난 11일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09 캐나다 국제 오토쇼(토론토 모터쇼)’에서 발표하는 ‘2009 캐나다 올해의 차’에 제네시스가 최종 선정됐다.

지금까지 한국 차는 1997년 현대차 티뷰론이 ‘스포츠 쿠페 부문’에서 ‘캐나다 최고의 차’에 이름을 올린 이래 몇 차례 ‘최고의 차’에 선정되었으나, ‘캐나다 올해의 차’에 최종 선정된 것은 이번의 제네시스가 처음이다. 또 지난해 6월 중고차 잔존가치 평가기관인 미국 ALG사의 동급 중고차 잔존가치 부문 1위에 올랐고, 11월에는 중고차 가격산정 평가기관인 미 NADA사의 ‘톱5 럭셔리 세단’에 선정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제네시스에 장착되는 타우엔진(4.6L, 가솔린)이 미국 자동차 전문미디어 워즈오토(Wardsauto)가 선정하는 2009 10대 엔진에 한국 엔진으로는 처음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차는 최근 2~3년간 스스로 자신의 품질력과 기술력을 증명해 왔다. 덕분에 미국 소비자들도 현대차를 구매목록 리스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이 기세를 몰아 보다 과감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일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보울 경기에서는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 ‘초고가’ 중간광고를 집행했다. 현대차 미국현지법인은 ‘화난 보스’편과 함께 현대 어슈어런스를 소개한 ‘계약’편을 수퍼보울 중간에 내보내 깊은 인상을 심었다.

수퍼보울 중간 광고의 단가는 30초당 300만 달러 수준. 현대차는 경기 전 방송되는 킥오프 광고 3개를 포함해 적어도 100억원이 넘는 광고비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대차 자체의 성과와 함께 엔고로 일본 차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이번 위기에 현대차가 선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원화는 달러 대비 31% 하락했지만 엔화는 19% 상승했다. 현대차는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30% 가까이 생겼지만 일본 차는 가격을 19% 인상해야 하는 압력이 생긴 셈이다. 가격에 민감한 불황기에 소비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쪽은 현대차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지난 4분기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6000억 엔(약 9조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금의 환율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현대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조1000억원의 매출과 1조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시장 환경도 현대차에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 2007년 하반기부터는 고유가로, 지난해에는 금융위기로 소비자들이 대형차와 픽업 트럭 등을 기피하면서 GM, 포드는 물론 도요타처럼 최근 대형 SUV와 픽업 트럭 라인을 강화한 일본 회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 환경도 현대차에 유리하게 조성

이에 비해 주로 중·소형차 위주인 현대·기아차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또 현대차는 미국 시장 위주인 미국 빅3 업체나 선진국 시장 위주인 도요타 등과 달리 수출 물량이 북미(30%), 유럽(30%), 기타지역(40%)으로 고르게 분산돼 있어 지난해 미국 시장의 침체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점도 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침체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강상민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총 13개 완성차 메이커의 실적을 확인한 결과 의미 있는 영업이익 수준을 유지한 업체는 3개에 불과했다”며 “그 가운데 현대·기아차가 가장 양호한 수익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 애널리스트는 또 “중소형차 중심의 경제성을 강조하는 수요패턴의 변화, 현대차가 갖고 있는 중소형차 생산경쟁력, 경쟁업체들의 구조조정 가능성, 세계시장 공략에 매우 우호적인 환율 및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등”을 현대차 경쟁우위 효과 기대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도요타가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으로 세계 곳곳에 생산시설을 늘렸지만 금융위기로 오히려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처럼 현대·기아차도 지난 2~3년간 세계 곳곳에 공장 신설과 증설을 추진해 온 점이 걱정이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인도에 2공장을 준공하면서 생산능력을 30만 대에서 60만 대로 확대했고, 중국에서도 기아차와 함께 100만 대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등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감행해 왔다.

슬로바키아는 이미 가동 중이고 체코도 올해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미국의 조지아 공장도 곧 가동에 들어가면 기존의 앨라배마 공장과 함께 미국에서만 연간 60만 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외에도 러시아에도 공장 설립을 발표하는 등 해외 생산 설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분석회사인 BMR컨설팅의 이성신 대표는 “올해 유럽이 본격적으로 침체에 들어갈 경우 현대차의 늘어난 해외 공장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기아차가 난코스인 올해를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 ‘자동차 경주’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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