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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자라 이 아비처럼 살아라!”

“너희도 자라 이 아비처럼 살아라!”

직업과 취업지도 분야 권위자로 인정 받고 있는 김준성 연세대 직업평론가가 ‘한국인의 직업 대물림 행태 분석’이라는 논문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소재도 참신하지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코노미스트가 미리 소개한다.

인천에서 중화요릿집 태화원을 운영하는 손덕준 사장,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현명농장 이명자씨, 토종벌 박사 김대립씨, 청주에서 전통 엿을 파는 윤일식씨, 김세윤 우보한의원 원장, 함께하는교회 방인석 목사,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
이들의 공통점은?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힌트가 더 있다.

축구선수 차두리, 가수 이루, 영화배우 최민수, 탤런트 송일국. 그렇다. 모두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직업의 대물림’은 아직 낯설다. 기업이나 성공한 음식점을 자녀가 이어받는 ‘가업 잇기’나 연예인 2세 이야기는 종종 알려지지만, 부모와 자녀가 직업이 같은 ‘직업의 대물림’은 지금도 언론 매체에 보도될 만큼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직업 대물림의 7가지 형태

사실 ‘너희는 이 아비처럼 살지 마라’ ‘난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요’는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관통해 온 의식이었다. 하지만, 김준성 연세대 직업평론가는 “직업 대물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가 ‘한국인의 직업 대물림 행태 분석’이라는 논문을 집필한 이유다.

김 평론가에 따르면 연예계, 특수 기능직, 성공한 자영업 분야에 머물던 직업 대물림이 스포츠계·전문직·문화예술계·학계·제조업 분야 등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그는 “전후 세대 부모들의 직업관, 갈수록 치열해지는 직업환경, 탈권위적인 가족 문화, 사농공상 의식의 변화 등이 직업 대물림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직업 대물림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김 평론가는 크게 기획 교육형, 일시 전수(傳授)형, 비(非)전수형, 평생 전수형, 상속형, 매니지먼트형, 콘텐트 수정형으로 나눈다. 기획 교육은 부모가 자녀의 가업 승계, 직업 잇기를 기획해 진행하는 구조다. 이 경우 자녀는 부모의 직업과 연관된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으며 역량을 키워간다.

기업 오너가 자녀에게 경영학 공부를 시키고, 회사에 취직시켜 경영을 가르치는 것이 전형적인 기획 교육 방식의 직업 대물림이다. 종교 권력의 세습이라는 지탄이 존재하지만, 종교계에서도 이런 기획 교육 사례가 많다.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스타 차범근 수원삼성 감독과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 선수의 예는 기획 교육을 통한 직업 대물림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일시 전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직업 노하우를 일시에 가르쳐 주는 방식이다. 연예계에 특히 많다. 장성한 자녀가 연예계 데뷔를 희망하는 경우, 연예인 부모는 자녀의 데뷔 전후로, 자신의 노하우를 일시에 전수해 준다. 배우 2세들이 “연기에 대해 부모님께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반면, 비 전수 방식은 직업은 대물림됐지만, 노하우를 가족 간에 주고 받은 경험이 없는 경우다. 김준성 평론가는 “부모가 일찍 작고해 자녀에게 직업을 권유하거나 여러 이유로 노하우를 전수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직업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직업 적성인자가 유전됐거나, 자녀 스스로 부모의 직을 이어받겠다는 의지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평생 전수는 ‘가업 잇기’나 ‘직능 전수’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부모가 직업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평생에 걸쳐 전수하는 구조다. 쉬운 예로 ‘며느리도 몰라’라는 광고 문구로 잘 알려진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을 들 수 있다. 충북 제천에서 전통 빗자루 제조 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이연수씨, 1998년 대한민국 도자기 공예 부문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옹기명장으로 인정받은 황충길 전통예산옹기 대표 등도 평생 전수를 통해 직업을 대물림 받은 사례다.

김 평론가는 “평생 전수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단계씩 세밀하게 노하우가 전수되는 방식”이라며 “일본 시니세(老鋪·오랜 가업) 문화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상속형은 말 그대로 기업을 통째로 물려주는 식이다. 재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후손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다. 이 경우 직업 기술력의 전수에 소홀한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획 교육이나 평생 전수 방식이 접목되는 경우가 많다.



노하우가 이어지는 사회

매니지먼트형은 요즘 부각되는 직업 대물림 구조다. 특정 직업을 가진 부모가 관련 분야에 진출한 자녀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면서 노하우 전수, 지도·컨설팅까지 해주는 방식이다. 탤런트 겸 가수 장나라씨와 그의 부친 주호성씨가 대표적인 예다. 1988년 백상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호성씨는 딸이 연예계에 데뷔한 후, 매니저 역할로 돌아선다.

다른 연예인 가족과 차별되는 방식이다. 김 평론가는 “연예계뿐 아니라, 최근에는 골프·축구 등 스포츠계에도 매니지먼트형의 직업 대물림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콘텐트 수정형은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하되, 일하는 내용을 수정하는 형태를 말한다. 강원도 정선군 낙동리에서 제일농장을 운영하는 전영석·염영주 부부가 그런 예다.

올해 서른두 살 동갑내기인 부부는 부모가 농사를 짓던 땅에 고랭지채소·더덕·오갈피 등 대체 작목을 재배하고, 1200여 평 규모의 축사와 퇴비공장을 운영한다. 김 평론가는 “새로운 방식과 도전을 통해 성공적인 가업 잇기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직업 대물림은 노하우가 끊어지는 사회에서 이어지는 사회로 가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이는 권력과 부가 세습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자질도 없는 자녀를 정치계에 입문시키거나, 대학교수가 불공정한 절차를 통해 자녀를 교수직에 앉히는 직업 대물림(김 평론가는 대학사회에 이 같은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고 밝혔다)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부모가 갈고닦은 노하우를 자녀에게 전수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직업 대물림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발전 가능성이 없고, 일이 힘들고, 소득이 낮고, 사회적 대우가 낮다는 이유로 자신의 직업을 자녀에게 권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직업 빅뱅이 일어날 겁니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보다, 정밀한 기능 능력과 노하우를 보유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될 거예요. 오랜 세월 취업 상담을 해 온 결과, 부모와 자식 간에 직업 적성인자가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객관적으로 자녀를 판단하고, 직업을 대물림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변호사라면 로스쿨에 진학시켜 자격증을 따게 하고, 이후 본인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자식에게 전수하는 겁니다. 보험설계사도 마찬가지고, 의사·교사·기능직·언론인·화가·작가·경찰·요리사도 마찬가집니다. 직업 대물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 획일적인 교육 행태와 입시 경쟁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도 청년 취업난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디자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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