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름값 예측 못해 큰 실수… 미국 국채 집착은 금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은 많은 이가 고대하며 그 내용에 따라 주가가 들썩이기도 한다. 뉴스위크의 모회사인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 이사인 버핏이 올해는 엄혹한 경제환경을 주제로 편지를 썼다.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지난 44년 동안(다시 말해 현 경영진 취임 이래) 버크셔 해서웨이의 장부가치는 19달러에서 7만530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연간 20.3%의 복리 이율이 붙은 꼴이죠. 그러나 2008년은 버크셔의 장부가치와 스탠더드&푸어스(S&P) 500 지수 모두에 지난 44년 중 최악의 한 해였습니다. 회사채와 지방채, 부동산과 원자재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연말께는 온갖 유형의 투자자들이 피를 흘리며 마치 배드민턴 경기장 안으로 날아든 작은 새들처럼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달이 바뀔수록 세계 다수의 유수한 금융기관 안에서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잇따라 터졌습니다. 이로 인해 신용시장이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곧 중요한 기능들이 작동을 멈췄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음식점 벽에서 봤던 문구가 온 미국인의 표어가 됐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지만 다른 모든 사람은 현금을 냅니다.” 4분기에 이르자 신용위기는 주택·주식의 가격폭락과 맞물려 사지를 얼어붙게 하는 공포를 낳았고 그것은 온 나라를 집어삼켰습니다. 경제활동도 뒤따라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급속히 마비됐습니다.
미국(그리고 세계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결과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에 갇혀 버렸습니다. 공포가 경기 위축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또다시 더 커다란 공포를 낳았습니다. 이 같은 소모적인 악순환이 이어지자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대응조치에 나섰습니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포커 용어로 ‘올 인’을 한 거죠.
전에는 컵으로 공급하던 경제 회복제를 최근엔 통으로 쏟아 붓습니다.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복용량이 반갑지 않은 후유증을 낳을 게 거의 확실합니다. 정확한 성격은 모르겠지만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 더욱이 주요 산업들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됐으며 시와 주 정부들도 그 뒤를 따라 엄청난 지원을 요구할 듯합니다.
이들에게 공적 자금을 중단하기는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따르든 금융 시스템의 총체적 와해를 피하려면 정부의 강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시스템이 붕괴됐다면 미국의 모든 경제 분야에 일대 격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싫든 좋든 월 스트리트(금융가), 메인 스트리트(실물 경제) 그리고 미국의 온갖 스트리트의 주민들은 모두 한 배를 탄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악재 속에서도 미국이 훨씬 더 큰 역경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세기에만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그중 하나는 처음에는 패하는 듯했지요), 10여 차례의 공황과 불황, 1980년 프라임 레이트(우량 대출금리)를 21%까지 끌어올린 악성 인플레이션, 그리고 수년간 실업률이 15~25%대에 머물렀던 30년대의 대공황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결코 적지 않은 도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그런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그런 장애물(그밖에 다수의 난관)에 맞닥뜨리고도 미국인들의 실질적인 생활수준은 1900년대 중 일곱 배 가까이 향상됐으며 다우존스공업지수는 66에서 1만1497까지 상승했습니다.
인류가 수십 세기 동안 이룩한 생활환경의 아주 작은 발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업적입니다. 그 길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장기적으로는 아주 잘 돌아갔습니다. 다른 어느 시스템도 하지 못했던 인간적 잠재력을 발휘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미국의 전성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현명한 대출자는 집값 상승을 믿고
투자하지 않았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사업체 중 클레이턴 홈스가 있습니다. 조립주택 업계 중 가장 큰 회사죠. 이 회사의 최근 경험이 주택과 모기지를 둘러싼 공공 정책 토론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1990년대) 조립주택 업계는 대부분 비상식적인 영업관행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질적인 선납금의 필요성을 빈번히 무시했습니다.
때로는 서류를 위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도저히 감당 못할 액수의 대출 월부금 조건에도 계약하는 차입자들이 있었습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었던 거지요. 거기서 생긴 모기지는 대체로 포장(‘증권화’)된 다음 월스트리트 회사들이 순진한 투자자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폭탄 돌리기는 당연히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클레이턴은 융자할 때 훨씬 더 지각 있는 융자 관행을 따랐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실제로 클레이턴이 발행한 뒤 증권화한 모기지를 구입한 사람은 원금이나 이자를 한 푼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클레이턴은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전체 업계의 손실은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 큰 전통 주택시장은 97~2000년의 사태를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투자자, 정부, 신용 평가사들은 이 조립주택 사태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2004~2007년 전통 주택시장에서 오싹할 정도로 똑같은 재앙이 되풀이됐습니다.
대출기관은 차입자들의 소득으로는 갚을 수 없는 돈을 기꺼이 빌려줬고 차입자들도 그런 상환 조건을 따르겠노라고 선뜻 서명했습니다. 양자 모두 ‘주택가격 상승’만 믿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 합의했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그 문제는 내일 생각할 거야”라는 배짱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의 결과가 요즘 미국 경제의 구석구석에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클레이턴의 차입자 19만8888명은 주택시장이 붕괴할 동안에도 내내 계속 정상적으로 대출금을 상환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차입자들(대체로 소득이 많지 않고 높은 신용점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은 왜 상환실적이 그렇게 좋을까요? 그 답은 융자의 기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 차입자들은 최대 모기지 상환액과 실제(희망이 아닌) 소득을 비교한 다음 그런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생활할 수 있을지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주택가격이 어떻게 변동하든 간에 모두 갚을 생각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우리 차입자들이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들은 차환(저리 대출로 대체)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방법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거치 기간이 지나면 상환액이 소득을 훨씬 뛰어넘는 ‘미끼’ 금리로도 대출받지 않았습니다. 모기지 상환이 부담스러워지면 언제든 이익을 남기고 집을 처분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 차입자 중 다수도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형편이 어려워지면 버틸 만한 경제적 여력이 별로 없습니다. 연체나 압류의 주요 원인은 실직이지만 사망, 이혼, 의료비도 곤경의 원인입니다. 실업률이 증가하면 클레이턴의 더 많은 차입자가 난관에 봉착하고 우리의 손실도 여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지만 더 커질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전혀 집값 동향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주택 위기를 논할 때 종종 대다수 압류는 집값이 모기지 액수보다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보다는 차입자가 대출 월부금을 납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실질적인 선납금(또 다른 차입금이 아니라 자기 자본)을 납부한 주택소유자들은 단지 현재 집값이 모기지보다 떨어졌다고 해서 주요 주거지를 떠나는 일이 드뭅니다.
대신 대출 월부금을 상환하지 못할 때 집을 내놓습니다. 내 집 마련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현재의 주택에서 50년간 살았으며 당분간은 떠날 계획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택의 구매는 쾌적함과 기능성이 1차적인 동기가 되어야지 이익이나 차환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구입한 집은 구매자의 소득수준과 맞아야 합니다.
주택 소유자, 대출기관, 중개기관 그리고 정부가 현재의 주택시장 붕괴로부터 몇 가지 간단한 교훈을 배운다면 앞으로 시장 불안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택을 구입할 때는 거짓 없이 최소 10%의 선납금을 내고 대출 월부금은 차입자의 소득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을 철저히 검증해야 합니다. 주택마련 장려는 바람직한 목표지만 국가의 1차 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주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가장 최근의 거품, 단기 국채
지난해 나는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여럿 중 두드러진 하나). 석유와 가스 가격이 거의 꼭짓점에 다다랐을 때 코노코필립스 주식을 대량 매수했습니다. 하반기에 발생한 에너지 가격 급락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죠. 나는 아직도 앞으로 유가가 현재의 40~50달러대보다 훨씬 더 오를 확률이 높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게다가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매수시점을 크게 그르쳐 버크셔에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안겼습니다. 지난해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우리는 리글리, 골드먼삭스, 제너럴 일렉트릭이 발행한 총 146억 달러 상당의 확정금리 증권을 매입했습니다. 우리는 이 투자에 상당히 만족합니다.
현재 수익률이 높아 그 자체만으로도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 건의 매입 모두 상당한 지분 참여를 보너스로 얻었습니다. 이 거액의 매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 보유하고 싶었던 몇몇 종목(일차적으로 존슨&존슨, 프록터&갬블, 코노코필립스)의 일부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넉넉한 현금을 갖고 버크셔 해서웨이를 운영하기로 약속했습니다(주주, 신용평가사, 나 자신에게).
우리는 낯선 사람의 호의에 의존해 내일의 채무를 이행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내게 택일하라면 추가 이익의 기회를 놓고 단 하룻밤도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던 투자자들이 과대평가하는 쪽으로 돌변했습니다. 변화의 폭이 작지 않았습니다. 중심추가 극에서 극으로 아치를 그렸습니다.
몇 년 전 무위험 단기 국채의 수익이 제로에 가깝고 장기 국채 수익이 아이들 용돈 수준일 때도 등급이 높은 지방채나 회사채로 요즘 같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금융 역사를 쓸 때 분명 90년대 후반의 인터넷 거품, 2000년대 초의 주택거품이 언급될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 후반의 미 단기국채 거품도 그에 못지않게 상당했다고 여겨질지 모릅니다. 현금등가물(현금과 동등한 실현가치를 가진 자산)이나 현 수익률로 장기 국채에 집착하는 것은 장기간 지속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게 거의 확실합니다. 이런 자산의 보유자들은 물론 금융혼란이 가중될수록 마음이 더 편안해졌을 것입니다(우쭐한 마음도 생겼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현금이 왕”이라는 논평을 들으면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 훌륭한 현금의 수익이 제로에 가깝고 장기적으로 구매력이 분명 잠식되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인정받는 것은 투자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뇌가 자기만족에 빠져 새로운 사실이나 앞서 내린 결론의 재점검에 둔감해지기 때문에 비생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박수갈채를 받는 투자행위를 경계하세요. 하품을 유발하는 투자가 대체로 훌륭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Klout
Klout
섹션 하이라이트
섹션 하이라이트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 모아보기
- 일간스포츠
- 이데일리
- 마켓in
- 팜이데일리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충청서 압승 거둔 이재명…득표율 88.15%(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어머니, 아버지 저 장가갑니다”…‘결혼’ 김종민 끝내 눈물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충청서 압승 거둔 이재명…득표율 88.15%(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EU있는경제]투자만이 살 길…PE 규제 허물고 반등 노리는 英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동물실험 폐지 명암] 투심 쏠린 토모큐브, 빅파마가 주목하는 까닭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