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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nvestor] 부(富)의 파괴 시대가 도래한 걸까

[Global Investor] 부(富)의 파괴 시대가 도래한 걸까

경제와 증시에 훨씬 더 파국적인 대재앙이 임박했다고 믿는 현자(賢者)가 많다. 나 역시 몇 주 전보다 더 비관적으로 변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세계적 투자자들의 대규모 회의가 두 차례 열렸다. 참석자의 절반 이상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경제회생책이 규모 면에서 너무 작고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었으며, 그의 후광이 사라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안정되는가 싶던 미국·유럽·일본의 소비자신뢰지수가 지난 주말 이래 다시 떨어졌다. 경제 전문가와 전략가들은 세계 경제 침체가 더 깊고 오래 지속되며, 주가도 20~30%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골수 비관론자들은 최악의 경우 대공황에 필적하고 최선의 경우에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1990년대)에 비견할 만한 장기 불황이 닥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한다. 현재 세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경기부양책을 추진 중이다. 최종 수요의 세계적인 감소 현상은 애당초 무모하고 투기적인 신용대출과 유동성의 확대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부채 청산의 악순환에 휘말려 있다.

투기를 부추긴 탐욕스러운 은행들을 살리려고 구제금융을 쏟아 붓는 행위는 “불을 끈답시고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다”(경제 자문업체 아시아노믹스의 짐 워커 연구원 표현). 이는 화재를 더 키울 뿐이다. 워커는 경기부양책이 신용위기를 연장하고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모한 자금 공급은 초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더 고통스러운 위협이다. 20년대 독일이나 비교적 최근인 브라질과 짐바브웨의 초인플레 경험을 떠올려보라. 워커는 세계 경제가 살인적인 초인플레와 함께 장기적으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으로 예상한다.

워커는 오스트리아 학파에 속하는 경제 전문가다. 하이에크와 슘페터 등 세계적 석학들을 배출한 학파다. 이들은 케인스를 경멸한다. 이들에 따르면 부채의 악순환을 치료하려면 세계 경제가 단기적이지만 매우 가파르고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지도록 방치해야 한다. 그러면 부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부실 은행과 기업은 파산하며, 실업률이 치솟는다.

하지만 건강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새 시대의 토대가 마련된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이 과정을 “창조적 파괴”라고 부른다. 그 과정의 고통이 격심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고통이 짧은 기간에 집중된다고 주장한다. 호황기의 문제점은 이런 불황에 의해서만 시정할 수 있다. 한편 조지 소로스는 과거의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어 정부가 신속히 움직이고 ‘과잉 살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미온적으로 대처하면 위기 자체에 타성이 붙게 된다. 이럴 경우 30년대의 대공황 같은 죽음의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이를 반전시키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이런 논리에서 볼 때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경제의 혈류 속에 충분한 재정적 아드레날린을 신속히 투여하지 못한 셈이다.

소로스 등 몇몇 전문가는 경기부양 자금이 1조 달러를 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게다가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이 2010~2011년에야 투입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소로스는 여러 문명의 흥망사를 언급하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시기가 대체로 두 세대(약 60년) 동안 지속됐다고 말한다.

축재 경쟁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시기심을 낳고, 결국 한 세대에 걸친 부의 파괴 과정이 뒤따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의 창출 사이클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인 40년대 말에 시작됐다. 소로스는 그 사이클이 2007년 절정에 이르렀고, 이제 세계는 매우 고통스러운 한 세대 동안의 부의 파괴 사이클에 들어섰다고 믿는다.

금융 시스템 구제책으로 ‘스웨덴 모델’을 지목하는 전문가가 많다. 90년대 초 스웨덴은 부동산 부문에서 거대한 투기 거품이 생겼다. 그러자 정부는 신속한 대응에 나서 은행들의 악성 채권을 ‘양호한 배드 뱅크(good bad bank)’에 넘기도록 강제하고, 부실 은행의 파산을 대부분 방치했다.

그 후 남은 은행들을 국유화하고 경영진을 교체했으며 세금을 인하했다. 스웨덴 경제는 회복됐고, 국유화된 은행들은 몇 년 뒤 다시 민간에 매각해 자금을 회수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는 오바마 행정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스웨덴 모델을 채택하길 희망했지만 소리만 요란했지 실상은 실망스러웠다.

가이트너의 경제 대책 설명은 모호한 데다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했다. 비관론자들은 대공황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정부의 실책 때문에 심화되고 장기화됐다고 주장한다.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세금을 올렸고,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다년간 꾸물거렸다. 일본의 교훈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만으론 부족하다는 점이다.

은행 구제금융은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부실 은행은 반드시 국유화돼야 하며, 미국과 유럽은 그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에도 잃어버린 10년이 찾아오고 주가는 25%나 추가로 폭락할지 모른다. 이는 투자자들을 괴롭히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들의 일부다. 그들은 새로운 증시 저점과 불황이 앞길에 놓여 있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필자는 뉴욕 소재 헤지펀드인 트랙시스 파트너스의 경영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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