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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라

실수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라

CEO들은 수많은 결단 속에서 산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 결과로 고객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많은 CEO는 이에 대해 책임 회피나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그러다 일이 커져 CEO가 물러나거나 회사 자체가 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급기야 개인이나 조직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포브스코리아는 이번 호부터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함께 쓰는 ‘사과의 기술’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최초의 신경과학적 접근이다.

미국의 광고 전문지인 <애드버타이징 에이지> (Advertising Age)는 2008년 올해의 마케터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선정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배리 리버트와 릭 포크는 <오바마 주식회사> 라는 책을 통해 경영자들이 오바마를 벤치마킹 해야 할 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전략 등 기업 경영의 다양한 분야에서 오바마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무명의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수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으로부터 지금의 경제 위기 상황 속에 처한 기업들이 분명히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바마도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

지난해 11월 8일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처럼) 혼을 부르는 의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언급하는 실수를 했다.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이 지은 한 저서에 소개된 ‘낸시 레이건이 점성술사를 데려다 주술적인 행사를 했다’는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여 기자에게 “스위티(sweetie)”라고 부르는 실수도 했다. 이는 오바마의 버릇이기도 한데 가까운 친구에겐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쓸 표현은 아니었다. 최근엔 오바마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톰 대슐 보건장관 내정자와 백악관 최고성과책임자로 임명한 낸시 킬리퍼 등이 모두 탈세 의혹으로 낙마하자 오바마의 인선 과정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우리는 오바마의 실수나 잘못 자체보다는 그가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금까지 관찰에 의하면 오바마는 자신만의 위기 극복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수 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과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낸시에게는 기자회견 후 바로 직접 전화해 사과했으며, 전화를 받지 못하는 여 기자에게는 음성 메시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의 말을 남겼다(대통령이 기자에게 음성 메시지로 사과를 남기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실패한 인선과 관련해서는 “내가 일을 망쳐놓았다(I screwed up)” 그리고 “나는 내 자신과 우리 팀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이는 부시를 비롯한 기존의 미국 정치인은 물론 우리나라 정치인과도 매우 차별화된다. 특히 취임 초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과는 즉각적인 위기 극복 전략

역사적으로 보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대중을 향해 사과하는 것은 최근에 와서야 발견된다. 우리의 경우를 한번 보자. 지금은 흔하게 듣는 ‘대국민 사과’란 표현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흔치 않았다. 중앙일보에서 ‘대국민 사과’를 검색해 보면 2001년 이전 기사에는 연평균 10건이 넘지 않았다.

IMF 경제 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대국민 사과’란 표현이 아예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2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연평균 200건이 넘는 관련 기사가 검색된다. 특히 2002년은 주목할 만하다. 이 해에는 300건이 넘는 관련 기사가 검색되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차남 홍업 씨의 구속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김각중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대행은 정권이 바뀌자 지난 30여 년간 기업 활동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2002년 말 노무현 대통령 후보 당선이 확실시 되자 정몽준 의원은 선거 막판 혼란 초래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이런 사과의 급증 현상은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사과’ 전문가인 아론 라자르 박사는 ‘사과(apology)’ 혹은 ‘사과하다(apologize)’란 표현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나타난 빈도를 조사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쓰루시마 다쿠오 사장이 2005년 12월 기자회견에서 매도 주문 취소 관련 실수를 사과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에서 94년 사이에는 1193건이던 것이 98년에서 2002년 사이에는 200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앙일보를 검색해 보면 ‘사과하다’ 혹은 ‘공개 사과’란 단어는 90~94년에는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98년부터 2002년에는 ‘공개 사과’로 1200여 건, ‘사과하다’로 무려 9000건 가까이 검색된다. 검색의 정확도가 100%가 아니라고 해도, 엄청나게 증가된 수치임엔 틀림없다. 그렇다면 IMF 이후 사람들이 ‘사과해야 마땅한 일’을 더 많이 저지르게 된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지면서 예전에 비해 드러나는 죄가 많아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따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즉 정부나 기업이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의 횟수가 매년 비슷해도, 공개적인 사과는 꾸준히 늘어나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리더십을 연구하는 바버라 켈러먼은 200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에 기고한 글을 통해 ‘리더의 공개적인 사과가 지금처럼 중요한 이슈가 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학계에서 ‘사과의 중요성’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라자르 박사는 사회심리학이나 언어심리학 분야에서 사과에 대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이르러서라고 말했다. 사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90년대에 나타났으며, 최근 5~6년 사이에 의학 박사인 라자르나 MIT의 정치학자인 멜리사 노블 교수 등이 저서를 내놓으며 조금씩 본격화 돼 가고 있다.



지금은 비밀 없는 투명 사회

그렇다면 왜 정치나 비즈니스, 학계에서 ‘사과’ 이슈가 점차 중요해지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이로 인한 사회 변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6년 6월 21일 영국의 <인콰이어러> (Inquirer)에 델(Dell) 노트북 컴퓨터가 일본의 한 회의장에서 폭발해 불타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은 델의 배터리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처음에 부인하던 이 회사는 결국 8월에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배터리를 리콜하게 된다. ‘웹 2.0’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명은 비밀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를 취재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로 일상을 ‘취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덕분에 기업의 실수나 잘못이 쉽게 공론화하고, 이에 따라 사과해야 할 경우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소위 ‘힘의 이동’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더 이상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삼성의 차명계좌 의혹으로부터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물러나게 된 사건과 현대자동차의 비자금 사건은 모두 내부고발자에 의한 것이었다. 조직의 힘이 ‘빠지면서’ 일반 소비자나 국민의 공개 사과에 대한 압력이 점차 늘어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에 요구하는 책임감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사업에 대한 책임을 넘어선다. 생각해 보라. 지금처럼 기업에 사회적 책임(CSR갅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요구한 때가 있었는가? 소비자에게서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책임을 비롯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환경적 책임까지 기업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종류는 점점 늘어만 간다.

책임의 무게와 사과의 가능성은 비례한다. 즉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리더가 나서서 사과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사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갈등 조정 수단이다. 최근 들어 사과의 중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위기와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장’하는 사과가 자주 목격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법적인’ 보호를 위해, 혹은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과보다 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하다. 기껏 한다는 사과 역시 ‘의례적’이란 인상을 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는 등 ‘사과의 기술’ 부족으로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영국 수상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사과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19세기 미국의 시인인 랠프 에머슨은 “분별 있는 자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사과에 대한 인식은 오랫동안 부정적이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그렇다면 21세기에도 기업의 리더들은 사과에 대해 19세기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버드대의 켈러먼은 사과에 대한 연구를 종합한 후 ‘실수나 잘못 앞에서 사과를 하는 리더들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리더들은 전반적으로 사과가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예를 들어 법적 고소의 가능성, 체면의 손상)은 과대평가하고, 긍정적 이득(예를 들어 갈등 해소, 관계 개선, 문제 해결)은 과소평가 한다고 켈러먼은 지적한다.

리더의 사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가 최근 오바마에게 주목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한 그의 차별화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결과다. 그는 위기 때마다 적극적인 사과를 했으며, 이는 대중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매번 실수나 잘못 이후 비난 여론은 매우 빠르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인선 과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사과에 인색한 우리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모두 인정하듯 오바마는 리더십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사과가 패자의 언어가 아닌 리더의 언어란 점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가 사과의 과학을 연구하는 필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이유다.

신경과학자인 정재승(왼쪽) 박사와 김호
위기관리 컨설턴트는 현재 KAIST에서 ‘효과적인 사과’에 대한 신경과학적 탐구를 하고 있다. 김호 컨설턴트는 위기관리 워크숍 전문회사인 더랩에이치(thelabh.com) 대표이며,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 트레이너 자격(CMCT)을 갖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단일 PR컨설팅회사로는 세계 최대인 에델만코리아 사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기업의 위기관리 컨설팅을 했으며,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사과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지도교수인 정재승 박사는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이면서 문화기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김 대표와 함께 ‘효과적인 사과의 기술’을 신경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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