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 Front] 더 유용해진 집안의 와인 셀러
[The Home Front] 더 유용해진 집안의 와인 셀러
처음에 남편 빌이 지하실에 와인 셀러(저장고)를 만들자고 했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겉치레로 느껴지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보스턴 시내에 나가면 다양한 와인을 갖춘 좋은 식당이 수두룩한데… 어차피 집에서 와인 마실 일이 별로 없는데 왜 지하실에 와인 병들을 가득 쟁여 놓아야 하지?
하지만 경기침체가 닥치자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모두가 그렇듯 우리 집도 타격이 만만치 않다. 저녁 외식은 풍요로웠던 과거의 추억이 됐다. 은박지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둔 남은 음식을 꺼내 먹고, 아이들에겐 보통 아침용 간단한 음식을 저녁으로 주기도 한다. 생선초밥은 특별한 날에나 먹는다.
하지만 와인 셀러에 내려가 보면 ‘우리가 아직도 괜찮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의 와인 컬렉션은 가격이나 수량 면에서 내세울 만한 수준은 못 된다. 모두 400병 정도 되는데 한 병에 125달러가 넘는 와인은 없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와인 병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와인 병에 붙은 상표는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듯하다. 1995년 산 도미누스(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산)와 피오 세자레 바롤로(이탈리아 산) 중 어느 쪽을 마실까 고민하노라면 돈에 쪼들리거나 비참한 현실은 까마득히 잊게 된다. 비록 안주는 마카로니 치즈뿐일지라도 말이다.
예쁘장하게 지어진 우리 와인 셀러는 그 자체가 호시절을 상기시킨다. 1755년 건축된 농가를 개조한 우리 집 지하실에 동네 목수가 지은 이 저장고는 가로 2m, 세로 3m로 벽돌 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바닥엔 타일을 깔았고 은은한 간접조명을 사용했으며 벽과 천장은 포근한 느낌의 베이지색으로 칠했다.
온도는 섭씨 13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또 보일러의 열기와 소음을 차단하는 유리 문은 닫을 때 기분 좋게 ‘찰칵’ 소리가 난다. 때때로 세 아이와 그 친구들, 그리고 두 마리의 강아지가 소란을 피우는 집 안에서 벗어나 그곳에 숨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손님과 함께 와인 셀러를 둘러보는 일은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의식이 됐다.
계단을 내려가 목수의 수작업으로 완성된 저장고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와인 병따개와 디캔터(포도주를 식탁에 낼 때 사용하는 유리병), 섬세한 거름망 등 도구들과 미국 삼나무로 된 선반에서 풍기는 향에 감탄한다. 그리고 조그만 삼각형 칸에 보관된 와인 병들을 구경한다. 병마다 구입한 날짜와 가격이 쓰인 하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제각각 사연을 간직한 그 와인들을 볼 때면 정말로 우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그 사연을 일일이 기억한다.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자주색 감자 요리와 함께 마셨던 스페인 와인 알바리뇨. 어떤 시음회에서 병에 와인업자의 사인을 받은 존 듀발 쉬라즈. 그 와인업자는 자신이 호주의 유명 와인업체 펜폴즈에서 포도주 제조 기술을 배우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1996년 보르도 산 샤토 팔메는 우리가 뉴저지주의 빅토리아풍 주택에 살던 6년 전 크리스마스 때 내가 남편에게 선물했다. 우린 또 와인 셀러에 내려갈 때마다 돈 안 들이고 멋진 여행을 한다. 1998년 산 카스텔라레 키안티 클라시코는 어느 핸가 8월에 우리 가족이 일주일간 휴가를 보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루 종일 헤엄친 아이들은 느긋하게 계속되는 저녁식사 시간 내내 여왕잡기 카드놀이를 하며 간신히 식탁에 붙어 있었다. 또 선반 맨 위쪽에 있는 이니스클린 아이스 와인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나이애가라-온-더-레이크라는 매력적인 도시에서 열렸던 친척 결혼식에서 보낸 주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하이츠 마사스 비녀드의 카베르네 와인은 어느 해 가을인가 들렀던 나파 밸리의 와인 시음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또 1991년 산 매길 에스테이트 쉬라즈는 우리가 3년 동안 런던에 살았을 때 동네 큰길 모퉁이의 오드빈스 와인 상점에서 샀다. 요즘은 우리 말고도 집 안의 와인 셀러를 위안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영국 유통업체 막스 & 스펜서는 올 들어 런던에서 샤토뇌프-뒤-파프(프랑스 남부 산)의 매출이 200%, 비프 캐서롤(쇠고기가 들어간 찜 냄비 요리) 매출이 60% 증가했다고 밝혔다. 집에서 여는 저녁 모임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남편은 요즘 빠른 속도로 비어가는 와인 셀러를 맛 좋고 저렴한 스페인·아르헨티나 와인으로 채운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이웃과 함께 집에서 만든 피자를 안주 삼아 ‘수퍼 토스카나’(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프랑스 보르도의 블렌딩 방식으로 생산되는 우수 와인의 통칭) 와인을 마시며 보낸다. 아이들은 집 밖에서 도둑잡기 놀이를 한다. 삶을 경쟁보다는 공동의 모험으로 받아들이던 여유로운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그래서 4㎏이나 되는 양지머리를 오븐에 굽던 날 우리는 친구들을 초대했다(친구들은 2001년 산 샤토뇌프-뒤-파프를 가져왔다). 그날 저녁 우리는 친구들이 가져온 와인과 남편이 셀러에서 골라 온 스페인 산 레드 와인을 나눠 마시며 어느 고급 음식점에서 보냈던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신발조차 신을 필요가 없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김가네' 회장, 성범죄 이어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
2'이것'하면 돈 날린다...전문의도 비추하는 '건강검진' 항목은?
3나라살림 이대로 괜찮아?...연간 적자 91조 넘었다
4"노사 화합의 계기"...삼성전자 노사, 임협 잠정합의안 마련
5프라우드넷, 네이버클라우드와 솔루션 사업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 체결
6SOOP, 지스타 2024에서 ‘SOOP AI’ 신기술 공개
7"목 빠지게 기다린다"...美 유력지, 아이오닉9·EV9 GT 콕 집었다
8검찰, ‘SG사태’ 라덕연 대표에 징역 40년·벌금 2.3조 구형
9방준혁 넷마블 의장 “멀티 플랫폼·트랜스 미디어 주목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