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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야생 녹차의 香 즐기세요”

“도심에서 야생 녹차의 香 즐기세요”


지난 4월 5일 서울 창경궁에서는 아주 특이한 식목일 행사가 열렸다. 멀고 먼 경남 하동군이, 이날 창경궁에 놀러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직접 하동 야생차 나무를 심고 하동 야생차를 마실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장소는 창경궁 자연학습장 내 하동 야생차밭. 오가던 관광객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로만 듣던 차나무를 직접 심어보고 유명한 하동녹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서울 도심에서 하동 야생녹차의 은은한 향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두 저희 고객이니까요.”

조유행 하동군수의 말은 국내 유수의 음료회사 CEO의 말 같다. 시음 이벤트를 벌여 고객의 눈과 혀를 잡아내고, 나무심기 이벤트로 지나가는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들의 참여를 유도해 평생 잊기 어려운 추억을 만들어 낸다. 차나무를 직접 만져보고 심어보고, 차를 마시고. 전형적인 이벤트 마케팅에 체험마케팅, 감성마케팅 사례로 꼽을 만하다. 하동군은 이 사업에 ‘필-하동(Feel-Hado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케팅 컨셉트에도 꼭 맞는다.



도심 공원에 야생 녹차밭 옮겨 와

“하동녹차의 최대 소비처는 서울과 수도권입니다. 하지만 하동녹차의 우수성을 잘 모릅니다. 인지도도 낮은 편이고요. 매년 수백만 관광객이 우리 군을 찾아 하동녹차의 우수성을 알고 가십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우리 군으로서는 어떻게든 서울·수도권 시장을 뚫어야 했는데요, 고민 끝에 이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창경궁에 하동 야생차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7년 3월이다. 식목일 차나무 심기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2회째. 조 군수는 “예산 360만원을 들여 적잖은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만족해 한다. 하동녹차의 서울·수도권 진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월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에는 1650㎡ , 가평 생태테마파크에는 1320㎡ 규모의 하동 녹차밭이 꾸며졌다.

비용은 두 개 사업을 합쳐 겨우 1억원. 신문 전면 광고 2~5회 값이다. 조 군수는 “홍보 효과가 훨씬 낫다”고 말한다. 조 군수는 더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 더 다양한 형태로 서울시민을 직접 만나겠다는 생각이다. 더 많은 공원에 하동녹차를 심고, 하동녹차를 중심으로 한 고급 프랜차이즈 전통찻집도 낼 계획이다.

“녹차 중심의 전통차를 파는 스타벅스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동녹차는 점점 더 서울시민의 입맛을 당기게 될 테고, ‘하동’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질 것이다.

“하동녹차는 정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차 맛이 일품이라는 얘기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내려왔어요. 역사적으로 하동은 우리나라 차문화의 메카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수도권 입성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동녹차를 세계화하는 첫걸음으로 볼 수 있지요.”


지난해 ‘하동야생차문화축제’. 많은 외국인의 참여로 하동녹차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조 군수의 말은 ‘허세’가 아니다. 하동녹차를 보자. 녹차의 품질은 보통 번호로 표기되는데, 1번차가 가장 좋은 차로 꼽힌다. 하동녹차는 총 생산량 437t 중 60% 정도인 257t이 1번차다. 그만큼 좋은 차가 생산된다는 얘기다. 하동녹차가, 녹차명인이 만드는 덖음차 중심의 수제 녹차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량이 적은 게 문제라면 문제. 대부분이 지리산 자락의 소규모 야생차밭이어서 가구당 생산량이 극히 적다. 한 가구당 보통 0.5ha 미만인 경우가 많다. 700호 정도 되는 생산 가구가 자기 브랜드로 판매한다. 적극적인 판매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각각의 가구가 매니어층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값도 2~3배 정도 높게 받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동은 이렇게 좋은 차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일까?

“하동녹차가 ‘최고’라는 과학적 자료가 많습니다. 일단 기후가 그렇지요. 연평균 기온이 13도에, 강우량이 약 1700mm로, 차 재배에 가장 적합합니다. 그 밖에 차밭이 섬진강변 지류인 화개천변에 있어 기온차가 심하다는 점, 지리산 남단 풍화토양으로 이뤄진 구릉지에 있다는 점 등 세계 최고의 품질을 갖춘 차가 나올 조건을 두루 겸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하동차는 엄청난 역사 자산도 갖고 있다. 서기 828년 신라 흥덕왕의 명으로 차를 처음 심어 가꿨다는 시배지(始培地)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신라 진감선사가 쌍계사를 짓고 차를 가꾸며 차문화를 퍼뜨리기 시작한 곳도 하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2003년 (사)한국차문화연구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하동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000년이나 된 이 나무는 2006년 경상남도가 기념물 264호로 지정,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 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녹차는 그래서 ‘천년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 만큼 하동녹차가 세계적 명품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조 군수는 “지난 수년 사이 ‘하동차의 세계화’가 착착 진행돼 왔다”고 말한다.

그가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녹차 클로스터. 2005년부터 2년 동안 70억원 가까이를 투자해 하동군의 숙원을 이뤘다. 클러스터는 여러 개로 나뉘어 활동하던 녹차 관계 기관을 한 곳으로 집결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 이 과정에서 국내 유일의 녹차연구소를 만들었다는 점도 큰 성과로 본다.



“내년 슬로시티 총회 개최 희망”

지난해 하동은 또 하나의 ‘기록’을 갖게 됐다. 세계 슬로시티(slow city) 본부로부터 ‘슬로시티’ 공식지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에서 시작된 세계 슬로시티운동은, 소도시의 특성을 살리며 너무 급한 삶을 지양하자는 취지의 ‘느리게 살자’는 구호로 세계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동은 국내 다섯 번째 슬로시티로 지정 받았다. 녹차를 테마로 지정 받은 곳으로는 세계 최초다.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고 말하는 조 군수는 나머지 임기 1년 동안 ‘하동녹차의 세계화’를 더욱 알차게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일단은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성공시켜야 합니다. 이 축제는 14회째 계속됐지만 올해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지난해 문화관광체육부가 지정한 최우수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하는 동시에 슬로시티로 지정된 뒤 첫 축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축제는 하동녹차 세계화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이번 축제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세계 슬로시티 총회를 개최할 계획도 있습니다.”

오는 5월 1일부터 5일 동안 벌어지는 이번 축제의 슬로건은 ‘왕의 녹차와 함께하는 여행(여유와 행복)’. 특기할 만한 것이 많다. 다섯 가지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사로잡겠다는 것인데, ‘천년의 다관(茶館), 오색 찻자리’ ‘대한민국 차인대회’ ‘휴 인 하동(Hue(休) in Hadong)’ ‘섬진강 달빛 차회’ ‘화개장터 역마예술제’가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서정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하동군이 특히 중시하는 것이 ‘천년의 다관(茶館), 오색 찻자리’. 하동에서 생산되는 차를 중심으로 한국 전역에서 생산된 차가 한 곳으로 모이는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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