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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nvestor] 미국의 은행실적 회복은 ‘착시효과’

[Global Investor] 미국의 은행실적 회복은 ‘착시효과’

요즘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그대로 믿자면 4월은 꽤 괜찮은 한 달이었다. 웰스파고의 1분기 순이익은 30억 달러, 골드먼삭스는 18억 달러, JP모건체이스는 21억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42억5000만 달러, 도산 위기에 놓였던 시티그룹조차도 16억 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미국 은행 “대다수”의 재무구조와 지급능력이 양호하다며 희망적 소식에 힘을 실어줬다. 금융위기는 마침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듯 보였다. 그러나 현명한 투자자는 그 이면을 볼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결국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했다.

누가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그 가치가 얼마며,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위기가 닥쳤다. 지난주 실적 발표를 면밀히 살펴보면 미국 유수 은행의 재무상태가 아직도 많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부터 살펴보자. BoA의 경우 순이익 발표와 함께 사업 전반에 걸친 채권 부실화로 대출자산 손실이 증가(2008년 4분기 85억 달러였던 대손충당금이 2009년 1분기 134억 달러로 급증)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케네스 루이스 BoA 회장은 “대출채권이 확실히 부실하다.

결국 안정되고 개선되겠지만, 그 전에 손실 악화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먼삭스 CEO는 거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결산 일정이 변경된 덕분에 실적이 개선됐다는 사실을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골드먼삭스는 2008년 가을 증권회사에서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회계결산기준이 변경돼 평가손이 많았던 12월이 결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건 외부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골드먼삭스 신용조사부의 한 임원은 골드먼삭스의 “레벨2” 자산이 5850억 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레벨2 자산은 시장가격이 확실히 산정되지 않아 비슷한 다른 자산과 비교해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재무제표에 기록하는 유가증권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대출자산이나 증권 등의 자산 가치를 기록할 때 재량권이 많아진다. 레벨2 자산의 극히 일부라도 실제 가치가 골드먼삭스가 가정한 기준보다 낮으면 1분기 수입은 수십억 달러나 감소할 수 있다.

골드먼삭스 대변인은 레벨2 자산이 5850억 달러가 맞는지, 레벨2 자산의 가치를 실제 산정했는지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골드먼삭스는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어떤 자산 평가익도 반영하지 않았다”고만 답했다. 현명한 투자자는 골드먼삭스뿐 아니라 대다수 대형은행이 회계규정 완화로 수익성을 개선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은행권은 실제 시장가격을 토대로 자산 가치를 산정하는 시가평가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며 미 회계기준위원회(FASB)에 로비 활동을 계속해 왔다. 시장가격이 상승할 때는 시가평가 방식을 이용해 기꺼이 실적을 부풀려온 은행들이 시장가치가 하락하자 지금은 부실자산 매각이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규정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FASB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해 4월 초 해당 규정을 완화하자, 은행들은 일부 부실자산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요컨대 은행 대차대조표에 기록된 부실자산의 실제가치가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1분기 실적 개선이 위기의 끝을 알려주는지 단순한 회계조작인지는 “더 이상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 때”에야 밝혀질 것이라고 미 최대 독립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이건 존스의 션 이건 대표가 말했다. 결국 은행들은 납세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긴 채 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고, 회계 처리에 대한 분석은 훗날 역사가들이 행하게 될 듯하다.

BoA만 평가손을 예상하고 있는 건 아니다. IMF는 전 세계 금융업계 손실액이 총 4조1000억 달러(미국에서만 2조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3분의 2는 은행에서 발생하고 나머지는 보험회사나 연기금, 헤지펀드 등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킨지도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은행들이 아직도 2조 달러가 넘는 부실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비관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시가평가 방식으로 가치가 분명히 산정된 자산만 평가손 처리됐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미국 은행 대차대조표 대변 항목의 60% 정도는 실제 시장가치가 아니라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던 불명확한 모델들을 토대로 가치가 평가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바로 이 불명확한 부분에서 향후 대부분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실물경제에서 나타나는 경기회복의 ‘푸른 새싹’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은행권은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정부 구제금융을 상환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그 돈이 다시 필요하지는 않을지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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