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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 바로 읽기 1~10

세계 경제위기 바로 읽기 1~10


미국 정부의 AIG 구제금융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대.



1. CDS(신용부도스와프)가 AIG를 무너뜨렸다

2008년 9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다음날, 미 대형 보험사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미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 2009년 3월까지 총 4회, 약 1800억 달러나 되는 공적자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간부사원들에게 총 2억1800만 달러의 고액 보너스를 지급해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금융파생상품은 금융기관이 부실채권 손실을 피하려고 개발한 일종의 보험이다. 금융기관은 AIG에 보험료를 지불하는 대신, 대손(貸損)이 발생하면 원금을 지급받는 계약이었다.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가 닥치자 손실을 입은 금융기관들이 보상을 요청했지만 당시 AIG가 CDS로 지급을 보증한 금액은 자기자본의 다섯 배를 넘는 4400억 달러에 달했다. 만일 지급보증을 못하면 세계의 금융기관에 대손이 확산돼 신용불안을 촉발하게 된다. 저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은 그런 위험을 내다보며 CDS를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미국 투자은행이 상품화한 CDS는 대출업에 태생적으로 따르는 부실채권 위험으로부터 은행을 해방시켜 보유자금을 더 많이 대출하도록 만들어주는 획기적인 상품으로 간주됐다. J P 모건의 전무로 CDS의 탄생에 관여했던 마크 브리켈은 이를 원자폭탄의 발명에 비유했을 정도다. 실제로 2000년에 1억 달러였던 그 시장규모가 2007년 말에는 약 62조 달러로 확대됐다.

위험을 회피하겠다고 만들어진 CDS가 어째서 대량살상무기로 변해 버렸을까. 하나는 은행이나 주택담보대출 회사들이 CDS로 보험을 들어놓은 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무모하게 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한 주택담보대출에 근거한 주택담보대출증권을 구입한 투자자도 투자대상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대신 CDS를 구입했으니 위험을 회피했다고 착각했다.

CDS를 구실로 위험을 도외시한 투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한편 전 세계에서 CDS를 판매한 AIG 측은 계약자가 일제히 보험금 지급을 요청하는 사태를 상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택 거품의 붕괴로 주택담보대출이 한꺼번에 회수불능이 되고 주택담보대출 증권화 상품이 잇따라 채무 불이행에 빠지면서 AIG의 지불능력을 초과하는 지급청구가 쇄도했다.

CDS의 또 다른 문제는 기업 간의 개별 계약으로 제3자가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전매되기 때문에 거래실태나 시장가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 정부는 CDS의 청산기구를 설립해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의도대로 되면 부실채권 위험을 막아주는 보험이라는 원래 목적대로 유익한 금융상품이 될지 모른다.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몰려든 군중.



2. 글래스-스티걸 법을 무시했다

은행의 증권거래를 금지한 글래스-스티걸 법은 1933년 미국에서 제정된 은행법의 통칭이다. 이 법률이 서브프라임 위기를 야기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 법률의 ‘폐지’가 이번 위기 발생과 관련된 큰 요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이후 개선책의 하나로 제정됐다.

대공황 전에는 일반 예금자 대상의 은행(상업은행)도 증권을 취급해 은행이 직접 투자하거나 일반에 판매할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다. 따라서 대공황 당시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본 은행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문을 닫는 은행이 1만 개에 달했다. 증권거래는 가격변동의 위험이 크다. 다시 말해 큰 이익을 내기도 하지만 큰 손실을 보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의 예금을 맡아 금융 시스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상업은행은 증권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카터 글래스 민주당 상원의원(전임 재무장관으로 연방준비제도의 창설자)과 헨리 스티걸 민주당 하원의원은 생각했다. 이 법률에 따라 개인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빌려주는 상업은행과, 증권 거래를 취급하는 투자은행(기업 대상의 증권회사)이 분리됐다.

다시 말해 안전성이 높은 저축용 은행과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용 은행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은행과 증권·보험의 분리는 고수익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해 금융계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따라서 80년대 들어 시작된 규제완화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그 장벽이 무너지다가 마침내 99년의 금융제도 개혁법으로 완전히 철폐됐다.

그 결과, 업태의 담장을 뛰어넘은 금융기관의 흡수·합병이 잇따르면서 투자은행·상업은행·보험을 겸업하는 종합금융기관이 다수 등장했다. 그리고 대형은행이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의 복잡한 금융상품을 매매하거나 보유하게 됐다.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위험을 염두에 두지 않는 투자은행의 문화가 상업은행에도 전염돼 버렸다”고 말했다.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면서 안전해야 할 상업은행도 위험도가 높은 서브프라임과 관련된 증권화 상품의 보유·투자가 가능해지게 됐다. 그 영향으로 이번 위기의 피해가 커진 셈이다.



3. 경기는 반드시 순환한다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오는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침체된 경기도 언젠가는 회복된다. 경기는 나빠지는 시기와 좋아지는 시기를 반복하며 반드시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기업이 보유한 재고의 증감으로 설명된다. 호황기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기 때문에 기업은 생산을 늘린다. 마침내 생산량이 너무 많아져 재고가 쌓이면 기업은 감산에 돌입한다. 경기는 후퇴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40개월 정도의 주기로 순환한다고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이런 주기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인터넷이 보급된 90년대 후반에는 미국이 경기순환을 극복하고 영원히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뉴 이코노미’론이 등장했다. 2000년에 IT 거품이 터지면서 이 이론은 힘을 잃었지만 그 뒤를 이은 호경기 속에서 정책으로 경기순환이 억제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주택거품의 붕괴와 그에 따른 금융위기로 미국은 2007년 12월부터 6년 9개월 만에 경기후퇴 국면에 진입했다. 전후 경기후퇴 기간(호황의 정점부터 경기 바닥까지)의 평균은 약 10개월, 최장은 16개월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전후 최장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주택시장은 지금도 바닥권을 헤매고 흥청망청하던 미국 국민이 계속 소비를 줄이며 은행은 거액의 부실채권으로 허덕인다. 다시 말해 거품을 낳은 구조가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번의 불황은 특히 오래간다는 의견이 많다.

경기는 언제 회복될까. 이르면 2009~10년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앞으로 몇 년 더 걸린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회복되지 않는 경기는 없다. 하지만 회복까지 여러 해가 걸린다면 아주 큰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

시티그룹 같은 대형 은행이 대표적인 ‘레몬’이다.



4. 레몬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레몬은 맛이 시큼하다. 그렇다고 레몬 사회주의는 ‘신맛 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회주의의 일종도 아니다. 자본주의 대국 미국이 최근 보여주는 경제정책을 비꼬는 단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이 처음 사용했다. 레몬이라는 영어에는 과일 외에 불량품 또는 결함 자동차라는 의미가 있다.

사회주의는 쉽게 말해 정부가 기업을 소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 경제를 관리하는 제도다. 그 사회주의와 레몬을 결합하면 ‘정부가 부실기업을 구제하는 제도’라는 의미가 된다. 지금의 미국이 그런 정책을 편다는 말이다. ‘레몬’의 대표주자는 은행이다. 시티그룹 같은 대형 은행을 비롯해 다수의 부실 은행에 정부가 세금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은행을 살려놓은 뒤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게 된다. 2008년 9월에는 곧 쓰러질 듯하던 대형 보험사 AIG가 정부의 관리 아래(국유화 같은 상태) 놓였지만 올해 들어 간부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불한 사실이 알려져 미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 밖에도 정부의 융자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는 대형 자동차 업체 제너럴 모터스나 4월 말 파산 보호를 신청한 크라이슬러도 말 그대로 ‘레몬’이라고 부를 만하다.

레몬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배경에는 자본주의에서는 가망 없는 회사는 문을 닫게 해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회사가 이익을 낼 때는 경영자나 주주가 떼돈을 벌고 망한다 싶으면 납세자에게 손을 벌린다고 크루그먼은 비판한다. 미국이 지금 먹는 ‘레몬’은 뒷맛이 씁쓸할 것 같다.



5. 달러 가치 더 떨어져도 괜찮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융위기의 진앙지 미국의 통화인 달러는 폭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꾸로 강세를 보여 왔다. 미 정부 관리 아래서 회생 중인 대형 보험사 AIG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해 주가가 급락한 3월 2일, 뉴욕 시장에서도 유로나 엔 등 주요 6개 통화에 달러의 가치를 비교한 인터콘티넨털 거래소(IEC)의 달러지수는 2006년 4월 이래 최고 수준에 달했다.

환율 수준은 본래 경제성장률이나 금리수준 등 경제의 기초변수로 결정된다. 그러나 달러는 금융위기로 미국 경기가 악화되고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사실상 제로 금리 정책을 펼치는 와중에도 계속 매수세가 몰렸다. 신용이 붕괴된 특수한 상황에서 믿을 만한 통화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인 달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상시라면 달러 가치가 더 떨어져도 괜찮다. 세계적으로 주가가 다소 회복된 3월 중순에는 투자자의 불안이 가라앉아 유로화가 달러 대비 5주 만의 고가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 통화 중에서 엔화는 예외적으로 달러에 맞서 상승했다. 2008년 8월 달러당 110엔에서 연말에는 90엔을 돌파했다.

금융기관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이 적었던 점과 그때까지 과도한 엔 약세를 초래했던 현저한 저금리가 서구의 금리인하로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약 2조 달러의 외환을 보유해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이 달러 일극체제를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현상도 달러 가치엔 불안 요인이다. 기축통화 달러를 대신하는 국제 준비통화가 제정되면 달러의 지위는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


시가회계에 대한 금융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6. 금융위기의 또 다른 원인 ‘시가(市價)회계’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진 원인은 시가회계 때문이라는 주장이 미국뿐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들린다. 시가회계(mark-to-market)란 기업이 보유한 증권이나 부동산 등의 자산을 취득시의 가격(장부가)이 아니라 매 기말의 시장가격(시가)으로 평가하는 규칙이다. 자산의 가치가 낮아지면 기업은 낮아진 만큼 손실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주가도 동반 하락하기 쉽다. 이런 규칙에 금융업계가 특히 반발한다. 은행이 보유한 증권화 상품이 팔리지 않아 가격이 폭락하면서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금융불안의 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회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시가회계는 원래 기업의 재무내용을 투명하게 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것을 중단한다고 자산 가치가 달라지지 않으므로 투자가의 불신만 커지게 된다.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시가회계를 든다면 마치 허리케인 발생을 일기예보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어느 전문가는 비꼬았다. 한편 시가회계에 찬성하면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개선하느냐다. 개악이 되면 금융불안이 더 길어지기 쉽다.


7. 정부가 개입하면 성장률은 내려간다?

정부가 경제를 구해 낼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미국에서 뜨겁다. 오바마는 특히 연간소득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과 기업에 증세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재원을 확보해 중·저소득계층 의료보험과 실업보험을 확충한다는 생각이다.

공화당 등의 보수파는 여기에 반대한다. 부유층과 기업에 매기는 세금을 올리면 경제활동에 부담을 줘서 오히려 정부 세입감소, 경제성장 둔화, 실업률 증가를 초래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누진과세로 부유층의 조세부담을 확대하면 소득을 더 많이 올리고자 하는 인센티브도 약해진다.

사회보장제도 확충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업수당이 많아지면 노동자는 근로의욕을 상실하며 의료보험이나 연금 등의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돼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유방임의 결과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이 위기를 맞은 미국에서 격차해소를 내세우는 오바마의 경제개혁에 이론을 달기는 어려울 듯하다.


8. 배드 뱅크는 나쁜 은행이 아니다


배드 뱅크를 직역하면 ‘나쁜 은행’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쁜 자산을 인수하는 은행’을 일컫는다. 은행 보유 부실자산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을 때 정부가 주체가 되어 설립한다.

경기 악화와 은행의 손실확대라는 악순환 고리의 단절이 목적이다. 은행이 부실자산을 그대로 떠안고 있으면 경기악화와 함께 손실이 불어나 신용경색 등으로 더욱 경기를 악화시킨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분리해 인수하면 은행은 그 이상 손실이 확대될 위험이 없어져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설 힘이 생긴다.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저축대부조합(S&L) 위기 때 미국에서 설립된 정리신탁공사(RTC)가 원조다. 2009년 3월에도 미 정부가 최대 1조 달러의 부실자산 인수를 목표로 하는 배드 뱅크의 설립을 발표했다.

문제는 정부가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가격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면 은행에는 도움이 되지만 납세자의 부담이 커진다. 너무 싸면 은행은 배드 뱅크에 자산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 미 정부는 현재 민간 출자를 유도해 복수의 기금이 자산의 사정과 평가를 실시하는 경쟁 방식을 통해 적정가격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9. 레거시 코스트가 빅3를 궁지로 몰았다

GM은 “자동차도 생산하는 연금·의료보험 관리회사”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빅3)가 연방파산법 11조의 적용신청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 법률이 적용되면 일단 파산절차를 밟은 뒤 경영재건을 꾀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첫째 원인은 GM·포드·크라이슬러 3사가 생산하는 자동차의 판매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부진에 허덕인 배경에는 ‘레거시 코스트(legacy cost)’라고 불리는 문제가 있다.

전국민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대기업은 전통적으로 종업원의 연금과 의료보험을 부담해 왔다. 하지만 과거에 약속한 연금과 퇴직자 대상 의료보험 지급부담이 빅3의 수익을 압박했다. 이것이 과거에서 물려받은 ‘마이너스 유산(legacy)’에 따르는 비용, 레거시 코스트다.

특히 퇴직자 대상 연금과 의료보험 문제가 심각하다. 예컨대 GM은 과거 십 수 년간 연금과 의료보험으로 연 평균 70억 달러를 지불해 왔다. 2007년 3월 시점에서 빅3의 전미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한 조합노동자 수는 18만 명인 데 반해 퇴직한 조합원과 사망한 조합원의 배우자로서 연금과 의료보험 수급 대상자 수는 총 54만 명에 달했다.

GM의 경우 현역 조합노동자 1명당 5명 가까운 퇴직 노동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자동차도 생산하는 연금·의료보험 관리회사”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지금까지 연금 등의 규모가 계속 확대된 까닭은 UAW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으로 자동차가 많이 팔렸던 약 60년 전에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UAW는 연금이나 퇴직자에게 지불하는 의료보험의 권리를 확대해 왔다.

회사로선 당면한 임금인상보다 연금 등 미래의 지출을 약속하는 쪽이 양보하기 쉬웠다는 점도 작용했다. 경영진이 높은 실적을 올리는 데 집중해 막대한 보너스를 받으면서 문제는 훗날로 미뤄졌다. 따라서 빅3의 차 한 대당 연금과 의료보험을 포함한 인건비 비율은 일본 차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GM 자동차 한 대에서 레거시 코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00달러인 반면 일본 차 메이커는 미국 공장에서 퇴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비용이 한 대당 100달러 정도라고 한다. 빅3는 조합과의 협상에서 연금 등의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2007년에는 UAW가 운영하는 퇴직자 대상 의료보험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포드는 136억 달러, GM은 200억 달러의 거액을 갹출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은 파산법의 적용이다. 이 방법이라면 법적으로 부채가 정리되며 한 번에 레거시 코스트의 감축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과연 파산했던 회사의 자동차를 소비자가 구입하겠느냐는 것은 미지수다. 미 자동차 업계의 경영진은 실패를 두려워해 도박을 하려 하지 않는다.

당장의 운전자금도 부족한 GM과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12월, 총 174억 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렸지만 추가지원에는 오바마 정부가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빅3는 분명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10.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의 차이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5개사가 2008년에 전멸했다. 베어 스턴스와 메릴린치는 상업은행에 구제·합병되고 리먼 브러더스는 파산했다. 모건 스탠리와 골드먼 삭스는 상업은행으로 전환했다. 월스트리트를 석권했던 투자은행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투자은행은 증권회사의 한 형태다.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조달과 인수합병의 조언이나 중개를 한다. 우리가 아는 증권회사와는 달리 개인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근년에는 거액의 차입금으로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투자사업을 벌여 급성장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의 채권을 쪼개고 섞어 증권화해 판매하는 방식으로도 돈을 벌었다.

상업은행처럼 예금과 대출이라는 안정된 수익원은 없다. 2007년 여름에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하면서 돈줄이 막혀 자금사정이 악화됐다. 증권화 상품까지 팔리지 않으면서 경영위기에 빠졌다. 모건 스탠리와 골드먼 삭스가 상업은행으로 전환한 결정적인 이유는 중앙은행인 FRB로부터 손쉽게 융자를 받으려는 목적이었다(하지만 규제도 엄격해진다). 화려한 은행에서 평범한 은행으로 다시 태어나 부활을 노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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