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없이 장사해야 하는 때가 왔다
밑천 없이 장사해야 하는 때가 왔다
1. 한국은행은 언제 기준금리를 올릴까?
금리 올린다고 정부가 긴축기조로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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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켜볼 것은 한은이 과연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가다. 한은은 본래대로 ‘아기 걸음 걷는 듯(Baby Step)’한 기조로 돌아섰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통화 완화 정책은 끝났다는 분위기다.
경제 수장(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진작에 과잉 유동성을 언급한 마당에 추가 금리 인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12일 “지난해 10월에 비해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할 필요성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동결 발표 직후 ‘경기가 더 침체되면 하반기 추가 인하가 있을 수 있다’는 증권사 보고서가 나왔지만, 대세는 4분기쯤 선제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되 총수요 압력이 상승하기 시작할 경우 먼저 유동성 확대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보다 한발 앞선 통화정책을 요구한 것이다.
자칫 판단이 늦으면 자산시장 거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은이 금리를 인상한다 해도, 정부가 긴축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한은이 유동성 흡수에 나선다고 해도 타깃은 자산시장이다. 실물경제에 돈이 많지 않다.
2. 추가 경기부양책 나올까?
민간 부문 자생력 확보 때까지 재정 확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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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기 금리차, 국채와 회사채 금리차가 줄고 있는 등 작년 말에 비하면 신용 경색이 풀려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마름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예상된 일이지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한계를 드러냈다.
밀어붙이듯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시장만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윤증현 장관도 최근 이런 고민을 내비쳤다. “금융통화정책의 효과가 불안하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고 경기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민간 부문 자생력이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향후 1년간 새로운 경기부양책이 계속 나온다”고 밝혔고 미국, 일본 등도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추경예산이 본격 집행되면 올 4분기쯤 경기부양 효과는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후다. 재정지출을 통해 GDP 수치는 올릴 수 있지만, 민간 부분 회복으로 이어지고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민간 부분이 정상적으로 돌 때까진 재정 확장은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딜링룸 |
3. 수출기업이 원화가치 상승을 견딜까?
환율 착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인간이 원래 그렇듯, 정부도 기업도 투자자도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국내 기업 실적이 그런 경우다.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겪어서 늘 원화가치 변동에 안달이지만 정작 냉정히 들여다봐야 할 때는 ‘달러’보다는 ‘원’을 본다.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발했던 국내 기업의 지난해 원화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23.4%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를 달러 기준으로 보면 5.1%에 그친 성적이다. 일본 14.4%, 유럽연합 13.1%에 훨씬 못 미친다(LG경제연구원). 이게 현실이다. 문제는 최근 급격히 올라가는 원화가치다. 최근 1200원대까지 오른 달러당 원화가치는 수출 기업에 치명타다.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이대로면 ‘역샌드위치’는 물 건너간 얘기가 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우리 주요 수출국이 경기부양에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각자 내수 살리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수출과 연관성이 적다는 것도 걱정이다.
1분기 거둔 무역수지 흑자가 줄어든 수출보다 더 줄어든 수입 덕분인 것을 감안할 때, 내수가 살지 않는 상태에서 수출마저 줄면 경기 회복은 더 늦어질 수 있다. 윤증현 장관은 최근 “환율이 안정되면 기업 채산성이 상당폭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보유한 여유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때가 다가온다는 관측 속에, 우려했던 ‘환율 착시’가 현실이 되고 있다.
4. 기업 구조조정 파장은?
한여름 대기업발 구조조정 한파 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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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한보·대우·기아차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부는 45개 대기업 그룹 중 D사, 또 다른 D사, K사 등 14개에 재무평가 불합격을 내리고 이 중 7~10개 업체에 채권단과 재무개선 약정을 체결할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기업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특히 환율 때문에 부채 비중이 급증한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유예해 달라는 게 재계의 요구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단기 부채가 너무 많다고 알려질 만큼 알려진 그룹도 조직(전경련) 뒤에 숨어 버티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이미 올해 최대 25조원의 구조조정기금을 마련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하반기 대기업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7월께엔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 중 정부의 1차 재무 기본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400여 곳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설마 하고 버티는 기업 중 정부의 도움을 못 받아 파산하는 리먼브러더스 같은 곳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대기업발 구조조정은 경기 순환과 상관없이 경제 회복 심리에 찬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5. 고용 사정 나아지나?
째깍째깍 다가오는 고용 대란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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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실업률도 전달보다 다소 좋아졌다(4.0%→3.8%). 정인숙 통계청 고용통계팀장은 “고용 악화가 진정되는 기미는 있지만 이 추세가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다. 고용시장에 진짜 봄이 올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단기 일자리가 대폭 늘면서 청년 실업률이 대폭 준 것에서 보듯, 최근 고용 지표는 정부가 경기부양으로 막은 둑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30대 취업자는 전년에 비해 23만 명이나 줄었다. 작년 월평균 30만 명 정도 늘던 비경제활동인구는 올해 4개월 연속 50만 명 이상씩 늘고 있다. 정부가 막아 놓은 둑이 얼마나 버틸지가 문제다.
일단 형식적으로 ‘실업자 100만 시대’는 막았다지만 다가올 상황이 녹록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휴업·휴직·훈련 등으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신규 신청은 4월에만 7000건에 육박했다.
전년보다 15배 늘었다. 겨우 버티고 있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여기에 인력 구조조정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가 당 대표 뽑는다고 정치게임을 하는 사이 7월 비정규직 대란의 폭탄 심지는 빠르게 타 들어가고 있다. 실업은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무섭다.
6. 주식시장은 어떻게 될까?
개가 주인보다 너무 앞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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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석 달 사이 국내 주가가 40%나 올랐다. ‘주가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미래만 볼 뿐’이라는 증시 격언이 맞다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확실해 보인다. 그 누구도 “오늘 산 내 주식은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까지 거론됐던 지난해 말의 공포가 사라진 데다가 최근 경기선행지수가 4개월 연속 반등하는 등 경기 변곡점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데 무게를 둔다.
자금시장 여건이 개선되고, 소비심리나 기업심리도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펀드에서 대거 손실을 본 ‘앵그리 머니(Angry Money)’가 불개미 군단을 형성한 것도 한몫했다. 웅크리고 있던 대기자금이 증시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며 때아닌 과열과 거품 논란까지 일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6개월 미만 단기유동성 규모는 약 812조원이다.
최근 증시 과열은 “기업 이익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임정석 NH증권 투자전략팀장)”기도 하지만, 과열이고 투기적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관심은 앞으로의 방향인데 견해는 여러 가지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 견제에 집중하면 돈이 증시로 더 흘러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빠른 경기 회복이 주식시장의 열쇠라는 일반적 견해와 달리, 밑이 넓은 U자형 회복이 주가에 더 좋다는 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경기 회복 속도가 너무 빠르면 정부가 긴축으로 돌아서며 증시를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핵심은 ‘펀더멘털 회복’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계속 좋아지고, 공장 가동률이 활발해지며, 외국인 투자가 질적으로 향상되지 않는다면, 주가는 다시 빠질 수 있다.
7. 경기회복론 어떻게 봐야 할까?
조심스런 낙관보다 회의적 비관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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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언젠가는 회복되기 때문에 사실 가장 무난한 전망이다. 정부 말대로 한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듯 보인다. 외국 금융기관들도 3월을 넘어서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중이다.
윤증현 장관은 “조심스런 낙관(cautiously optimistic)”이라는 말로 현재 경기를 정리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지난해 중순,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과 관련된 취재를 했을 때 한 민간경제연구소 A연구위원은 “마이너스 2~3% 얘기가 나오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모든 경제지표가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고 그러면 경제는 박살이 난다는 얘기”라고 했었다.
그는 경기부양은 배제한 채 말했다. 한은은 4월 올해 경제성장률을 -2.4%로 보고 있다. A연구위원의 말대로 소비, 투자, 수출, 고용 역성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경제가 박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기부양과 고환율, 저유가와 그래도 비교적 잘 견딘 우리 기업들 때문이다.
1분기 GDP 지표와 국내 기업 실적에서 확인했듯이, 특히 경기부양과 원화가치 약세는 착시 아닌 착시를 일으켰다. 민간 부분이 공공 부분을 압도하며 성장을 이끌어가긴 아직 역부족이다. 그사이 정부의 경기부양책 확대와 추경예산 집행이 펌프 역할을 해줄 수 있지만 자칫 모르핀 효과에 그칠 수 있다.
급증하는 은행 부실채권(3월 말 현재 19조원)과 한여름 불어닥칠지 모르는 대규모 구조조정 한파, 소득 정체와 고용 대란도 걱정스럽다. 이와 함께, 급변동하는 환율에 반사적으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추세가 원화가치 상승으로 가면 기업 채산성이나 무역수지가 악화될 수 있다. 미국 쪽에서 낙관적인 소식이 들려오지만, 미국 경제의 바로미터인 소비는 여전히 주춤한 상태다.
우리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 유럽,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우리보다 훨씬 나쁘다. 유가와 원자재는 튀어 오르기 시작했고, GM 같은 글로벌 기업의 파산 가능성과 동유럽 금융불안도 대기 변수다.어쩌면 이제부터가 밑천 없이 장사해야 하는 시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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