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터리 예측·전시행정에 ‘눈먼 돈’
![]() ![]() 세계적 망신이 된 경북 울진공항. |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불행히도 정부 예산 낭비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역사다. 그동안 행정부, 국회, 감사원, 시민단체를 통해 숱하게 지적된 예산 낭비 사례는 이번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유형도 비슷하고 책임지는 이들이 없다는 것 역시 같다.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34회에 걸쳐 선정한 ‘밑 빠진 독상’ 수상 내용과 비슷한 예산 낭비가 지금도 벌어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국민세금 1원도 소중하다’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야심 차게 내놓은 ‘예산낭비 사례집’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중복 또는 과잉 투자, 사업 타당성 검토 잘못, 예산 목적 외에 불요불급한 집행, 부실한 기금 관리,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 과거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다시 들춰봤다.
어? 이미 특허가 나와 있는 기술이잖아 =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82억원의 정부 출연금을 들여 2002년 종료한 38개 정부 과제 중 절반인 18개 과제는 연구가 착수되기 전에 같은 내용의 특허가 존재한 기술이었다. 15개 과제는 유사한 기술이 있었다. 새로운 기술로 인정된 것은 4개뿐이었다.
이미 개발된 기술에 중복 투자해 국가 예산을 낭비했을 뿐 아니라, 연구원들이 다른 기술을 개발했을 경우 얻었을 기회비용도 날린 셈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단계에서 꼭 필요한 ‘기술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검증조차 없어 벌어진 일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추진 시 특허정보를 활용하도록 제도화만 돼도 어느 정도 해결될 일인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과잉투자·중복투자
텅 빈 도로 건설하기 = 경제성도 없고 이용 차량도 없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정부의 고질병이다. 법이나 제도도 필요 없다. 기획예산처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사업 선정지침’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모든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DJ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가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사업 추진을 보류한 78건(총사업비 약 56조원) 중 24건에 예산이 편성됐다.
액수만 12조원이 넘는다. 옛 건설교통부가 요구한 통영~거제 간 고속국도 신설사업이 대표적이다. 타당성이 없으니 보류하라고 해도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통영~거제 간 고속도로는 감사원에서도 지적 받았고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문제 삼았지만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다.
세계적 망신을 산 유령 지방공항 = 세계적 통신사인 AFP의 ‘2007년 황당뉴스’에 경북 울진공항이 이름을 올렸다. ‘1억4000만 달러를 들였는데 항공사들이 취항을 원치 않는 텅 빈 공항이 한국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공항은 2005년 공정이 10% 정도 남은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그런데도 이번 추가경정예산에 울진공항 용도변경 명목으로 49억원의 예산이 또 책정됐다. 현 정부는 울진공항을 비행조정훈련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02년 3500억원을 들여 개항한 양양공항은 지난해 하루 평균 이용객이 26명이었다고 한다. 이런 유령 공항이 전국에 10곳이 넘는데도 정부는 영남지역에 신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
성과보다는 실적에 급급
있는 통계 돈 들여 또 조사하기 = 정부 통계 중복 조사는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다. 유사한 조사를 여러 부처에서 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예산도 부처 이기주의로 낭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사업체 기초 통계조사’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의 이 부문 조사 항목은 11개. 그중 9개 항목은 국세청이 관리하는 ‘사업자 등록자자료’와 중복된다. 하지만 국세청은 납세자 정보보호를 이유로 통계청에 행정자료 제공을 거부해 왔다. 통계청이 이 조사를 하는 데 쓰는 비용은 매년 130억원 안팎이다. 사정은 달라지지 않아 최근 대구시가 통계청에 제출할 경제 통계조사를 담당할 인력 400명을 뽑았다. 일급은 4만2000원이다.
사라지지 않는 전시행정 = 옛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2001년 농어촌 지역 정보화마을 조성사업 계획에 따라 99개 마을에 무인민원서류발급기 99대와 전자칩 카드 판독기 9200대를 보급했다. 사전에 20개 시범마을 운용을 통해 무인발급기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전체 정보화마을에 추가 보급한 것이다.
이렇게 20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 정부 사업의 실질적 성과보다는 사업 실적을 내세우기 위해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무인서류발급기는 대당 2000만원, 월 유지비용만 50만원이다. 하지만 이용률은 전체 민원서류 발급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편하고 오작동이 많은 이유가 큰데, 각 지자체는 지난해부터 무인서류발급기 보급을 더 확대하고 있다.
엉뚱한 수요예측에 겉도는 민자사업 = 옛 건설교통부와 부산광역시, 김해시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총 9058억원을 들여 부산~김해를 잇는 경전철 사업을 민자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실제 운영수입이 추정 운영수입의 90%보다 적을 경우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협약 내용이었다. 문제는 수송분담률 예측이었다.
경전철 이용이 불가능한 지역도 경전철을 이용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등 경전철의 교통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했다. 인구 예측도 그렇다. 통계청이 예측하는 2020년 부산지역 인구는 339만 명인데, 정부협상단과 민간사업자가 계산한 수치는 427만 명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부산~김해 경전철 수요량은 실제 교통수요가 협약의 70%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김해시는 민자사업자에게 매년 100억원 이상의 운영수입 보장금을 지급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에만 경전철이 추진되거나 계획 중인 곳은 8곳에 달한다. 이곳의 수요 예측은 제대로 됐을까?
실적은 채우기 나름 = 환경부는 2006년부터 매연검사 결과 배출허용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 저감장치 부착에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2006년 중순 저감장치 부착 실적이 목표 대수의 5%에도 미치지 못하자 시행규칙도 변경하지 않은 채 모든 경유차를 대상으로 저감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사업대상을 확대했다.
그 결과 2006년 저감장치 부착 차량 11만6687대 가운데 배출가스 검사결과 적합판정을 받은 차량 5만여 대, 배출 검사도 받지 않은 차량 3만4000여 대가 포함됐다. 결과적으로 지원대상도 아닌 차량에 1500억원 상당의 예산을 써버렸다. 개념은 다르지만 최근에도 낙후지역개발 사업 등에 여러 부처가 동시에 실적 경쟁식 지원을 하면서 예산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돈은 눈먼 돈 = P대학교 국가연구개발 과제 책임자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1월까지 5건의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미국 모 대학과 국내 업체로부터 3회에 걸쳐 3억8000여만원어치 연구장비를 구매한 것처럼 꾸며 연구비를 지급받았다.
이 책임자는 그 후 국내 기업으로부터 구입장비 제작 등 관련 경비를 뺀 1억1000만원을 돌려받아 이 중 5000여만원을 자신의 미국 여행경비 등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 연구책임자가 연구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구매하는 연구장비 등의 물품에 대해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점검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이런 시스템은 지금도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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