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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 노사‘뭉쳐야’ 산다

위기의 순간, 노사‘뭉쳐야’ 산다

바야흐로 하투(夏鬪)의 시기다. 노사 양측은 마주 보고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처럼 충돌할 태세다. 불과 100여 일 전 상생을 다짐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문제는 상생약속, 갈등, 충돌 또다시 상생약속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는 점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하투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갈라서 삿대질을 해야 할까?

6월 10일 범국민대회, 11일 화물연대 파업결의, 13일 쌍용차 구조조정 분쇄결의대회…. 예정대로 진행됐다. 19일 금속노조 상경투쟁, 27일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 별다른 변수가 없으면 계획대로 진행될 게 확실해 보인다.

노동계의 여름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하투의 시기다. 이번 하투는 예사롭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반(反)정부 심리와 맞물리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질 분위기다.

노동계가 하투를 각종 문화제와 연결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고(故) 박종태씨(화물연대 광주지부장) 투쟁 승리 및 쌍용차 구조조정 분쇄 결의대회’를 치르고,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사상 전례 없는 불황 속에서 하투가 전개되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하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자칫 경제회생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후 1000억원을 훌쩍 넘는 매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의 한 달 인건비가 200여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로 반 년 월급이 단숨에 날아간 셈이다.



하투, 경제회생 발목 잡나

화물연대 파업이 물류대란으로 이어질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물류대란이 일어나면 하루 평균 도로 물동량의 20%가 운송차질을 빚고, 하루 1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뿐만 아니다.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속노조 파업에 완성차 노조가 가세하면,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지금으로선 하투를 막는 게 상책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노사 양측의 입장차가 뚜렷하다. 노동계는 고용안정을 부르짖는다. 쌍용차, 금속노조 모두 그렇다. 화물연대도 근로기본권을 인정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시간당 4000원인 최저임금을 5000원으로 인상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사측으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상장·등록법인 1534곳을 대상으로 올 1분기 기업경영 성과를 검토한 결과, 조사 기업의 매출액(247조원)은 전년비 0.6% 감소했다. 분기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신용카드 사태 당시인 2003년 3분기(-6.3%) 이후 처음이다.

수익성을 의미하는 매출액 세전순이익률도 지난해 1분기 7%에서 올해 2%로 70%가량 하락했다. 심지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10곳 중 6곳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을 올리기란 쉽지 않다. 노사 양측의 간극을 좁히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쌍용차 사례는 대표적이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차는 구조조정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회사가 자산 매각과 함께 전 직원의 37%를 감축하는 내용의 자구계획을 발표한 이유다. 이에 따라 1500여 명이 희망퇴직하고, 1050여 명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됐다. 이런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쌍용차는 영영 회생하지 못할 수 있고, 애꿎은 이 회사 협력업체도 위험에 빠진다.

그야말로 공멸 위기.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옥쇄파업으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고 있고, 이는 하투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런 극단적 노사갈등이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대적 구조조정이 임박한 지금, 제2·제3의 쌍용차 사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한국 경제가 하투의 격렬한 ‘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안전망을 서둘러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대 이필상(경영학) 교수는 “구조조정 후폭풍을 막기 위해선 사회안전망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희대 권영준(경제학) 교수도 “예를 들어 쌍용차와 현대차의 파업을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쌍용차 노조원이 목숨을 걸고 굴뚝에 올라가는 것은 사회안전망 부족으로 해고 후 삶이 막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 이창근 기획부장이 “내 아빠, 내 삼촌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고 도와달라”고 강변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 상생 의지 중요


경영난에 허덕이는 기업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을 외친다. 그런데 ‘구조조정된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열 사람 살리려면 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 그 얘기가 설사 맞는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보호하는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몫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은 물론 정치권도 무관심 일색이다. 적어도 17대 국회에선 한·미 FTA 피해 계층을 보호하는 법안이라도 만들었다. 이번 국회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광장정치에 몰두하고, 땜질식 처방만 늘어놓는 게 전부다. 최소한 구조조정 대상을 위한 보호법안쯤은 구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안전망 확충만큼 중요한 것은 노사의 상생경영 의지다. 노사가 똘똘 뭉치면 갈등도, 하투도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노사 양측은 이해득실에 따라 ‘뭉쳤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상생하겠다’며 손을 맞잡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쪼개져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기 바쁘다.

지난 2월 23일 노·사·민·정이 체결한 ‘노동계는 기업의 경영여건에 따라 임금동결, 반납 또는 절감을 실천하고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해 기존 고용수준이 유지되도록 한다’는 합의문이 불과 100여 일 만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일부 기업도, 철만 되면 무리한 요구를 남발하는 일부 노동계도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남광토건의 ‘상생경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광토건 노조는 최근 기준임금 동결, 상여금 200% 반납, 일부 복리후생지원 한시적 중단을 골자로 한 회사안을 받아들였다. 사측도 인위적 구조조정 없는 일자리 나누기를 약속했다. 이 회사 임원들은 연봉 15%를 반납하기도 했다.

남광토건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한 결과”라고 했다. 남광토건은 1999년 워크아웃을 경험한 회사다. 수익성 없는 자산을 모두 내다 팔았고, 임직원들은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았다.

이것도 모자라 임직원 300여 명이 구조조정됐다. 동료·선후배가 거리에 나앉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노사 갈등을 해소했고, 위기의 순간 ‘뭉쳐야 산다’는 진리를 몸소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 ‘상생’이고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투를 막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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