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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포위된 이슬람 신권정치

국민에 포위된 이슬람 신권정치


이란의 이슬람 신권정치가 침몰하고 있다. 그렇다고 곧 이란 정권이 붕괴될 거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나는 분명 그러기를 바란다) 압제 정권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이란 정부의 토대를 이루었던 이념의 실패를 목격하고 있다. 그 정권을 세웠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1970년 일련의 강연을 통해 정치적 이슬람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제시했다.

시아파 이슬람의 이 해석에서는 이슬람 법학자들이 사회의 수호자로서 신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 받아 도덕적인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최고 권위자로 간주됐다. 호메이니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설립할 당시 이 구상, 다시 말해 최고 법학자에 의한 통치라는 ‘벨라야테 파키’가 그 근간을 이루었다. 지난주 그 이념이 치명타를 맞았다.

현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대선 승리를 ‘신의 평가’라고 선포하면서 벨라야테 파키의 최후 수단인 ‘신의 재가’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이란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란의 종교제도 아래서 그들에게 허용된 주요한 세속적인 권리 중 하나인 투표권을 도둑맞았다고 확신했다.

곧 하메네이도 불가피하게 부정선거 조사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란의 최고헌법기구인 헌법수호위원회는 선거조사, 후보들과의 면담, 일부 재검표를 약속했다. 하메네이는 정권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해 지금은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태를 봉합하기 어렵다. 오늘날 이란의 정통성은 신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민중의 의지에서 나온다는 게 확연해졌다.

30년 동안 이란 정권은 종교적 지위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실상 이단시했다. 이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지도자들도 그 사실을 안다. 수백만 명, 아니 어쩌면 대다수 이란인에게 현 정권은 정통성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전에도 이란에서 항의시위가 있었지만 항상 시위대와 국가의 대결구도였으며 성직자들은 모두 국가 편을 들었다.

개혁파 대통령 무하마드 하타미는 집권 후 1999년과 2003년 학생 폭동이 발발하자 시위대 편에 설까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기존 체제 쪽에 달라붙었다. 이번에도 시위대와 국가가 맞붙었지만 다른 점은 성직자들이 엇갈린 입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하타미는 도전자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개혁파인 大아야톨라(시아파 최고권위) 후세인 알리 몬타제리도 합세했다.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도 선거에 대한 의혹을 표시했다. 라리자니는 성직자는 아니지만 종교계의 최고위층과 밀접한 가족적 유대를 가진 인물이다. 알리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또 다른 중요한 헌법기구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장)은 막후에서 아마디네자드와 어쩌면 나아가 최고지도자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고위 성직자들이 하메네이가 공표한 ‘신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고 헌법수호위원회가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전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마치 1980년에 옛 소련의 한 고위 지도자가 카를 마르크스는 경제정책의 올바른 지침이 아니라고 말한 격이다. 이슬람 공화국이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정통성을 상실할 것이다.

이번 투쟁에선 정권의 승산이 분명히 높다. 아니, 실상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전면적인 시위 금지, 학생 체포, 고위 지도자 처벌, 시민단체 폐쇄 등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결과야 어찌 되든(강제진압, 재선거) 이란인 수백만 명이 정권의 통치이념을 더는 믿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졌다.

권력을 유지한다면 브레즈네프 시대 후반의 소련처럼 군사적 위협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식이 될 듯하다. “이란은 이집트처럼 바뀌게 될 것”이라고 이란 태생의 지식인 레자 아슬란이 말했다. 정치의 장막 뒤에서 이념보다는 총으로 권력을 지탱해 나가는 정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정통성은 지난 10년 동안 약화돼 왔다.


먼저, 개혁파 하타미가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뒤 몇 가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헌법수호위원회에 의해 제지 당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도자들은 공개선거를 되돌려야겠다고 판단했다(일정 수준의 공개선거는 그들이 이란에 허용했던 유일한 민주주의 요소였다). 그동안 정권의 통제방식은 구미에 맞는 후보들을 뽑아서 한두 명을 밀어주되 실제로는 비공개 투표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 헌법수호위원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수의 현직 의원을 포함해 3000명의 후보 등록을 일방적으로 금지했다. 이번 선거에선 국민의 지지가 훨씬 더 불투명했기 때문에 정권은 한 발 더 나아가 두 시간 만에 선거결과를 발표하고 어떤 논란의 여지도 없도록 압도적인 표차로 아마디네자드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하메네이의 지난 19일 설교 중 그런 전략이 드러났다. “1100만 표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결과조작이 있을 수 있겠나”라고 그가 물었다. 미국은 이란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미국 정부가 이에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에 공개적으로 거듭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바람에 이란 정권은 자국을 해치려는 적대국가 미국과 맞서 싸운다고 주장하기가 극히 어려워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충분히 믿을 만한 주장이었다. 조지 W 부시는 이란 정권이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이란이 악의 축 국가이며,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을 고려 중이라고 여러 번 공언했다. 오바마는 그 반대로 갔다. 이란인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어떤 지도자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든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이란력(歷) 새해(3월 20일) 축하 메시지에서, 카이로 연설에서 시종일관 이란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우의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하메네이가 신년 메시지에 대한 답변 연설 도중 내내 노발대발한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그가 설교 중에 수시로 묘사하는 대사탄의 이미지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철저한 실용주의자인 그는 물론 미국과 협상을 위한 문도 조심스럽게 열어 놨다).

6월 19일의 설교에서 하메네이는 테헤란을 혼란에 빠뜨렸던 가두시위의 배후에 미국·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영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이란인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여길 게 뻔하다. 하지만 모두는 아니다. 가장 서구화된 이란 국민 사이에서도 외부세력의 개입에 대한 의구심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오바마가 아주 신중하게 반응해 왔다는 점도 하메네이와 아마디네자드가 자신들의 몸을 국기로 휘감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벌써 오바마의 신중함을 비난하고 나섰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시절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폴 울포위츠는 백악관의 반응을 필리핀 거리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이 거센 도전을 받을 당시 로널드 레이건의 침묵에 비유했다. 그러나 그런 비유는 타당하지 않다. 마르코스는 미국의 고객이었다.

그는 미국의 호의로 권좌를 지켰다. 시위대는 레이건에게 그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고 역사의 흐름에 맡겨 두라고 요구했다. 반면 이란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영국과 미국의 간섭을 받은 역사가 있는 독립적인 열혈 민족주의 국가다. 1901년엔 영국이 이란의 석유산업을 사실상 접수했으며 미국은 1953년 쿠데타를 배후 조종했다.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대다수 그런 나라처럼(인도가 대표적) 이런 반제국주의적 감정이 상당히 강하다. 이란인들은 이번 사태가 외세의 개입이 없는 자신들만의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1989년 소련 제국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조지 HW 부시가 보였던 조심스러운 반응이 오히려 더 적절한 비유다.

당시 많은 네오콘은 요즘 오바마에게 그런 것처럼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을 타도하려는 세력을 목청 높여 지지하지 않는다며 부시를 성토했다. 그러나 부시는 상황이 유동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동유럽 정권이 시위대를 쉽사리 진압할 수 있으며 소련이 탱크를 보낼 수도 있었다. 공산정권에 강경하게 대응할 명분을 주는 건 그 누구에게도, 특히 시위대엔 도움이 안 됐다. 부시의 기본 방침이 옳았고 그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하지 말았으면 했던 발언이 한 가지 있다. 이란 사태를 논하면서 그는 아마디네자드와 무사비 간에 의미 있는 차이점이 없다고 말했다. 둘 다 핵 보유 야심으로부터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단체에 대한 지지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여러 핵심 외교정책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아마디네자드를 선호했던 네오콘 진영의 일각에서도 실제로 그런 견해가 나왔다.

더 위협적인 적이 새로 등장하면 그 정권이 세계에 미치는 위험만 커진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선거 전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무사비는 변화, 반아마디네자드 정서, 심지어 정권교체 열망의 상징이 됐다. 그는 분명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지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승리하면 이란은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선거 중에도 무사비의 공약 중 유권자의 기대를 제대로 반영한 게 있었던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부패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 그럴지도 모르지만 도전자라면 누구나 그런 말을 한다. 그리고 무사비는 실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나 그런 아이디어에 믿음을 줄 만한 뛰어난 업적이 많지 않다. 무사비가 늘 내세우는 테마는 아마디네자드가 이란을 고립시켰으며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불필요하게 이란을 ‘왕따’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지지자 중 다수에겐 이것이 핵심적인 이슈였다. 그들은 세계로부터 멀어지기보다 더 가까워지기를 갈망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의도적으로 서방을 거부하고 입만 열면 미국이 쇠퇴한다고 말해 세계 사회에 다시 동참하려는 그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보며 이렇게 간단히 말했으면 좋았다.

“이란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기는커녕 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오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는 오래전부터 이란인들에게 손을 뻗어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선거와 그 뒤 벌어지고 있는 놀랍고도 평화로운 시위를 보니 이란 국민도 세계와 교류하길 원하는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뜻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오바마는 무리하지 않고 이란 민족주의의 칼날이 정권 쪽으로 향하도록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진짜 문제는 오바마의 몇 마디 말이 아니라 이란 현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란이 흔들리면 무슬림 세계 전체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며 이슬람 세계는 대부분 수니파 국가지만 호메이니의 권력장악은 모든 무슬림 국가에 충격을 줬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라는 신호였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일부 국가는 그 힘을 흡수하려 했고 이집트 같은 나라는 그것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이란을 새로 떠오르는 정치적인 이슬람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이제 와서 실패한다면 30년 전으로 역행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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