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파는‘럭키 가이’
이탈리아를 파는‘럭키 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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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역량보다는 백그라운드가 좋은 덕이죠.”
전 세계 페라가모 매출 3위. 훌륭한 경영 실적을 칭찬하자, 에비앙 생수병 꼭지를 비틀며 최완 페라가모코리아 대표가 말한다. 남성적인 인상과 달리 기자에게 직접 생수를 따라줄 정도로 권위적이지 않고 세심하기까지 하다.
최완 대표는 페라가모코리아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대표로 부임한 지 벌써 14년째다. 그는 삼성중공업에서 비즈니스 실력을 닦은 뒤 지금까지 페라가모코리아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페라가모 본사에서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은 어떨까. “미국,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페라가모의 큰 시장입니다. 페라가모 본사 회장이 아시아에 출장 올 때는 반드시 한국에 들러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됐습니다. 본사에서는 한국 측의 시장겿퓔?분석 자료를 매우 중요시 여기죠.”
이쯤 되면 페라가모코리아의 책임자인 최 대표는 페라가모의 수십 개 해외 사업장에서 입지가 견고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겸손하게 손사래를 치지만, 여러 국가 사업장 대표 중 근무 경력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CEO 중 한 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페라가모가 14년 전 한국에 진출할 당시 최 대표는 컨트리 매니저로 조인해 일했다. 지금은 매출 700억 원이 넘는 페라가모코리아의 대표이사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최 대표는 페라가모에 오기 전 삼성중공업과 선경(지금의 SK)에서 10년가량 근무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그가 어떻게 외국 명품 회사에서 일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페라가모로 온 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죠. 큰 기회를 잡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후 저에게 운이 따랐는데, 한 마디로 럭키 가이였어요”라고 대답했다.
페라가모로 이직했을 때 최 대표는 한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 명품 회사 사장과 달리 미국 경영학석사(MBA) 학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유학 경력도 없었다. 이런 그에게 페라가모는 삶의 역사 중 최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는 1996년 페라가모코리아의 론칭 준비를 하면서도 과연 페라가모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다행히 사업은 매년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더욱 재미가 붙었고 열의가 생겼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린 덕분인지 페라가모는 한국에서 급성장을 거듭했다. 최 대표의 경영 전략과 경영 철학은 뭘까. 전문 용어로 설명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탈하고 간단 명료하다. “국내 회사에서도 일했었고 외국 회사에도 있어 봤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직원의 개인 플레이보다 팀워크로 일하게 하는 것이죠.”
그는 타깃 포지셔닝에 대해 “이탈리아 본사에서는 제품 구매층을 35세 정도에 맞춰 마케팅을 하지만 한국 타깃 연령층은 더 낮아요.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페라가모 고객층이 더 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제품별 매출 분포에 대해서도 그는 숨김없이 말해줬다. “슈즈가 40% 이상이며 핸드백과 가죽 제품이 약 40%, 넥타이겱픕?제품이 20% 정도입니다. 요즘 페라가모 넥타이의 인기가 높습니다.” 최 대표는 판매량이 많은 넥타이에 애착이 큰 듯했다.
페라가모 넥타이에는 페라가모 로고가 없다. “노노스족을 겨냥해 브랜드 로고를 내세우지 않고 바로 디자인과 소재로 승부를 거는 명품 마케팅의 새로운 전략입니다. ‘노노스’란 ‘No Logo, No Design’의 약자예요. 로고리스(Logo less) 전략으로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명품 마케팅 방식을 페라가모 넥타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페라가모 본사의 경영 철학과 그의 생각은 과연 잘 맞을까.
“페라가모에 합류한 지 14년이 됐지만 본사로부터 이에 대한 어떠한 언질이나 교육도 받은 적이 없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페라가모의 핵심 가치는 ‘Made in Italy’입니다. 덧붙여 설립자 페라가모의 장인정신도 빼놓을 수 없어요. 페라가모는 패션을 파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를 팝니다. 디자인에서 제품 소재 그리고 최종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에서 마무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페라가모 제품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예술적 혼이 서려 있습니다. 로마 시대 이래 중세의 찬란한 예술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품이 한국 업체들 수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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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역사를 지닌 기업이 아직 증시에 공개되지 않았고, 2006년 10월에야 가족경영 체제를 깨고 전문경영인 미켈레 노르사(59) 회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페라가모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은 철저하게 본사에서 매뉴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모든 지사는 그 가이드라인에 따른다. 한국에서 신제품 런웨이를 할 때는 이탈리아 본사에서 담당자들이 나와 관여하며, 판촉물은 하나라도 본사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국가별 제품 기획 생산량 주문은 제품 출시 6개월 전에 본사에서 한다. 한국에서는 담당 머천다이저(MD) 6~7명이 이탈리아로 가서 제품별로 기획을 하고 한국에서 판매할 제품 생산량까지 사전에 결정하기 때문에 재고가 거의 없다. 재고 없는 경영은 페라가모의 주요 경영 원칙 중 하나다.
최 대표는 “명품 업체에서 재고는 최악의 경영”이라며 “페라가모는 재고 자체를 수치로 여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품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 시각, 즉 명품을 사치품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심스레 우려했지만 명품의 산업적 순기능이 많다고 강조한다. “명품은 한국 제품의 디자인, 퀄리티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글로벌 제품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럭셔리 제품 소비는 고소득층 혹은 상류층에서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과 같이 라이프 스타일 혹은 일상품으로 변환해가는 과정에 있다.
머지않아 국내 시장도 명품의 대중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명품은 필수품이 끝나는 데서 시작하는 필수품”이라고 코코 샤넬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최근 명품 유통 시장이 소수의 특권층이 접촉할 수 있는 제한적 유통 구조에서 누구나 접촉할 수 있는 e커머스(e-Commerce)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페라가모 본사는 이미 미국에서 e커머스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한국 페라가모도 준비에 착수했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변화는 있다. 2008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페라가모 브랜드 탄생 8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다.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을 열광케 한 해이기도 하다.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에서 열린 페라가모 80주년 기념 전시회의 접목은 페라가모가 중국 시장을 치고 들어가는 전략의 일환이다. 최 대표는 “페라가모 시장 세계 3위의 입지를 1~2년 후에는 중국에 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견한다. 이탈리아 페라가모 본사에서는 1년에 4회 정도 해외 지사장 회의가 열린다.
최 대표는 모두 40회 이상 이탈리아를 방문해 국내 최고의 ‘이탈리아 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페라가모를 한국에 처음 론칭할 때 초기 멤버로 일했던 열정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4년 전에 비해 한국의 명품 시장은 놀랄 정도로 성장했다”며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한국 업체들에 자극을 주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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