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의 바다 남호주를 가다
자원의 바다 남호주를 가다
5월 19일 호주 남단에 있는 포트 링컨(Port Lincoln)을 찾았다. 포트 링컨은 남호주(South Australia) 주도인 애들레이드에서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좁고 긴 해협을 낀 에어(Eyre) 반도 끝자락에 있어 애들레이드에서 자동차로는 10시간 넘게 소요된다.
깊은 해협을 따라 형성된 해안 도로를 따라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 역사를 연상시키는 공항에 내려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잡초가 무성한 들판을 지나자 이내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가 등장했다. 남호주 주정부에서 에어 반도를 책임지는 티모시 디어 지역 매니저는 “포트 링컨은 호주에서도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 10분쯤 더 가자 왼쪽엔 수십 척의 어선들이 정박된 부두가 나타났다. 부두를 마주한 오른쪽 언덕 위엔 고급 빌라들이 줄을 이었다. 디어 매니저는 “포트 링컨은 인구 1만5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호주에서 인구당 백만장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귀띔했다.
포트 링컨이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 된 것은 대량으로 참치를 양식하고 있는 기업형 어민들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참치 어획량 제한으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참치잡이들은 좁은 해협과 깨끗한 수질을 이용해 참치의 일종인 남방참다랑어 양식에 성공했다. 포트 링컨에선 어린 참치를 가둬 기르는 가두리 방식을 사용한다.
참치잡이들은 파도가 잠잠한 12월부터 2월에 수십 척의 선단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친다. 배는 그물에 갇힌 참치떼를 시속 2km도 안 되는 속도로 양식장으로 몰고 온다. 천천히 움직이는 이유는 참치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귀향에 걸리는 시간이 2주가 넘을 때도 있다.
양식장에 도착한 참치는 비싼 정어리 사료로 포식한다. 이날도 부둣가에선 수천 마리의 정어리들이 컨테이너에서 양식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물에 걸린 참치는 보통 16kg이지만 이렇게 양식된 참치는 무게가 2~3배 이상 늘어난다. 이들 참치의 최종 목적지는 일본의 고급 초밥 레스토랑.
호주 남방참다랑어협회의 데이비드 엘리스 연구원은 “이곳에서 기른 참치 대부분은 고가에 일본으로 수출된다”며 “고급 참치회를 즐기는 한국도 우리에겐 잠재적으로 큰 시장”이라고 밝혔다. 포트 링컨 근해는 참치를 비롯해 바닷가재, 굴 등 돈 되는 해산물은 대부분 양식되고 있다.
포트 링컨에서 45km 떨어진 코핀 베이. 여름철이면 수십 킬로에 달하는 킹피시(민어류)를 낚기 위해 호주 전역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국립 공원을 끼고 있는 이곳은 바다사자와 돌고래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코핀 베이에서 만난 굴 양식업자 레스터 마샬은 현지의 유명 인사다.
그는 코핀 베이에 조성한 75만㎡의 양식장에서 매주 8톤의 굴을 생산한다. 그가 눈길을 끄는 것은 양식장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마샬은 자신이 양식한 굴의 브랜드화를 시도해 다른 양식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마샬은 몇 년 전부터 시간만 나면 영국,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등 고급 해산물 브랜드가 즐비한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노하우를 살폈다.
현지 유명 해산물 브랜드뿐만 아니라 영국의 피시앤칩스, 프랑스의 샴페인, 아일랜드의 기네스맥주, 일본의 와규(和牛)도 연구했다. 그는 곧 홍보담당자는 물론 미식가, 와인 전문가, 요리사를 고용했다. 자신이 양식한 굴의 다양한 풍미를 전문 용어로 정리하고, 굴과 어울리는 음식과 와인을 추천 받았다.
큐피드, 밸런타인, 카사노바, 킹 등 종류별로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붙였다. 펜폴즈 등 현지 와인 회사와 함께 굴과 와인을 함께 제공하는 디너도 개최했다. 마샬은 “굴은 크기와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르다”며 “우리는 굴을 와인처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마샬의 시도는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가 양식한 100g짜리 ‘킹 오이스터’는 시드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개에 100달러가 넘는 값에 팔려 나간다. 레스터는 “굴의 브랜드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코핀 베이가 가진 깨끗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참치나 굴만이 아니다. 바닷가재, 전복, 게 등 남호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어획량이 많지만 ‘청정해역’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으며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다. 남호주 수산물 수출업자 위원회의 마크 코디 회장은 “남호주의 수산물은 호주산 와규(쇠고기) 못지않게 일본과 태국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한국과의 교역은 뜸한 편”이라고 밝혔다.
남호주 주정부의 스콧 오스터 국장은 “한국으로 수출되는 호주 수산물은 일본과 홍콩 등 제3국을 경유해 팔리는 편”이라며 “한국 업체들이 직접 수입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호주에서 와인 가장 많이 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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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안에 위치한 와인 셀러에선 1878년부터 숙성되고 있는 포트 와인을 담은 오크통을 만날 수 있었다. 세펠트의 네이선 웩스 대표는 “호주 와인 역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짧지만 포도나무는 더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포도나무는 포도병균 필록세라로 대부분 죽고 새로 심어야 했지만 호주는 예외였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포도 품종인 시라는 호주에서 시라즈로 통한다. 호주산 시라즈 와인은 마시기 편하고 풍부한 과일 향으로 처음 맛에 매료되고 만다. 피트리먼의 하워드 던컨 수출 담당자는 “과거 저렴한 호주 와인이 인기였다면 최근엔 전 세계에서 프리미엄급 호주 와인 수요가 많다”고 밝혔다.
남호주엔 25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있다. 거기서 호주 와인의 절반을 생산한다. 이 중 상당수는 국내엔 들어오지 않고 있다. 포트 링컨에서 ‘사시미(Sashimi)’라는 와인을 생산하는 킴 터비는 “이름 덕분에 일본 초밥 집에서 인기가 좋다”며 “해산물이 인기 있는 한국 시장에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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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의 광산 메이저인 BHP빌리턴이 개발에 나선 올림픽 댐 광산이다. 이 광산에 8조 원 이상의 금액이 투자될 예정이다. 남호주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수산업, 농업, 정보기술(IT), 항공, 조선업, 방위산업 등이 크게 발달했다.
특히 풍력을 비롯해 땅의 열을 활용하는 지력, 파도를 활용한 파력 등 재생에너지 활용 비율이 호주 내에서 가장 높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KPMG는 애들레이드를 자동차, 항공산업, 의료 장비, 멀티미디어 사업에서 비용 경쟁력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았다.
남호주는 호주 내에서 해외 투자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일정 요건을 갖춘 기업 CEO나 임원에겐 현지에서 자녀를 공교육 시킬 수 있는 비자까지 제공한다. 애들레이드 주정부 청사에서 만난 혼 마이크 란(Hon Mike Rann) 남호주 주지사는 “와인, 수산 양식, 자동차 부품, 건설, 조선 등 한국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며 “주정부에선 한국 기업에 세제는 물론 다양한 혜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호주로 몰리는 것은 기업 투자만이 아니다. 해외 이민 유입 비율도 높다. 특히 한국인 사업 이민은 중국에 이어 둘째로 많다. 란 주지사는 “최근 남호주엔 비즈니스 투자와 함께 사업 이민을 오는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남호주 정부는 한국 기업과 사업 이민자를 정착 초기부터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사업이민 둘째로 많아
남호주의 주도 애들레이드에 가면 KBS가 있다. 이곳은 한국의 방송국 KBS만큼 이 지역 한인들에게 유명한 편의점이다. 현지에서 만난 KBS의 조남찬(46) 사장은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MBC도 생각했지만 그 상호는 이미 등록돼 있어서 KBS로 정했다” 고 설명했다.
2005년 사업 이민으로 애들레이드로 건너 온 조 사장은 당시 3억 원 정도에 가게를 인수했다. 조 사장은 “위치는 좋았지만 주인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해 장사가 안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테리어를 바꾸고 진열 상품을 다양화했다.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유통 기한에 가까운 제품은 독자적으로 할인 판매했다.
조 사장은 “한국에서 롯데리아를 운영했던 게 도움이 됐다”며 “이곳에선 마음만 먹으면 매출을 올리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인수 첫해에 6억 원 정도였던 매출이 지난해 15억 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2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 5억 원을 주겠다며 편의점을 팔라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마다했다.
조 사장에게 늘어난 것은 소득뿐 아니다. 삶의 질도 높아졌다. 그는 주말이면 지역 한인들과 모여 축구를 하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닌다. 또한 “요즘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이층집을 짓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웃었다. “한국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이라고 덧붙였다.
조 사장이 애초 이민을 결심한 것은 자녀 교육 때문이었다. 그의 큰아들은 호주 공립 고등학교를 무료로 다닌 후 현지 약대에 진학했다. 그는 “뉴질랜드를 비롯해 캐나다, 필리핀 등 다양한 지역을 알아봤지만 남호주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었다”고 밝혔다. 사업 이민을 신청해도 영어 성적을 제출할 필요가 없고, 자녀들은 현지인과 같은 비용으로 교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비 싸고 교육 환경 뛰어나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 있던 이민국은 미국과 캐나다였다.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남호주가 최근 각광 받게 된 것은 현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이민 출국자는 2만946명으로 2006년의 2만6236명보다 20%나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 이민자는 늘었다. 호주 이민성에 따르면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 30일까지 호주 영주권을 받은 한국인은 495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6%나 증가했다. 호주는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영어권 국가이면서도 외국인 투자자나 사업 이민자에게 비자 옵션이 유연하기 때문이다.
호주 사업 이민을 위해 필요한 ‘163비자’의 경우 자격 요건은 ‘55세 이하, 자산 25만 호주달러 이상, 최근 3년간 과장급 이상 직장인으로 지냈거나 30만 호주달러 이상의 사업체 오너’가 전부다. 한국에서 2억5000만 원 상당의 집 한 채가 있는 과장급 이상의 샐러리맨이라면 대부분 해당된다. 영어 시험도 면제다.
이 비자의 최고 특혜는 자녀 교육이다. 비자를 취득한 후 4년 동안 18세 이하 자녀를 호주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 부인과 자녀들만 호주에 입국시키는 ‘기러기 가장’도 환영한다. 40대 가장이라면 한국에서 사업이나 직장을 유지하면서 자녀 유학과 영주권 취득을 모두 노릴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애들레이드는 해외 유학생만 2만3000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은 중국과 인도, 말레이시아에 이어 넷째로 많다. 호텔 경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ICHM대의 댄 애드먼드 학장은 “외국인 학생 중 한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며 “이곳을 졸업한 후 미국이나 스위스 등의 특급 호텔로 갈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애들레이드에서 컴퓨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안성균 사장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을 만났는데 영어는 자신이 책임을 질 테니 가정에선 한국어만 사용하라고 조언하더라”며 “호주 교육이 글로벌 인재 양성을 중시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밝혔다.
교육 환경도 뛰어나다.
각 공·사립학교는 물론 애들레이드대, SA 주립대, 플린더스대(Flinders University) 등 명문 대학들이 도심에서 차로 몇 분 거리에 있다. 특히 1874년 설립된 애들레이드대는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이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와 영국의 크렌필드대 등 세계적인 대학 분교도 있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가면 가방을 맨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남호주 주정부에서 사업 이민을 담당하고 있는 강리나 상무관은 “해외 유학생들과 사업 이민자들이 몰리면서 애들레이드 시내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사업 이민으로 남호주가 주목 받는 데는 저렴한 생활비를 빼놓을 수 없다.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동부 지역 못지않게 교육과 복지 환경을 자랑하면서도 정착비와 부동산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남호주 정부에 따르면 호주 주요 도시 주택 가격 중 남호주 수도인 애들레이드가 가장 낮다. 주택 한 채 평균 가격이 시드니는 53만6000달러, 멜버른이 42만6000달러인 데 비해 애들레이드는 36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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