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품 공략’ 마지막 비상구 찾기
일본 ‘부품 공략’ 마지막 비상구 찾기
일본 도쿄에 있는 한·일 공동 물류센터. |
올해 3월 15일, 청와대 경제수석 주재 간담회. 내로라하는 대일 무역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대일 역조(일의 진행이 나쁘게 흐르는 것) 현상을 하루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불황 극복이 쉽지 않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런 결론을 내릴 만도 했다.
대일 수출 불균형이 위험수위를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대일 무역적자는 지난해 327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비 10%가량 증가했다. 사상 최대 적자다.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적자 133억 달러의 2.5배에 이른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에서 까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대미·대중 수출 흑자는 각각 80억 달러, 144억 달러였다.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품소재 분야의 부진 때문이다.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실례로 국내 LCD 부품 중 62%가 일본산이다. 이유는 또 있다. 일본 주력 수입품목이 우리의 수출품목과 다른 탓에 한국 제품이 뚫고 들어갈 공간이 작다.
일본의 10대 수입품목은 원유, 천연가스, 철광 등이다. 반면 우리의 수출 주력은 전자제품, 자동차다. 그렇다고 일본 시장이 난공불락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희망의 땅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 내수시장은 세계 2위 규모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한국 기업만 할 수 있는 주문, 납기 대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엔고에 따라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한 것도 호재다. 2006년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100엔당 813원이었지만 현재는 1500원까지 치솟았다. 똑같은 제품을 팔아도 2배가량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셈이다.
코트라 박기식 해외사업본부장은 “일본 공략의 적기는 지금”이라며 “대일 역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 시장을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번 돈 일본에서 까먹어
|
최근엔 대일역조개선 자문위원회도 열었다. 전 쌍용재팬 사장이었던 동아제분 안종원 부회장(코트라 비상임이사)을 초청해 일본 공략법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국내 중소기업은 일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를테면 공일증이다. 한 차원 높은 기술력에 주눅 든 것이다. 기업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부와 유관조직도 다를 바 없었다. 코트라가 일본실을 폐지한 것도 일종의 공일증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혹독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서두르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기업의 문을 두드린다. 코트라가 3월 25~26일 개최한 ‘활로 개척 글로벌 기업 방한 상담회’엔 일본 유수의 기업 미쓰비시전기·가지마건설·시바우라MT 등이 참여했다. 일본 최대 전자기업 히타치그룹도 6월 4일 흙 속 진주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이 국내 부품기업 찾는다”
|
한 수출기업 CEO는 “이전엔 고작해야 2, 3차 벤더만 관심을 가졌다”며 “하지만 최근엔 1차 벤더, 한 발 더 나아가 기업 스스로 우리 부품을 보러 온다”고 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코트라는 대일 수출기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4월 28일 일본 도쿄에 이용 면적 8264㎡, 화물취급량 2만5000t(월)에 달하는 한·일 공동 물류센터를 연 것은 대표적 사례. 최적의 물류시스템을 구축해 중소 수출기업의 대일 무역을 측면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기업이 이 물류센터를 이용하면 평균 20%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창고경비, 하역비 등 연 628만원도 지원받는다. 박기식 해외사업본부장은 “올해 이 센터가 올릴 수 있는 수출창출 효과는 1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며 “물류센터가 정착되는 2011년엔 1억 달러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뿐 아니라 마케팅의 활로도 열어준다. 코트라는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올 11월 25~27일 도쿄에서 한국부품산업전을 개최한다. 국내 부품제조, 수출기업의 일본 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사업이다.
추경예산 10억원이 투입된다. 전시 품목은 IT·전기전자·기계·자동차 부품·그린환경산업 부품 등이다. 여기에 참여한 기업엔 일본 현지 홍보활동을 도와준다.
사업 홈페이지 운영, 포털 배너광고 등 온라인 광고를 지원하고, 일본 기업 유치 안내문을 현지 4만여 개사에 발송할 계획이다. 일본 유망 기업과 1대1 접촉을 통해 직접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박기식 본부장은 “일본이라고 벌벌 떨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핵심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승부를 걸 수 있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기계부품 제조업체 대성하이텍은 1998 ~2002년 일본에서 열린 부품산업전에 꼬박꼬박 참여했죠. 처음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기술력을 인정 받아 일본 판매망이 열렸다고 합니다. 1998년 매출 2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가 어떻게 변신했는지 아십니까? 지난해 매출은 330억원이 훌쩍 넘고, 그중 90% 이상이 해외수출 실적입니다. 우리의 기술력은 일본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전 정신이죠.”
정부와 코트라는 일본 시장 공략의 성패를 한국 경제 부활의 관건으로 본다. 일본에서 성공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본과 능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그래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마케팅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국내 중소기업에 “이젠 공일증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2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3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
4영주시, 고향사랑기부 1+1 이벤트..."연말정산 혜택까지 잡으세요"
5영천시 "스마트팜으로 농업 패러다임 전환한다"
6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7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
8 “청정함이 곧 생명, 무진복 3겹 껴입어”…GC셀이 오염 막는 방법
9우리은행, 25억원 규모 금융사고 발생…외부인 고소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