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증된 기반기술로 세계시장 노린다
![]() ![]()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연구소. |
신종 플루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쓴다. 국내에서도 이미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치료제인 ‘타미플루’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타미플루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제약회사 로슈가 생산한다. 그런데 그 원천기술을 미국의 길리아드(Gilead)로부터 사들였다.
현대아산병원 안에 위치한 크리스탈지노믹스(대표 조중명)는 길리아드처럼 획기적인 신약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세계적인 제약회사에 파는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바이오 벤처 붐이 일던 2000년 당시 LG생명과학연구소장(전무)으로 있던 조중명 대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 계기는 뭘까?
바로 길리아드에서 새로운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1987년 설립 당시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길리아드가 1999년 타미플루의 원천기술을 로슈에 팔면서 결국 대박을 터트렸다. 2000년 2000억원에 불과하던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올해 60조원을 넘어섰다. 그는 신약 개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면서 “우리 회사도 못 해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이런 확신은 오랜 연구 경험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자연대를 졸업한 뒤 미국 휴스턴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4부터 16년간 대기업인 LG그룹에서 생명과학을 연구했고, 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부근에 위치한 세계적인 바이오벤처 ‘카이론’에서도 8년간 일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명멸해가는 벤처기업을 지켜보면서 바이오 벤처기업의 성공에 필요한 아래의 조건들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첫째, CEO와 경영진이 그 분야에 실적(track record)이 있는가? 둘째, 제휴 파트너가 누구인가? 셋째, 자신의 고유한 ‘기반기술(플랫폼 테크놀로지)이 있는가?
넷째, 우수한 연구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 조 대표가 이끄는 크리스탈지노믹스의 핵심 자산은 뭐니 뭐니 해도 연구인력이다. 회사의 직원 60명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가 23명(석사 29명)에 이른다. 첫 연구 성과는 설립 3년 만인 2003년에 나왔다.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작동기전을 세계 최초로 원자 수준으로 규명해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다(화이자도 비아그라를 원자 수준까진 규명하지 못해 ‘재래적’ 방식으로 개발했다). “우리의 구조기반기술(SBDD)이 3년 만에 세계적인 검증을 받은 쾌거였다”고 노성구 부사장(CTO)이 말했다.
노 부사장이 말하는 구조기반기술은 무엇을 의미할까? 흔히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예컨대 아스피린은 위궤양을, 비아그라는 종종 두통을 수반한다. 그 이유는 약의 성분이 특정 질환의 표적단백질(target protein) 분자에만 작용하지 않고 유사단백질에도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표적단백질의 분자구조를 3차원으로 치밀하게 규명해 거기에 최적화된 ‘맞춤형’ 약을 개발하면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 게다가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신약후보 개발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임상(pre-clinic: 개발후보를 찾은 뒤 동물 대상으로 약효와 독성을 검사하는 단계), 임상1상(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의 안정성 검사), 임상2상(소수 환자에게 하는 약효 검사), 임상3상(다수 환자에게 하는 약효 검사), 후임상(약품 적용 후 부작용 검사)을 거치게 돼 제품이 나오기까진 길게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수입원은 크게 연구용역과 기술수출(라이선스아웃)로 나뉜다. 그중 라이선스아웃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우선 특정 질환에 작용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3차원적으로 규명하고, 그 단백질을 이용해 신물질을 찾아내 물질특허를 확보한 뒤 그 물질로 신약개발 후보를 발굴한다.
그 후 후보물질을 대형 제약회사에 팔면 제약회사가 이를 토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쳐 상품화하고, 기술수출업체는 판매수익 중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다. 실제로 크리스탈은 네이처 논문 게재 후로도 신약후보 물질들을 속속 내놓았다. 차세대 관절염 치료제 후보(CG100649)를 첫손으로 꼽을 만하다.
기존의 관절염 치료제는 흔히 복용자의 25%가 위 천공 등 부작용을 겪는 걸로 보고된다. 그러나 “우리가 발굴한 치료제 후보는 임상2상까지 전혀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고 치료효과도 뛰어나다”고 조 대표가 말했다. 차세대 관절염 치료제는 현재 임상3상을 앞둔 상태다(임상3상을 마치려면 국내에선 약 2년 반, 미국에선 3~4년이 소요된다).
“성공할 경우 10억 달러(약 12조원) 이상이 팔리고 그중 10% 이상이 우리 수입이 된다”고 그가 말했다. 국내시장과 중국시장 판매는 한미약품에 맡긴 상태고, 미국·유럽·일본시장은 세계 10대 다국적 제약사들과 협상 중이다. 약에 내성이 생긴 ‘수퍼 버그(세균)’를 물리치는 신개념 항생제(CG400549)도 이미 유럽에서 전임상 단계를 마치고 곧 임상1상에 돌입한다.
“항생제는 만성질환인 관절염 치료제보다 투여기간이 짧아 임상2상과 3상 기간도 자연히 줄어든다”고 노 부사장은 말했다. 신개념 항생제는 성공하면 라이선스를 팔아 향후 1000억원 이상의 수입이 예상된다. 체내 적혈구 생산을 늘리는 최초의 경구용 저산소증(빈혈증) 치료제(CG600647)는 전임상 단계를 밟고 있다.
이를 위해 크리스탈은 이미 지난해 10억 달러 규모의 바이오펀드를 운영하는 미국의 벤처캐피털 ‘프로퀘스트’와 Palkion이라는 합작회사를 미국 현지에 설립했다(Palkion은 ‘발견’의 영어 표기다).
특히 저산소증 치료제는 폐활량을 늘려주는 효과 때문에 한때 유명 사이클 경주 선수인 랜드 암스트롱을 비롯한 운동선수들이 복용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물론 지금은 금지약물로 분류된다). 폐활량 증가 용도 외에 뇌졸중, 뇌신경세포 파괴, 상처 치료 등에도 쓰이는 저산소증 치료제의 세계시장 규모는 100조원을 넘는다.
차세대 관절염 치료제와 신개념 항생제, 저산소증 치료제 등의 기반기술로 내년 한 해 동안 크리스탈이 거둬들일 라이선스 수입만 3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크리스탈의 기반기술 수출이 성공할 때 실현될 이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대우증권의 권재현 애널리스트는 말했다. 크리스탈의 미래가 밝은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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