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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채무불이행 상태로 군입대 하나요?

아직도 채무불이행 상태로 군입대 하나요?

아무리 좋은 복지 프로그램도 수혜 당사자들이 모르면 소용없다. 기왕 힘든 국민 도와주겠다는 정책을 만들었다면 널리 알리는 것이 정부의 의무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복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당신이 두 달 후 군입대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당신은 4개월째 카드빚을 연체 중이다. 이미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당장 돈을 마련할 곳은 없다. 이대로 군입대를 하면 연체 이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 뻔하고 제대 후 취업에도 문제가 생긴다. 절망적인 상황.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해결책이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가 군 복무자와 입대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3개월 이상 채무를 연체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된 군 복무자나 입대 예정자의 신용 회복을 돕기 위해 2005년부터 시행하는 제도다.

혜택은 크다. 우선, 전역 때까지 채무 상환이 연기된다. 전역 후에 취업을 못하면 본인의 신청에 따라 6개월 단위로 최장 2년까지 상환이 유예된다. 유예기간이 끝나더라도 길게는 8년 동안 채무 원금을 분할상환할 수 있다. 또한, 분할상환기간 내에 채무원금을 모두 갚으면 발생한 이자는 모두 면제된다.

신청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 관련 신청서류를 지참하고 가까운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소를 방문하면 된다. 우편이나 인터넷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 입대 전은 물론 휴가 중에도 신청할 수 있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군 복무자나 입대 예정자에게 더없이 좋은 이 프로그램은 얼마나 활용되고 있을까?

참고로, 정부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하는 대상자 수는 4만~5만 명 정도다. 신복위에 따르면 올해 이 프로그램 신청자 수는 7월 말 현재 26명이다. 지난해는 33명, 2007년에는 25명뿐이었다. 시행 첫해 3367명이 신청했지만 이듬해 116명으로 줄더니, 현재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정부 실무자 홍보 부족 인정

왜일까? 그사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확 줄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고승덕 의원이 금융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 받아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학자금 대출 연체로 인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된 대학생만 1만2927명이다.

2006년에 비해 19배 증가했고, 올 1~6월에만 2800여 명 늘었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 실적이 저조한 몇 가지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다. 신청 조건이 복잡하고 까다롭거나, 혜택보다 불이익이 큰 경우다. 아니면,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혜택 대상자들이 잘 모르거나 해당 기관이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경우다.

이 프로그램의 절차는 이렇다. 대상자가 신청하면, 신복위 심사역이 채무조정안을 작성하고, 내부 심의위원회를 거쳐 채권 금융기관의 동의를 얻는다. 이후 신복위는 금융기관 동의를 토대로 신청 대상자와 채무조정 합의서를 체결하고, 일정 교육을 한 후 최종 확정하게 된다.

보기에 따라서는 복잡한 듯 하지만, 필수적인 절차다. 접수부터 최종 확정까지는 대략 한 달 보름 정도 걸린다. 신복위 관계자는 “신청 동의율은 약 95%”라고 했다. 100명이 신청하면 상환 여유가 있거나, 문제가 많은 신청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홍보 부족이 저조한 실적의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신복위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소개되고, 징병검사를 하는 병무지청 13개소에 포스터를 부착한 것이 전부다. 이에 대해 신복위 관계자는 “나름대로 홍보하고는 있지만, 이 제도를 모른 채 입대하는 청년이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수혜 대상자는 모르고, 지원 기관은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실적이 저조한 복지 제도는 생각보다 많다.

특히 정부가 실시하는 각종 복지 관련 제도가 수혜자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저소득층의 통신비 감면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올 7월 말 현재 감면 대상자인 139만 명의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54만7000여 명, 차상위계층 240만 명 중 18만5000명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정부가 생계가 곤란해진 소액재산 보유자를 대상으로 1조원 규모로 운용하겠다던 자산담보부 생계비 저리 대출제도의 실적은 6월 말 현재 100억원도 되지 않는다.

또한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하는 재산담보부 특례보증제도의 경우, 보증 및 대출 조건이 일반 금융기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홍보도 부족해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 제도는 500만원씩 빌린다는 가정 아래 20만 가구를 목표로 했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담보가 필요하고 금융기관 재원을 활용하다 보니, 실적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집행 실적은 밝히지 않았다.

또한 올해 예산을 기존 1000억원에서 1조2500억원으로 증액한 무점포·무등록 사업자에 대한 보증지원의 경우 7월 말 현재 2000억원만 집행됐고, 금융소외 자영업자 특례보증 제도는 현재까지 15%의 집행 실적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관련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정부 부처 및 기관 실무자들이 대부분 홍보 부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을 발표할 때 반짝 언론에 노출된 후에는 이렇다 할 홍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은 드물다. 왜 실적이 저조한가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고민하는 곳도 찾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정부 방침에 따라 우리은행이 4년째 시행하고 있는 ‘사회봉사 채무감면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채무원금이 1000만원 이하인 소액 연체자를 대상으로 사회봉사활동이나 은행이 인정하는 직업훈련과정을 마치면 포인트를 부여해 채무감면이나 신용관리대상 정보등록을 해제해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경우 시간당 3만 포인트, 하루 최고 24만 포인트를 인정한다.

1포인트는 1원이다. 5시간짜리 사회봉사활동을 했다면, 15만원의 채무를 감면해주는 식이다. 또한 직업훈련과정은 최고 500만 포인트, 헌혈을 하면 연 2회에 한해 1회당 30만 포인트를 제공한다.



우리은행 실적이 좋은 이유


군 복무·입대 예정자 신용회복지원제 이용 현황
자료: 신용회복위원회(단위:명)
우리은행에 따르면 올해 1~7월 실적은 206건 1억6400만원이다. 작년에는 1년 동안 275건이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총 540명이 혜택을 봤다. 물론 정부나 시중은행의 예상에는 한참 모자라는 실적이다.

그나마 이런 유사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여러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이 가장 실적이 좋다. 이유가 있다. 이권우 우리은행 부부장은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1년에 20~30건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의 경우 관련부서 직원 4명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있다. 이 부부장은 “통계를 내보니 5500명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된 사람은 606명, 그중 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한 사람은 396명이었다”고 말했다.

396명 중 절반은 실제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이 부부장은 “본인이 생계 때문에 힘들다면 가족이나 지인, 아니면 자원봉사자가 대신 사회봉사활동을 해도 감면 혜택을 받는다”며 “신용불량을 바로 풀 수 있도록 도와 드리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에 전화번호를 꼭 표기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 제도를 문의하려면 우리은행 기업회생부(02-2002-5695)로 연락하면 된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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