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 와인이 낙지 만나 촌놈 됐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말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세발낙지 전문점 해태식당. 자리에 앉자마자 살아 꿈틀거리는 세발낙지 5마리가 냉면 그릇에 담겨 나왔다. 허영만 화백이 능숙하게 낙지 한 마리를 건져 몸통과 눈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꼽았다. 그리고 빠르게 낙지 팔을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더니 한입에 넣었다.
이윽고 허 화백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는 “낙지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통째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 화백은 무더위에 입맛이 없거나, 싱싱하게 살아있는 산낙지에 술 한 잔이 떠오르면 지인들과 이곳을 찾는다. 간판에서부터 전라도의 손맛이 느껴지는 해태식당은 봉천시장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해태식당 사장의 6남매 모두 영암, 목포, 서울 북촌 등 전국에서 낙지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목포, 고흥, 완도 등 산지에서 갓 잡은 싱싱하고 연한 낙지를 공수해올 수 있다. 허 화백이 진행하는 이번 밥상머리 토크 주제는 낙지다. 낙지는 효과적인 스태미나 식재료로 입맛을 돌게 하는 효능이 있다.
밭갈이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산낙지 한 마리를 먹이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낙지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무기질 성분이 풍부해 빈혈에 효과적이다. 몸에 좋은 데다 쫄깃한 맛이 일품인 산낙지가 와인을 만나면 어떨까. 언뜻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허 화백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양말을 벗고 와인 시음을 시작했다. “양말을 신고 마시면 이상하게 빨리 취하더라고요. 일종의 징크스가 돼버렸죠.” 식전주로는 이탈리아산 화이트 와인인 소아베(Soave)를 선택했다. 소아베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지막 밤을 지내며 마신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상쾌한 열대과일 향과 달콤한 들꽃 향이 조화를 이뤄 식욕을 돋워주는 게 특징이다. LG트윈와인의 이지민 대리는 “깨와 소금, 참기름으로 만든 기름장에 찍어먹는 산낙지는 산낙지 맛보다 기름장의 고소한 맛으로 먹는다”며 “기름장이 느끼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맛을 정리해주는 화이트 와인을 골랐다”고 들려줬다.
산낙지에 와인을 하나 더 추가했다. 바로 칠레 화이트 와인인 비냐 마이포 소비뇽 블랑 리제르바(Vina Maipo Sauvignon Blanc Reserva). 허 화백이 이날 가장 맛있다고 손꼽은 와인이다. 비냐 마이포를 마시면 시큼하면서 산뜻한 레몬 향이 입 안에 맴 돈다. 그는 “기름장이 느끼할 때는 신 김치를 먹어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신 김치의 알싸한 맛이 마치 와인처럼 낙지의 비릿함을 개운하게 해줬다. 다음은 꽤나 도전적인 음식이 올랐다. 이 대리는 온갖 야채와 마늘, 고추장, 식초, 깨 등으로 무친 낙지 초무침의 신맛이 입 안을 압도하기 때문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초가 와인이 가진 신맛보다 월등히 강해 와인의 단맛을 도드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LG트윈와인 측이 고른 와인은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인 세규라 비우다스 브루잇 리제르바(Segura Viudas Brut Reserva). 예상과 달리 낙지 초무침은 부드러운 산도와 바디감을 지닌 스파클링 와인과 조화를 이뤘다. 김수한 LG트윈와인 대표는 “반짝이는 작은 버블이 신선하게 갓 무쳐진 낙지 무침에 생동감을 준다”고 말했다.
“산뜻한 열대과일 향이 낙지 무침에 감칠맛을 더해주네요. 이 와인은 차가운 전채요리나 얇게 저민 냉육과도 잘 어울리겠어요.” 양념이 골고루 밴 낙지구이가 식탁 위에 오르자 허 화백은 명절 때마다 집에서 해먹던 요리라며 반가워했다. 이어 살짝 탄 낙지구이 맛과 어울릴 법한 이탈리아산 알레그리니 발폴리첼라(Allegrini Valpolicella)가 등장했다.
▎1 낙지 초무침과 스파클링 와인 세규라 비우다스 2 낙지구이와 레드 와인 알레그리니 발폴리첼라
이날의 유일한 레드 와인이었다. 농도가 짙지 않은 중간 바디감으로 스테이크, 바비큐 요리, 향이 풍부한 치즈 등과 어울린다. 특히 와인의 드라이한 맛이 낙지구이에 배어든 양념 맛을 더욱 살려줬다.
낙지구이와 함께하면 좋을 또 다른 와인으로는 호주산 화이트 와인인 카트눅 파운더스 블록 샤르도네(Katnook Founder’s Block Chardonnay)가 꼽혔다. 약간의 캐러멜 향과 함께 오크 향이 구이 요리와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줬다.
진한 과일 향, 특히 멜론, 복숭아, 포도의 풍미가 오크 향과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낙지구이와 함께 두 와인을 번갈아 마셔 본 허 화백은 발폴리첼라를 촌놈에 비유했다.
“낙지구이와 카트눅의 궁합은 비교적 괜찮아요. 그런데 발폴리첼라는 마치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을 못한 데다 분위기도 못 맞추는 게 촌놈 같아요.”
그러더니 “아무렴 어떻습니까.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마귀 할멈 와인도 맛있는 걸요”라고 말해 좌중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이날 마지막을 장식한 요리는 연포탕이었다.
술꾼들에게 인기만점인 해장국답게 입맛을 개운하게 해줬다. 사실 연포탕은 두부, 무, 고기 등을 넣어 맑게 끓인 장국을 말한다. 해안 지방에서 다시마 우린 물에 낙지를 넣어 끓이면서 낙지 연포탕이 된 것.
와인의 대중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LG트윈와인은 곧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허영만의 추천 와인’을 음식 코너에 비치할 예정이다. 예컨대 낙지를 파는 곳에 비냐 마이포나 알레그리니 발폴리첼라 등을 함께 두고 낙지요리와 함께 마시면 좋을 와인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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