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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5%’에 숨은 비밀이 있다

‘금리 5%’에 숨은 비밀이 있다

요즘 서울 여의도는 온통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도배를 한 듯하다. 눈에 보이는 간판, 홍보물에 CM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증권사 직원의 통화연결음 대부분이 CMA 광고음으로 시작된다. 지난 8월부터 증권사의 지급결제가 허용되면서 은행과 증권사의 경쟁에 더욱 불이 붙은 것.

거기다 증권사들이 특판 금리 상품을 내놓으면서 경쟁은 ‘증권사 vs 증권사’로 번졌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는 법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는 CMA 과대 광고에 대해 규제와 권고를 내리고 있지만 증권사의 마케팅은 이미 누구 하나 물러서기 어려운 모양새다.

계좌 한 개가 아쉬운 마당에 아무래도 상품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물건을 파는 회사로서는 그게 당연하다. CMA는 분명 좋은 상품이라고 많은 이가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 그렇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최고로 이로운 상품은 아니다. 마치 재테크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CMA의 빈틈을 알아봤다.


이유 1 장기 투자로 적합하지 않다대표적인 단기 금융상품으로 꼽히는 것이 CMA다. 분위기에 휩쓸려 가입해 놓고 그냥 두면 나중에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익을 얻게 될지 모른다. 흔히 은행의 대표 상품인 정기예금과 증권사의 대표 상품인 CMA를 비교하는데 정기예금은 장기 투자하기에 좋고 CMA는 단기로 돈을 굴리기 유리하다는 점에서 절대적 비교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CMA처럼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은행 상품으로 요구불 예금이 꼽힌다. 한 증권사의 연구원은 “역마진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노마진으로 증권사가 ‘머니 무브’ 현상을 노리고 뛰어든 시장이기 때문에 은행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요구불 예금과는 상품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기예금과 CMA 중에서 뭐가 더 유리한지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우선 CMA가 필요한지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금융상품에 더 적합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CMA는 단기 운용 자금을 넣어두기에 좋다고 조언한다. 가령 전세자금, 장기 투자처를 찾기 전 대기자금, 비상금, 회비 등 언제든지 출금할 수 있어야 하고 보관용 성격이 강한 돈이라면 은행에 두는 것보다 분명 유리하다.

단기로 자금을 굴리기 위해 가입했지만 ‘일정 기간 동안 돈을 찾지 않겠다’는 식의 고금리 약정에 걸려 마음대로 돈을 넣었다 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크게 쓰인 숫자(금리)만 볼 것이 아니라 고금리를 적용 받으려면 어떤 조건을 지켜야 하는지, 어겼을 때 패널티는 없는지 가입할 때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유2 예금자 보호 안 된다보통 CMA 상품은 종금형, 환매조건부채권(RP)형, 머니마켓펀드(MMF)형, 머니마켓랩(MMW)형 등으로 나뉜다. 가입 시 무슨 유형이고 어떤 대상에 투자한다는 간략한 설명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그렇듯 감춰지게 마련이다. 네 가지 종류의 상품 중에서 예금자 보호가 되는 상품은 종금형뿐이다.

종금형 CMA는 예금자보호법을 적용 받아 예금보험공사에서 최고 5000만원까지 보장해 준다. 증권사가 망해도 5000만원까지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종금형 CMA를 취급하는 증권사는 동양종금증권, 메리츠증권(메리츠종금), 우리투자증권뿐이다. 그중에서 우리투자증권은 10월에 종금업 면허가 종료되면 종금형 CMA에 신규 가입할 수 없다.

주로 RP형의 비중이 큰데 장기 채권에 투자해 단기로 운용하기 때문에 미스매치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 미스매치의 악순환이 계속되면 재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증권사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또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수익이 하락해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다.

따라서 RP형 CMA에 가입할 때는 투자하는 채권이 뭔지 따져봐야 한다. 안정성과 환금성을 갖춘 국고채나 통안채가 회사채보다 덜 위험하다. 잔액 중 최소 5%는 현금으로 보유하게 하는 등 금감원과 금투협이 재무 안정성을 해치면서 고금리로 경쟁하는 것을 막고 있기는 하다. 역마진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금이 부족해지면 그땐 채권을 팔아야 하고 채권 값이 떨어져 고객의 자금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규제를 벗어나 금리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증권사가 생각해 낸 방법이 약정이다. 고금리를 적용하는 대신 펀드 자동 이체, 급여 통장 지정, 공과금 자동 납부 같은 조건을 거는 것이다.

한 증권사의 홍보 담당자는 “고금리를 내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최대한 높은 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이 이런 까다로운 조항을 뒤늦게 알았을 때 위에서 말했듯 발목 잡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유3 집 살 때 불리하다

▎(각 월 말일 기준, RP형·MMF형·종금형·기타형 합계)

▎(각 월 말일 기준, RP형·MMF형·종금형·기타형 합계)

내 집 마련이나 앞으로 고액 대출 계획이 있는 사람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은행은 보통 고객의 과거 실적에 따라 대출 한도와 이자율을 정한다. 계좌를 은행 통장과 CMA 통장으로 나눠 쓰다 보면 실적이 양분돼 대출할 때 불리하다.

은행 통장을 아예 CMA 통장으로 갈아타는 사람은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증권사 CMA는 대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과 제휴해 마이너스 대출을 중개해주는 증권사도 있지만 부가 서비스일 뿐이다.

한 은행권 PB는 “은행에 급여 계좌를 개설하면 0.1~0.2%포인트 금리 우대 혜택을 주는데 CMA는 당장은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한 달에 200만원씩 넣어서 0.1%포인트 우대받는 것이 얼마나 큰 수익이 되겠느냐”며 “주택자금대출 금리 0.1%포인트와 규모를 비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PB는 “고액 투자자는 CMA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일반 샐러리맨은 CMA에 가입해도 입금하는 규모가 적어 수익이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 역시 “뭐라 해도 은행이 제1금융권이기에 대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은행과 관계를 지속하면서 CMA 통장을 따로 만들어 단기 자금을 관리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유4 ‘금리 5%’에 숨은 비밀이 있다지난달 초 메리츠종금이 업계에서 처음으로 5%대 고금리 CMA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유진투자증권과 신영증권이 뒤이어 5%대 CMA를 출시했다. 메리츠종금은 예상보다 많은 자금(7000억원)이 몰리자 운용하는 데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조건 한도를 더 엄격하게 수정했다.

원래 10월 말까지 가입한 고객, 10월 말까지 납입된 금액 모두에 5%를 제공한다고 했다가 9월 4일까지 가입한 고객까지만 5%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 담당자는 5% 이미지와 더 이상 연결되는 것을 걱정하며 이 문제에 대한 말을 아꼈다. 유진투자증권 관계자는 어떻게 5.1% 금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채권 운용 능력이 뛰어나고, 1년 이상 예치, 1000만원 한도 내라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상품은 올해 말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신영증권 측은 “2개월 동안 300만원에 한해서만 기존 2.5% 금리에 2.5%의 추가 금리가 적용된다”며 “출시를 기념한 한시적인 이벤트일 뿐”이라고 답했다. 결국 정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눈길 끌기 혹은 물량공세였던 것이다.

한 증권사 마케팅 직원은 “CMA의 정상적인 금리 수준은 2.5% 정도”라며 “4%를 넘으면 회사가 마진을 줄이거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고객 유치를 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5% 금리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고금리 채권을 편입하기 때문에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5 아직 완전한 상품 아니다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증권사의 지급결제로 CMA가 획기적인 상품의 왕좌에 앉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금투협에 전화했을 때도 CMA 문제로 담당자가 모두 회의 중이었다. 유동성, 수익률, 편의성 등 많은 부분이 미완으로 남아 있다.

카드사·보험사·통신사·백화점 등 1300여 개 제휴업체 중에서 아직 증권사와 지급결제 계약을 맺지 못한 곳이 500여 개다. 순차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하지만 은행계 카드사와는 제휴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수수료, 이체 시간 등 증권사들이 저마다 보완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과거에는 증권사와 은행이 제휴해 가상계좌를 개설해 수수료가 무료였는데 증권사가 소액결제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가상계좌가 없어졌다. 증권사가 고객을 끌기 위해 은행보다 낮은 수수료를 받거나 회사가 부담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어 출금 수수료는 무료지만 입금 수수료는 조건마다 부과 내용이 다르다. 만약 해당 증권사 지점에 직접 찾아가야 수수료가 면제된다면 수수료에 교통비라는 추가 거래 비용까지 발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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