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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산업 적자냐 흑자냐보다 그 내용을 평가한다

영상산업 적자냐 흑자냐보다 그 내용을 평가한다

#1 이재현 회장은 겉으로 드러난 적자 또는 흑자 여부를 놓고 CEO나 회사를 평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적자가 나더라도 그 자체보다 내용을 유심히 살핀다.

또 비록 적자가 났더라도 사업 비전이나 방향이 올바르다고 판단하면 감수하는 스타일이다. 이른바 이 회장이 강조하는 ‘가치 있는 적자’ 또는 ‘미래를 위한 적자’다. 이와 달리 흑자를 냈더라도 장기 비전이나 방향성 없이 오락가락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2 그는 “한국인의 예술적 재능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산업적으로 뒷받침하면 꽃을 피울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영화·방송·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래서 꾸준히 투자해 키우면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 회장이 곧잘 엔터테인먼트 없는 미래산업은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좀처럼 언론에 나서지 않는 이재현 회장이 새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영화 사상 다섯 번째로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해운대> 의 흥행이 계기다. 영화가 유례 없는 불황 속에서 24개국 수출과 자동차 3000대 생산에 맞먹는 생산 유발 효과 등 대기록을 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5년 드림웍스에 3억 달러(당시 환율로 우리 돈 2300억원)를 투자하면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E&M) 사업에 뛰어든 후 지금껏 적자를 감수하면서 버틴 뚝심이 화제가 됐다. 특히 그 자신이 그렇게 강조한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의 잠재력과 폭발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이 관심을 모았다.

<해운대> 의 흥행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에서 CJ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제는 CJ를 빼고 한국의 영화·문화산업을 논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CJ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면서 화려하다.

영화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 방송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CJ미디어, 디지털케이블방송,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전화 사업을 벌이는 CJ헬로비전, 음반 기획과 음원 유통사업을 하는 엠넷미디어 등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회사가 각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이거나 선두권에 포진하고 있다. CJ가 대한민국 영상산업의 왕국이란 걸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돈벌이는 신통치 않은 편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 12조6000억원을 기준으로 사업 부문별 매출 비중은 식음료 46%, 신유통 22%, 바이오 19%, 엔터테인먼트·미디어 13% 순이다.

매출 비중도 작지만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에서 지금까지 2000억원가량의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3년 연속 적자를 내다 지난해 겨우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고전하다가 <해운대> 의 흥행으로 적자에서 벗어났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하반기에 흥행 기대작이 많아 올해 실적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은 영화산업의 속성상 정확한 실적을 가늠하긴 어렵다. 오리온의 온미디어와 경쟁하는 CJ미디어도 2005년을 빼고는 거의 해마다 적자를 냈다. 적자 행진 탓에 매각설에 시달렸을 정도다.

엠넷미디어도 여전히 투자 단계라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CGV, CJ인터넷, CJ헬로비전이 돈을 벌고 있는 게 다행스러운 점이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이 회장에게 이런 실적은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할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을 토대로 CJ그룹 고유의 경영철학을 정립한 그는 문화산업이 미래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 문화강국이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문화보국(文化報國)’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흥(興)과 정(精)을 지닌 한민족의 정서를 기반으로 세계의 문화콘텐트 산업을 이끌 수 있다고 본다.



적자냐 흑자냐는 단순한 숫자놀음다만 국내 문화콘텐트 산업이 내수 중심의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획·투자·제작·유통 등 모든 부문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문화콘텐트 산업의 가치 사슬에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원천 콘텐트 창작이 필수라고 여긴다. CJ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tvN 등이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콘텐트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대기업의 영화 진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누적 적자에 대한 위기감에도 계속 투자한 건 그의 이런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에 첫발을 디딜 때도 그랬다.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할 당시 CJ는 삼성과 분가한 직후였고, 총자산 규모가 1조원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환율로 2300억원에 이르는 돈을 투자한 건 범상치 않은 결정이었다. 주변에서는 과도한 투자가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이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드림웍스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CJ는 식품 중심 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 회사로 변신하는 전환점을 맞았다.

드림웍스가 제작하는 영화·비디오·음반 등 영상 소프트웨어와 TV프로그램의 아시아 지역 판권을 갖게 됐다. 특히 그후 CJ엔터테인먼트·CGV·CJ미디어·엠넷미디어 등을 차례로 세우면서 현재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그의 누나이자 그룹에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미경 부회장은 200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포트폴리오는 이재현 회장이 이미 오래 전에 구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드림웍스에 투자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회장이 영화 제작사, 멀티플렉스, 배급사, 케이블TV 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 회장의 이런 생각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고 공감한 사람이다. 이 부회장은 “아시아를 우리나라의 문화 식민지로 만들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문화콘텐트 산업에 열정이 대단하다.

사업에서는 두 사람이 역할을 분담한 모습이다. 이 회장이 사업 비전을 제시하고 뚝심 있게 뒷받침한다면 이 부회장은 풍부한 지식과 폭넓은 네트워크로 실행에 옮겼다. 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드림웍스 투자 문제로 한국을 찾았을 때 며칠 밤을 새워가며 직접 행사를 준비했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도 이재현 회장과 동승했다.



남매의 역할 분담

▎1995년 이재현 회장(왼쪽 넷째)은 이미경 부회장(맨 왼쪽)과 LA의 한 피자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과 드림웍스 투자 협상을 했다.

▎1995년 이재현 회장(왼쪽 넷째)은 이미경 부회장(맨 왼쪽)과 LA의 한 피자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과 드림웍스 투자 협상을 했다.

이 부회장이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미국 유학 시절에 당한 서러움 때문이라고 한다. 하버드대에서 아시아 지역 연구를 전공한 그는 한국 역사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그가 유학할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 정도로 비쳤다.

그런 인식을 바꿔보겠다는 욕심이 그의 인생도 바꾼 셈이다. 98년 CJ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이사로 경영 일선에 뛰어든 그는 2005년 부회장에 올랐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가운데 특히 영화에 애정이 많은 그의 강점은 무엇보다 20대부터 쌓고 닦은 글로벌 감각과 네트워크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와 중국 푸단대에서 유학한 그는 할리우드와 중국의 유력 인사와 꾸준히 교류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드림웍스가 제작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개봉할 때마다 감독과 제작자가 어김없이 한국에 들르는 건 CJ가 투자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게 이른바 ‘남매경영’으로 성장하고 있는 CJ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은 오는 12월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의 CJ빌딩에 입주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CJ엔터테인먼트·CGV·CJ미디어·엠넷미디어·CJ헬로비전 등 이 분야 회사가 모두 모인다. 스튜디오와 시사회장을 비롯한 시설도 마련했다. 이 회장이 추구하는 ‘문화보국’의 꿈이 영글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의 새로운 메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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